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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오늘도 서점에서...
    잡설 2022. 4. 30.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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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쳤다. 책을 샀다.”

     

    지나가던 길에 서점에 들리거나, 온라인 서점의 카테고리를 배회하다 번씩 내뱉는 소리다. 분명 읽으려고 책상위에 쌓아둔 책이 이만큼이나 있고, 주문하려고 장바구니에 담아둔 책이 저만큼이나 있는데, 읽을지 안읽을지도 모를 책을 한아름 사고 만다. 

     

    책도 하나의 물건이기 때문에, 나의 이런 행동은 프로이트 식으로 해석하면 욕망에 대한 애착으로 있다. 나는 항문기에 문제가 있는, 배설물을 귀중히 여겨 없애버리는 것을 아까워하는 변비 환자다. 이것은 벤야민이 얘기하는 주물주의와도 맥이 닿는다. 책이라는 상품이, 내가 내보내지 못하는 것을 대신하는 것처럼 여겨 욕망의 대리만족 관계를 충족시켜 주는 것이다. 책에서 지혜를 습득하는 것보다, 책이라는 물건을 소유하는데 방점이 찍혀 있다면, 나와 사물 사이의 관계 맺기는, 나와 욕망과의 관계 맺기와 같다.

     

    읽어라!”

     

    책에 대한 집착이 시작된 시점은 중학교 국어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늘의 교과서 읽기 출석번호에 당첨되어 교과서를 소리에서 읽기 시작했을 , 한글로 적혀 있는 문장들을 힘들게 더듬거리며 읽어 내려갔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리고 지옥같던 국어시간이 끝나자, 옆에 앉아 있던 친구가 책 읽으라며 타박을 주었다. 친구는 무협지와 판타지 소설을 좋아하여 매일같이 책을 읽고 있었으니 그럴만도 했다. 어느날의 국어시간에는, 자기가 읽은 중에 추천하는 책들을 적어 보라는 선생님의 말에 내가 적어 있는 책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달기도 했다. 가장 뇌리에 박힌 사건은, 독후감 숙제를 받을 마다 원고지에 글자도 쓰지 못한 시간 동안 연필만 쥐고 가만히 앉아 있었던 기억이다.

     

    뒤로 나는 서점으로 달려가 매달 잡지를 읽고, 조간신문을 매일 사서 정독하며, 책을 손에 들고 다니기 시작했다. 다르게 얘기하면 나에게 독서는 애도에 가까운 것이 되고 만것이다. 죽어 있는 나의 지성과 텅빈 나의 두뇌에 대한 어떤 것의. 왜냐하면 이런 수고를 통해 백지 위를 보물로 가득 채워 넣을 있을지도 모른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자유롭고 싶다…”

     

    서점에 가면 온라인 서점에서는 느낄 없는 어떤 독특한 느낌이 있다. 책이 가득찬 공간,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 많은 생각이 모이는 공간을 만끽할 있어서다. 검색대에서 원하는 책만 찾가기 보다는, 신간 진열대를 훑어보고, 베스트 셀러 목록을 살펴보고, 문학에서 정치, 사회, 철학, 역사, 과학, 여행, 음악, 미술, 요리, 만화, 라이트노벨, 참고서, 학습지, 자기개발서, 외국 문학, 원서, 전공서 구역까지 돌아보면, 마치 보물찾기를 하는 듯한 재미도 느낄 있다.

     

    서점이라는 공간과 책이라는 매개체는 그래서 훌륭한 도피처가 된다. 우리는 행복과 자유를 잘 보장받고 있는 같지만, 우리의 자아와 주체는 사회속의 부속물이 되어 얽기섥기 꿰매어져 있는 상처 덩어리다. 그래서 우리는 이따금 아직 빼앗기지 않은 새로운 장소를 찾아 나선다. 그곳은 문학의 세계일수도 있고, 철학의 세계일 수도, 과학의 세계, 어쩌면 숫자의 세계일지도 모른다. 때문에 나의 책에 대한 집착은, 이제 자유롭고 싶은, 지식의 소유보다는 잠시라도 탈피 하고싶은 꿈의 대리만족 공간으로 기능한다. 심각한 변비 환자인 것이다.

     

    오늘도 이렇게 몇 권의 책을 손에 쥐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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