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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학기술과 언론보도를 짝지으려는 시도
    2018. 8. 23.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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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종 소비사회라고 부르기도 하고, 기 드보르처럼 이미지 사회나 스팩트럼 사회라 부르기도 하는 현대 사회의 모습은, 다양하게 명명되어 투영된 그 이름들처럼, 하나로 명기되기 힘든, 사회적 총체를 좀처럼 드러내지 않은 채 유지되는 다층적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사회는 그렇게, 소비사회가 그려낸 진단처럼 상품 소비의 현실에서 노동의 진실을 가리고, 자본에 의해 가치를 양화하여 환원함으로서 개인을 하나의 캡슐로 가두어 버리기도 하고, 이미지 사회가 그려낸 진단처럼 파편화된 영역들로 가로막혀 감추어진 총체적인 사회적 경험의 획득은 이미지의 매개를 통해서 가능해 져버렸다. 그렇게 현대 사회는 대상과 실체, 드러나는 현상과 진실이 그 어느때 보다 서로 아주 멀리 떨어져 버린 간극의 시대가 되어 버리고 만것이다.


    서술이라는 행위는 이러한 시대 한 가운데서 배분되고, 분절화되며, 묘사되고, 혼효된다. 신화, 전설, 우화, 이야기, 소설, 서사, 역사, 비극, 희곡, 무언극, 회화, 채색유리 창문, 영화, 만화, 뉴스, 대화에 이르기까지 서술은 무수하며 그것이 담지해 내는 세계로부터 우리는, 세계를 읽어 내기도 하고, 비평하기도 하며, 즐기기도 한다. [로렌드 바세스, 이미지 음악 텍스트, p79]


    이런 서술의 기법들 중에서 언론은 다른 서술들과는 달리 인간의 삶과 문화를 언어적으로 재현해 내는 역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오히려 언론은 이 과정에 개입하여 삶과 문화를 언어적으로 생성해 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이 힘은 파편화되고 분절된 현대 사회 속에서 강력한 무기 이자 독으로 기능할 수 있다.


    가령 파업이 일어났다 하자. 1면 톱뉴스 ‘노조, 파업 돌입. 수출 차질우려’, 사설 ‘불법 파업, 단호히 대처해야’, 칼럼 ‘가뭄으로 멍든 농심 파업으로 또 멍드나’, 사회면 ‘기업 탐방, 무노조의 신화’, 경제면 ‘노조 천국, 기업이 떠나고 있다’, 긴급인터뷰 ‘파업왕국, 투자 매력 상실’, 해외면 ‘중국이 쫓아온다’, 특파원 기고 ‘영국, 노조병 어떻게 치유했나’, 석학에게 듣는다 ‘평등의 허상’, 휴지통 ’화염병의 역사’, 만평 ‘귀족이 따로 있나’. [진중권, 미학 오디세이3, p300] 언론은 우리 속에서 이렇게 작동하고 있다.


    사회의 저널리즘의 관행과 언론의 행태는 여러 경험을 통해 체화 되었듯이, 처참하다. 언론의 서술행위는 사회를 담지해내거나 해설하고, 갈등을 해소하기 보다는 그 간극을 더욱 벌이려 안달이다. 저널리즘의 보도는 '카더라' 식의 따음표 제목으로 도배되어 있고, 출입처에 앉아 불러주는데로 받아치는 받아쓰기 보도가 정론보도처럼 둔갑 되었으며, 사실 확인은 등한시 한 채 패거리 보도와 오보를 서슴치 않으면서도 수치심은 없는 언론인이 넘쳐나고, 정파보도가 책임 보도로 둔갑하였다.


    이러한 언론 보도의 행태를 고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가장 간단한 해결책은 현재의 언론 관행을 뒤집는 것이다. 객관성에 근거한 취재와 출입처에서 탈피한 현장 중심의 사실보도, 철저한 팩트 체크, 정파성과 가치, 이념, 기계적 중립이라는 종교를 초월한 공정 보도를 통해, 사회 갈등을 벌리는 것이 아닌, 해소하는데 긍정적 영향력을 발휘 할 것을 주문하는 것이다.


    언론에 대한 이러한 비판의식과 해결책을 공유하며, 조맹기는 그의 책 ‘과학기술과 언론보도’에서 그 만의 해답을 하나 제시한다. 언론 보도의 과학화 혹은 융합 라는 이름으로.


    그는 학창시절 관심 있었다는 과학철학을 언론보도의 방법론으로 과감히 집어넣는다. 학창시절 읽었던 포퍼의 반증주의는 기사의 객관성과 사실보도를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쿤의 패러다임론은 기사의 패러다임 서술로, 파이어아벤트는 직관을 통한 시간의 흐름 수용 그리고 아나키즘적 사고를 현장에 투입함으로서 언론보도의 과학화를 통한 개혁을 주문한다.


    그는 과거의 과학철학자 책 몇 권에 기술되어 있는 서술로 ‘과학’을 규정하고, 그것을 다시 ‘과학기술’이라는 이름으로 방법화 시킨 뒤, 인공지능으로 기사 작성 봇이 기사를 작성하는 융복합의 시대에 발맞추어 미디어가 가야할 길로 ‘과학기술’과 언론보도의 융복합을 주장한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라캉, 지젝, 헤겔, 니체, 하이데거, 마르크스 등등을 끼어얹으며 270여 페이지의 종이를 잉크로 채워나가는 기염을 토한다. 책 곳곳에 즐비한 오탈자들은 보너스이다.


    언론학자인 그가 현재의 언론 행태에 대해 가지는 문제의식에는 함께 공감한다. 그러나 그가 이 책을 포스트 모더니즘을 위한 하나의 전위 예술품으로 쓴 것이 아니라면, 쓰레기통으로 던저버리는 것 말고는 효용이 없어 보인다. 그것도 아니라면 허세로 가득 채워진 불필요한 논증을 걷어치운 뒤, 한 페이지로 요약하여 재출판 하거나.



    과학기술과 언론 보도 - 2점
    조맹기 지음/패러다임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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