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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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개발자잡설 2022. 12. 28. 23:17
이 이야기는, 천체 물리학에 대한 순수한 애정과 열정으로 한 길만을 고집스럽게 걸어가던 한 과학자가 돌연, 개발자가 된 사연이다. 1. 계기 천체 물리학이나 우조론을 전공하게 되면 마주할 암울한 현실과 미래에 대해 들었던 여러 소문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하나 있었다. 수개월간 밤샘 노력으로 실험을 끝내고, 논문을 마무리하여 투고를 하려는 그 순간,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가 정확히 같은 주제와 내용으로 논문을 발표했다는 것이었다. 연구의 주제와 접근법도 다양한데 그런 우연이 겹치는 게 가능할지, 그저 대학원을 겁주기 위한 과장 아닐지 의심했지만, ‘굶어 죽을 수 있다’ 거나 ‘백수 된다’는 등의 ‘사실’보다는 좀 더 극적인 이야기였기에 뇌리 어는 한켠에 고스란히 자리 잡히게 되었다. 이 이야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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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도 서점에서...잡설 2022. 4. 30. 17:34
“미쳤다. 책을 또 샀다.” 지나가던 길에 서점에 들리거나, 온라인 서점의 카테고리를 배회하다 한 번씩 내뱉는 소리다. 분명 읽으려고 책상위에 쌓아둔 책이 이만큼이나 있고, 주문하려고 장바구니에 담아둔 책이 저만큼이나 있는데, 읽을지 안읽을지도 모를 책을 또 한아름 사고 만다. 책도 하나의 물건이기 때문에, 나의 이런 행동은 프로이트 식으로 해석하면 욕망에 대한 애착으로 볼 수 있다. 나는 항문기에 문제가 있는, 즉 배설물을 귀중히 여겨 없애버리는 것을 아까워하는 변비 환자다. 이것은 벤야민이 얘기하는 주물주의와도 맥이 닿는다. 책이라는 상품이, 내가 내보내지 못하는 것을 대신하는 것처럼 여겨 욕망의 대리만족 관계를 충족시켜 주는 것이다. 책에서 지혜를 습득하는 것보다, 책이라는 물건을 소유하는데 더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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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1 Max MacBook Pro 한 달 쓰면서 느낀 장단점잡설 2022. 2. 12. 17:45
신형 M1 Max 맥북프로 제품을 받아 사용한 지 한 달 가까이 되었습니다. 데드픽셀과 배송 문제 등 여러 이슈로 최초 주문부터 최종 양품을 받기까지 총 7주가 소요되어 불만이 많았는데요. 지금은 이 모든 불평과 불만이 하나도 기억나지도 않을 만큼, 역대급으로 만족하면서 사용하고 있는 맥북이 되었습니다. 약 1달간 사용하면서 느낀 장단점을 단간하게 정리해 보았습니다. 장점 팬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모든 작업이 즉각적으로 이루어 진다 mini LED의 뛰어난 명암비 맥북은 비행기 이륙을 연상시키는 강력한 팬 소음이 트레이드 마크였습니다. 그런데 이번 M1 Max 모델은 어떤 작업을 해도 팬 소음이 들리지가 않습니다. 가장 많이 팬이 움직였을 때가 왼쪽 팬이 1600 rpm(3%) 정도 잠시 회전하는 수준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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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연습잡설 2022. 1. 14. 20:36
잘 쓴 글과 그렇지 못한 글을 평가하는 기준은 대단히 주관적이다. 어려운 말과 단어들로 구성된 복잡하고 난해한 글을 좋은 글이라 평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쉽고 간결한 문장으로 의미가 명확하게 전달되는 글을 좋은 글이라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나에게 있어 쓰고 싶은 글 혹은 닮고 싶은 글은 언제나 전자였다. 어려운 용어들을 섞는 것이 세련돼 보였고, 난해한 문장을 구사하는 것이 지적이게 보였던 탓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머리를 싸매고 읽어야만 하는 난해한 책들을 읽으며,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질책하기도 하고, 또 그런 문장을 흉내 내어 글을 써보기도 했다. 처음 좋은 글에 대한 인식이 그러했기에, 내가 쓰는 문장들은 언제나 길고 장황했다. 한 문장이 세줄을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고, 글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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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와 글쓰기 (2)잡설 2021. 12. 31. 22:58
문득, 블로그와 글쓰기에서 내가 “글쓰기는 나에게 처음부터 능력에 맞지 않는 과분한 것이 었다는 것. 그래서 이제는 어떤 주제로 글로써 생각을 정리하거나 밝히는 등의 것은 그만 두어야겠다는 결론을 얻었다.”라고 적었던 일이 기억났다. 명작은 습작에서 나오고 습작은 졸작에서 나오는 법이다. 그래서 장인이 되려 하기보다는 견습생의 자세를 유지하며 글의 수준이니 질이니 따지지 않고 나만의 생각과 의견을 하나하나 정리해 나가는 것이, 내가 이 블로그에서 추구해온 나만의 가치이자 목표였다. 그런데 최근의 게시글들을 보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직접 밝히고 분석하고 논평하기보다는, 책의 주제를 빌려 대신하거나 외신의 글을 번역하여 전하는 식으로 간접적인 글만 채워나가고 있는 모습만 보인다. 나는 어쩌다 지금, 나의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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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1Max MacBook Pro 데드픽셀 문제잡설 2021. 12. 29. 10:33
터치 바 맥북을 사용하지 않고 다음 세대의 맥북을 존버 하고 있다가 이번 M1Max 맥북 프로를 구매하였습니다. 5년 반 만에 바꾸는지라 정말 기대 컸었는데, 디스플레이에 데드 픽셀이 발견되고 제품 교환과 재구매 일정 또한 매우 길어 상당히 짜증 나는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12월 5일 주문 12월 28일 배송완료 주문 후 배송까지 3주 넘게 기다린 제품이라 어떻게든 써보고 싶은 마음에, jscreenfix와 같은 스턱 픽셀 수정 툴을 자는 동안 돌려 봤지만 아무런 개선도 없었습니다. 확실한 데드픽셀임을 확인하고 애플 캐어 문의하니 다음과 같은 안이 선택 가능했습니다. 교환 접수 안 교환 접수 후 1주일간 검수 후, 새 제품 발송 제품 수량 문제로 2월 3일 이후에 수령 예상 반품 후 재구매 안 반품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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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대한 인상잡설 2021. 12. 9. 22:36
얼마 전 아주 재미있는 상황을 마주했다. 너무 뜬금없고 황당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과거 고통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던, 마치 인생에서 어떤 페이지가 넘어간 듯한 아주 이색적인 경험이었다. “혹시 교포는 아니죠?” 이 이야기의 시작이자 끝을 맺고 있는 바로 이 한 문장이 나의 가슴 깊은 곳에 잠겨있던 울분과 설움, 고통과 애환을 표면 위로 솟구치게 만들었다. 물론 나는 교포가 아니다. 일본에서 몇 년간 지내긴 했었지만, 저 질문 속의 교포가 재일교포를 뜻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가 물었던 것은 놀랍게도 미국에서 왔냐는 것이었다. 나를 오랫동안 알아온 지인이라면, 그간 얼마나 영어라는 언어 하나로 고통받았는지를 지켜보았을 것이다. 나의 모든 목표는 바로 이 외국어 실력 하나로 매번 좌절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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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본투리드 만년필잡설 2018. 9. 10. 15:42
저는 평소 필기를 할 때나 메모를 할 때에는 주로 연필을 사용합니다. 뽀족하게 깍으면서 느껴지는 손의 감각과 서걱서걱 하며 쓰는 필기의 느낌, 그리고 많이 쓰면 쓸수록 짧아지는 그런 아날로그한 느낌이 좋아서 연필로 글씨를 쓰는 것을 좋아합니다. 요즘엔 아이패드의 애플팬슬을 이용해 간단한 메모나 필기를 하는 경우도 많이 있지만, 노트에 정리를 하거나 수식을 쓸 때는 어김없이 종이와 연필을 꺼내곤 합니다. 게다가 소문난 악필이다 보니 지우고 다시 써야할 경우가 많아서, 볼팬은 여간 불편할 물건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샤프도 여러가지 종류들을 써봤지만, 쓰는 느낌이라던가 잡는 느낌이라던가 그리 정에 가는 물건은 없더군요. 그래서 인지 저는 만년필에 대한 어떤 환상이나 로망 같은 것이 없습니다. 볼팬도 불편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