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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의 무결점성 지키기...과학 2014. 12. 30. 11:36반응형
<이 글은 Nature 18/25 December 2014 Vol 516, 321-323에 실린 ‘Defend the integrity of physics’를 번역한 글입니다.>
올해 물리학계에서 대단히 우려스러운 논쟁이 벌어졌다. 물리학의 기초이론을 관측된 우주에 적용하는 어려움에 직면한 몇몇 이론 물리학자들이, 그들의 이론의 완성하기 위해 이론을 검증하는 방법의 변화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론이 충분히 우아하고 자연을 잘 설명할 수만 있으면, 실험적인 검증은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주장은 실험적 검증에 의한 과학 지식의 확립이라는 과학철학적 전통과의 단절을 의미했다.
과학철학자 칼 포퍼의 말처럼, ‘이론은 반증가능해야 한다.’
‘우아한 것은 간결 할 것이다’라는 주장의 선두엔 끈이론이 있다. 왜냐하면, 끈이론은 우리가 절대 관측할 수 없는 여분의 차원에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진실이 숨어 있을 것이라고 믿으며, 자연계의 네 가지 힘인 중력, 전자기력, 강력, 약력을 통합할 수 있는 ‘가장 그럴듯한 이론이다’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부 천체물리학자들도 양자 수준의 다세계가설과 빅뱅 이전의 개념과 같이 실험적 검증이 불가능한 이론을 찾아 나선다. 이런 검증 불가능한 가설들은 입자물리학의 표준모형이나 암흑 물질 그리고 암흑 에너지와 같이, 실제 우주와 직접적으로 관계되고, 관측을 통해 검증할 수 있는 것들과는 매우 다르다. 이제 이론 물리학은 물리학이나 수학도 철학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의 떠돌이가 될 위험에 처해있는 것으로 보인다.
검증가능성에 대한 문제 제기는 지난 10여 년 간 대중서와 기사들을 통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올해 3월, 이론물리학자인 폴 슈테인하트는 인플레이션 우주론과 관련해, 이 이론은 모든 관측 결과를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너무 유연하기 때문에 더 이상 과학적인 이론이라고 볼 수 없다는 내용의 글을 이 저널에 실었었다.
이론 물리학자이자 철학자인 리처드 다위드와 천체물리학자인 숀 캐롤은 기초물리학에 대한 검증가능한 요구조건을 약화시켰던 철학적 사례를 들며, 그들의 논평에 반박했다.
우리는 다위드와 캐롤 그리고 다른 물리학자들에 의해 이 같은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되었다는 사실에 박수를 보내지만, 그들이 요구하고 있는 과감한 조치는 조심스러운 논의를 필요로 한다.
물리학의 마음과 영혼에 대한 이 싸움은 마치 기후 변화나 진화론과 같은 주제들처럼 과학적 결과가 몇몇 정치가와 종교 근본주의자들에 의해 의문시되어질 때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과학에 대한 대중의 신뢰와 기초 물리학의 본질에 대한 잠재적인 손상은 과학과 철학 사이의 깊은 대화가 포함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끈 이론
끈이론은 고차원 안에 존재하는 아주 작은 끈과 막들이 물리적 현상의 기초가 되는 방법을 제안한다. 끈이론에서 말하는 고차원은, 미래의 어떤 입자 가속기를 통해서도 접근 불가능할 정도의 작은 공간에 매우 단단히 감겨있다.
끈이론의 어떤 측면들은 원칙적으로 실험에 의해 검증될 수 있다. 가령, 끈이론의 중심이 되는 가정 중 하나인 페르미온과 보존 사이의 대칭성으로부터, 아직 관측되지는 않았지만 제한적인 에너지 범위 내에서 그에 대응되는 쌍입자들의 존재를 예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쌍입자들은 CERN의 LHC에서도 여전히 발견되어지지 않고 있다.
만일, 이러한 쌍입자들이 계속해서 탐지되지 않는다면, 그때 우리는 그것이 존재하는지 조차도 알지 못 할 것이다. 끈이론의 지지자들은 언제나 이번에 관측되지 않은 것은 입자의 질량이 조사된 것에 비해 훨씬 크기 때문이라고 주장힌다. 다위드는 끈이론의 진실이 연구 과정에 대한 철학적이고 확률적인 변수를 통해 인정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다위드는 베이즈 정리의 두 변수인, 이론이 ‘참’이거나 ‘참일 가능성’을 동일하게 취급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가정은 희망 사항에 가깝다. 왜냐하면 ‘참일 가능성’의 확률을 ‘지금까지 누구도 더 나은 대체 이론을 찾지 못했’고 ‘그런 이론들이 대체로 과거에 살아남았다’는 가정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끈이론이 타당성을 확보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실험은 정상 우주론에서 부터 약한 상호작용과 강한 상호작용을 통합하고자 했던 SU(5) 대통일 이론들처럼 아름답고 간결한 많은 이론들이 틀렸음을 증명했다. 기존의 물리학적 지식들이 무시되거나 검증 불가능한 이론적 아이디어들은 포퍼와 20세기 철학자들에 의해 전복될 것이다.
우리는 저 이론들이 대체 가능한 이론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는 못한다. 어쩌면 대체 가능한 이론을 아직 찾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면, 전제가 틀렸을 수도 있을 것이다. 만일, 시공간의 굴절 효과를 만드는 중력이 강력과 약력 그리고 전지기력의 만드는 입자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라면, 이들 네 가지 힘과 기본 입자들을 포함하는 이론은 필요치 않을 것이다. 그리고 끈이론과 그 파생 이론들은 우리의 우주 질서를 잘 규명하지 못할 것이다.
끈이론은 단지 그와 같은 통일 이론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에 불과한 것 처럼 보인다.
다중 우주론
다중 우주론은 우주의 미세구조상수가 어떻게 생명이 존재 할 수 있도록 미세하게 조정되었는가 하는 하나의 수수께끼에서 시작되었다. 다중우주론은 그 상수들의 모든 가능한 값이 설정되어 있는 수 십 억의 관측 불가능한 자매 우주를 상정하고, 그 중 어딘가에 우리들처럼 생명 친화적인 우주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몇몇 물리학자들은 이같은 우연을 설명할 수 있는 다른 이론이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올해 초, 다중우주와 다세계가설을 지지하는 캐폴은 포퍼의 반증가능 기준을 ‘뭉툭한 몽둥이’라고 일축하며, 과학이론이 가져야 할 두 가지 조건으로 ‘명백함’과 ‘경험적’일 것을 제시했다. 그는 ‘명백함’에 대해 ‘이론은 현실에 적용하고 작동하는데 모호하지 않아야’ 하고, ‘경험적’인 것에 대해 ‘실험적 사실에 얼마나 잘 부합하는지에 따라 이론이 평가되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접근하기 어렵겠지만, 우주 상수가 과거에 우리가 관측한 것보다 훨씬 작을 것임을 암시하는 우주 배경복사의 ‘극적 효과’ 영역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중우주론은 천문학자들의 이러한 효과의 관측 여부와 무관하게 그 결과를 어떤 방식으로든 설명할 수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모든 우주 변수들이 조합된 우주는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다고 설명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정도로 이론은 유연하기 때문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의 변형 모델인 유니모듈리 중력이론은 왜 우주상수가 크지 않은지를 설명할 수 있다.
일부 물리학자들은 검증가능한 형태의 다른 다중우주론을 고안하기도 했다. 물리학자 레너드 서스킨드의 다중우주론은 음의 곡률이 한 번이라도 증명될 수 있다면, 그의 이론은 반증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이론이 반증되었다 해도 이 관측 결과는 다른 유형의 다중우주론에 있어 그저, 여러 변수 중 하나에 존재하는 우주에 불과할 것이다.
본질적으로 다중우주론은 여전히 증명되지 않고 있는 끈이론에 기반하고 있으며, 여러 자매 우주의 우주 상수가 다른 만큼 다른 물리학 법칙이 적용되는 우주가 존재한다는 이론상의 추론에 기반하고 있다. 이처럼 검증 가능성 마저 무시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물리학자 휴 에버릿이 취하고 있는 현실적인 양자적 다세계 이론은 궁극적인 양자 다중우주론이다. 왜냐하면 슈레딩거의 고양이가 우리의 우주에서 참이 듯이, 양자적 확률은 거시적인 현상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휴는 여기에 우리가 일상에서 왼쪽으로 갈지 오른쪽으로 갈지를 선택하는 것조차, 선택에 해당되는 우주가 양자 진공에서부터 튀어나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렇게 늘어나는 수 십 억의 우주는 상호독립적이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만일, 복수의 상호 독립적인 우주 속의 나 자신이 존재하거나, 무한히 많은 우주 속에 나 자신이 존재하고 있다면, 지금 내가 경험하고 있는 진짜의’ 나’는 무엇인가? 그중 가장 우선적인 공간의 속의 내가 진짜 ‘나’인가? 그 중 어떤 우주 안의 ‘나’는 다중우주론을 선호하고, 어떤 우주 속의 ‘나’는 다중우주론을 선호하지 않는다면, 현실의 진짜 본질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천체물리학자들은 수학자 데이비스 힐버트의 경고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완전한 수학은 무한성을 필요로 하지만, 그러한 우주는 존재하지 않는다.”
검증과정
우리는 물리학자 사빈 호센필더가 말한 ‘포스트 경험주의는 자기모순이다.’라는 말에 동의한다. 실험적으로 검증이 끝난 양자역학이나 상대성이론과 같은 물리학 이론들의 예에서 단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특히 역사적으로 적절한 실험 데이터의 부재 속에서 나쁜 방향으로 연구자들을 이끌었던,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에서부터 캘빈의 나선 원자모형과 프레드 호일의 정상우주론과 같은 우아하고 강력한 아이디어들은 모두 폐기되었다.
이론에 대한 강한 자기확신은 과학적 방법론을 위험에 빠뜨릴 만큼의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실험에 의해 이론의 검증을 무시한체, 이론이 매우 훌륭하다는 것을 주장한다면 과학 이론이 만들어지는 방식에 대한 대중과 학생들의 심각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것이며, 유사한 방식으로 자신의 이론을 설파하는 의사과학자들에게 마져 과학의 문호를 개방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물리학자와 철학자, 그리고 다른 과학자들은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현대물리학의 한계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서술방법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할 것이다. 여기서 핵심적인 쟁점은 다음의 질문이 될 것이다.
‘어떤 잠재적인 관측이나 실험적 증거가 당신의 이론이 틀렸음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폐기하도록 만들 수 있겠는가?’
만일 그런 증거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과학이 아니며, 그런 이론은 과학의 용어가 아닌 잘 정의된 철학 용어들로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우리는 내년에 물리학과 철학 양측의 학자들이 모여 이 문제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수 있는 학회가 열리기를 기대한다. 그렇게 되면 그동안, 저널의 편집자들이나 출판사들은 사변적인 연구 결과를 다른 연구 분야로 배정할 수 있을 것이며, 관련 기관이나 주도적 역할을 하던 학회는 이 문제에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것이다.
과학적이라는 칭호는 오직 검증 가능한 이론에만 수여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다음에야, 우리는 외부의 공격들로부터 과학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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