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lavinka


1


추석 연휴가 시작되었다. 추석 예매 전쟁을 뚫고 당당하게 KTX 티켓을 획득한 나는 오늘따라 왠지 더욱 햇살이 뜨겁게 내리쬐는 오후 즈음에 역을 향해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안엔 사람들이 가득했고, 그 중에 발견한 빈 커플석의 창가에 나의 몸을 앉혔다. 몇 정거장을 지나지 않아 버스는 금방 만원이 되었고, 나는 옆에 올려두었던 가방을 무릎위로 살며시 올려놓았다. 


20분여 버스에 몸을 실고 가는 동안 나는, 마치 펩티도글라칸의 교차배열을 망가뜨리고 있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만원 버스 안에서 서서 가는 사람은 있을 지언정, 단 하나 남은 빈 자리인 나의 옆자리에 앉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페니실린의 기분이 이와 같지 않았을까. 문득 페니실린이 느꼈을 지 모를 그 고독과 아픔을 공감하며 버스는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때 였을까. 뒷 자리에 앉은 두 남자 사람의 대화가 귀에 들려온다.


“이번에 서피스 25만원에 싸게 나왔는데 살까? 그거 윈도우도 깔려있고, 가격도 싸니깐 괜찮은것 같은데?”


“윈도우 깔려있으면 롤도 하고 좋네! 사양은 어떰?”


“듀얼코어에 램 2기가하고 내장 용량은 작던데 여튼 SSD....”


25만원짜리 서피스는 윈도우 RT가 탑제되어있는 ARM 프로세서 기반이야. ARM 기반으로 구동되는 소프트도 턱없이 부족하고 오피스도 터치로 쓰기 불편한데다, IE말곤 쓸게 없어. 그리고 거기에 롤 안돌아간단다. ARM이야.


라는 말을 머릿속에 흘려 보내며 한 숨을 내 쉰다. 그리고 또다른 대화가 귓 속으로 흘러 들어온다. 스마트폰 이야기다. 나는 살며시 이어폰의 볼륨을 높인다.


2


페니실린의 마음을 공감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지하철 환승역에서 하차하였다. 백혈구가 병원균을 공격하듯 밀려드는 하차 단말기 카드 러쉬를 물리치고 지하철로 향하였다. 계단을 내려오자 바로 도착하는 열차. 럭키. 하지만 내가 앉을 자리는 없었다. 그리고 문득 각자의 손에 들려있는 스마트폰을 살펴본다.


문득 이런 회상에 젖어들었다. 3년전에 스마트폰을 쓰는 사람들의 손엔 트위터 타임라인이 비췄고, 2년전엔 카톡과 게임, 그리고 지금은 트위터는 보이질 않고 게임과 카톡, 페이스북이 간간히 눈에 들어올 따름이었다.


격세지감을 느껴보며 3.5인치 짜리 레티나디스플레이에 비춰진 RSSfeed를 열심히 소화해 간다. 잠깐 사이에 수십개의 글이 또 올라왔다. IT는 왜 이렇게 급변하는지, 정치는 왜 이렇게 스릴있는지, 사회는 왜 이렇게 재밌는지, 과학은 왜 이렇게 병맛인지. 손가락을 움직여 가며 쓸데없는 글들을 열심히 읽고 있었다.


3


정확한 시각에 기차역에 도착한 나는 라닐라라떼를 한 손에 쥐고 KTX에 탑승했다. 명절에 KTX를 타고 집에 가는 나는 용자가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한 것도 잠시. 만원인 한 객차 안에서 단 한자리 남은 빈자리가 바로 내 옆자리라는 것을 눈치 체게되었다. 그렇다. 나는 다름아닌 페니실린 그 자체가 아니겠는가.


푸른곰팡이 함부로 대하지 마라.

너는 누군가에게 한번이라도 격리된 사람이었느냐.


한국 사람들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좋아한다. 대화하고 수다떠는 것을 좋아한다. 누군가의 표현처럼 유럽이 광장 문화에 기반해 있다면, 한국은 시장 문화에 기반해있다. 그래서 어딜가나 시끄시끌하고 갖가지 이야기들로 넘쳐난다. 그리고 건너편 자리에서 들리는 여자사람들의 수다가 귀에 들려온다. 남친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어떤 남자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온다.


그건 남자가 잘못했네....


남자는 여자에 비해 뇌량의 넓이가 다르다. 좌뇌와 우뇌의 정보전달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남자는 여자에게 말싸움으로 이길 수 없다. 정보전송속도의 차이는 과부화로 연결되며 욕설, 구타, 침묵 등의 방법으로 대응한다. 남자사람은 확실이 생리학적으로 덜 진화된 생물이 아니겠는가. 이런 생각을 하며 창 밖을 바라본다. 이런. 역주행석이었다.


앞 자리의 좌석 틈사이로 두 여자사람의 대화가 들려온다. 스마트폰으로 한 기사를 옆 사람에 보여주며 말을 한다. 연예기사로 보인다. 남자 아이돌 이야기인것 같다. 연예가십. 남자 이야기. 여자 이야기.


가방에서 책을 한 권 꺼냈다.


....내가 슈퍼마켓에서 친구를 만나게 되는 것은 우연의 일치이다. 따라서 이러한 설명들을 통해 우리들은 이러한 만남이 어떻게 해서 일어나게 되었는가를 설명할 수 있다. 우리들이 이를 우연의 일치하고 부르는 것은 그 사건이 해명될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나의 친구와 나는 각각 누구를 만날 목적으로 슈퍼마켓에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학에 우연적 일치나 혹은 보다 일반적으로는 우연적인 상관관계를 이론적으로 제거하도록 요구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런 요구는 이치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블라블라


4


도착했다. 역시 철도는 좋다. 도로교통 중심의 한국의 대중교통은 빨리 일본과 유럽과 같이 철도중심의 대중교통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한다. 라며 철도를 찬양하며 역 앞에서 다시 버스에 올라탔다.


3.5인치짜리 터치스크린을 만지작거리고 있을 즈음에 뒷 좌리에서 어떤 이상한 대화가 들려온다. 무슨 이야기인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알 수 없는 용어와 내용. 그리고 몇몇 알아듣는 단어들이 귓 속으로 들어오며 그제서야 눈치쳈다. 게임 이야기였다. 이스포츠의 차세대 주자인 롤.


5


명절 꼰대들을 피하는 방법으로 나는 주방으로 들어가 아줌마들과 수다를 떨며 일손을 돕는 걸 택했다. 요리 하는걸 좋아하고, 꼰대들을 피할 수 있는데다 아줌마들의 수다까지 엿들을 수 있으니 일석 삼조가 아니겠는가. 옆집 사는 아들이야기. 친구 아들 이야기. 친구의 옆집 이야기에서 경찰, 법원, 국내외를 넘나드는 스케일의 이야기가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런 와중에 현대차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이번에 현대차 노조 데모해서 일년에 2천만원씩 더 받는다고한데”


일 적당히 하고 쉬라고 만든 제도를 폐지하고 일 더 하게 만들어 달라고 데모하는, 나로써는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조건을 노조가 내세워 그것을 관철시킨. 결국 삶의 질과 여가보단 부품으로써 더 가혹하게 운용되기를 자발적으로 강요하는 저 태도를 단지 연 2천만원이라는 양화된 가치로 판단 될 수 있겟는가라는 의문이 머리속을 스쳐지나간다.


돈을 더 받을 수 있다면, 다른 것은 충분히 희생할 수 있는 개별적인, 부차적인 가치이다. 2000년대 초반의 유행어가 부자되세요가 아니었겠는가. 그래서...


6


추석 연휴 중에 만난 친구들. 오랜만이다. 사는 이야기들을 하며 한 두 잔 술잔을 기울여 나가다 보니 개발 이야기가 문득 흘러나온다. 왠 개발이야기인가. 우리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리고 경제 이야기를 하더니 한 친구의 입에서 어디선가 많이 듣던 논리와 논조가 마치 녹음기를 재생한듯한 깨끗한 음질로 내 귓가를 때린다.


“그래도 박정희가 없었으면 한국 경제는 이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김대중과 노무현이 경제를 말아먹었다. 내가 아는 교수중에 억대 연봉 받다가 회사 그만두고 교수하고있는 분이 있는 그사람 말 들어보니깐 지금까지 성장해둔 경제를 그때 말아먹었다더라”

“역시 박정희 만한 대통령은 없다. 경제 발전 하나만큼은....”


70년대 한국 경제발전의 기적이라는 것은 남한의 한강의 기적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전후 복구 과정에서 보인 북한의 경제 성장의 기적을 말하는 것이다. 유신 경제는 경제적으로 무너진 정권이다. 유신 경제 이전의 완전 고용 상태의 경제 발전에서 유신경제의 시작으로 실업자와 노숙자가 등장하기 시작하며 빈부격차가 본격화 되던 시기다. 유신경제는 물가폭등으로 서민경제를 파탄내고 있던 상태였음이 당시의 지표가 말해주고 있다. 경제 대통령을, 경제 성장을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차라리 전두환을 재평가해라 이 새끼야.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고 올라온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 앞에서 욕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러면서 또 이어진다.


“당시의 경제 개발 5개년계획이 없었다면 그만큼의 경제성장도 없었을 것이다.”


당시 한국과 같은 경제성장 모델을 가졌던 필리핀은 한국보다 잘사는 나라였지만 지금은 한국이 더 잘산다. 유신경제는 경제로 성공한 정권이 아니라 경제로 무너진 정권이다. 거의 모든 독제국가는 재벌중심적, 부패 경제, 특혜사업을 이용해 외형적인 발전을 이룩한것으로 비춰진다. 그러나 질적 경제의 지표는 국가 경제 전체를 병들게 만든다.


“김대중이 역대 정권 중에서 가장 경제를 망친 대통령이다”


그 교수가 가진 전직 억대연봉이라는 아우라의 강력함은 알겠지만, 그런 종교수준의 맹신과 믿음이 아니라 지표와 근거를 가지고 와서 떠들어봐라. 이 개...


그때 한 친구가 나의 표정을 보며 이야기한다.


“표정이 왜 그렇냐. 하고싶은 말 있으면 해라. 우리가 이야기하는게 너보다는 적게 알고 잘 모르고 하는 이야기라서 그럴 수도 있는데 잘못된게 있으면 고치고, 이야기를 해라.”


차갑다. 서늘하다. 시퍼런 비수가 날아와 내 뒤통수에 꽂힌다.


7


한국의 소통 문화는 광장이 아니라 시장에 가깝다는 말. 소통과 대화. 그렇다. 소통과 대화의 시작은 입을 다무는 것이 아니라 말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잃어버렸던 소중한 가치 하나를 다시 깨닫게 되었다. 한때 나의 소중한 가치이자 신조였던 상대성이라는 단어. 그것을 다시 찾는 순간이었다.


누구나가 IT 전문가일수는 없다. 그저 자신이 알고 있는 정도에서 판단하고 결론을 내릴 뿐이다. 그리고 대화를 통해 배워나간다. 시덥잖은 연예이야기, 이성에 대한 시시콜콜한 잡답은 결코 니체를 읊고 지젝을 이야기하는 것이 비해 수준이 낮거나 뒤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물론 지젝과 니체의 이야기가 수준 높은건 아니다. 누구나 경제 전문가 일수도 없으며, 누구나 수많은 지표를 분석하고 습득할 수는 없는 것이다. 누구나의 삶의 방식이 있으며, 또 누구나가 자신의 분야에서는 전문가이다. 나 역시 누군가에겐 무지한 대중의 한명에 지나지 않으며, 나에게의 무지한 대중은 어떤 분야에서의 전문가이다.


인문학은 더 이상 문화와 문명의 우월을 가리려하지 않는다. 아프리카 한 오지의 우주론과 현대의 첨단과학이 말하는 우주론 사이에선 그 어떤 우월을 둘 수 없다. 현대 문명의 척도가 그들을 제단하고 양화 시킬수는 없다. 그들이 눈에 이상한 것은 오히려 우리들이다. 모든 문화는 상대적이며 상보적이다.


대화란 학술토론의 장이 아니라, 소위 말하는 끼리끼리 노는 것이 아니라 그렇지 않은 상대와의 공감의 과정이다. 그것으로 우리는 소통한다. 소통이란 이런것 아니겠는가. 공감의 과정을 찾아나가는 것.


소중한 것 하나를 다시 찾고 간다. 느낌 아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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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9.22 18:49 -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로상관없을것 같은 episode들이 각각의 개성을 지니고 한데 뭉쳐있으니 하나의 큰 글이 되어있네. 페니실린... 나도 ... 공감 할때가 있어... 잘 읽고 갈께

  2. 2013.09.24 14:47 -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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