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lavinka

책을 즐겨 읽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 였을까? 지금에서야 여러 종류의 책을 사서 읽기도 하고, 독서 토론회를 꾸려보기도 하고, 블로그에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를 짧게나마 써내려 가보기도 하지만, 처음부터 이렇게 책을 가까이 하고 지냈던 것은 아니다. 이야기 하자면 오히려 나는 책을 싫어하는 편에 속해 있었다.


초등학생 시절엔 독후감을 쓰라는 과제가 끔찍히도 싫었고, 매 해마다 학교에서 열리던 백일장이 정말이지 싫었다. 왜 읽기도 싫은 책을 강제로 읽어서 글까지 써내야한다는 말인가? 왜 똑같이 배부된 종이에 같은 시간에 모여 앉아 쓰기도 싫은 글을 그것도 같은 주제로 써야한단 말인가? 그래서 6학년 때에 마주한 백일장에서 나는 백지를 당당하게 제출했고, 그 뒤로 따로 불려나가 뭐라도 쓰라며 꾸지람을 들으며 다 쓸때까지 교무실 밖을 나가지 못했다. 아마 당시의 선생님에게 있어서 나는 공부도 못하는데 말도 안듣는 골칫거리 아이였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어느 가을날부터 판타지소설과 무협지 열풍이 교실에까지 살며시 스며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때 친구들은 하나 둘씩 교실에 책을 들고와 읽기 시작했고, 책의 내용을 이야기해주며 서로서로 추천해 주기도 했다. 나도 그 열기에 발맞추어 서점을 향했다. 책과는 별로 친하지 않았지만, 과학에는 흥미를 가지고 있던 터라 서점에 가면 언제나 과학동아나 뉴튼과 같은 과학잡지를 훑어 보기도 하고, 괜스레 과학 코너에 있는 과학 교양서들을 들춰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판타지와 무협지 열풍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게 SF 소설쪽으로 발길이 향하였다. 그때 읽었던 책이 바로 ‘듄’ 시리즈다. 워낙 방대한 시리즈였기에 이야기 흐름이 조금 더디고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기는 했지만, 나름 흥미를 가지고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이 시점부터 나는 조금씩 책과 친해지기 시작했다.


교육청에서 배정해준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그동안 알고 지냈던 친한 친구들이 다른 학교나 다른 반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지인 한명 없이 홀로 남겨진 외로운 교실 한 가운데서 나는 책을 한권 읽어 나가기 시작했는데, 그 책이 바로 ‘오페라의 유령’ 이었다. 처음에 이 책을 살때 이렇게 두꺼운 책을 언제 다 읽을까 하고 걱정했지만, 읽을 수록 빠져드는 이야기에 점점 줄어드는 페이지를 보며 안타까워 하기도 했다. 그리고 다음에 읽었던 책이 ‘냉정과 열정 사이’ 였다. 개인적으로 냉정편을 재미있게 읽었는데, 이유는 열정편이 너무 야했기 때문이었다. 그때는 그랬나 보나. 누구나 그렇듯 일본 소설을 한 번 맛보고 나면 그 다음도 다른 일본 소설을 찾아 읽는데, 나에게는 그것이 ‘비밀’이라는 작품이었다. 이 책은 히료스에 료코와 코바야시 카오루 주연으로 영화화가 되어 원작을 모두 읽은 뒤 영화를 감상했는데, 원작의 감상과는 많이 달라서 많이 아쉬워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이 아쉬움 때문이었는지 이제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뇌’와 ‘나무’를 읽었는데, 그 중에서도 ‘나무’를 꽤나 곱씹으면서 읽었다. 물리학이나 생물학 분야의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여, 과학선생님이 만든 과학책 읽기 방과후 동아리에 들어가서 5여명의 학생들과 방과후에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하는 시간도 가지며 중학생 시절을 그럭저럭 책과 함께 즐겁게 보냈다.


고등학교로 진학하고서는 한가로이 책 읽을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읽는 것이라고는 언어영역 지문들과 수행평가 독후감 작성용으로 지정된 책들이 고작이었고, 그래서 다시 책에서 한걸음 멀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듯, 공부를 못했던 나는 그런다고 언어영역 점수가 오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는 고3에 이르러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때 읽은 책들이 초등학생 시절 교양 과학 코너에서 스치듯이 만난 칼세이건의 ‘코스모스’와 물리학의 대표적인 금서 브라이언 그린의 ‘앨러건트 유니버스’와 ‘우주의 구조’, 그리고 미치오 카쿠의 ‘평행우주’, 로저 팬로즈의 ‘양자 우주 마음’ 등이었다. 소설도 읽었는데 일본 라이트노벨인 ‘공의 경계’를 재미있게 읽었다. 그리고 이 책들은 예상대로 나의 수능 점수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어차피 공부를 못했기 때문에 크게 상관이 없었던 것이었다.


대학교에 가서는 경제학과 법학에 흥미가 생겨 타학과 수업도 찾아가서 들어보기도 하고 책도 여럿 읽어 보았다. 하지만 그 흥미가 학점과 비례하지 않는 다는 사실을 알고는 금방 사그라 들었지만, 이때 탐독했던 헌법과 거시경제학은 하나의 소중한 자산으로 남아있다. 군대에 가서는 사화괴학과 과학철학 관련 책들을 틈틈이 읽었다. 그 덕분에 영창에 갈뻔한 기억이 있긴 하지만, 군대에서 나름 책을 많이 읽었다. 복학 이후에는 서양철학을 탐독하며, 과학사와 과학철학, 과학사회학 책들과 함께 머리를 싸매고 고생하며 읽어 나갔고, 그 습관이 지금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수학을 정말 싫어했지만 지금은 물리학을 공부하고 있고, 책을 싫어했지만 책을 항상 곁에 두려고 한다는 사실이 정말 신기하다. 많은 책을 읽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책을 이렇게 항상 읽으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누군가가 나에게 책을 읽는 이유를 한 단어를 이용해서 나타내보라고 한다면, 나는 아마 ‘여행’이라고 대답할 것 같다. 책 속에는 하나의 세계가 그려져 있다. 그 속을 탐험해 나가며 새로운 명소를 발견하기도 하고, 때로는 웅덩이에 빠져 넘지기도 하고, 때로는 늪에 빠져 허우적 거리기도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즐거운 지적 여행이기 때문이다.


이 새로운 세계로의 또다른 여행을 위한 준비를 하는 중에, 친구의 소개로 훌륭한 여행 가이드를 한 명 소개 받았다. 그 분이 바로, 북튜브 ‘겨울 서점’의 주인장인 김겨울씨다. 그녀의 영상을 보고 있으면 정말 많은 책을 읽고, 정말 풍부한 지식과 재능을 가진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에 때때로 경외감에 휩싸이곤 한다. 그리고 그녀의 말솜씨에 영업 당한 책들이 한두권이 아니다. 그 중 한 권이 바로 그녀의 저작인 ‘독서의 기쁨’이다.


스스로를 책덕후라고 부르는 그녀가 평소 어떤 루틴으로 책을 고르고 읽는지. 어떤 장소에서 책을 읽는지. 책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짧막한 감상과, 몇몇 책들에 대한 서평이 덧붙여 있는 이 책을 읽고 있으면, 그녀가 얼마나 책을 아끼고 사랑하고 있는지가 곳곳에서 묻어나온다. 그리고 ‘책 읽고 싶어지는 책’이라는 이 책의 부제목이 예견 했던것처럼, 또 몇권의 책을 영업 당하여 장바구니에 담고 말았다. 그녀는 정말 책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것이 모든 곳에서 다 느껴진다.


책 읽고 싶어지는 어느 멋진 날을 선물 받은거 같아 기분이 들뜨고 말았다. 이런 감정을 선물해 준 이 책의 저자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독서의 기쁨 - 10점
김겨울 지음/초록비책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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