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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저 일, 하고 싶을 뿐이었는데
    2022. 4. 5.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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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한 연구그룹에서 연구자로 있던 시절의 일이다. 어느날 이 그룹 내의 한 소그룹 체어가 물러나는 일이 생겼다. 당시 체어의 부적절한 행위와 태도가 글로벌 콜라보레이터들 사이의 신뢰를 깨트렸기에, 이에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나게 한 것이 원인이었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우리는 의사소통이 원활하고 평소 원만한 관계를 두루 갖추면서도 연구를 이끌어 나갈 있는 사람을 찾고 있었다. 적어도 한국 그룹의 연구자들은 깊은 고민할 필요도 없이, 여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을 있었고, 우리는 그녀가 체어 자리에 적합하다는 의견을 냈다. 아니, 차례 내보냈다. 그런데 의견은 꽤나 오랜 기간동안 허공을 떠돌기만 하였고, 이제 박사학위를 받고 포닥을 시작한 어느 연구자에게 비슷한 역할이 돌아가는 것을 보게되었다. 우리는 역시 체어를 할만 하다고는 생각 했지만, 이제 학교를 졸업하고 나온 연구자보다는, 훨씬 경험이 풍부한 연구자가 체어가 되기를 원했다. 시간이 흐르고, 거듭되는 추천에도 결정이 나지 않자, 우리는 모두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여자라서 체어를 시키지 않고 있다.”

     

    일본에서 지내며, 일본인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어렵지 않게 성추행 경험을 들을 있다. 지하철에서 누군가가 엉덩이와 허벅지를 만졌다는 이야기는 일상다반사다. 여전히 일본은 여성에게만 별도의 유니폼을 요구하는 곳이 많고, 업무와 행실에 성 역할 구분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이런 일본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과학을 하는 과학자들은 조금 깨어있지 않을까 여겼던 나의 생각은 너무나도 짧은 것이었다. 신망있고 개방적이라 여겨졌던 어느 교수 조차, 학회에서 여성의 사진을 화면에 띄운 채로 부적절한 비유를 파문을 일으키고, 국제협력연구그룹을 구성하는데도 체어 이상급은 모두 남성으로만 구성되어 있다거나,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여성이 오르지 못하는 유리천정을 굳건히 유지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결국 연구도 사람이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세삼 느끼게 한다.

     

    집요한 요청 때문이었는지 국제 연구자들의 시선이 신경쓰여서 인지는  없지만, 그녀는 결국 체어로 승인을 받았다. 하지만 그녀는 개월 영국의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정확한 인과관계는 알 수 없지만, 그해 연구소에서는 모두 다섯 명이 연구소를 그만 두었는데, 공통점은 모두 여성이었다이로서 연구소에서 학생을 제외한 모든 연구자는 모두 남성이 되었다.

     

    모든 사건과 상황들은 권력 관계로부터 나온다. 일반적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물리력이 좋기 때문이거나, 급여가 많거나, 직위가 높거나 하는 관계에서 잉태된다. 따라서, 이것은 성별을 가리지 않는다. 역시 연구소 구석의 별볼일 없는 연구인으로 존재하던 시절에, 아주 모욕적인 언사를 들었던 것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연구 프로젝트만 마무리하고, 논문만 마무리하고 때려치우겠다는 일념으로 참고 버티었을 뿐이었다. 실제로 나는 논문을 마무리하고 연구그룹을 떠났다. 연구자를 같은 연구자로 대하지 않고 차등을 두려는 이런 그룹은 존재해서는 안된다는 말과 함께.

     

    나는 그룹을 떠났지만, 고맙게도 한국의 다른 연구자 분들이 재발방지와 해결책 마련, 그리고 가해자로부터의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 힘써 주셨다. 늦었지만, 10개월이 나고서 나는 사과와다시 그룹으로 돌아올 있도록 좋은 콜라보레이터를 만들어 나가겠다 위원회의 약속도 받았다. 물론, 이매일이긴 했지만.

     

    한류의 영향으로 어디가서 한국인이라고 말하면 관심과 대접이 많이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그와 동시에, 혐한 정서의 골은 더욱 깊어져,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이유모를 모욕이나 곤란한 순간을 가끔 경험하게 된다. 웃으며 적절하게 대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기분은 유쾌하지 않다. 이런 일본에서의 경험과 일본 그룹과의 연구 협업과정에서 벌어진 사건들로 인해, 나는 인권과 평등에 대해 너무나 예민해 졌다.

     

    지금도 나는 협업을 시작하게 되면 가장 먼저 ‘Code of Conduct’ 부터 이야기하며, 다음과 같은 문구를 작성하여 공유한다.

     

    이 지침은 차별과 희롱으로부터 자유로운 협력 환경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협업 관계에 있는 모든 구성원들은 모든 관계자를 존중하고 배려하여야 하며, 윤리적으로 올바르게 처신하여야 한다.

    구성원은 어떠한 부적절한 행동이나, 나이, 성별, 지역, 급여, 민족, 성별, 성정체성, 국적, 정치적 성향, 능력, 교육적 배경 등의 개인이 가진 특성에 기반한 언변을 피해야 한다. 성적희롱을 포함한 달갑지 않은 농담, 의견, 무례한 발언 등, 이와 유사한 모든 형태의 행동에도 관용은 있을 수 없다. 이 기준은 대면 회의, 화상 회의, 이메일, 메신저 등에서도 제한없이 적용된다.

     

    나의 이런 모습을 보며, 누군가는 극성이라거나 예민하다거나 오버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심지어, ‘ 패미니스트냐?’라는 이야기도 들은적이 있을 정도다. 리액션 학원이라도 같이 다녀 온 것인지, 녹음기를 것 같은 똑같은 반응을 보이는게 신기할 따름이다.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두서없이 하는 것은, <나는 , 하고 싶을 뿐이었는데> 읽어서다. 그저 일을 하고싶을 뿐이었는데, 여성이라는 이유로 받는 무시, 차별, 추행, 희롱, 그리고 연대와 싸움의 이야기를 모은 책이다. [남자가 쪼잔하게 따져, 최양수, p170]에서는 여성 직장 상사와 남성 부하 직원 사이의 권력관계에서 남성 직원에 대한 성추행이 자행되며, 문제 제기 이후엔남자가 쪼잔하게 그런거 가지고 그러느냐 식의 반응을 보인 다른 남성 직원들의 사례가 담겨있다. 성희롱은 성별은 가리지 않는다. [‘마음의 소리 읽다, 박성근, p208]에서는 공공기관 기관장을 맡고, “‘성희롱 연관된 직원은 업무 실적과 관계 없이 극히 부정으로 평가하겠다는 말에 임기 기간동안 남성들이그냥 웃자고 농담따위의 일들이 모두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담는다. 그들도 스스로 그것이 성희롱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많은 기고글에서 공감하고 연대하고 이겨낸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많은 울림과 잔향을 남긴다.

     

    이제 우리는 포스트 미투 시대를 살고 있다. 그간의 특권과 횡포를 누리지 못하게  일부 남성들은, '이제는 여권 시대가 되었다'는 , '역차별'이니 하는 하며, 발악 하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해안가에 혼자 서서 손가락질 한다고 밀려오는 파도를 막을 수는 없다. 누군가는 미투운동이 벌어지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남성들이 느끼는 공포가, 어쩌면 그간 여성들의 속에서 항상 느끼고 살았을 두려움이 아니었을까라는 이야기를 한다. 인간은 자신이 겪어보지 않은 일은 실감도 공감도 잘 하지 못하는 편이니, 이런 사회적 분위기 조성이 어쩌면 세상을 보다 평등하게 만드는데 보템이 될지도 모르겠다.

     

    인간이라면 인간으로써 모두 동등하게 존중 받길 바라며.

     

    2021 나는 일, 하고 싶을 뿐이었는데 - 10점
    위드유(서울직장성희롱성폭력예방센터)/(주)허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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