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lavinka

알라딘 중고서점을 들렀다. 가장 먼저 둘러본 곳은 새로 들어온 책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인문 사회과학 분야로 발길을 옮겨 혹시나 하는 마음에 책들을 차근차근 둘러본다. 찾고 있던 책을 발견하거나, 절판되어 구할 수 없었던 책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말로 표현 할 수 없다. 그날 찾던 책을 찾지 못했어도 다른 코너들을 둘러보며 이 책 저책 펼쳐보며 읽는 재미 역시 쏠쏠하다.


독서를 좋아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싫어한다고 대답하면서도 적으면 일주일에 한 권, 많으면 일주일에 세 권의 책을 사서 읽고있다. 스스로를 무식하다고 말하는 지식에 대한 어떤 강박 때문일지도 모르겠으나, 아마도 새로운 궁금증이나 호기심, 막연한 어떤 물음에 대한 대답을 찾기 위해 또 책을 뒤적거리고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며 힘들게 책을 읽어 나가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어느덧 최근에 구매했던 책들을 다 읽어 새로운 책을 살 시기가 다가오고야 말았다. 중고서점에서 아무런 소득없이 발걸음을 옳기고서 이번엔 인터넷 서점으로 눈을 돌려본다. 새로나온 책, 어떤 논문의 참고문헌에서 보았던 책, 연관 도서 목록들을 살펴보다 세 권의 책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STS 과학사회학 분야와 수리철학 분야에서 세 권을 골라내었다.


책을 고르고, 주문 버튼을 누르고, 그리고 지금 책장에 놓여있는 책들과 함께 시계를 보니 순간 묘한 느낌이 들었다. 나의 전공은 물리학이다.


지금까지 읽었던 책들, 관심을 가지고 도전했던 분야들을 둘러보니 서양철학, 심리학, 경제학, 법학, 과학 등 그 분야도 다양했다. 친구들과 수다를 나누며 농담처럼 하는 이야기가 있다. 물리학에 대한 심도깊은 고민은 철학의 문제로 환원되고, 철학적 고민은 인간에 대한 물음으로 환원되어 인문학적 고찰로 이어지며, 인문학적 고찰은 인간이 속한 집단의 성격과 사회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사회과학으로 또 다시 환원된다. 사회과학은 집단의 인간 심리에 대한 연구로 이어지며 이는 심리학에 대한 고민으로, 심리학은 다시 의학, 의학에서 생물학, 생물학에서 다시 화학으로 이어져, 결국엔 물리학으로 되돌아온다는 이야기다. 결국 모든 학문은 돌고 돌며 분리되어 있지 않고 상호 연결되어있다는 것이다.


깊은 우물을 파려면 처음에 큰 구멍부터 파기 시작해야한다는 말이있다. 처음부터 좁은 구멍을 파기시작하면 우물 벽은 금세 무너져 내리고 말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과학교양일반, 우주론, 경제학 개론, 거시경제학, 심리학 개론, 프로이트, 라캉, 헌법, 민법, 서양철학, 철학사, 과학사, 과학철학을 돌고 돌아 한 우물을 파게된 분야가 과학철학, 과학사가 되버렸다.


독서는 많이 할 수록 좋다고 이야기되며, 때문에 많은 경우에 독서를 장려한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문제가 있다. 독서에 대한 대표적인 핑계 중 하나인 시간이 없어서 책을 못 읽는다는 말에서 처럼, 그 시간이 문제다.


이동 중에, 그리고 화장실에 앉아서 몇 장씩 넘기는 시간들, 이런 틈틈이 남는 짜투리 시간은 우리에게 독서에 할애할 수 있는 많은 시간을 할애해 주지는 않는다. 많은 양의 독서는 결국 시간을 만들거나 기존의 시간을 분할해서 얻어낼 필요가 생기게 된다.


독서에 있어 시간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나의 전공이 물리학, 즉 과학분야에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과학을 공부하는데 있어서는 그러한 시간적 여유나 할애를 허락하지 않는다. 훌륭한 과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독서를 필요로하지 않는다. 가장 최신의 논문을 읽고, 가장 최신의 연구 동향을 살피며, 최신의 트렌드와 논의에 맞는 논문을 한 편 더 쓰는 것이 더 도움된다. 독서는 사치에 가깝다.


한 선배가 이런 말을 한다. 그 시간에 문제나 한 문제 더 풀라고. 교수가 이런 말을 한다. 쓸데 없는 짓 하지말고 하는 일이나 열심히 하라고. 그리고 오늘 책을 주문하고나서 바라본 눈 앞의 책장과 시계에서 조금씩 뒤쳐져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되었다. 적어도 앞서나가지는 못하게 되었다.


만일 SCI에 논문을 게재하며 노벨상 수상 후보자 명단에 오르는 것이 훌륭한 과학자의 척도라고 한하면, 공자왈 맹자왈 하며 세상물정 잘 아는 과학자는 훌륭한 과학자가 아니다. 사석에서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만났을 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무것도 없어 그냥 물만 들이키고 있을 수 밖에 없는 그런 세상물정 모르는 과학자가 훌륭한 과학자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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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9.11 23:04 -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노벨상이라...누구나 인정하는 우수함이긴 하지...최신의 지식(논문)과 넓은분야의 책을 읽는것은 흠...연구스타일이지 않을까? 비록 남들이 인정하지 않는 스타일이긴 하지만...둘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필요없는 지식은 없다는 생각이라 말이지...

    • Destiel
      2013.09.11 23:09 -  [댓글주소]  [수정/삭제]

      결국 네가 말한 시간의 문제가 대두된다만...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대해 최선을 다할 뿐인거 같다. 여러사람의 머리를 빌린다거나 후대에 맏긴다거나.ㅋㅋㅋ

  2. 2013.09.12 00:23 신고 -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쓸모없는 것은 배우지 않고, 배운것은 반드시 써먹는다. 제 공부 모토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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