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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살아야 하는가
    2022. 1. 7.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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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은 밤, 혼자 가만히 책상에 앉아 창밖을 바라볼 때면 지독한 우울감과 자기혐오에 시달리곤 한다. 존재의 필연성이나 과업, 사명 따위는 애초부터 존재하지도 않았고, 그저 소멸을 향해 달려갈 뿐인 이 삶이, 이 보잘것없고 유약한 나 자신의 존재가, 모든 것을 부질없는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이 감정을 억누르기 위해 운동을 해보기도 하고, 친구와 전화 통화를 해 보기도, 시시 껄껄한 영상을 찾아 웃어 보기도 하지만, 밤이 어두워질수록 고통의 깊이는 더욱 깊어진다. 대체 나는 왜 존재하는가? 그럼에도 나는 왜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 인류도 언젠가 멸종한다. 인류 문명이 이룩한 모든 문화와 역사 역시 우주의 생명이 끝에 다다르는 순간 막을 내리고 공허로 사라지고 말 것이다. 우리는 필사적으로 이 사실을 부정하며, 우리들 스스로를 우주의 특별한 존재로 여겨지도록 하는 많은 발명품을 고안하고 또 견뎌내 보지만, 이 냉철한 사실에서 한치도 벗어날 수 없다. 모든 삶의 끝에는 오롯이 죽음만 존재할 뿐이다.

     

    삶이 살만한 가치가 없다고 여겨질 때, 그럼에도 죽음의 공포가 삶의 무가치함보다 더욱 크게 다가올 때, 우리는 우리의 삶이 충분히 살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음으로써 그리고 그에 상응하도록 행동함으로써, 삶에 가치를 불어 넣으려 애쓴다. 그것은 종교적 신앙이 될 수도 있고, 명예나 명성, 권력과 같은 인정 욕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시도들이 좌절되고 믿음과 욕망에 충분히 도달하지 못하게 될 때, 다시 한번 우리는 삶의 무의미성을 발견하게 된다. 인간은 소유할 수 없는 것을 갈망할 때 희망을 느끼지만, 도달할 수 없음을 깨달을 때 절망하게 된다.

     

    우리는 이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그렇기에 어쩌면 현재의 비극을 희극으로 웃고 즐길수 있는지도 모른다. 행복은 유한한 곳에서 피어나기에 가치 있을 수 있고, 그것을 영위하는 것은 오롯이 우리 스스로의 결정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모든 일이 똑같이 하찮고 의미 없는 것이라면, 인생을 틀 잡는 모든 거푸집을 부수고, 부조리에 저항하며, 우리만의 삶을 살아가기만 하면 된다. 이러한 방식이 어쩌면, 허무에 잡아먹히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잔인하게도 이러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은 너무나 많은 에너지를 요구하기에, 언제까지나 지속될 수 없다는 것 역시 우리는 알고 있다. 삶은 이렇게 비극과 희극, 고통과 희망, 한숨과 환희가 섞인 다양체와 같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지속하는 한, 이 공허함과 무기력함과의 전쟁 속을 끊임없이 헤쳐 나가야만 한다. 왜 살아야 하는지의 이유도 정답도 찾지 못한 채 방황하며.

     

    왜 살아야 하는가 - 8점
    미하엘 하우스켈러 지음, 김재경 옮김/추수밭(청림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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