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lavin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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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교수와 당시 진행 중인 실험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이 실험에 관한 내용이 아닌 개별적으로 쓰고싶은 논문 주제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러자 그 교수는 어떤 주제의 논문인지는 묻지 않고 최근에 받았던 이메일 이야기를 해 주었다. 


얼마전에 이메일을 한 통 받았는데 자신이 지금까지의 물리학 이론을 뒤엎는 새로운 이론을 발견해 냈으며, 이 이론으로 기존의 물리학에 새로운 혁신을 가지고 올 것이라는 류의 내용이었다고 한다. 난 과학철학에 관한 주제의 논문을 의미했기에 이 이야기는 당황스럽고 또 불쾌하기까지 했으나 금세 잊혀졌던 일이었다.


그러다 얼마전 친구가 조심스럽게 들려준 이야기에서 잊혀졌던 그때의 그 일이 다시 떠올랐다. 기존의 물리학 이론을 뒤엎는 혁신적인 새 이론을 찾았다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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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나무에 걸려있는 어떤 대상을 보며 이것을 사과라고 인식하고, 바다 위를 떠 다니는 어떤 대상을 보며 이것을 배라고 인식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것들을 알게 된 것일까? 우리는 세상에 대한 지식을 어떻게 얻는 것일까? 무엇을 안다는 것은 대체 어떤 의미일까?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참임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어떤 사물에 대한 지식은 그 사물 자체와 어떻게 관련되어 있을까? 지식의 철학인 인식론에서는 바로 이와 같은 질문을 탐구한다. 인식론적인 질문은 과학철학에서 볼 수 있는 질문보다 폭이 넓지만, 어떤 점에서는 기본적인 질문들이다.


인식론의 최근의 연구성과에 의하면 우리의 머릿속에는 사물의 전형이 저장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배의 전형으로 돗단배가 우리의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다고 하자. 이제 어떤 사물이 배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때, 우리는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는 돗단배를 떠올린다. 그리고 그 사물이 돗단배와 얼마나 유사한지를 비교한다. 만약 우리 눈앞에 군함이 있다면, 우리는 머릿속에서 돗단배를 떠올리고, 눈앞의 군함과 돗단배가 얼마나 유사한지를 판단한다. 그리고 돗단배와 군함이 많은 부분에서 유사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 군함을 배의 한 종류라고 판단 내릴 수 있다.


물론 어떤 대상이 배인지 사과인지를 구분할 때만 전형이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사실관계를 판단 할 때도 해당되는 전형이 사용된다. 가령, ‘나는 고양이가 침대 위에 있다’는 사실을 바라보고 있다고하자. 고양이가 침대 위에 있다는 진술이 허위인지 진리인지 판단해 보라는 요구를 받는다면, 나는 그 진술과 연상되어 있는 전형사실을 어릿속에 떠올린다. 그리고 눈으로 보고 있는 목표사실이 그 전형사실과 얼마나 유사한지 판단한다.


목표사실이 전형사실과 충분히 유사하다면, 나는 고양이가 침대 위에 있다는 진술이 진리라고 판단하고, 충분히 유사하지 않으면 허위라고 판단할 것이다. 실제로 침대 위에 고양이가 아닌 강아지가 앉아 있다면, 목표사실은 전형사실과 충분히 유사하지 않기 때문에 ‘고양이가 침대 위에 있다’라는 진술은 허위라고 판단하게 된다.


전형사실은 실제세계에 있지 않다. 전형 사실은 우리의 머릿속에 있는 것이고, 이것의 진리 여부를 판가름 하는 것은 목표사실과 전형사실 사이의 유사성의 정도이다. 어떤 목표사실이 전형사싱과 그럭저럭 유사하다면 근사적으로 진리이고, 충분히 유사하지 않으면 그것은 허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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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론은 가정, 가설, 개념, 원리, 법칙 및 사실 등으로 구성되어있다. 각각이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최종적으로 진리라고 받아들여지기 전까지는 가정 또는 가설이 과학적 탐구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게된다. 과학이론에서는 한 가지 가설이 확증을 통해 확립되기 이전까지는 경쟁 가설이 존재하게 되며, 개별 과학자들은 이 중 특정 입장을 취하게 된다. 연구의 진행과정을 통해 받아들여져 통용되는 하나의 가설이 있게 될 때, 그것은 경쟁 가설을 흡수하거나 배척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들 각각의 가설들은 어떤 과정을 통해 통합되고 배척되어 하나의 과학 이론으로 만들어져 나가는 것인가? 여기에 포퍼는 과학이론이 관찰사실과 맞아 떨어질 때, 그 과학이론이 진리인 것으로 확증되었다고는 말 할 수는 없지만, 유사진리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가령, 두 개의 과학이론 a와 b가 경쟁하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때 a와 b가 세꼐에 대해 각각 10개의 주장을 하는데, a는 5개의 옳은 주장과 5개의 그른 주장을 함에 반해, b는 7개의 옳은 주장과 3개의 그른 주장을 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a보다 b가 진리에 더 가깝다고, 다시 말해 유사진리성이 더 높다고 포퍼는 주장한다. 


때문에 산소이론이 플로지스톤 이론보다 진리에 더 가깝고, 에테르가 있는 세계보단 없는 세계가, 뉴턴의 이론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진리에 더 가깝다는 결론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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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경쟁하고 있는 두 이론 모두가 근사적인 진리에 가깝다면 이 중 어느 것을 진리라고 확증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가설-연역 모델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모델에 의하면, 과학자는 과학이론, 보조가정, 발단조건에 대한 진술로부터 예측진술을 연역해낸다. 그리고 이 예측진술과 실제 세계를 비교한다.


만일 예측진술이 실제 세계와 일치하면 과학이론은 확증될 것이고, 일치하지 않으면 과학이론은 반증되는 것이다. 따라서 과학자가 예측을 한다는 것은 발단조건에 대한 진술로부터 예측진술로 추리한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어떤 이론이 완전한 진리가 아닌 근사적인 진리일때, 이 과학이론은 어떨 때는 옳은 예측진술로 목적지에 도달하게 해주고, 어떨 때는 그렇지 못하는 것일까?


과학자가 과학이론의 옳은 부분을 이용하여 추리를 하면 옳은 예측을 하지만, 그른 부분을 이용하면 그른 예측을 한다. 어떤 과확이론의 일부가 그르다는 것은 목표사실의 일부와 전형사실의 일부가 상이하다는 것을 뜻한다. 즉, 추리에 이용된 목표사실의 일부와 전형사실의 일부가 상이하기 때문에 과학자는 그른 예측을 할 것이고, 추리에 사용된 목표사실의 일부와 전형사실의 일부가 유사하다면 과학자는 옳은 예측을 할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뉴튼과 스미스는 과학이론의 예측력에 중요한 단서를 제시한다.


‘유사진리성이 증가하면 관찰적 성공도 증가해야한다.’


뉴턴의 만류인력이 수성의 근일점 이동을 설명하지 못했던 것은 목표사실과 상이한 전형사실을 사용한 결과였고,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은 이 전형사실을 보다 견고하게 만들어준 역할을 했다. 때문에 최근 공표된 힉스입자의 발견은 표준모형이 가지는 전형사실이 목표사실과 일치했음을 의미하는 중요한 발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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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라고 주장하지만 과학적 방법을 따르지 않거나 적절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여 검증이 불가능한 것을 ‘유사과학’이라고 한다. 유사과학은 신비롭고 놀라운 사실을 주장하여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지만, 종종 이윤창출의 도구로 활용되어 개인에게 경제적 솔실을 입히거나 건강상의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한때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았었던 육각수나 산소 소주와 같은 것들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육각수의 경우 건강한 단백질 세포 주위에는 주로 육각수가 둘러싸여 있는데 반해, 발암 단백질 세포 주위에는 오각수가 많다는 진술로부터, 분자구조가 육각형이 물이 암을 예방한다는 논증으로 이어진 경우다. 이 논증은 논리성이 미약하며, 이 전형사실로부터 어떠한 새로운 예측사실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산소 소주 역시 마찬가지다. 산소 포화도가 높은 소주가 숙취에 도움이 된다는 이 전형사실은 숙취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예측사실이 목표사실과의 일치여부가 모호하거나 허위진술에 가깝다.


지금까지의 과학이론의 발달 역사. 특히 물리학의 발달 역사는 뉴튼과 스미스의 예측력에 대한 단서에 맞춰 유사진리성을 더욱 높여나가는 방향으로 이어져왔다. 힉스입자가 발견된 현재에도 역시 물리학에서는 계층성의 문제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아있다. 그러나 이 풀리지 않는 목표사실인 계층성의 문제로 인해 물리학 전체의 전형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지금까지의 모든 목표사실을 설명함과 동시에 새로운 예측사실을 이끌어 내야만 할 것이다.



그레고리 N. 데리, 그렇다면 과학이란 무엇인가, 에코 라브르, 2011, 337-352

이채원, 박성철, 과학적 이슈에 관한 보도의 유사과학적 특성에 관한 연구, 한국언론학회, 5, 8-10 (2011)

우정규, 과학 이론에서 가정의 역할과 변화, 인문과학연구 제26집, 2010.9, 367-400

박승배, 근사적 진리에 대한 전형적 정의, 철학논총 제62집, 2010.10, 129-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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