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lavinka


01

어릴 적 나는 이름은 생각나진 않지만 천문학에 대한 어떤 책에서 멋진 그림을 하나 본 적이 있었다. 항성을 잡아먹고 있는 어떤 쌍성계의 그림이었다. 

그리고 책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블랙홀은 모든 것을 씹지도 않고 통째로 삼킨다. 그러고 나서 블랙홀은 언제 그것을 통째로 삼켰는지 내색도 하지 않은체 다시 조용히 숨어 잠을 잔다.’

그래서 나는 우주 속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모험들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나서 연필로 난생처음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내 그림 1호는 이렇게 생겼다.

나는 이 걸작품을 어른들에게 보여주면서 무섭지 않냐고 물어보았다. 그들은 항상 ‘무섭냐고? 누가 이런 깔대기를 무서워해?’ 라고 말하곤 했다. 내 그림은 깔대기를 그린것이 아니었다. 그건 블랙홀의 시공간 곡률은 간략하게 2차원 평면 위에 그린것일 뿐이었다. 어른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 다른 그림을 그려보여주었다. 내 그림 2호는 이렇게 생겼다.

어른들은 그제서야 구덩이가 깊게 파여있으니 조금 위험해보이는구나 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나에게 이런 그림따윈 집어치우고, 영어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했다. 그렇게 나는 어린 나이에 물리학자의 원대한 꿈을 접고 말았다. 내 그림 1호와 2호에 완전히 좌절해 버린것이다. 어른들은 아무도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매번 2차원과 3차원, 4차원 시공간을 이해하지 못하고 항상 설명해 줘야 하는 입장에서 어른들은 여간 피곤한 상대가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다른 직업을 선택했고, 비행기 조종하는 법을 배웠다. 비행기를 타고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만나는 어른들에게 나의 그림 1호를 보여주며 매번 무섭지 않는냐는 이야기를 했다. 그럴때면 항상 언제나 들어왔던 돌아오는 대답을 듣게 될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은 만날 때면 블랙홀이던 4차원 시공간이던지 하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나는 항상 그들이 이해할만한 소녀시대나 연애 신변잡기, 아니면 축구 얘기나 같이 하면 되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은 나 같이 분별력있는 사람을 만나게 된것을 기뻐했다.


02

나는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눌만한 상대가 없어 그렇게 외롭게 살아왔다. 그러다 비행기 여행을 하던 중 엔진이 고장나 사막에 불시작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나 혼자 비행기를 몰고 여행을 다녔기 때문에 스스로 엔진을 고칠 수 밖에 없었다. 마을은 여기서부터 수십킬로미터는 더 떨어져 있었고, 마실 물도 많지 않았다. 그러다 해가지고 나는 피곤에 지쳐 잠이들기 시작했다.

그때 잠에서 깬 나는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마을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고, 사람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는 이 사막 한 가운데서 이상한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그 목소리는 이렇게 말했다.

“저기, 괜찮으면 고양이 한 마리만 그려줘....”

“뭐?”

“나한테 고양이 한 마리만..”

나는 벼락을 맞은 것 처럼 벌쩍 일어났다. 눈을 깜박이며 주위를 살펴보니 아주 신기하게 생긴 조그만 아이가 나를 꽤 심각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내 눈앞에 갑자기 나타난 그 아이에게서 시선을 떌 수 없었다. 다시 말하지만, 이곳은 사람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사막 한 가운데였다. 그리고 간신히 정신을 차려 그 아이에게 말은 건냈다.

“그런데... 너 여기서 뭘하고 있는거니?”

“고양이 한 마리만 그려줘...”

“난 그림을 그릴 줄 몰라...”

“괜찮아, 그래도 고양이 한 마리만 그려줘”

나는 고양이를 한 번도 그려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내가 어릴적 그렸던 나의 그림 1호를 그에게 보여주었다. 그런데 그 어린 친구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아니, 아니, 아니라고! 나는 2차원 평면에 시각화한 블랙홀의 시공간평면의 모습을 그려달라고 한게 아니야. 블랙홀은 아주 위험한 천체라고. 그러니 이런 그림을 필요없어. 내가 필요한 것은 고양이 한 마리일 뿐이야. 그러니 고양이 한 마리만 그려줘”

결국 나는 고양이 한 마리를 그렸다.

그는 그림을 자세히 보더니 말했다.

“아니야, 이 고양이는 2차원 적으로만 그렸잖아. 2차원 평면위에 옮긴 3차원의 고양이의 모습을 그려줘”

나는 할 수 없이 또 그림을 그렸다. 그런데 그는 나의 두 번째 그림에서도 불만이 있었나 보다. 그래서 나는 결국 또 다른 그림을 그려주었다. 하지만 그것도 다른 그림들처럼 퇴짜를 맞았다.

나는 지금 비행기 엔진 수리가 더 시급했기 때문에 인내심에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결국 다른 그림을 그려줬다.

"자, 이 상자안에 네가 원하는 고양이가 있어"

그러나 그는 조금 밝은 표정을 짓더니 다시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그림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니야, 이 상자안에 고양이가 있는지, 없는지 어떻게 알지? 아니면 죽었는지 살아있는 상태인지 그건 어떻게 알수 있는거야!, 아저씨는 나에게 존재확률이 불명확한 양자역학적 그림을 내게 그려줬어, 내가 원하는 것은 이게 아니었다구!”

그리고 나는 대답했다.

“그 안에 고양이는 존재하던지, 존재하지 않던지, 혹은 살아있던지 죽어있던지 둘중의 하나야, 고양이의 상태는 불확정적인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존재하고 있어, 적어도 나는 그 상자안에 살아있는 고양이를 그렸으니 그 상자안의 고양이는 살아있는 상태 그대로라고!”

그렇게 나는 어린 왕자를 알게 되었다.


03

그가 어디서 왔는지를 아는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에게 수없이 많은 질문들을 쏟아내는 어린 왕자는 정작 내가 묻는 말은 귀담아 듣지 않는 것 같았다. 그가 우연히 내뱉는 말들을 통해 나는 조금씩 모든것을 알게 되었다.

어린 왕자는 나와 처음 만나 그려준 그 고양이 그림을 꺼내면서 나에게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저씨는 세상이 결정적이라고 생각해? 아니면 확률적이라고 생각해?”

“운명론을 이야기하는거니?”

“아니, 아니, 내 이야기는 그런게 아니라, 아저씨가 그려준 고양이처럼 고양이가 정말 이 안에 그대로 있다고 생각하는게 정말 그런걸까라고 묻고 있는 거야”

“내가 살아있는 고양이를 상자안에 넣은 고양이를 그렸으니 당연히 고양이는 살아있는 그대로 상자에서 낮잠이나 자고있겠지?”

어린 왕자는 얼굴이 점점 붉어져 갔다.

“아저씨가 칸막이가 있는 상자의 한쪽 칸에 공을 집어 넣었다고 생각해봐”

“응”

“그리고 상자의 칸막이를 빼고, 마구 상자를 흔든 뒤에 다시 칸막이를 연결했을 때 이 공은 왼쪽 칸에 있을까? 아니면 오른쪽 깐에 있을까?

“그건 둘 중 하나에 들어있겠지?”

“아니야, 아니야, 우리는 그 공이 정확이 왼쪽에 있는지 오른쪽에 있는지는 알 수 없어. 단지 그 공이 왼쪽에 존재할 확률과 오른쪽에 존재할 확률만을 알 고 있을 뿐이야. 그래서 상자를 열기 전까지는 그 공이 어디있는지를 우리는 정확하게 결정할 수가 없어. 왼쪽에 있는 상태와, 오른쪽에 있는 상태가 동시에 존재하고 있어”

“아니 공이 둘 중에 한 곳에만 있으면 있었지 어떻게 양쪽 모두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거니?”

나는 몹시 황당해서 그에게 다시 물었다.

“이런 이야기는 왜 하는거야?”

그는 슬펴졌는지 조금 힘빠진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이야기했다.

“나는 그곳에서 왔어”


04

나는 또 굉장히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린왕자가 살던 곳에서는 소위 말하는 순간이동이 아주 자유롭고 일상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어린 왕자가 살 던 곳은 프사이(ψ)라는 곳이라고 한다.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확률적이고 내가 살고있는 세상과는 전혀 다른 직관이 적용되는 곳이라고 한다. 나는 어린왕자가 들려주는 어린왕자의 고향 이야기에 푹 빠져들었다. 그곳은 아주 매력적이고 즐거운 일이 넘쳐나는 곳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나는 그와의 대화를 통해 어린 왕자가 살던 곳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곳을 떠나게 된 이야기, 그리고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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