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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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지평을 향한 여정의 한 복판에서책 2021. 10. 7. 10:31
새로운 지평을 항한 여정을 함께한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 오랜 동경의 대상이었다. 물리학의 대가들 사이에서 오가던 양자역학에 대한 논쟁과 협의, 이해와 해석의 과정을 바로 지근 거리에서 생생히 담아낸 미치오 카쿠의 ‘평행우주’를 읽으며, 나도 언젠가 과학 역사의 한 복판에 함께 설 수 있기를 기대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상대성이론의 마지막 퍼즐 조각이 맞춰진 순간, 학창 시절에 상상했던 그 모습을 떠올리며, 중력파 천문학이라는 신대륙으로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이 여정으로부터 신뢰할 수있는 실험적 사실에 이르는 과정과 실천을 통해, 사실이 구성되는 천문학의 새로운 역사를 함께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중력파 관측의 성공이 의미하는 것은 우주를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얻은 것을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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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개국어 사용자들의 비밀책 2021. 10. 6. 16:48
일본 생활을 시작하고 처음 미용실에 들렀을 때의 일이다. 직원과 대화를 이어나가는 도중에 문득 “어느 지역 출신이냐”는 재미있는 질문을 받았다. 그래서 나는 “어느 지역 출신 같은지”를 역으로 물었다. 그랬더니, “오사카 출신인거 같다”는 재미있는 대답을 들었던 것이다. 그 이후로도 수업을 듣거나 일본의 친구들과 대화를 나눌때면 ‘일본에서 살았던 적이 있었는지’, ‘혹시 부모가 일본인인지’, ‘그동안 어떻게 일본어를 공부 했는지’, ‘언제부터 일본어를 할 수 있게 되었는지’ 같은 질문들을 줄곧 들어왔고, 지금도 듣고 있다.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나의 한결 같은 대답은, “어쩌다보니 일본어를 할 줄 알게 되었다”는 것 뿐이었다. 어쩌다 보니? 이 황당이 질문에 많은 사람들은 당황했지만 사실이었다. 이것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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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장을 나온 철학을 하지 않는 수닭책 2018. 9. 22. 00:26
지독한 고통과 고독 속에서 피어난 철학적 사유는 바늘처럼 뾰족하여 타인에게 상처를 주기 마련이고, 딱딱하게 굳어진 언어 탓에 그 진의 역시 올바로 전달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아름다운 문체와 낭만적 묘사들로 서술된 문학이라 하여도, 그속에 담지 된 철학이 어떠한 통찰과 성찰의 이끌어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어쩌면 서로를 닮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는 철학과 문학이라는 관계 사이에서, 이 둘을 조화롭게 결합하는 문학적인 철학 혹은 철학적인 문학이 그동안 얼마나 있었을까? ‘철학을 하지 않는 닭’은 그동안 갈망해 온 바로 이 질문에 대한 적절한 해답을 던져준 것만 같은, 아름다운 문학의 옷을 입은 담담하고 도도한 철학적 사유가 담긴 작품의 인상을 받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느껴지는 강한 기시감과 친숙함에 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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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본질에 관하여책 2018. 9. 20. 18:21
두 블랙홀이 충돌하면서 만들어진 중력파를 인류가 관측해내는데 성공하면서, 일반상대성이론을 완전히 증명해 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충돌했다는 두 블랙홀의 정확한 질량과 거리, 반지름, 스핀, 쌍성궤도반지름 등의 정보를 정확히 알지는 못하며, 그 파형과 진폭등의 정보 또한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양한 파라미터들을 대입하여 얻은 아인슈타인 방정식의 결과물과 측정된 파형을 비교함으로써 가장 유사한 파형을 찾아낸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질문을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관측한 중력파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의 참을 증명한 것이 아니라, 관측된 결과를 아인슈타인인 방정식이 도출해내는 결론에 맞게 끼워 맞춘 것은 아닌가? 인류가 만든 이론 중에 가장 정밀한 이론이라고 알려진 양자장이론으로부터, 우리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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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와 빈곤 밑줄 긋기책 2018. 9. 15. 19:34
부동산이란 무엇일까. 사회는 진보하고 경제는 눈부시게 성장해가며 인권을 넘어 동물권을 논하는 확장되는 도덕의 영향권 아래에서 조차, 땅 만큼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보다 우선시 된다. 개인과 개인, 개인과 집단, 개인과 국가, 집단과 집단, 국가와 국가 사이에서도 토지는 독자적이고 독보적인 가치를 뽐내며 자본과 노동을 잠식해 나간다. 자본이라는 추상물과 인간의 욕심이라는 본능과 결합 하면서 자연물에 불과한 토지는 부의 상징이자 잠식의 도구로써의 상징을 완성해 나간다. 토지개발을 명목으로 먼지처럼 흩어져 사라져간 수많은 목숨들을 보라. 부동산 투기 열풍에 휩싸여 반짝이는 사람들의 눈동자를 보라. 집값이라는 허상을 지키기 위해 하나가 되는 저들의 단결력을 보라. 토지의 가치에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노동력의 값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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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져 흩어진 마음의 껍데기책 2018. 9. 4. 20:03
위로를 얻고자 했던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이 차가운 얼음 아래서 꿈틀거리는 물고기들의 외침처럼 들린다. 그가 겪었을 우울함과 절망감, 무력감을 알아채고 마주하여 서서히 서로의 슬픔을 위로하기 보다는, 응어리진 마음이 빚은 그 얇은 껍데기 만이 이 곡에 남겨져 있는것만 같다. 변함없이 달려온 우리의 삶은 신자유주의라는 경제적 틀과 정치적 외양 사이에서 ‘자로 잴 수 없는 것을 위한 잴수 없는 자’를 통해 가치와 개성을 거세 당하며 비본질적인 것에 의탁 하기를 강요받아왔다. 무수한 의견과 기치의 대립은 여론이라는 이름의 허깨비에 의해 일방적으로 뭉개어지고, 다시한번 모든 것을 경제의 논리와 틀 속으로 가두어 경제 최우선을 외쳐댄다. 자발적 성찰과 경험 마저도 완제품으로 제공되는 대량생산품의 부속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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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기쁨책 2018. 8. 27. 22:57
책을 즐겨 읽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 였을까? 지금에서야 여러 종류의 책을 사서 읽기도 하고, 독서 토론회를 꾸려보기도 하고, 블로그에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를 짧게나마 써내려 가보기도 하지만, 처음부터 이렇게 책을 가까이 하고 지냈던 것은 아니다. 이야기 하자면 오히려 나는 책을 싫어하는 편에 속해 있었다. 초등학생 시절엔 독후감을 쓰라는 과제가 끔찍히도 싫었고, 매 해마다 학교에서 열리던 백일장이 정말이지 싫었다. 왜 읽기도 싫은 책을 강제로 읽어서 글까지 써내야한다는 말인가? 왜 똑같이 배부된 종이에 같은 시간에 모여 앉아 쓰기도 싫은 글을 그것도 같은 주제로 써야한단 말인가? 그래서 6학년 때에 마주한 백일장에서 나는 백지를 당당하게 제출했고, 그 뒤로 따로 불려나가 뭐라도 쓰라며 꾸지람을 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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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를 꿈꿀 수 있을까?책 2018. 8. 24. 16:24
다시 이 빛나는 점을 보라. 그것은 바로 여기, 우리 집, 우리 자신인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 아는 사람, 소문으로 들었던 사람, 그 모든 사람은 그 위에 있거나 또는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기쁨과 슬픔, 숭상되는 수천개의 종교, 이데올로기, 경제 이론, 사냥꾼과 약탈자, 영웅과 겁쟁이, 문명의 창조자와 파괴자, 왕과 농민, 서로 사랑하는 남여, 어머니와 아버지, 앞날이 촉망되는 아이들, 발명가와 개척자, 윤리 도덕의 교사들, 부패한 정치가들, 슈퍼스타, 초인적 지도자, 선자와 죄인 등 인류의 역사에서 그 모든 것의 총합이 여기에, 이 햇빛 속에 떠도는 먼지와 같은 작은 천체에 살았던 것이다. 장군과 황제들이 이 작은 점의 한 귀퉁이를 아주 잠깐 지배하려고 흐르게 했던 유혈의 강을 생각해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