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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에 집착할 때
    잡설 2018. 9. 6.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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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이상한 일이다. 누군가 시키지도 않았고, 기다리지도 않고, 찾지도 않으며, 읽지도 않고, 돈이 되는 것도 아닌데, 블로그에 글을 써야한다는 이상한 집착에 빠지는 일 말이다. 정제되지 않은 생각들이 구름처럼 흩뿌려져 있음에도 그것을 완성된 글로 써내려 가야만 한다거나, 읽었던 책들에 대한 서평을 빼놓지 않고 모두 써야만 한다거나, 어떤 핵심적 담론을 서술 해야만 한다는 집착과 압박에 가끔씩 사로잡힌다. 독서량과 필력과 지력의 부족함을 망각하고 이 강박에 휘말려들면 누군가의 글과 문장을 그대로 표절하거나 괴변만을 늘어놓고 모호한 논리를 읊조리는 오물만 배설하게 된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매번 이 하찮은 집착에 빠지고 또 빠진다.


    깜박이는 커서를 보며 글에 대한 이런 하찮은 고민과 허기가 차 들때면, 가끔씩 아도르노의 글을 꺼내어 보며 가당치도 않은 글쓰기라는 취미에 스스로 뼈를 내려친다. 나는 글을 쓸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글이란 어떻게 써야 하는 것인가. 나는 지금 그러고 있는가.



    64. 도덕과 문체


    글쟁이는 보통 더 정확하고 더 양심적이며 사물의 진실에 맞게 표현하려 하면 할수록 그 결과물이 더 이해하기 어려운 것으로 간주되며, 느긋한 마음으로 무책임하게 쓸 경우 상당한 공감을 느꼈다는 칭찬을 듣는 경험을 하게 된다. 또한 온갖 전문어들, 더 이상 존재하지도 않는 교양층에 대한 암시를 금욕적으로 자제한다고 사정이 별로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엄격하고도 순수한 언어의 피륙짜기는 아무리 단순해도 진공만을 울린다.

    골머리를 썩이지 않고 느긋하게 친숙한 말의 바닷속을 헤엄치는 것은 친근감과 접촉을 위한 기호로 여겨진다.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되는데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표현에서 의사소통에 신경 쓰는 대신 실상을 주시하는 것은 의심의 눈길을 받는다. 기존의 익숙한 도식에서 따오지 않은 특수한 것은 남을 배려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지며, 독선이나 혼란의 징후로 간주된다. 스스로 명료하다고 자부하는 일상의 논리란 사실은 일상어의 범주속에서 그러한 도착 상태를 순진하게 읊조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모호한 표현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마음에 드는 것, 자신이 생각한 것만을 대충 상상하는 것을 허용해준다. 반면 엄격한 표현은 분명한 입장이나 개념의 긴장을 강요하며 -사람들은 그러한 긴장이나 확고한 태도 정립을 의식적으로 피하고 싶어지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어떤 내용에 앞서 통상적인 판단의 정리, 그리고 고립을 -사람들이 온몸으로 거부하는- 요구한다. 이해할 필요가 없는 것만이 사람들에게는 이해될 수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진실로 소외된 말, 상업에 의해 인장이 찍힌 말만이 그들에게 감동을 주며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다. 이런 정황만큼 지식인의 탈도덕화에 기여하는 것도 없을 것이다. 이러한 탈도덕화에 빠지지 않으려는 사람은 전달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충고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에 대한 배반임을 꿰뚫어 보아야 한다.

    [테오도르 아도르노, 미니마 모랄리아,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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