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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절망의 죽음과 자본주의의 미래
    2021. 12. 25.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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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데믹은 진보 종말 시대의 모습을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다. 많은 이들이 일자리를 잃고 수많은 자영업자들이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재난 속에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을 보호해줄 사회적 안전망은 부족했고, 사회적 취약 계층과 플랫폼 노동자들을 보호해 줄 시스템이 전무했다는 것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만일, 우리의 사유 재산이 풍족하지 않고 부모 조차 우리의 발판을 마련해주지 못한다면, 우리는 곧장 바닥 아래로 추락하고 만다는 것이 그 어느 때 보다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부의 불평등에서 감염병 재난까지, 개인이 어찌 할 도리 조차 없는 외부 요인들로 제한되는 기회에, 우리의 주체는 갉아 먹히고 결국 무너져 내리고 만다. 무너진 주체는 삶의 의미와 존엄성, 자부심, 자존심을 흔들며 조금씩 절망으로 다가간다. 이것은 아주 오랫동안 천천히 누적되어 커지는 법이다. 그 경향은 술 소비가 꾸준하게 늘어 왔다는 데서 찾을 수 있고, 최근 매운 음식에 대한 수요가 증가 추세를 보이는 것에서 사회 스트레스의 정도를 가늠해 볼 수 있을 정도로, 우리의 고통은 이제 보편화되었고 또 균등해졌다. OECD 국가 자살률 1위의 기록은 이렇게 달성되었다.

     

    절망의 고통이 보편화 될 때 사회적 연대는 보다 느슨해지고, 지배력과 갈등, 복종이 사회를 이끄는 원동력이 되어간다. 그로 인해 이민자와 난민을 우리의 경제와 문화를 위협하는 존재로 받아들이고, 모든 사회 경제적 문제의 원인을 그들에게 화살을 돌린다. 부의 불평등은 상향식 재분배 문제에 기인함에도, 자본주의의 본질적 특성을 되찾으려는 노력보다 부자의 지배력과 말에 복종한다. 가난한 이들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보다 강화되고, 갈등은 보다 심화된다.

     

    트럼프가 미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영국이 EU 탈퇴를 결정 했으며,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여겨졌던 사민주의 국가들에서 마저 극우주의의 반동을 목도하고 있다. 이것은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유행병이다.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말하자면, ‘불공정’의 토대를 만든 현대 자본주의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경제위기가 닥치면 많은 서민들은 일자리와 집을 포함해 많은 손실을 겪지만, 그 위기의 원인이 되는 경경진은 결과에 책임을 지지 않으며 정치권은 그들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보호한다. 자본주의는 이제 진보를 이끄는 엔진보다는, 금융과 지대, 교육을 통해 아래로부터 돈을 빨아들이는 흡혈귀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해 디턴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우리는 자본주의가 진보와 선을 이끄는 엄청나게 강력한 힘이지만, 그것이 사람들을 섬겨야지 사람들이 그것을 섬기도록 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자본주의는 국가가 산업을 장악하는 어떤 환상적인 사회주의적 유토피아로 대체될 것이 아니라, 더 잘 감시되고 규제될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는 도전에 잘 대처할 수 있다. 국가가 지금보다 더 많은 일을 더 잘할 수 있지만, 우리는 정부가 주는 위험과 정부 규모가 커지면 지대추구 움직임이 강해지고 더 많은 개혁들이 반시장적이 아니라 친시장적이고, 우파와 좌파, 즉 우파에 속하는 시장 원리주의자들과 좌파에 속하는 과도한 불평등을 비판하는 사람들로부터 모두 지지를 받아야 한다. 우리는 지금보다 더 공정한 세금 제도를 선호하지만, 불평등을 근본적인 문제로 보지는 않기 때문에 서둘러 부유세를 시행해야 한다는 생각에 찬성하지는 않는다. 근본적인 문제는, 최상위 부자들이 다수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 시스템 안에서 부정한 방법으로 재산을 불려서 생기는 것으로 간주되는 ‘불공평’이다. 우리는 지대추구를 제한하고 약탈을 줄이면, 공정하게 벌어들인 것으로 폭넓게 비춰지는 소득이나 재산에 높은 세금을 부과하지 않고도 부자들을 견제하고 불공정한 최상위 소득을 낮출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민주주의는 지금보다 충분히 사람들을 더 잘 섬길 수 있다. 미국의 만주주의는 잘 작동하지 않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죽은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한 세기 혁신주의 시대나 1930년대 뉴딜정책 시대에 더 잘 작동됐듯이 지금도 사람들이 충분히 열심히 밀어붙이면 다시 한번 잘 작동할 수 있다.”[p398-390]

     

    제도적 개혁 혹은 개선은 정치를 통해 달성될 수 있고, 민주주의 제도 하에서의 정치는 시민들의 투표 행위를 통해 반영되며, 우리의 의사는 언제나 과거의 경험과 미래에 대한 전망을 투영한다. 민주주의는 도전에 잘 대처할 수 있지만, 만일 미래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을 시민 대다수가 공유한다면, 사회는 기존 체제를 보다 강화하거나 후퇴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며, 만일 여기에 부정적 과거 경험이 더해진다면, 체제의 반동이나 혁명의 욕구가 끓어오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디턴의 전망은 대단히 희망적이고 또 낙관적이다. 마치 진자의 운동처럼, 지금은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다시, 더 큰 발걸음으로 앞으로 나갈 수 있다고 보는 까닭이다.

     

    미래에 대한 어떠한 긍정적 전망도 부정적인 전망도 할 수 없지만,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분명하게 주어져 있다. 절망이라는 유행병을 만들어낸 20세기식 자본주의를 우리는 어떻게 고쳐 나갈 것인지, 절망으로 인한 비명과 죽음을 막기 위한 사회를 어떻게 구성해 나갈 것인지, 이를 위한 제도를 어떻게 실행해 나갈 것인지, 뒤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지금부터라도 우리는 그 해결책을 찾아 나가야 한다.

     

    절망의 죽음과 자본주의의 미래 - 10점
    앵거스 디턴.앤 케이스 지음, 이진원 옮김/한국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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