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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플라톤의 각주로써의 과학
    과학 2012. 3. 2.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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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위자 과잉 감지 장치


    주변 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설명하는 데에는 두 가지의 방법이 있다. 가령,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땅으로 떨어졌다면 사과는 왜 땅으로 떨어졌는가? 모른 현상에는 이유가 있다. 사과가 사과나무에서 땅으로 떨어진 데에는 나뭇가지에 바람이 불어 떨어졌을 수도 있고, 또는 사과가 익어 자연스럽게 떨어졌을 수도 있다. 그리고 누군가가 사과를 사과나무에서 떨어지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


    후자의 경우와 같이, 누군가에 의해 원인이 발생하고 그 원인에 의해 현재의 결과로 이어졌다라는 가설은 자연의 인과가 아닌 자신의 믿음과 욕망을 토대로 어느정도로 이성적인 방식에 따라 행위하는 행위자[1] 에 의해 사건을 설명하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즉, 사과가 왜 사과나무에서 떨어졌는지는 어떤 행위자가 그 사과를 먹고 싶어 한 그의 욕망 때문에 사과를 떨어뜨리게 했을 것이다 라는 행위자에 대한 인과적 설명으로 대치될 수 있다.


    이러한 사고가 가능 한 것은 우리가 행위자를 과민하게 감지하는 쪽으로 진화했기 때문이라고 바렛은 주장한다. 우리는 가족, 친구, 적, 포식자, 먹이 등 다수의 행위자가 섞여 있는 환경에서 진화해 왔다. 다른 행위자를 감지하고 이해하는 일은 인류가 생존하고 번성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행위자에 과민할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방식으로 진화해 왔다는 것이다. [2]


    가령, 아무도 없는 숲 속에서 낙엽이 부스럭 거리는 소리를 듣는다면 우리는 재빨리 주변에 누간가가 없는지를 살펴본다. 대부분의 경우 낙엽의 부스럭 거리는데 관여한 행위자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대부분 귀신, 유령 또는 그러한 행위자의 존재를 의심하거나 그러한 존재를 가정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러한 행동이 생존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만일 인간이, 주변의 부스럭 거림에 행위자의 존재에 대한 의심으로 자리를 피하는 것이 아닌, 자연의 인과에 따른 현상으로만 이해했다면, 미지의 행위자가 실재로 존재하건 존재하지 않건 관계없이 생존의 가능성은 그렇지 않을 때에 비해 낮아 질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진화 과정에서 이런 식으로 행위자를 감지하는 쪽으로 유전적 진화를 이룩했다. [3]


    때문에 인간은 실제로 아무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저기 누군가가 있다’고 믿기 쉬운 속성과 성향을 지니게 되었다.


    만물은 신들로 가득차 있다


    왜 어느날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할까? 왜 눈이 녹아 없어질까? 왜 태양은 하늘 높이 떠 있는가? 계절 변화는 왜 생기는 것인가? 초기 서양철학의 공통적 관심은 어떻게 자연의 내부에서 끊임없이 변화가 일어나는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자연의 변화에는 반드시 그 이면에 자연의 변화를 일으키는 원질이 존재할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무엇이 이러한 변화를 초래했는가?


    겨울은 이 나라를 얼음 주먹으로 꽉 움켜쥐었어요. 사악한 마리아트가 아름다운 시키타 공주님을 추운 지하 감옥으로 가뒤 버렸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어느날 아침 용감한 브라바토 왕자님이 와서 공주님을 구해 주었어요. 시키타 공주님은 매우 기뻐하며, 지하 감옥에서 지은 노래를 부르며 초원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했어요. 그러자 땅과 나무들은 너무 감동한 나머지 모든 눈이 녹아 눈물 바다를 이루게 되었지요. 그러나 태양이 하늘에서 비춰 주었기에 눈물은 곧 말랐답니다. 새들은 시키타 공주님의 노래를 짜라 불렀지요. 그리고 아름다운 시키타 공주님이 금발 머리를 풀어 내리자, 몇 가닥의 곱슬머리가 땅에 떨어져 이내 들녘의 백합이 되었답니다.

    ....  [4]



    이데아


    엠페도클레스와 데모크리토스는 모든 자연 형상이 변하기는 하지만 결코 변하지 않는 것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플라톤 역시 이 문제를 탐구하였다. 플라톤은 우리가 자연에서 만지고 느낄 수 있는 만물은 모두 변한다고 생각했으므로 그에 따르면, 감각 세계에 속하는 만물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소멸하는 물질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결코 분해할 수 없는 원소 따위는 없다고 보았다. 대신 이와 동시에 만물은 영원히 변치않는 시간적 본체로 이루어져있다고 보았다.


    달리는 말의 형상은 우리의 감각 세계를 통해 감각된다. 말의 형상은 한 마리 한 마리가 모두 다르며, 모두 다른 특질과 생김세를 가지고 있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늙고 병들며 나중에는 죽는다. 그러나 우리는 이들을 모두 같은 말로써 인식한다. 말의 본체는 변하지 않기 때문에, 말은 말로써 인식될 수 있다. 

    말의 본체는 감각 세계로부터 감각된 형상으로써 존재하는 물리적 실체가 아니라 그 위 혹은 그 뒤에 말의 형상을 형성하는 근원적 본체 즉, 이데아가 존재함을 이야기한다. 따라서 플라톤은 모든 감각 세계로부터 나타나는 자연 현상은 감각에 의한 오로지 불확실한 의견 밖에 가질 수 없는, 이데아의 그림자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영원불멸의 이데아의 존재, 형상의 원질로써 존재하는 불멸의 본체에 대한 생각은 인격신의 존재를 긍정하며 종교적 권위에 합리성을 부여하기도 했기만,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이성적 판단과 인간의 이성에 대한 절대적인 보편 타당성을 부여했다. 가령, 감각으로부터 인식된 형상으로는 그것으로부터 오직 불확실한 의견만을 가질 수 밖에 없는데 비해, 우리의 이성을 통해 인식한 것에 대해서는 확실한 지식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삼각형의 내각이 180도라는 명제는 감각적으로 인식되지 않으며, 형상으로써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영원보편적 진리이다. 따라서 이데아는 보편 타당하다.


    이데아에 대한 탐구


    이데아의 개념은 자연이 자연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자연의 형상를 구성하는 본체의 존재를 긍정한다. 플라톤의 이데아 개념은 중세로 넘어오면서 무에서 세계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모습으로 전환된다. 다시 말해, 하느님이 세계를 창조하시고, 이데아란 하느님의 생각안에 존재하는 것으로 환원된다.


    기독교의 세계관으로 오게되면 이제 신과 인간과 자연은 완전히 계층적으로 분리된다. 신은 더 이상 만물에 깃든 초월자로서 자연에 내재하는 존재가 아니다. 자연은 신의 창조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인간 또한 자연의 일부가 아닌 것으로 인식된다. 인간과 자연은 신에 의하여 따로 창조된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자연과 동질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을 초월하며, 자연 위에 군림하면서 신의 소명을 받아 자연을 지배하는 자가 된다. [5]


    때문에 자연은 자연이라는 형상을 부여한 본체의 근원을 밝히는 탐구의 대상이 되었으며, 인간은 이성의 이데아적 타당성을 이용해 자연의 본체를 탐구할 수 있는 것을 긍정한다. 과학이 서양문명에서 발현될 수 있었던 데에는 이러한 이데아라는 이성적 행위자의 존재를 가정했기 떄문이다.


    따라서 자연의 탐구과정으로부터 유도된 일반 법칙과 이론의 개념은 인격적 행위자인 신의 마음 속에 있는 생각을 읽어내고 탐구하려는 시도와 같다. 근대과학의 환원주의는 보다 본질적인 것에 대한 물음과 근원이라는 이데아의 본체에 대한 이해로 볼 수 있다.


    종교적 지위


    과학으로 이성적 도구를 이용한 이론적 접근은, 인간이 상상해 낼 수있는 다른 법칙들과 수치들로 이루어진 다른 우주의 존재를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다시 말해, 창조 행위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행위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을 역설한다. [6]


    전통적 신학과 종교는 과학의 이성적 도구에 의해 합리성의 도마위에 올라가기 시작한다. 종교의 교리, 언명, 신의 존재는 논리적인 타당함 보다는 감정적이었으며 감성 의존적이었다. 때문에 종교로는 형신논리의 추론과 심사숙고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확신으로부터 종교적 권위는 상실되어 갔다. 대신 그 권위는 과학으로 옳겨갔다.


    과학은 이성적 방법을 통해 이데아의 근원 즉, 신의 마음을 읽기 위한 시도로부터, 과거 종교의 지위를 오늘날까지 과학이 지배하고 있다.


    [1] 스티븐 로, 왜 똑똑한 사람들이 헛소리를 믿게 될까. 와이즈베리, 2011, 31
    [2] Ibid, 32
    [3] Ibid, 32
    [4] 요슈타인 가이더, 소피의 세계, 현암사, 1994, 46
    [5] 김용옥, 중용 인간의 맛, 통나무, 2011, 77-78
    [6] 에드워드 윌슨, 통섭, 사이언스북스,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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