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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학정책의 민주화는 가능할까?
    과학 2014. 5. 5.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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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의 대 삼각형을 가르는 베가, 알타이르, 데니이브, 간신히 찾은 견우성. 저 빛들은 대체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 하고 밤 하늘의 빛으로부터 느꼈던 호기심과 경외로움, 그리고 같은 고민을 했을 선조들의 역사, 사상, 논리, 이론의 발생과 정립에서부터 우주와 생물을 넘나드는 다체로운 모험. 어릴적 시공간을 넘나드는 이 여행에 푹 빠지게 만들며 한참을 그 자리에 멈춰서서 읽게 만들었던 책 한 권이 바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였다.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개인의 인생의 방향을 바꾸거나 결정하게 해준 많은 책이나 사건, 말 등이 있을 것이다. 만일 누군가가 나에게 왜 과학자의 길을 걷고 있냐고 묻는다면 나는 당시에 읽었던 저 코스모스의 영향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할 것 같다. 그리고 이 코스모스를 접한지 십 수년이 지난 지금, 칼 세이건의 제자인 닐 타이슨에 의해 완전히 새로운 코스모스를 다시 한 번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닐 타이슨은 이번 코스모스에서 코스모스를 구성하는 요소가 단지 과학과 그에 관한 역사나 탐구, 관찰 결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었다. 오히려 코스모스는 자연 그 자체의 모습이 아니라 과학이 가지고 있는 한계와 문제점, 정치와 사회와의 관계까지를 포괄하고 있는 것임을 시사하고 있었다. 최근 그가 코스모스를 통해 소개한 납 중독과 석유업계의 압력의 문제는 오늘날 과학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직간접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중요한 예시였다. 


    한때 미 육군성에서 독가스로 분류했던 ‘테트라에틸납’이 1920년 이후 실린더 내의 폭염을 방지하는 휘발유의 첨가제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납 생산량이 급격히 증가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며 납 생산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연간 예상 판매 수치는 약 6천만톤에 이르며 납은 상업적 전성기를 맞이한다. 그러나 납 생산 공장 노동자들의 잇다른 죽음과 정신착란 현상이 알려지며 업계는 대중을 설득하고 납의 이미지를 개선해줄 과학자를 필요로 했고, 이때부터 공중보건과 환경에 대한 위협을 은패하는데 과학의 권위가 이용되기 시작했다. 


    GM이 고용한 로버트 키오는 납은 환경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며, 납을 직접 다루는 노동자에겐 직업상의 위험성이 존재하지만 업계의 자률 규제에 맡기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는 결론을 내리며, 납이 소비자에게 위험하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는 사실을 덧붙였다.


    이 사례는 과학에 대한 중요한 두 가지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하나는 과학의 권위를 엎은 과학의 상업화 그리고 과학자의 위치에 대한 문제이다.



    과학의 권위와 프렌치 파라독스


    우리는 과학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던 테트라에틸납이나, 오존층을 파괴하는 CFC에서 방사능 위험에 이르기까지 환경오염에 대한 책임이 과학에 있다는 비판적인 시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과학을 높이 평가하고 있음을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자기 회사 제품이 다른 회사 제품에 비해 성능이 더 놓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는 광고를 자주 접하며, 어떤 식품이 건강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소식이 들리면 곧바로 그 상품은 품귀 현상을 맞이하기도 한다. [1]


    영화 속에서 과학자들은 자주 사회성이 취약하고 일반인들 대부분의 일상생활로부터 동떨어진 사물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으로 묘사되곤 한다. 그러나 프랑케인슈타인을 만드는 것과 같은 이탈자를 제외하면 과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악의가 없어거나 수용가능한 범위에서 행동하는 것처럼 그려지곤한다. [2] 이 점은 과학자에게 가지는 상당한 정당성, 더 넓게는 과학이 가지는 사람들의 신뢰의 폭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때문에 사람들은 과학자가 내리는 어떤 주장이나 논증 또는 연구에 특별한 장점이나 신뢰성이 있다면 그것을 과학적이라고 부르고 신뢰한다.


    과학에 대한 이러한 신뢰는 수 년전 와인 열풍의 예에서 단적으로 볼 수 있다. 과음하는 경향이 있는 한국의 음주문화의 특성상 상대적으로 비싼 술에 속하는 와인이 열풍의 대상에 속할 수 있었던 원인은 다름아닌 프렌치 파라독스 때문이었다.



    프랑스 사람들은 다른 유럽인들이나 북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는데도 불구하고 심장계 질환에 걸리는 비율이 낮은 현상의 원인이, 프랑스인은 와인을 많이 마시기 때문이라는 것이 프렌치 파라독스의 요지이다. [3]


    프렌치 파라독스의 등장 과정은 이러했다. 프랑스는 세계 와인 생산의 절반을 차지하는 와인 생산 대국이었으나 칠레나 이탈리아처럼 소비자의 눈높이와 가격에 맞춘 상품들에 밀려 프랑스산 와인의 점유율은 하락하는 추세를 걷고 있었다. 또 프랑스에서도 와인의 소비는 감소하는 추세를 가지고 있었다. 하루에 최소한 한 잔 이상의 와인을 마시는 프랑스인의 평균 나이는 20년 전에는 35세였는데 반해 지금은 55세로 상승했으며, 1인당 연간 와인 소비량 역시 120리터에서 58리터로 절반이하로 줄어들고 있었다. 이같은 와인의 판매 부진은 1990년에 6억병의 재고를 발생시켰고, 이에따라 와인 생산 농가의 시위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던 중이었다.


    이에 정부는 과학계와 함께 와인에 대한 연구 예산을 대폭 편성했고, 그 결과 과학자들은 와인의 레스베라트톨 성분이 심장계 질환 예방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프렌츠 파라독스는 유명세를 타시 기작했다. 심장계 질환의 예방은 와인과 무관하게 어떤 술이든 하루 2~3잔 정도를 마시면 심장병 예방의 효과를 가지고 있으며, 학계에선 와인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도 나왔지만, 정부는 지속적으로 와인에 대한 긍정적인 효과만을 강조했다. 그 결과 2001년에서 2010년 사이 세계 10%, 아시아 46%로 와인의 소비 증가율은 급증하게 되었다. [4]



    혈관형성억제 치료의 두 경향 [5]


    여기 소의 연골을 연구하던, 서로 다른 길을 걸었던 두 남자가 있다. 한 명은 유타 폴크먼, 다른 한 명은 존 프루덴이다.


    1959년 하버드 의대생이었던 유타 폴크먼은 종양이 혈관의 성장을 필요로 한다는 것은 관측하고, 이를 기반으로 암에 대한 이론을 개발한다. 당시까지만 해도 혈관형성이라는 새로운 연구 분야는 규모도 작았고, 당시 새롭게 출연한 암 연구 틀에 비하면 매우 주변적이었으며, 관련 논문 발간수 역시 연간 3편에 그쳤다. 이처럼 주변적이었던 연구 분야에 변화를 일으킨 사건이 등장했는데, 종양의 혈관신생 문제가 내피세포 성장 문제와 관련된다는 발견이었다.


    1979년 당시 폴크먼의 실험실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일하던 화학공학자 로버트 랭어가, 소의 연골에서 시작해서 상어에 이르기까지 않은 양의 연골 조직을 조사한 결과 연골조직이 혈관형성을 막는 것을 발견하고, 그 물질을 분리하는데 성공했다. 1979년에는 실험실의 한 미생물학자가 연골조직에서 특수한 종류의 내피 세포를 추출해 배양액 속에서 성장 시키는데 성공을 거두며, 이후 폴크먼과 그의 실험실은 혈관형성 성장인자를 분리해냈다.


    그 결과 1980년 중엽이 되자 혈관형성 연구는 성장인자 연구의 신생 분야의 한 부분이 되었고, 산업계로부터 큰 관심을 끌게 되었다. 폴크먼은 곧 이 시장에 진출을 희망하던 일본 기업 다케다 화학산업으로부터 매년 백만 달러의 연구비를 지원 받았고, 1992년에 다케다의 TNP-470이 임상시험에 들어간 최초의 혈관형성방지 약품이 되었다. 그 후 혈관형성 연구는 빠른 속도로 다른 실험실로 확산되었고, 백혈병과 혈관형성 연구는 새로운 성장 분야가 되었다. 이내 1998년 5월 뉴욕타임즈 기자 지나 콜라타는 전면 기사에서 이 분야의 활발한 진전 과정을 보도하며 전세계적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제 이 분야는 연간 수 천 편의 논문이 출간되는 분야이자, 수십억 달러의 연구비가 오가는 분야로 성장했다.


    폴크먼보다 조금 앞선 1945년에 하버드 의대를 졸업한 존 프루덴은 1972년에 소의 연골조직이 쥐의 상처 치유를 촉진하고 염증을 감소시킨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는 이 발견을 토대로 1985년 31명의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 결과를 발표하며 이 약은 매우 안전해서 독성 한도에 도달하지 않을 정도였다고 결론지었다. 더구나, 모두 전통적인 치료법으로 실패했던 말기 환자들로 이루어진 소집단에서 상시 치료를 적용한 결과 61%의 완전 관해를 이루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1993년의 인터뷰에서 그는 신장에서 발생하여 매우 치명적인 종류의 암인 신세포암종에 대한 후속 연구에서 연골 약품이 25%의 완전 관해나 부분 관해를 달성했다고 주장했지만, 그가 세상을 떠나던 1998년까지 연골치료는 암치료의 주류가 되지는 못했으며 그 진전 역시 달팽이 처럼 느렸다.


    2003년 국립암연구소의 목록에 따르면, 1970년대부터 2003년사이에 연골 상품에 대해서 모두 8차례의 임상시험과 한 차례의 환자군 연구가 이루어졌다. 그 중에서 3차례는 소의 연골, 4차례는 상어 연골, 그리고 두 차례는 네오바스타트라는 정제된 연골기반 약품을 대상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 중 어느것도 3상 수준까지 시험이 이루어진 경우는 없었다.



    소의 연골이 혈관형성을 억제한다는 사실이 동일하며, 그 임상 결과 역시 사실상 동일한 효능을 얻는 것으로 기대된다면, 이 차이는 어디에서, 왜 발생하는 것일까? 핵심적인 부분은 천연성과 인공성에 있다. 소의 연골이나 상어의 연골로부터 추출한 성분은 그 추출방법과 배양방법에서 성분에 대한 특허 독점권을 획득 할 수 있는 반면, 자연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연골조직 자체는 천연물의 특성상 특허 획득은 물론 독점 불가능 하기 때문이다.


    이 사례는 대학과 연구기관의 상업화를 본격적으로 가속화시킨 것으로 평가받는 베이돌 법의 입법 이전의 상황이었기 때문에 과학 연구의 상업화가 단지 베이돌 법의 입법에 따른 효과가 아닌 후기 자본주의 흐름의 일부였음을 시사하고 있기도 하다.


    이같은 경향성은 한 가지 커다란 사회적, 경제적 비용을 초례하게 만든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격언처럼 암 치료 역시 믿을만한 의사의 지도로 외과, 영양, 면역 그리고 심신의 치유 등 다양화되고 개인에게 맞는 치료 포트폴리오를 만들 것을 요구하고 있다. 때문에 혈관형성억제 물질의 적용에 천연물과 같이 부작용이 거의 없고 효능을 얻을 가능성이 높다면, 부작용의 가능성이 있는 높은 가격의 의약품에 의존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연골 기반 연구는 아직도 여러가지 논쟁에 휘말려 있는 것이 사실이다.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이 같은 상황은 암 환자의 완점에서 볼때 최선은 아니다. 다시 말해, 연골과 같은 천연물의 혈관형성 산물에 더 많은 공적 자금을 투입했다면 공공기금이 현명하게 사용되었을 것이다. 또한 이 같은 노력이 성공을 거두었다면 특히 제약회사의 약품이 주는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전세계의 많은 인구들이 보다 저렴하고 손쉽게 치료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과학의 상업화는 그 가능성 차단하고 있다.



    과학의 상업화와 사회운동


    과학자에 대해 가지는 일반적인 이미지는 주변 사회와 담을 쌓고 실험과 연구에만 몰두하는 그림으로 그려지며 또, 그런 모습이야 말로 바람직하고 훌륭한 과학자의 상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실제 과학자들의 모습은 단지 사회와 격리되어 자신만의 연구에만 몰두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2차대전 대후 소련의 원자폭탄 실험과 한국전쟁의 발발등으로 점차 높아진 미-소 사이의 긴장은 원자폭탄보다 수천 배가 더 위력이 강력한 수소폭탄의 개발로 이어지며 더욱 심각한 위기 상황으로 발전했다. 이런 상황 변화는 인간이 만들어낸 과학기술의 산물이 인류의 종말을 가져올 수 있게 됬다는 위기의식을 불러일으키며, 1955년 러셀과 아인슈타인을 포함한 11명의 저명한 과학자들에 의해 ‘러셀-아인슈타인 선언’을 발표했다. [6]



    이 선언문은 “전세계의 정부들이 전쟁을 통한 목표 추구는 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깨닫고 공개적으로 인정한 뒤 모든 분쟁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평화적 수단을 찾을 것을 촉구”하며 대량 살상 무기의 개발 때문에 생긴 위험을 평가하는데 과학자들의 힘을 모으자고 호소했다. [7] 맨하탄 프로잭트를 거쳐 개발된 원자폭탄의 투하는 과학자들에게 윤리적 가책과 과학자의 책임감을 느끼며 종전 직후 이 프로잭트에 참가한 과학자들이 주축이된 원자과학연맹을 결성하며, 핵무기의 국제적 통제와 군비 축소 등의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핵무기, 과학기술의 군사화, 성차별, 인종차별, 환경오염, 제3세계의 저개발 등  20세기 과학기술의 부산물이 만든 어두운 그림자는 과학자들을 행동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같은 과학자들의 사회운동, 좌파 과학은 80년대 이후 반공주의적 과학 이데올로기와 신자유주의의 흐름 그리고 오늘날의 과학의 거대화와 상업주의 속에서 그 종적을 감추게 되었다.


    ‘다른 나라들에 대한 과학기술적 우위만이 이 나라를 경제적으로 풍요롭게 할 것’이라는 정부의 거의 종교적인 신념은 과학을 기술 증진의 목적이나 노벨상 수상과 같은 국위선양의 도구로써 인식하게 만들었다. 이와 더불어 과학의 거대화와 상업화는 연구비 지원에 따른 연구의 종속성을 가중시키며, 연구비 지원 주체에 따라 과학적 연구의 결과가 결정되는 사태까지 빈번히 벌어지고 있다. 앞서 보여준 프렌치 파라독스는 국가의 과학에 대한 이 같은 시각을 덧붙여 주고 있으며, 비단 프렌치 파라독스 뿐만이 아니라 국가 전체의 과학연구자금에 정부 지원금의 비중이 높은 나라 일 수록 이같은 과학의 도구화는 심화되고 있다.


    세계화에 따른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과 개인 공동체, 노조, 사회운동의 약화, 과학 연구의 비용 증가, 과학의 오용과 남용에 대한 불만은 증가되고 있다. 그러나 과학의 상업화와 거대화 속에 지식 노동자로 부속화된 현대의 과학자들에게 20세기와 같은 급진적 좌파 과학운등을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 일부 양심적인 과학자들의 운동과 목소리는 종종 들리지만, 현재 주류 정치와 매채를 지배하고 있는 정치와 경제의 헤게모니 속에서 이들의 양심적 행동이나 운동가들의 등장을 기다릴 수 만은 없는 것이 현실이다.



    과학정책의 민주화를 위해


    이 문제에 대한 간접적은 해답은 2차대전 이후에 출연했던 국가의 연구비 지원 체제에서 엿볼 수 있다. 당시 제시된 연구지원 모델에서 전직  MIT 총장이자 2차대전 기간 동안 과학연구개발국 국장을 지냈던 버니버 부시는 과학 공동체에 상당한 자율성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당시 뉴딜 정책을 지지했던 할리 킬고어 상원의원은 농부, 노동조합 그리고 대중의 대표를 참여시키는 연구모델을 제시했다. [8]


    결국 이 논쟁은 부시의 모델이 승리로 끝났고, 과학 제도는 높은 수준의 자율성을 서용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유익하다는 예외주의에 입각해 은폐되어 나갔으나,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킬고어가 제시한 모델의 내용이다.


    혈관형성억제 치료제의 사례가 보여준 비효율과 고비용의 발생 문제, 그리고 프렌치 파라독스가 보여준 국가에 의한 과학의 도구화가 과학의 상업화와 거대화에 따른 되돌릴 수 없는 방향성의 문제라면, 또 일부 양심적인 과학자들의 행동이나 과학운동가들의 등장을 기다릴 수 만은 없는 것이 현실이라면, 대안은 과학자와 노동조합, 대중의 대표를 참여시키는 이른바 뉴딜 과학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어쩌면 이같은 문제는 한국 사회 내에서의 문제 일 수도 있다.


    첫 째는 시민사회를 바라보는 관료의 태도 문제이다. 앞서 소개했던 소 연골 치료에 대한 논쟁이 여전히 진행중인데는 시민단체의 노력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환자들이 단순히 전통적인 암치료제의 높은 독성과 낮은 효능에 의존하는 의사들의 편에 섰다면 이같은 논의는 시작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의 시민단체들은 대부분 교육 수준이 높고, 방법론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매우 노련하다. 상당수가 사회과학과 인문학, 과학 등에 높은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어떻게 연구하고, 어떤 방법론에 의거해 정치와 통합 시칠 수 있는지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관료들의 이들의 교육 수준을 무시하고 폄훼하며 관련 내용에 대해 무지한체 떠드는 미개한 단체들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두 번째 문제는 사회운동을 바라보는 대중 시각의 문제다. 사회운동 특히 노동조합의 결성이 가지는 사람들의 매우 부정적인 선입견은 첫 번째의 관료들의 태도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결과는 낳게 된다. 이러한 상황은 마지막 세번째 문제인 과학에 대한 전반적인 무관심과 결합하며 과학 정책의 운영과 편성, 관리, 감시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과학의 상업화와 자본화, 과학자금의 높은 정부 의존도 그리고 정부의 정치적 이득을 위해 과학을 도구화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과연 과학정책의 민주화를 꿈 꿀 수있을까? 데이비드 딕슨의 말을 인용하며 마친다.


    "과학은 우리가 자연세계를 잠재적으로 유용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강력한 도구이지만, 동시에 인간에 대한 착취의 씨앗을 담고있다. 후자의 희생자가 되지 않으면서 전자를 활용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이다. 제대로 민주적인 과학정책은 현재의 부와 권력의 분배에 직접적으로 도전하는 정치프로그램을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다.” [9]



    [1] 앨런 차머스, 과학이란 무엇인가?, 서광사, 2003, 19 

    [2] 에드워드 J. 우드하우스, 나노과학, 녹색화학, 과학의 특권적 지위, 과학의 새로운 정치사회학을 향하여, 2006, 207

    [3] 강석기, 레스베라트롤, 대한화학회, 화학세계 (2013.09), 64

    [4] http://www.youtube.com/watch?v=9ghBMTdJlVA

    [5] 데이비드 J. 헤스, 혈관형성방지 연구와 과학 장의 동역학, 과학의 새로운 정치사회학을 향하여, 2006, 149-170

    [6] 게리 워스키 과학 좌파, 이매진, 2014, 11

    [7] Ibid

    [8] 데이비드 J. 헤스, 혈관형성방지 연구와 과학 장의 동역학, 과학의 새로운 정치사회학을 향하여, 2006, 146

    [9] David Dickson, New Politics of Scienc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336 (1984)


    [사진]

    https://t1.daumcdn.net/cfile/tistory/1640403E5098EDC226

    http://thecatholicspirit.com/wp-content/uploads/2010/09/money_lock.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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