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lavinka


초등학생 시절의 어느 저녁, 함께 강변을 따라 걷던 친구가 밤 하늘을 가리키며 내게 별자리를 가르쳐 주었다. 희미하게 빛나고 있던 도심 속의 별 빛을 손으로 이어나가며 백조자리와 독수리자리를 가르쳐 주던 친구의 말을 들은 나는, 다음날이 되자 곧장 부모님을 졸라 서점으로 달려나갔던 기억이 있다. 그 어린 시절의 작은 질투심과 호기심이 지금 나를 과학자의 길로 걷게 만든 것을 아닐까 생각하니 문득, 부끄러움과 함께 쓴 웃음이 지어진다.


‘8천 엔’ 


방대한 양의 수업의 틈 속에서 한 달 동안 실험실에서 노역한 뒤, 처음 통장에 입금된 이 돈의 액수를 본 나는 그저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그리곤 생각했다. 어린 시절 꿈꾸었던 과학에 대한 이상나 동경, 꿈이란 것이 이런 것이었나? 과학자가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과학자의 삶을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과학자의 삶이란 정말 인간의 삶으로써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지난해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나카무라 슈지 교수의 이야기가 나의 눈을 다시 꿈에서 현실로 되돌려주었다. 20세기 안에는 개발이 불가능 할 것이라 여겨졌던 청색 LED 개발의 댓가로 그가 받은 보수는 특허 등록과 출원시에 받은 2만 엔이 고작이었다. 당시 그가 근무했던 니치아 화학공업은 청색 LED 제작 기술을 독점하여 90년대 초 약 200억 엔의 매출을 올리며 급성장 가도를 달렸지만, 성장의 발판이 되었던 나카무라 교수에게 돌아온 다른 보상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그가 미국으로 자리를 옮길 때 회사는 이 발명을 ‘직무 발명’이라 주장하며, 니치아에서 개발한 기술을 외부에서 사용하지 않는다는 조건의 서약서에 서명할 것을 요구했다. [1]


18개의 노벨상 수상이라는 기록에 빛나는 일본 과학의 화려한 업적만 보면, 오늘날 일본의 과학적 성과가 마치 과학자와 기술자에 대한 최고의 대우와 보상 그리고 이들을 든든히 지원하는 정부와 사회의 끊임 없는 노력이 뒷받침 된 결과인 것 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그리 아름답지 만은 못하다.


과학자와 기술자에 대한 낮은 대우와 성과에 대한 낮은 보상, 매해 17,000명씩 만들어지는 박사들, 경쟁적 연구환경으로부터 양산되는 비정규직, 4.8%의 정규직 전환율, 정부과 대중의 과학에 대한 낮은 인식, 입시를 위한 주입식 과학교육, 이공계 기피 현상, 문제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정책과 시스템 등.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 너무나 친숙하기만 하다.



위기에 처한 시스템


2011년 네이쳐에 실린 ‘The PhD Factory’ 에서 일본의 박사학위 취득자들이 처한 상황을 ‘단연 최악’이라고 묘사한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일본은 1980년대 후반부터 자국의 대학원생의 비율이 미국과 유럽에 비해 낮다는 이유로 대학원 확충 정책에 공을 들이기 시작했다. 정부는 1990년대부터 젊은 연구자들의 양성을 위해 대학 정원을 늘렸고, 당시 1만 명이었던 박사 연구원의 수를 세 배 늘리는 정책을 실시하며, 박사후 연구자들의 수를 단계적으로 늘려나갔다. [2]


정책의 결과 일본에서 대학과 대학원으로 진학하는 학생의 수는 1990년 130만명에서 2013년 255만명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하였고, 이중 대학원에 진학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한 학생들의 수는 1989년 1만 명에서 2003년 1만 8천명으로 최고 수치를 기록 한 후, 조금씩 감소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렇게 양상된 박사 학위 소지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는 1996년 ‘박사 후 연구원 1만 명 지원 계획’의 일환으로 약 495억 엔의 예산을 지출했고, 2009년엔 이들의 고용 지원 대책의 일환으로 200만 엔의 예산을 추가 지출하였다. 그러나 수요에 비해 과도하게 공급된 박사의 수는 정부의 예산 지원으로 쉽게 해결 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박사학위 과정을 수료한 후 직장을 가지지 못한 무직자와 비상근 인시직의 수가 1999년대부터 2013년까지 약 25%에 달한다는 것이 그 반증이다. 나머지 취업에 성공한 75%의 박사들의 상황 역시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박사학위를 받은 후 학자의 길을 걷기 위해 학계에 들어간 46%의 박사들 가운데 70%가 박사후 연구과정에 있었고, 나머지는 대학의 임시직 교원이나 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학계를 포기하고 민간 기업으로 취업한 박사들은 38%에 이르며, 이들 중 상당수가 박사후 연구과정과 무관한 연구 개발직으로 근무하고 있다.


문제는 박사학위 소지자의 취업 여부가 아닌 그들에 대한 대우이다.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시간 강사나 임시직 연구원으로 활동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4~5년 정도의 박사후 연구원 생활을 하게된다. 박사후 연구원은 흔히 경력을 쌓는 과정이나 취직할 때까지의 임시 거처로 생각하지만, 이들이 박사후 연구과정을 끝내고 정규직으로 채용되는 비율은 4.8%로 극히 낮다. 대부분 같은 기관에서 박사후 과정을 연장하거나, 임시직으로 고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교수로 채용되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이다.



박사후 연구 과정을 끝낸 이들이 학계를 떠나 민간 기업으로 취업하고자 할 때는 그들의 나이와 기업의 인식의 장벽에 부딛친다. 박사후 연구원들의 77%가 30대이고 이들이 박사후 연구과정을 끝내고 나면 대부분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의 나이가 된다는 점이 큰 걸림돌로 작용한다. 일본의 폐쇄적인 기업 분위기 속에서 이 나이에 일반 회사에 취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민간 기업들은 젊은 미혼의 대학 졸업자들을 선호하며, 박사학위 소지자들은 전공분야 이외의 분야에선 무지하고, 독선적이며, 기업 활동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대처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들어 박사 학위자들의 채용을 꺼리는 분위기가 여전히 남아있다.



일본 과학의 토양


일본이 물리학을 체계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1868년 당시, 도쿄대학교 의학부에서 25년간 강의를 진행했던 폰 벨츠는 일본인들이 서양 과학을 받아 들이는 태도를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일본인들은 과학을 마치 하나의 기계와 같이 여겨서 일정한 때에 주어진 일정한 일을 할 수 있고,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옮겨서 작동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중대한 착각이다. 서구의 과학 체계는 결코 기계가 아니며, 오히려 특정한 기후와 토양이 필요한 하나의 생명체라 할 수 있다.


(중략)


서구의 국가들은 일본인 당신들에게 많은 선생들을 보내 서구의 과학 사상을 전달해주려고 노력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흔히 왜곡되어왔다. 서구에서 온 선생들은 과학이라는 나무를 일본이라는 토양에 심고자 했던데 반해서 일본인들은 이들을 그 나무의 열매를 팔기 위해서 온 장사꾼으로 보았던 것이다. [3]


19세기 서양 열강의 무기와 기술의 우월함, 그리고 그것이 주는 위협을 통감한 동아시아의 지식인들은 전통적인 가치와 문화는 근본적으로 유지한 채로 나라는 부유하고 강하게 하는 수단으로 서양의 과학기술을 이용하려는 경향이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동양의 정신과 가치, 문화는 그대로 계승한 채 서양으로부터 실용적이고 물질적인 도구인 과학기술을 받아들이자는 동도서기론이 나타난 것이다. [4]


과학 지식과 그 연구는, 지난 수 천 년 간 자연의 이치와 물질의 리理에 대해 연구하던 학자들의 임무와 부합하는 듯 보였고, 그 성질이 고대 중국 고전이나 고대 성현의 말씀을 떠올리게 만들기 충분한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와 정반대되는 현상이 벌어졌다.


당시 일본인에게 있어 서양의 과학은, 폰 벨츠의 말 처럼 근대화에 필요한 핵심 열쇠이자 도구로써 받아들여질 뿐이었다. 그들에게 동양적이고 전통적은 것은 마땅히 타파해야한 낡은 것으로 간주되었고, 서구적인 것이야 말로 미래를 보장하는 것으로 여긴 것이다.


이 같은 기조는 1차 대전을 기점으로 역전 되었다. 1차 대전으로부터 괄목할 만한 경제적, 정치적 성장을 이룩함과 동시에, 유카와 히데키와 같은 일본 물리학자들의 활약 소식이 전해지면서, 일본은 더 이상 서구를 쫒아 가기만 하는 것이 아닌, 경쟁에서 앞서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시대의 조류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기조는 과학자와 과학 연구소의 양적 팽장을 주도하며, 산업계에서 요구하던 고급 인력을 빠른 속도로 확보해 나갔다. [5]


이 같은 사회적 기조와 유카와의 노벨상을 계기로 일본 과학계에 등장한 독자적인 연구 그룹, 학벌과 지역주의를 넘어서는 협동, 그리고 숲 보다는 나무에 관한 장기적인 연구가 밑거름이 되어 오늘날 일본 과학의 토양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미래


이렇게 만들어진 과학의 토양 위에 계속해서 새로운 나무가 자랄 수 있을까? 지금의 시스템 속에서 심겨진 나무는 미래에 새로운 열매를 맺을 원동력이 있을까? 분명한 점은 지금의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다면 지금의 비옥한 토양도, 나무도 말라 버릴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여기엔 수요를 초과하는 과도한 박사의 양산과 과학자에 대한 낮은 대우와 보상, 과학의 자본화와 거대화, 그리고 이공계 기피 현상 등이 주요 변인이 될 것이다.

 


20세기 후반부터 등장한 과학의 특징은 거대화와 자본화이다. 이제 과학과 기술의 혁명은 산업혁명 시절 처럼 몇 개의 주요한 발명이나 특수한 혁신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개인적 재능을 계획적인 과학연구로 대체시킴으로써, 생산 양식을 산업 생산적 기능 혹은 일상적 기능으로 얼마나 잘 통합 시킬 수 있는가의 역량으로 전환되었다. [6] 막대한 수의 과학자와 자본의 집중, 프로젝트의 거대화 그리고 연구 성과의 독점 등의 결과가 생명공학과 신약개발 분야의 상업적 성공을 이끌어 내는 모습은, 각국의 정부와 기업들을 설래게 하기 충분했다. 일본 역시 여기에 기댄 바가 크다.


이제 정부의 지원을 받는 과학연구는,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거나 자유로운 순수 연구이기 쉽지 않다. 거대가속기 건설과 대형 천체 망원경 건설 등과 같은 오늘날의 대형 과학 프로젝트들은 정부의 지원 없이는 효과적으로 기능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모든 자본주의 국가들이 과학을 지원하고 장려하는 이유는, 지식의 진보라는 이상적인 견지에서가 아니라, 무언가 유용한 것을 생산 할 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나 노벨상 수상과 같은 국위선양을 위한 것이 대부분이다. [7]


때문에 과학 연구에 대한 지원은 단기 성과 위주의 투자에 집중하게 되었고, 이러한 단기 프로젝트가 주류를 이루면서 이 연구에 참여하는 과학자들의 고용 수준 역시 임시직에 머무를 수 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가 만들어 지게 되었다.


이제 이 시스템을 어떻게 고쳐나갈 것인가? 일본의 상황이 우려스러운 이유는 이 질문에 대답하고 그것을 고쳐나가는 주체에 과학자 자신들이 빠져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이과와 문과로 구분되는 교육 시스템이 이들의 사회적 역할을 반강제적으로 분리시켜 놓은 결과다.




문과와 이과를 구분하는 현재의 교육 체계와 입시를 위한 주입식 과학 교육 역시 미래를 불투명하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다. 흔히 문과는 수학과 과학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거나 주입식 과학 교육과정에서 탈락한 학생들이 선택하는 곳이라고 생각되고, 이과는 그 반대로 생각되는 경향이 있다. 학문을 두 갈래로 구분하면서 생긴 소통의 장벽은 과학에 대한 몰이해를 낳았고, 그 결과 과학에 대해 무지하거나 도구적 관점으로 과학을 이해하는 관료들에 의해 과학이 좌우되는 상황을 맞이하였다.


이러한 교육 시스템 속에서도 이과를 선택하여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실험실에서의 생활이다.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과학을 연구하고 학습 할 것을 기대한 꿈은 대학 생활과 함께 무너져 내리기 쉽다. 2012년 동경대학교에서 조사한 학생 생활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공계 학생이 인문계 학생에 비해 졸업 논문 작성을 위한 연구 및 실험 시간이 두 배 이상 많은 것으로 조사된 점이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개인적인 생활을 포기해야하고,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서 박사학위를 손에 쥐어도 비정규직 형태의 박사후 연구과정을 지속해야 한다. 학계에 남아 교수직을 얻을 가능성은 고사하고, 정규직 연구원의 자리를 얻를 가능성 마저 희박하다. 이마저도 남녀의 벽에 가로 막히게 되고, 학계를 포기하고 민간기업으로 눈길을 돌리 때 즈음이면 30대 후반의 나이만 남아있게 된다. 박사후 연구과정을 포기하고 기업에 취업을 하더라도 기업 내의 연구 성과에 대한 충분한 보상은 기대하기 힘들다. 이 같은 상황의 지속은 이공계 기피와 해외로의 두뇌 유출이라는 그림자를 더욱 짙게 만든다.



한국의 미래


2013년,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국내의 박사학위 취득자 수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인문계와 이공계 모두를 합한 박사 학위자의 수가 2000년 6,141명에서 2012년 12,243명으로 10년 사이에 약 2배가량 늘어난 것으로 조사되었다. 그리고 자연과학계열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사람들 중 상용직에 취업한 비율은 69.1%, 시간강사와 같은 임시직 및 일용직은 22.9%, 비임금 근로자는 7.9% 인것으로 조사되었고, 상용직 중 74.5%가 박사후 연구과정인 것으로 나타났다. [8]


증가하는 박사의 수와 고용의 불안정성, 이공계에 대한 기피, 개인의 희생, 낮은 보상과 사회적 대우, 기초과학에 대한 천시, 입시만을 위한 교육 시스템, 중소기업이 자라지 않는 대기업 위주의 기업 구조, OECD 최고의 자살률, 고학력 백수 300만명, 일본의 절반도 안되는 법정 최저 시급, 극심한 학력 차별, 안전판 없는 초경쟁사회라는 단어들로 정리되는 한국 사회의 단면 속에서, 정부는 여전히 과학자에게 애국심을 호소하거나, 해외에서 돌아오지 않는 과학자들 개인을 질타하며, 노벨상의 목놓아 염원하고 있다.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1] 마이니치 신문 환경과학부, 이계백서, 고담사, 2006, 38-39

[2] 네이쳐, 학위 공장, Vol. 472, 21 April, 276 (2011)

[3] 김동원, 일본 이론물리학자 그룹의 등장, 계간 과학사상, 1994, 132

[4] 이문규, 동아시아 역사 속의 한국 과학 다시 쓰기, 역사비평 2007 여름호 (통권 79호), 2007.5, 171-193

[5] 김동원, 일본 이론물리학자 그룹의 등장, 계간 과학사상, 1994, 139

[6] 에릭 홉스봄, 극단의 시대 : 20세기의 역사, 문학과 지성사, 1990, 715

[7] Ibid, 760-762

[8]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박사조사 (2013), 115-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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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1.14 12:46 신고 -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좋은 글입니다. 하나하나 와닿는군요. 우리나라에서 자신의 아들, 딸들에게 과학자라는 직업을 자신있게 권유할 날이 오기는 올까요?

  2. 2015.01.15 20:54 신고 -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본은 우리의 거울이니, 조만간 우리의 모습이 될 수도 있겠군요. 한국의 시스템 대부분은 일본식민지 시절의 영향과 해방후에도 일본을 벤치마킹하였으니 10년뒤 우리도 저렇게 될 것 같습니다. 아니 이미 저렇게 되어가는 것 같기도 합니다.

  3. 공대생
    2015.10.22 18:35 신고 -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왜 공대가 의대보다 천대받는지 깨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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