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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혹
    사념 2013. 9. 3. 0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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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리 철학은 여러 가지 가능성을 재어보고 이렇게 선언한다.

    “광선을 분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실험 철학은 이 말을 듣고, 몇 세기 동안 그들 앞에서 침묵한다.

    그러고 나서 갑자기 프리즘을 내보이며 이렇게 말한다.

    “광선은 분해된다.”

    -디드로


    소설 미래의 이브를 읽다 디드로의 이 인용구를 보며, 이 문장을 쓴 소단원의 제목이 왜 현혹인지를 잠시 고민 한적이 있었다. 여성의 형상을 한 안드레이가 건내는 대화와 행동의 고풍스러움 그리고 그 아름다움에 인간을 넘어서는, 어쩌면 꿈꾸던 이성의 이상에 가까운 그 모습에서 갖게되는 그 오묘한 감정. 그것이 아마 현혹이 아니었겠는가라는 생각을 하며 책장을 넘겨나갔다.


    과학사를 읽으며 메모하고, 메모하다가 떠오른 무언가에 대한 관련 자료를 찾고, 논문을 뒤져보며, 관련해서 글 한번 써볼까라고 말하는 나의 모습을 보며 그때 스쳐 읽고 지나갔던 현혹의, 디드로의 그 인용구가 떠올랐다.


    이론물리학 연구실과 실험물리학 연구실을 가면 눈에 보이는 차이점이라는 것이 존재했었다. 이론물리 연구실엔 언제나 커피포트가 있었고, 각각의 책상엔 애니메이션 피규어나 아이돌 사진, 소설, 만화, 게임기 등이 진열되어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반면 실험물리 연구실에 가면 생각보다 개성이 없다는 생각이 문득 스쳐지나간다. 모두가 그런것은 아니겠지만, 이론물리를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전혀 다른 어느 한 분야의 취미를 가지고 있는 그런 경향이 조금 강했던 것이다.


    어느날은 교수와 대화를 하다가 문득 이런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동료 교수 중엔 젊은 나이에도 이론물리학 부분에서 상당한 성과를 올려 현재 교수를 맡고있는 문이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이론물리학자가 되고 싶다면 그분을 모델로 삼아서 공부하는 것도 좋다고 이야기하며, 이런 불평 섞인 불만을 내 뱉는다. ‘그 사람은 프라모델만 안 가지고 놀면 좋을텐데, 교수나 되어서 뭐하는 거냐’라고.


    세대 차이일 수 있겠다라고 생각하고 넘어가려니 옆에 있던 박사분이 몇 마디 덧붙였다. 아인슈타인도 바이올린이 취미였다고 하고, 파인만도 금고따기가 취미였다고 말하더니 날 쳐다보며, ‘이론물리하는 사람들은 다들 좀 이상한 취미를 가지고 있더라’ 라는 말에, ‘샘플링이 작아서 과학적인 해석은 아니지만’ 이라 덧붙이며 웃어 넘겼던 그런 일화였다.


    ‘광선을 분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선언하게 된 합리철학의 여러가지 가능성은 그 자체로 현혹의 대상이었다. 몇 세기 동안 프리즘을 찾아 내는 일은 분명 쉬운 일은 아니며, 분명 힘들다. 어려운 일이나 공부하다보면 자연히 다른 곳으로 눈이 쉽게 돌아갈 수 밖에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간 것이다. 일종의 인지부조화 작용과 같이. 그도 그럴것이 내가 알고있는 이론물리학자들은 대게 그들의 전공분야와 무관한 어떤 취미를 전문가 수준으로 양립하고 있다.


    현혹. 괴로움에서 벗어나고자 최후에 택할 수 밖에 없었던 소설 속의 에왈드 경의 심정이 조금은 이해가 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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