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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에 대한 인상
    잡설 2021. 12. 9.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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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아주 재미있는 상황을 마주했다. 너무 뜬금없고 황당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과거 고통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던, 마치 인생에서 어떤 페이지가 넘어간 듯한 아주 이색적인 경험이었다. 

    “혹시 교포는 아니죠?”

    이 이야기의 시작이자 끝을 맺고 있는 바로 이 한 문장이 나의 가슴 깊은 곳에 잠겨있던 울분과 설움, 고통과 애환을 표면 위로 솟구치게 만들었다. 물론 나는 교포가 아니다. 일본에서 몇 년간 지내긴 했었지만, 저 질문 속의 교포가 재일교포를 뜻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가 물었던 것은 놀랍게도 미국에서 왔냐는 것이었다.

    나를 오랫동안 알아온 지인이라면, 그간 얼마나 영어라는 언어 하나로 고통받았는지를 지켜보았을 것이다. 나의 모든 목표는 바로 이 외국어 실력 하나로 매번 좌절되고 발목 잡히기 일수였다. 영어 시험 하나로 수년의 시간과 돈을 허비한 끝에 결국 꿈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마주하기도 했으니, 영어는 나에게 단순한 외국어 하나가 아니라 원수와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나는 병적으로 손에 닿고, 눈에 보이고, 귀로 들리는 모든 것을 영어로 바꾸기 시작했다. 심지어 사소한 기록 하나하나까지 영어로 쓰기 시작했으니, 가히 병적인 집념 이나 히스테리라 볼 만하다. 그러니 교포가 아닐까 의심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대체 어떤 사람이 편한 모국어를 놔두고 구태여 잘하지도 못하는 외국어를 계속 쓰고 있겠나 말이다.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여기서부터 였다. 일본어도 할 줄 알고 프로그래밍 언어도 몇 가지 알고 있다고 알려지자, 그 순간 나는 언어에 재능이 있는 능력자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만약 이 이야기를 나의 오랜 친구들에게 한다면 아주 크게 웃을 것이다. 나의 친구들은 내가 언어영역과 외국어 영역에서 최하위권을 놓치지 않았던 언어 잼병 중의 잼병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테니 말이다. 그러나 그들이  나를 언어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은, 그저 한 순간 겉으로 보이는 몇 가지 특징들로 사람을 판단하고 인상 지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것과는 정반대의 또 다른 일화를 소개하자면, 이런 일도 있었다.

    위상 수학을 연구하고 있던 시점에서, 레이저를 전공한 사람이 갑자기 정수론에 관한 기초 질문을 던지고 내가 곧 바로 정확히 대답하지 못하자, 그 순간 나는 바보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그 이후로 나는 여전히 그의 머릿속에 ‘지적 수준이 낮은 사람’으로 각인되어 그만한 대우를 받고 있다.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인상과 시각은 이렇게 제 각각이다. 첫인상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인 경우도 있고, 오래된 기억과 경험이 함께 섞여이며 변한 경우도 있고, 지금 보이는 겉모습과 궤적 만을 보고 판단하는 경우도 있다. 나 역시 비슷한 기준으로 누군가를 잘 못 이해하거나 다르게 보고 있을 것이다. 첫 인상 만으로 사람을 쉽게 평가 내리고, 겉으로 보이는 말투나 행동으로 누군가를 완전히 곡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학력과 학벌, 출신에 따른 인식의 차이 혹은 후광 효과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

    교포가 아니냐는 스치듯 지나간 그 짧은 물음이, 객관적이라 여기지만 사실은 편견으로 가득 찬 인간에 대한 삐뚤어진 시선을 내게 투명해주었다.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누군가를 만날 때면 그들을 가볍게 평가하고 인상 짓고 돌아와, 다시 머리를 쥐어뜯으며 후회하는 일을 끊임없이 되풀이 것이다. 사람과의 관계가 다 그런 거지 하면서.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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