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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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거대과학에 관한 소묘사념 2018. 12. 22. 19:28
✻ ✻ ✻ 컨트롤 룸의 수많은 대형 모니터들을 한번 훑어보고나면, 장비를 제어하고, 상태를 점검하고, 필요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기도 하며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복도를 지나 자리로 돌아와 앉으면 이제 수많은 이메일들이 눈에 들어온다. 미팅 일정부터 공지, 안내, 각 서브그룹들의 업무 보고 등, 읽어야 할 매일과 그렇지 않아도 될 매일, 답장을 해야할 매일 등을 빠르게 분류한다. 그리고 터미널을 열어 클러스터에 접속해 본다. “뭔가 이상한데….?” 무언가가 이상하다. 그러다 연구실에서 누군가가 내선 전화를 받고 통화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런데… 우리 시스템에는 그게 설치가 안되어 있어서…” 분명 수개월 전에 그 프로그램을 내가 설치해 두었을 터였다. 그런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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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비스와 삿포로 계절한정 맥주 맛보기수리물리학 2018. 11. 30. 21:51
겨울과 함께 연말이 다가오며, 여러 한정 상품들이 나오고 있는 계절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나의 흥미를 끄는 것은 다름 아니라 계정 한정 술이다. 오늘은 그 중에서도 프리미엄 맥주 브랜드인 에비스와 에비스의 모회사인 삿포로의 계절한정 맥주 두 종을 담아 보았다. 안주는 따로 요리하여 준비하려고 했으나, 얼마전에 연구소가 위치한 지역에서 개최한 지역 교류회에서 남은 음식을 챙겨와 오늘의 안주로 대신하였다. 종류로는 오리고기, 새우튀김, 카라아게, 쿠기카츠와 각종 과일 등이다. SAPPORO 冬物語(겨울 이야기) 가격 : 198엔 알코올 : 6% 특징 : 겨울한정, 사치스러운 정도로 순한 감칠맛외관 : 햇살을 머금고 있는 듯한 밝은 호박색, 부풀어 오르는 흰거품 향 : 부드럽게 감도는 은은한 시트러스향 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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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라는 이름의 숨겨진 인권, 블랙박스책 2018. 8. 10. 17:02
장면 하나, 얼마전 유튜브를 서핑하다가 지상파 개그 프로그램의 한 코너를 본적이 있다. ‘간만에 제대로된 개그 코너가 나왔다’는 제목과 높은 조회수에 이끌려 재생한 그 영상에서 나는 적지 않은 불편함과 불쾌한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내용은 이른바 ‘김치녀’인 여자친구로부터 남자가 겪는 일화들을 소재로 여성을 희화화하는 것이었다. 김치녀가 세간의 화제가 되었던 당시에, 나는 분명 별다른 감정을 가지지 않았을 터였다. 그러나 지금 나는 왜 이 영상을 보고 불쾌감과 불편함을 느끼게 된 것일까? 장면 둘, 지난 7월에 유튜브에서 ‘브레인 스쿱’이라는 과학채널을 운영중인 에밀리 그래즐리가 극심한 악플에 시달리고 있다는 짤만한 기사 [1] 를 접했다. 악플의 내용은 “너무 못 생겨서 토할 뻔 했다”거나 “부엌에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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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저온중력파망원경, KAGRA에서과학 2017. 12. 18. 10:08
“연구소는 왜 다 산속에 있는 거냐?” 카그라로 간다고 했을 때 친구가 제일 먼저 했던 말이었다. 지금까지 그리 깊게 생각해 본적은 없었는데, 생각해보니 대부분의 연구소들은 대도시의 도심부가 아닌 도시 외각의 한적한 곳에 위치해 있었다. 조용하고 한적한 곳에서 연구가 더 잘되어서 그런지, 부동산 문제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중에서도 특히나 카그라는 더더욱 깊은 산골 어딘가에 숨겨져 있었으니 친구의 그 반응이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카그라는 중력파 관측 시설이기 때문에 특히나 도심지에서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블랙홀의 충돌이나 중성자성의 충돌, 초신성 폭발 등의 영향으로 생긴 중력파가 지구에 도달했을 때 발생하는 시공간의 수축의 정도가, 1광년의 길이에서 머리카락 두께만큼 수축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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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과학계의 현실과 우리의 미래과학 2015. 1. 13. 18:55
초등학생 시절의 어느 저녁, 함께 강변을 따라 걷던 친구가 밤 하늘을 가리키며 내게 별자리를 가르쳐 주었다. 희미하게 빛나고 있던 도심 속의 별 빛을 손으로 이어나가며 백조자리와 독수리자리를 가르쳐 주던 친구의 말을 들은 나는, 다음날이 되자 곧장 부모님을 졸라 서점으로 달려나갔던 기억이 있다. 그 어린 시절의 작은 질투심과 호기심이 지금 나를 과학자의 길로 걷게 만든 것을 아닐까 생각하니 문득, 부끄러움과 함께 쓴 웃음이 지어진다. ‘8천 엔’ 방대한 양의 수업의 틈 속에서 한 달 동안 실험실에서 노역한 뒤, 처음 통장에 입금된 이 돈의 액수를 본 나는 그저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그리곤 생각했다. 어린 시절 꿈꾸었던 과학에 대한 이상나 동경, 꿈이란 것이 이런 것이었나? 과학자가 된다는 것은 어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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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과학하기란...과학 2013. 3. 14. 14:36
한국에 귀국한 직후 만난 친구와의 대화에서 친구는 내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일본은 어땠냐?’ 라고. 당연하고도 상투적인 이 질문에 나는 이렇게 대답을 해주었다. 보통 처음 해외에 나가게 되면, 처음엔 한국과 그 나라를 비교하며 한국의 단점을 비판하고 그 나라의 장점을 과장하여 왜 한국은 그러하지 못한지를 한탄하게 된다. 하지만, 체류 기간이 길어지면 장점과 단점을 보고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결국엔 사람이 사는 것은 어느곳이나 같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난 과학을 하는 사람이기니깐 이런 비교와 이야기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가령, 현대인의 심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도스토예프스키를 읽어라 라고 말했다고 하자. 현대의 학문은 진리는 책 속에 있다는 사고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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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과학의 자생 과정과 한국 과학의 현재과학 2012. 2. 27. 21:44
일본 과학의 자생과정일본이 물리학을 포함한 서양 과학의 체계적 도입의 시작은 19세기 말 메이지 유신에 의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지만, 일본은 이미 16세기 중반부터 서양과학과 접촉하고 있었다. 그들은 예수 전도사나 네덜란드 상인들을 통해 서양과학을 접하고 있었으며, 1639년의 도쿠가와 막부에 의한 쇄국정책 실시 이후에도 일부 유학자 층에 의해 제한적이나마 서양의 천문학, 의학, 식물학, 항해술, 물리학 등을 접하고 연구하고 있었다.덕분에 일본은 1855년 페리 제독이 몰고 온 군함에 의한 개국을 강요받을 때, 이들 일부층에 의해 형성된 서양의 지식, 그리고 서양의 언어도 된 책을 번역할 수 있는 능력의 유지로 서양 과학에 대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었다. [1]일본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