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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끈이론은 과학이라고 볼 수 있는가?
    과학 2010. 12. 15.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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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끈 이론에서 말하는 끈은 무엇인가? [1]

    끈 이론이 사물의 근본적인 속성을 바라보는 방식은 기존의 입자 물리학과 전혀 다르다고 말하고 있다.

    끈 이론에서 모든 물질의 기초를 이루며 분할되지 않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는 다름아닌 보이지 않는 '끈'이다. 끈은 진동하는 1차원의 에너지 고리나 에너지 조각으로, 원자가 아닌 말 그대로의 끈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즉, 전자나 쿼크를 포함하는 모든 것을 이루고 있는 기본 요소는 원자와 같은 더 작은 소립자가 아닌 진동하는 끈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끈 이론의 기본 가정은 끈의 진동 방식으로부터 입자가 생긴다는 것인데, 모든 입자들은 각각 끈의 진동으로 볼 수 있으며, 진동의 특성에 따라 입자가 달라진다. 끈이 진동하는 방식이 다양하기 때문에 하나의 끈도 여러 유형의 입자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끈의 또 다른 특징은 하나의 차원을 따라 뻗어 있다는데 있다. 다시 말해 어느 순간 끈 위의 한 점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숫자 하나만 있으면 되므로, 차원의 정의에 따라 끈은 공간적으로 1차원 물체인 것이다.

    끈 이론에서 끈은 자주 바이올린의 현에 비유되는 데 이는, 끈이 어떤 입자를 만들어 내는가는 끈의 에너지가 얼마인지는, 들뜬 상태의 끈이 갖는 진동 방식이 정확히 무엇인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으로 마치 바이올린의 현이 공진하는 방식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즉, 끈이 갖는 기본 단위의 진동이 조합되어 우리가 아는 입자가 만들어 지는 것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입자는 여러 음이 함께 어울려 내는 소리인 화음이고, 입자들의 상호 작용은 화음이 연결된 화성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누군가가 바이올린의 활을 긋기 전 꺼지는 바이올린의 현이 소리를 내지 않는 것처럼 끈 이론의 끈도 진동하지 않는 상태에선 입자를 만들지 않으며, 끈이 충분한 에너지를 얻어 고유한 진동을 만들어 낸다면 비로서 끈은 각기 다른 유형의 입자를 만들어 낼 것이다.

    궁극적으로 모든 입자는 끈이 진동하는 방식에 따라 질량, 스핀 그리고 전하량과 같은 입자의 모든 성질들이 결정되는 것이다.

     

    끈 이론의 기원 [2]

    20세기 현대 물리학의 양대 산맥인 양자 역학과 일반 상대성 이론은 넓은 범위의 길이 규모에서 평화롭게 공존해 왔다. 이 두 이론 다 모든 길이 규모에 적용 가능하지만, 일종의 양해하에 서로 다른 길이 규모로 각각 양분하여, 각자가 지배적이 되는 영역 내에서 평화롭게 역할을 다 하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일반 상대성이론은 별이나 은하와 같은 무겁고 커다란 대상을 다룰 때 중요하다. 하지만 중력의 영향이 무척 작은 원자를 다룰 때에는 상대성이론의 효과를 무시할 수 있다. 반면에 원자 범위에서는 양자역학이 훨씬 중요해 지는데, 원자에 대해서는 고전 역학과 달리 양자 역학의 예측이 보다 실질적인 영향력을 갖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데, 이 두 이론 사이에서 발생하는 극명한 차이점은 플랑크 길이라고 알려진 10^-33cm 규모의 작은 영역에서는 결코 융합될 수 없기 때문이다. 뉴턴의 중력법칙에 따르면 중력의 세기는 질량에 비례하고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기 때문에, 중력은 원자 규모에서는 미약하지만, 그보다 훨씬 작은 규모에서는 어마어마하게 강해진다. 중력은 단순히 무겁고 큰 물체 분만이 아니라 플랑크 규모 정도의 극소 영역에서도 중요해 지는 것이다. 따라서 플랑크 규모라는 측정 불가능한 작은 영역에서는 양자 역학과 상대성 이론이 모두 다 중요해 지는데, 문제는 이 두 이론의 계산 결과가 서로 충돌을 일으켜 결국 예측 불가능한 상태가 된다는 점이다.

    상대성 이론은 시공간이 천천히 구부러지는 매끈한 중력장에서만 잘 들어 맞는다. 반면 양자역학에 따르면 플랑크 규모의 길이를 측정하면, 그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은 엄청난 크기의 운동량의 불확정성을 갖는다. 플랑크 규모 길이를 조사할 정도의 커다란 에너지를 가진 측정 도구는 막대한 에너지를 가진 가상의 입자를 방출하기 때문인데, 이렇게 되면 플랑크 규모의 길이에서는 시공간의 변화가 천천히 변하는 것이 아니라, 시공간이 과격하게 요동치거나 갑자기 돌출하고, 고리 모양으로 변하게 된다. 이 같은 거친 공간에서는 일반 상대성 이론을 적용할 수 없다. 그렇다고 양자역학이 상대성이론을 무시할 수 없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플랑크 길이에서는 중력의 영향이 막대해 지기 때문인데, 플랑크 길이 이전까지의 입자 물리학이 다루는 에너지 영역에서 중력이 그다지 세지 않으나, 정확히 플랑크 길이에서부터는 중력이 엄청나게 세져 더 이상 무시할 수 없게 된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물리학자들은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이 만들어내는 무한대라는 난제에 부딪혀 골머리를 앓았고 이를 피해 가기 위해 다양한 대체이론이 제안되기 시작하였다.

    초기 양자이론의 선구자들은 비엔나 서클의 논리적실증주의에 영향을 받아 '인간의 의식으로 감지되지 않는 추상적 객체는 과학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그 후 새로운 양자역학으로 투신한 다수의 물리학자들도 이러한 사고방식을 전적으로 수용하여 '정확한 위치와 운동량을 갖는 입자'의 개념을 폐기하고 양자역학에 확률을 도입했다. 양자역학의 관점에서 볼 때, 고전적인 입자는 형이상학적 개념이므로 과학은 대상이 아니었다.

    1973년에 존 휠러는 실증주의적 관점으로 입자물리학을 연구했고, 그의 관점은 1943년 하이젠베르크에 의해 결실을 맺게 된다. 하이젠베르크는 '산란행렬만으로 이론을 서술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는데, 산란행렬은 간단하게 말해서 멀리 떨어져 있던 두 개의 입자가 서로 가까이 다가올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말해 주는 수학적 양이다. 가령 두 입자는 충돌 수 정체성을 잃지 않고 단순히 산란될 것인지 혹은 충돌과 함께 소멸하면서 새로운 입자를 만들어 낼 것인지에 대한 질문의 해답이 S행렬에 들어 있다. 이 같은 관점을 S행렬철학이라고 부른다.

    양자장 이론도 S행렬을 계산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양자장이론은 시공간상의 모든 지점에서 일어나는 장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포함하기 때문에, 그다지 만만한 계산은 아니다. 양자장이론과는 달리 S행렬은 두 입자 사이의 거리가 아주 가까워졌을 때 상호작용의 진행 방식에 대하여 아무런 정보도 담고 있지 않다.

    하이젠베르크의 S행렬에 회의적인 생각을 가진 파울리는 1946년에 개최된 학술회의 석상에서 S행렬이론이 실질적인 물리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못한다고 논박했다. S행렬을 이용하면 무한이 발생하는 가까운 거리에서 일어나는 일을 고려할 필요가 없어지지만, 문제는 계산의 최종 결과에 그대로 남는다는 것이다.

    재규격화로 무한대의 문제를 해결한 QED가 S행렬철학의 자리를 일부 꿰차긴 했지만, 1950년대부터 QCD가 처음 등장한 1970년대 초반까지 S행렬철학은 강력 서술에서 가장 촉망 받는 기대주였다. 당시 물리학자 사이에는 '양자이론에는 강력을 교환하는 입자들이 제대로 서술할 돌파구가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는데, 1960년대 초반에 강한 상호작용이론의 선두주자였던 제프리 츄는 그의 동료들과 함께 '해석적 S행렬'이라는 새로운 유형의 S행렬이론을 제안하였다. 여기서 '해석적'이라는 말은 입자의 초기 에너지와 운동량의 변화에 따라 S행렬이 변해가는 방식에 해석적 조건을 부과했다는 뜻이다.

    1950년대 후반에 제프리 츄와 그의 동료들은 해석적 조건과 몇 개의 원리로부터 S행렬을 단 하나의 값으로 유일하게 결정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것을 '구두끈 철학'이라고 불렀다. 해석적 조건을 가하면 각 입자의 기본 측성은 다른 입자와의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되며, 전체 이론은 소립자 대신 '구두끈을 잡아 당겨서 스스로 끌어올리는' 체계를 갖게 된다.

    1960년대 중반에 제프리 츄는 구두끈 아이디어에 착안한 '핵자 평등'을 주장했는데, 이는 이 세상에 소립자는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가 입자라고 부르는 것은 여러 개의 입자들이 결합한 복합체라는 것이다. 이것은 특정 입자에 특별한 성질을 부여한 양자장 이론과 정면으로 상치되는 주장이었다.

    S행렬이론은, 양자장이론에 입각하여 계산된 S행렬의 일반적인 특성을 나열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양자장이론은 여러 가지 유형이 있고 QCD 자체도 다양한 변종이 가능하므로 강한 상호작용을 서술하는 이론은 매우 많다. 그리고 이 모든 이론들은 각기 다른 S행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구두끈이론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유일하게 타당한' S행렬이 존재함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쿼크모형으로 대표되는 양자장이론이 거둔 성공은 새로운 소립자를 도입해서가 아니다, SU(3)대칭군과 표현법을 다루는 수학이 거의 완벽하게 개발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 후로 핵자 평등을 옹호하는 학자들은 소립자 분야에서 입자가 좁아짐과 동시에 대칭을 가장 근본 원리로 간주하는 학자들에게서도 멀어지기 시작했다.

    1983년에 이르면 구두끈이론이 폐기되고 표준모형이 정설로 굳어진 후였음에도, 구두끈이론 옹호자들은 여전히 사실과 동떨어진 주장을 거듭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구두끈 이론은 최초의 끈이론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게 된다.

    구두끈철학은 '해석적 조건을 비롯한 몇 개의 조건을 부과하면 S행렬을 유일하게 결정할 수 있다'는 희망사항에서 시작되었다. 그런데 해석적 조건을 만족하는 S행렬은 무한히 많이 존재하므로 그 외의 조건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데, 문제는 구체적으로 어떤 조건을 부과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양자장이론의 건드림 전개를 이용하여 S행렬을 계산하면 일반적인 조건이 도출되지만, 이 방법으로는 건드림 전개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한다.

    1968년에 물리학자 가브리엘레 베네치아노는 18세기의 수학자 레온하르트 오일러가 창시했던 베타함수야 말로 해석적 S행렬의 특성을 서술하는 가장 적절한 도구임을 깨달았다. 베타 함수를 통해 유도된 S행렬은 건드림 전개의 S행렬과 전혀 다른 성질을 가지는데,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바로 '듀얼리지'이다. 여기서 말하는 듀얼리티란 강력을 교환하는 입자들을 바라보는 방식이 두 가지가 있으며, 각 방식마다 서로 다른 행동양식이 관측된다는 의미이다.

    그 후로 '이중적 S행렬이론'은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면서 입자물리학계의 태풍의 핵으로 떠올랐고, 1970년에는 세 명의 물리학자 요이치로 남부, 레너즈 서스킨스, 홀거 베치 닐슨 등 3명이 베니치아노 공식에서 간단한 물리적 의미를 유추하는데 성공했다. 이들은 양자장이론의 S행렬이 고전역학에서 입자를 끈으로 간주한 것에 해당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아냈다. 여기서 말하는 끈이란 공간 속에 존재하는 1차원 경로로써, 이상적인 끈 조각이 3차원 공간 속에서 점유하는 위치를 의미한다. 이러한 끈은 열려 있을 수도 있고, 닫혀 있을 수고 있다.

    그 후로 몇 년 동안 물리학자들은 입자를 대신한 끈에 양자역학의 표준 방법을 적용하여 양자역학적 끈이론을 만들어 냈으나, 이 과정에서 두 가지 커다란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첫 번째 문제는, 이론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끈이 거동하는 공간이 4차원이 아니라 26차원이 되어야만 한다는 조건이었고

    두 번째 문제는, 이론체계 속에 타키온을 포함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타키온은 빛 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입자로써 양자장이론에 이런 입자가 도입되면 타당한 체계를 유지할 수 없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만일 빛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입자가 있다면, 이 입자의 정보가 과거로 전달되기 때문에 인과율에 배반된다는 점 때문이다.

    초기 끈이론의 또 한 가지 문제점은 페르미온의 부재였다. 페르미온은 전자나 양성자처럼 반정수 스핀을 갖는 입자인데, 현실세계에서 일어나는 강한 상호작용을 끈이론으로 설명하려면, 어떻게든 페르미온을 이론 속에 포함시켜야 했다.

    1970년에 피에르 라몽은 3차원 변수를 갖는 디랙방정식을 무한차원으로 확장시켜서 최초호 페르미온을 포함하는 끈이론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그 후로 몇 년 동안 많은 물리학자들이 이 분야에 뛰어들어 연구를 수행한 끝에 페르미온을 포함한 끈이론이 논리적으로 타당 하려면 끈이 거동하는 시공간은 26차원이 아니라 10차원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밝혀 졌다. 26차원 보단 현실적인 결론이었다. 그 후 연구가 더욱 심도 있게 진행되면서 초대칭 유형 끈이론이 물리학자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초기 끈이론을 연구하던 학자들은 페르미온을 포함한 끈이론에 4차원 초대칭과 달리 2차원의 초대칭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같은 초대칭이 도입된 끈이론을 초끈이론이라고 하는데, 현재는 끈이론과 초끈이론의 구분 없이 거의 혼용되어 사용되고 있다.

    초기 초끈이론은 한 동안 강력을 서술하는 유력한 후보로 떠올랐다. 많은 물리학자들은 초끈이론의 유별난 특성뿐만이 아니라 기존 양자장이론이 아닌 새로운 이론이라는 점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으면서, 한동안 이론물리학자들 사이에서 커다란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1973년 중반 점근적 자유성이 발견되면서 많은 물리학자들이 끈이론을 포기하고 QCD로 되돌아 갔다.

     

    끈 혁명 [3]

    1984년 이전까지 그 동안의 물리학자들은 대체로 끈 이론을 무시하는 편이었으나, 본격적으로 끈이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에드워드 위튼이 본격적으로 초끈이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1983년 이후이다.

    1980년부터 시작된 대통일이론 4차 연례학술회의가 그 해 4월에 열렸는데, 이 자리에서 위튼은 '초끈이론에 기초한 대통일이론의 전망'이라는 주제로 슈바르츠와 그린을 비롯한 초창기 끈이론 학자들의 연구성과와 자신이 얻은 새로운 결과들을 정리하여 발표하였다. 이 무렵 위튼의 관심사는 학계에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으나, 그의 제자이자 끈이론학자였던 라이언 롬이 초끈이론을 주제로 한 논문을 그 해에 발표하면서 세간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위튼은 초끈이론의 매력에 점차 빠져들어 갔지만, 이론에 잠재된 문제점이 여전히 그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양자론에서는 게이지 대칭이 붕괴되면 게이지 비전상성이라는 미묘한 효과가 나타나는데, 이 경우에는 표준 방법을 적용할 수가 없다. 1983년에 위튼은 게이지 비정상성 때문에 초끈이론이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그 해 10월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게이지 비정상성의 상쇄는 초끈이론의 저에너지 극한에서 일어나는 현상임을 지적하였다.

    초끈이론에는 여러 가지 유형이 있는데, 이들 중 게이지 비정상성의 상쇄는 이론을 Ⅱ형이론이라고 한다. 이 이론에서는 표준모형 양-밀스 장을 다룰 방법이 없다. 그러나 또 다른 초끈이론인 Ⅰ형이론은 양-밀스 장을 포함할 수 있는데, 여기에도 게이지 비정상성이 존재하는지는 미지로 남아 있었다.

    그린과 슈바르츠는 1984년 여름에 아스팬 물리학센터에서 개최된 여름 캠프에 참석하여 공동연구를 수행하다가 Ⅰ형 이론의 비정상성을 계산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곧바로 이 내용은 논문으로 유명 학술지에 제출되었고, 끈이론 학자들은 1984년 9월 10일에 일어난 이 사건을 두고 '초끈이론의 1차 혁명'이라고 부른다.

    1990년대 초부터 초끈이론에 대한 물리학자들의 열광적인 관심이 점차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1995년 3월에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개최된 끈이론 학술회의에서 위튼은 '다섯 개의 초끈이론들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충격적인 가설을 발표하여 꺼져가는 끈이론에 다시 불을 지폈다. 이때가 '초끈이론의 2차 혁명'이라고 불린다.

     

    끈 이론이 안고 있는 문제들 [3]

    많은 물리학과에서 초끈이론이 입자 물리학의 지위를 대체해 나가기 시작했다. 초끈 혁명은 일종의 쿠테타와 같았고, 초끈 이론이 양자 중력을 다루는 동시에 알려진 입자와 힘을 포함하기 때문에, 많은 물리학자들은 초끈 이론을 모든 것의 배우에 있는궁극적인 이론으로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1980년대에 이르러선 끈이론은 '만물이론'이라는 이름을 얻으면서, 많은 물리학자들은 양자역학과 중력을 조화시킬 가능성만으로도 끈 이론의 탁월함이 충분히 증명되었다고 보았다.

    그러나 끈이론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물리학은 이론과 실험 사이의 복잡한 상호작용이 교환되면서 발전해 나갔다. 이것은 비단 물리학뿐만이 아닌 모든 학문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하나의 속성과 같으며, 실제로 입자물리학의 표준모형 역시 이 같은 과정을 거치며 발전해 왔다. 그러나 끈이론은 탄생 이후로부터 단 한번도 실험적 검증을 거친적이 없다. 물론 끈이론은 이론 자체에서 그 무엇도 예견한 적이 없기 때문에 실험을 해야 할 의무는 없겠지만, 적어도 실험은 고사하고 실제 세계조차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초끈이론은 10차원을 요구하지만 우리를 둘러싼 세계는 시간을 포함한 4차원이다. 따라서 이 여분의 6차원을 어떻게든 해야만 한다. 현재 물리학자들은 압축 차원 즉, 여분 차분이 압축되어 있다는 생각이 해답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 해답으로 물리학자들은 보이지 않는 작은 크기로 공간이 말려 있다는 가설을 주장한다.

    1985년 필립 칸델라스와 게리 호로비츠 그리고 앤드 스트로민저와 에드워드 위튼은 여분 차원을 압축하는 방식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들은 칼라비-야우 다양체하는 복잡한 압축 방식을 제안했다. 이것은 그 동안 말려진 차원 문제로 발생했던 입자 스핀의 구분과 반전 대칭성을 깨는 약력을 포함하는 표준 모형의 입자와 힘을 대현하고 4차원 이론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만일 이 같은 여분의 차원이 어떻게든 실제로 존재한다면, 여분 차원의 지문이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이 여분 차원은 칼루자-클라인 입자라는 흔적을 남기는데, 이 입자는 여분 차원 우주를 이루는 또 다른 추가요소이다.

    최근까지 대부분의 끈이론 연구자들은 여분 차원의 크기가 엄청나게 작은 플랑크 길이를 넘어서지 않는다고 가정했다. 이는 플랑크 에너지에서는 중력이 강해져 끈 이론 같은 양자 중력 이론이 중요해 지니 때문인데, 하지만 플랑크 길이는 실험적으로 연구하기에는 너무 작은 규모라는 제약이 따른다. 양자역학과 특수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엄청나게 작은 플랑크 길이는 현재 입자 가속기가 도달할 수 있는 질량보다 10^16배나 큰 플랑크 질량에 대응한다. 플랑크 질량 정도의 질량을 가진 칼루자-클라인입자는 실험적으로 확인하기에는 지나치게 무겁다. 물론 플랑크 길이보다 큰 여분 차원과 플랑크 질량보다 가벼운 질량을 가진 칼루자-클라인 입자가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여분 차원 크기에 대해 실험으로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우주가 4차원 이상이라면 우리가 아는 입자들은 모두 칼루자-클라인 짝을 가져야 하며, 동시에 이 짝들은 알려진 입자들과 전하는 똑같지만 여분 차원 운동량을 가질 것이다. 만일, 여분으로 말린 여분 차원이 있다면, 가장 가벼운 칼루자-클라인 입자의 질량은 여분 차원 크기의 역수에 비례하는 만큼 전자의 질량보다 커질 것이다. 즉, 여분 차원이 커질수록 칼루자-클라인 짝의 질량은 작아지며, 여분 차원이 클수록 더 가벼운 입자가 만들어 진다.

    지금까지 1000GeV 정도까지 작동하는 가속기에서 이처럼 대전된 입자의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칼루자-클라인 입자는 여분 차원의 흔적이기 때문에 아직까지 이 입자를 보지 못했다는 것은 여분 차원이 그리 크지 않음을 의미하는데, 현재 실험적 제약을 감안한다면 여분 차원은 10^-17 cm 보다 클 수 없다. 이것은 우리가 직접 볼 수 있는 그 어떤 것보다도 휠씬 작은 크기이다.

    이러한 여분 차원 크기의 상한 값은 양력 규모 길이의 10분의 1정도이다. 하지만 10^-17 cm가 작다고 해도 10^-33 cm인 플랑크 길이에 비하면 10^16배나 큰 값이다. 따라서 여분 차원이 플랑크 길이보다 휠씬 크다고 해도 여전히 관측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사실 클랑크 에너지보다 낮은 에너지 영역에서라면 입자 물리학도 잘 맞는다. 크기를 잴 수 없을 정도로 끈이 작다면, 끈은 입자와 다르지 않을 것이며 실험적으로 그 차이를 발견할 수도 없다. 1차원 끈은 앞서 설명한, 말려 있는 극소의 여분 차원과 마찬가지로 눈으로 볼 수 없다. 클라크 길이 규모의 크기를 볼 수 있는 기구가 개발되지 않는 한, 끈은 너무 작아서 볼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접근 가능한 에너지에서 끈 이론과 입자 물리학이 같아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불확정성 원리에 따르면 높은 운동량을 갖는 고에너지 입자가 있어야만 작은 거리를 들여다 볼 수 있는데, 충분히 높은 에너지가 아니라면 끈이 가늘고 긴 대상이 아니라 점처럼 보일 수 밖엔 없다.

    원리적으로 끈의 가능한 모든 진동 방식에 대응하는 새로운 입자들을 발견함으로써 끈 이론이 옳다는 증거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전력의 문제점은 끈 이론에서 예측되는 새로운 입자 대부분이 10^19GeV라는 클랑크 질량 정도의 굉장히 큰 질량을 가진 무거운 입자라는 점이다. 실험적으로 측정되는 가장 무거운 입자의 질량이 200GeV라는 것과 비교해 보면 이 끈이론 입자의 질량이 얼마나 큰지를 쉽게 알 수 있다.

    이는 끈의 장력이 어마어마하게 크기 때문에 끈의 진동을 통해 추가로 생겨나는 새로운 입자의 질량은 클 수 밖에 없다. 끈의 장력은 플랑크 에너지에 따라 정해지는데, 이 장력이 없으면 초끈 이론은 중력자의 정확한 상호작용세기를 재현할 수 없다. 끈의 장력이 클수록 진동을 만들기 위한 에너지가 커진다. 그리고 이 높은 에너지는 끈의 진동에 의해 생진 여분의 입자들의 질량으로 전환되는데 이러한 플랑크 질량의 입자들은 너무나도 무거워서 현재 그리고 미래의 그 어떤 입자 가속기도로 만들어 낼 수 없다. 따라서 끈 이론의 실험적 증거를 발견할 확률은 매우 낮다.

    만약 끈이론의 예측에 따라 무거운 입자들뿐만 아니라 가벼운 입자들이 존재한다면 실험을 통해 이들을 볼 수 있어야만 한다. 대다수의 끈이론 모형은 우리가 현재 관측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가벼운 입자와 힘이 저에너지 상태에서 존재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왜 그 가벼운 입자는 보이지 않고 우리가 지금 보는 입자들만 관측되는 지의 문제에 대답을 하지 못한다.

    끈이론은 현재의 현실을 설명하는 것 조차 매우 버거운 상황이다. 이론으로부터 아무것도 예견하지 못하고 설명하고 있지도 못하다.

    초끈이론은 대통일 이론을 실현시켜 줄 가장 강력한 후보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지난 20년 동안 세계적인 석학들이 이 분야에 투신하여 전례없는 방대한 양의 논문을 발표해 왔지만, 아직도 초끈이론은 희망사항의 단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 앞서 설명 한 바와 같이 실험적으로 검증 가능한 결과를 단 하나도 내 놓지 못한 것을 물론이거니와, 지금으로선 이 상황이 달라질 가능성도 거의 없다. 물리학 이론이 어떤 값을 예견한 후 실험을 통해 검증을 받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그러나 초끈이론은 이 과정을 지금까지 이 과정을 단 한 번도 거지지 못했으며, 기다림에 지친 일부 물리학자들은 이론 자체의 신빙성에 대해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다.

    1987년 행해진 초끈이론과 관련한 인터뷰에서 리처드 파인만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요즘 늙은 물리학자가 초끈이론을 배격하면 바보취급을 받기 십상이지요. 이론 물리학계에 이러한 풀조다 만연한 걸 내 모르는 바 아닙니다. 하지만 바보취급을 받는 한이 있어도 이 말은 해야겠어요. 초끈이론은 완전히 엉터립니다! 이런 발언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잘 압니다. 내가 이런 말을 했다는 걸 후대의 역사가들은 분명히 기억해주길 바래요. 초끈이론은 100% 허튼소리이고, 명백하게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중입니다.

    일단, 초끈이론은 아무것도 계산하지 못해요. 그런데 초끈이론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재검증할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이론과 실험이 완전히 따로 노는데도, 여전히 초끈이론은 옳다고 주장합니다. 그 이론에 의하면, 이 세상은 10차원 시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더군요. 잘은 모르겠지만 여분의 6차원을 작은 영역 속에 구겨 넣는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지요. 수학적으로는 가능합니다. 그런데 구겨진 차원의 수가 왜 하필 6개지요? 7개면 안됩니까? 끈이론학자들은 실험과 일치시키려는 의도 없이, 그저 구겨진 차원의 개수를 맞추기 위해 방정식을 사용하고 있어요. 구겨진 차원이 8개이고 우리의 시공간이 2차원이면 안될 이유가 있습니까?

    그들의 이론에 의하면 이렇게 되지 말라는 법도 없지요. 그러나 이 세상이 4차원 시공간이라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다 알 정도로 명백하니까, 여분의 6차원을 없애려고 안간힘을 쓰는 겁니다. 사실, 관측결과의 불일치는 문제가 아닙니다. 정작 심각한 문제는 이론으로부터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다는 점이에요. 정말이지 초끈이론은 지나치게 관대한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내가 아는 한, 결코 이런 이론이 진리가 되는 일은 없습니다. [4]

    이와 관련한 파인만의 의견을 좀더 간략하게 정리하면, 초끈이론은 아무것도 예견하지 못하면서 이리저리 핑계만 둘러댄다고 비난한 것이다.

    끈이론이 실제로 아무것도 예견할 수 ㅇ벗는 이유는 그것이 이론이 아니라 그런 이론이 존재하기를 의망하는 논리의 집합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위튼은 1983년에 필라델피아의 한 강연석상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 것이 있다.

    "현재 끈이론이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아직 이론으로 진화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일론 이 상황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최신의 끈이론은 M이론인데 이 이론에 이르러서는 앞서 열거면 몇 가지 문제들에 대해 문제를 피해가는 방법을 제공하고 있으나 끈이론이 당면한 상황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지나친 낙관인가? 아니면 현실 부정인가?

    끈이론이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는 것은 분명하다. 끈이론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를 설명해 주는 확실하고 결정적인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끈이론은 주목할 만한 이론이라고 말한다. 끈 이론은 이미 중력, 차원, 양자장 이론에 중요한 통찰을 던져 주었으며 양자 중력에 대한 여러 이론 중 가장 유력한 후보 이며, 또한 끈 이론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수학적인 발전을 이끌어 냈다는 것이다. 특히 여기 사용된 이 수학이 너무나 아름답기 때문에 틀릴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아직 정체가 밝혀지지 않는 끈이론에 대해 위튼은 이런 말을 남겼다.

    "초끈이론은 20세기에 우연히 발견된 21세기형 물리학이다." 또 다른 일각에서는 초끈이론을 "사용 설명서가 누락된 미래의 슈퍼컴퓨터나 우주선"이라고 비유하거나, 초끈이론이 유일하게 타당한 양자중력이론이라고 주장하며, 현재 제기되고 있는 초끈이론에 대한 과제들과 문제들은 시간이 지나면 모두 해결될 것 이라는 낙관을 보여주고 있다.

    우선 초끈이론이 그 동안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을 조화롭게 결합시키는 유일한 이론인지부터 살펴보면 다른 대답이 등장한다. 초끈이론 이외에 물리학자들의 관심을 끌었던 이론 중 고리양자중력이론이 그것이다. 이 이론의 기본 아이디어는 표준 양자이론과 거의 동일하지만 변수를 선택하는 방법이 다르다. 공간의 기하학적 특성을 연구할 때 각 지점마다 정의되어 있는 곡률을 분석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법이지만, 그 대신 공간에 놓여 있는 고리의 홀로노미를 분석할 수고 있다. 이것은 수학자들 사이에서 잘 알려진 사실로, 휘어진 공간의 한 점에서 출발하여 임의의 경로를 따라 한 바퀴 돈 후 다시 출발점으로 되돌아 왔다고 가정해 본다면, 이 경우 고리형 궤적을 따라 이동하는 일련의 벡터를 상상할 수 있다. 이때 각 지점을 이동할 때마다 새로 생기는 벡터는 방금 전의 벡터와 평행하다는 조건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이동하여 출발점으로 되돌아온 후 원래의 벡터와 최종벡터를 비교해 보면, 이들이 회전변환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럴 때 이들을 연결하는 회전변환을 해당 고리의 홀로노미라고 한다. [5]

    최근 들어 고리 양자중력이론은 커다란 진전을 보이고 있다. 비록 초끈이론과 같이 중력과 표준모형의 통합을 이룩하려는 통일이론이 아닌 논리적으로 타당한 양자중력을 설명하기 위한 이론이지만, 대중의 관심 밖에서 양자중력이론에 상당한 진전을 보이고 있는 이론이다. 무엇보다 이 이론은 끈이론에 비해 실험적 검증방법이 열려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끈이론을 유일하게 타당한 양자 중력이론이라는 주장은 자기합리 수준으로 밖이 비치지 않는다.

    물리학자들은 이론의 우아함이나 아름다움을 논할 때 가장 강력한 물리학 이론도 수학 언어로 간단하게 서술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것의 초끈이론 버전이 바로 수학이 너무 아름답기 때문에 이론이 틀린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관점으로 본다면 극악의 난이도로 치닫는 초끈이론의 수학의 어느 곳에서 아름다움을 느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오히려 전자기학의 4가지 맥스웰 방정식이 보다 미학적이고 아름답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초끈이론의 대체 어느 부분이 그토록 아름답다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듣는다면 가장 일반적인 대답 중 하나가 "하나의 이론으로 중력과 표준모형을 통합한다는 아이디어 자체가 아름답다."는 것이다. 물론, 끈의 진동 모드에 따라 매우 다양한 입자와 힘을 만들 수 있는 마치 우주의 오케스트라를 연주하는 듯한 이 이론이 아름답게 느껴질 만도 하다.

     

    끈 이론은 과학인가?

    이론의 발전과정과 완성은 산길의 지도 만들기의 두 가지 방법과 같다. 한 가지 방법은 산 정상에서부터 아래로 이동하면서 산 아래 어딘가에 있는 마을과 연결되는 길을 찾는 방법이고, 다른 한 가지 방법은 산 아래에서부터 산 정상까지 올라가며 길을 찾는 방법이다. 이 두 가지 방법은 각각 귀납적 방법과 연역적 방법에 비유할 수 있다.

    우선, 산 정상에서부터 시작하여 마을까지 아래로 내려가면서 지도를 만드는 과정은 매우 효율적이며 빠른 결론을 도출해 낼 수 있다. 수 많은 봉우리 중 하나의 봉우리 즉, 가설을 설정한 뒤 산 아래로 내려가며 길을 찾아 나가며 만일 이 길에서 마을로 이어지는 길을 찾지 못했을 때 이 가설을 버리고 다른 봉우리로부터 다시 지도를 만들어 나가면 된다.

    반면 아래로부터 산 봉우리를 향해 올라가는 방법은 상대적으로 비효율적이며 많은 시간과 비용을 소모하게 된다. 하나의 가설이나 가정 없이 현실에 등장하는 현상들을 바탕으로 축적된 자료들로써 천천히 정상을 향해 올라간다. 이 과정은 비록 많은 시간을 필요요 하나, 하나의 정립된 방향성을 갖고 공통된 하나의 이론으로 완성된다.

    많은 물리학 이론이 그러하듯 대부분의 법칙들은 산 봉우리에서부터 시작된 지도를 바탕으로 구축되었으며, 모두 수학의 언어로 세밀하게 예견되고 구축된 미학적 아름다움을 포함하고 있기도 하다. 때문이 이 같은 관점에서 끈이론에 대한 논의는 기본적으로 산 봉우리에서부터 아래로 지도를 만들어 나가는 가정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산길의 지도를 만드는 과정에서 하나의 산봉우리로부터 마을을 찾지 못했다면, 그 가설을 폐기하고 다른 봉우리로 옮기는 것이 타당하다. 아니면 마을을 볼 수는 있으나 그 마을까지 가는데 교량이나 터널, 배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그 봉우리가 있던 산의 마을이 아니다. 따라서 가설의 수정이 불가피 하다. 지금까지의 이론의 발전 방향은 모두 이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발전해 왔으며, 이론이 예견하는 현상들을 현실의 실험적 관측을 통해 검증되고 발전되는 과정을 거쳐왔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결론이 내려지던 간에 끈이론은 그 어떠한 검증가능 한 예견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산이 너무 높아 아직까지 산을 다 내려가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이런 전례 없는 기이한 상황 앞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끈이론은 과연 과학인가?"

    자연을 서술하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그 중에서 극히 일부만이 과학적인 방법에 해당된다. 이전에 실행된 적이 없는 실험을 하면서 그 결과를 구체적으로 예측할 수 있어야만 과학적으로 분류함이 마땅한 것이다. 전통이나 종교적 믿음에 바탕을 두고 미래가 올바르게 예측하지 못하는 설명은 과학이 아니다. 논리가 결여된 이데올로기나 희망사항에 기초한 설명도 마찬가지로 과학과는 거리가 멀다.

    과학과 비과학을 구분하는 문제에 관한 가장 유명한 기준을 제시한 인물은 칼 포퍼이다. 그의 기준에 의하면, 과학적 예측은 반증될 수 있어야만 한다. 즉, 자체적으로 모순이 없어서 반증이 불가능한 주장은 과학이 아니라는 것이다. [6]

    일례로, 지난 여러 해 동안 표준모형이론과 일치하지 않는 실험결과들이 다수 발견되었는데, 이론을 확장해서 어떻게든 설명할 수 있었지만 그 대가로 이론체계는 엄청 복잡해 졌다. 그러나 더욱 세심한 분석을 실행하고 보니 실험결과의 잘못이었고, 이론이 복잡해질 이유는 전혀 없었다. 표준모형은 이런 류의 이론 중에서 가장 단순하고 입자물리학 실험에서 얻어진 모든 결과들을 논리적으로 예견하기 때문에, 반증 가능한 이론의 전형적인 예이다. 반면 초끈이론은 어떠한가? 현재 초끈이론은 당장 아무것고 예견하지 못 했음으로 따라서 반증될 수도 없다. 지금까지 누구도 실험 결과와 일치하는 초끈이론을 만들어 내지 못했을 뿐 아니라, 시도 할 때마다 초끈이론은 더욱 복잡해지기만 할 뿐 표준모형과 같은 단순한 일치를 보여주지 못한다.

    나사에서 화성 탐사로봇을 보내고 난 뒤, 화성으로부터 로봇의 실험 결과가 도착한다면 언제나처럼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번에는 생명체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혹은 "이번에는 직접적은 물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라고, 거대한 화성에 극히 일부 지역만을 실험한 탐사로봇이 보내온 표본엔 '아직까진' 생명체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을 수 있다. 같은 논리로 현재의 끈이론 역시 아직까지 완성된 이론이 발견되지 않았을 뿐일까? 끈이론은 한 가지가 아니며, 맥스웰 방정식이나 파동함수와 같은 이론의 토대를 이루는 하나의 방정식 조차 존재하지 않는 것은 모두 아직까지 인 것일까?

    물론 이 같은 범주까지 확장하면 끈이론 역시 과학적이라고 부를 수 있다. 분명 한 번쯤은 시도해 볼만한 이론물리학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몇 가지 우려스러운 점이 존재한다. 우선 초창기 끈이론에 대해 이론물리학자들이 관심을 기울인 결정적 계기는 위튼의 끈이론 연구이다. 당시 물리학계는 특이 할만한 연구구제나 아이디어가 고갈되고 있던 와중에 이론적으로 명성이 높은 에드워드 위튼이란 유명 과학자가 끈이론에 전념한다는 발언은 물리학자들을 요동치게 만들기 충분했다. 특히나, 위튼과 같은 학자가 이론의 전선에 함께 하고 있다면 적어도 혼자 비주류과학을 하는데 대한 부담과 쓸쓸함을 달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조금 과민 반응인지는 모르겠으나, 현재까지 등장하는 끈이론 관련 교양서들은 모두 끈이론 찬양일색이다. 어쩌면 이 같은 끈이론에 대한 믿음이 위튼에 대한 종교단체나 하나의 도그마로 변질될 가능성까지 비춰지고 있는 것은 상당히 우려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과학이 아니다. 단지, 물리학 이론이 이러했으면 좋겠다는 하나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1] Lisa Randall, Warped Passages, Science Books, 2005, 422-424
    [2] Lisa Randall, Warped Passages, Science Books, 2005, 417-422
    Petter Woit, Not Even Wrong, Seung San, 2006, 224-235
    Michio Kaku, Parallel Worlds, Gimm Young, 2005, 300-
    [3] Lisa Randall, Warped Passages, Science Books, 2005, 522-532
    Petter Woit, Not Even Wrong, Seung San, 2006, 266-270
    [4] Davies P.C.W, Brown H.R, Superstrings: A Theory of Eveything?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8
    [5] Petter Woit, Not Even Wrong, Seung San, 2006, 277-278
    [6] Petter Woit, Not Even Wrong, Seung San, 2006, 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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