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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거대과학에 관한 소묘사념 2018. 12. 22. 19:28반응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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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트롤 룸의 수많은 대형 모니터들을 한번 훑어보고나면, 장비를 제어하고, 상태를 점검하고, 필요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기도 하며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복도를 지나 자리로 돌아와 앉으면 이제 수많은 이메일들이 눈에 들어온다. 미팅 일정부터 공지, 안내, 각 서브그룹들의 업무 보고 등, 읽어야 할 매일과 그렇지 않아도 될 매일, 답장을 해야할 매일 등을 빠르게 분류한다. 그리고 터미널을 열어 클러스터에 접속해 본다.
“뭔가 이상한데….?”
무언가가 이상하다. 그러다 연구실에서 누군가가 내선 전화를 받고 통화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런데… 우리 시스템에는 그게 설치가 안되어 있어서…”
분명 수개월 전에 그 프로그램을 내가 설치해 두었을 터였다. 그런데 없어서 사용을 하지 못한다니 무슨 소리일까. 그리고 이어지는 미팅에서 준비한 슬라이드를 스크린에 띄워두고 지금까지의 진행 사항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설명한다. 그런데 또 이상하다. 이중 일부는 수개월 전에 문서 형태로 보고서를 만들어 제출 하였을 텐데 모두가 처음 듣는 눈치다.
그리고 설문조사 요청 이매일을 한 통 받았다. 앞으로 있을 국제 협력단 정기 총회에 보고하는데 필요한 다양성에 관한 조사였다. 나이, 성별, 직위를 입력하고, 어려운점이나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관한 질문이 이어졌다. 국제협력 프로젝트인 만큼 다양한 국적의 연구자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취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질문을 읽다가 하나의 단어가 나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culture….?”
이 포괄적이고 애매모호한 단어가 왜 국제 협력 연구를 수행하면서 느끼는 어려운 부분의 선택지에 포함이 되어 있는 것일까. 어찌되었든 설문을 마치고, 앞으로 있을 총회의 발표 안건 목록을 발펴보았다. 그리고 그 중에서 아주 눈에 띄는 단어가 다시 한번 더 발견되었다.
“young researcher….?!”
젊은 연구자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수 많은 표현들 중에서 왜 하필 young을 사용한 것일까. 연구자는 나이가 중요해서? 아니면 경력? 어쩌면 둘다? 이 신경질 나는 안건 제목의 발의자가 누구인지를 살펴보니, 잘 알고있는 박사과정 학생이었다.
그로부터 몇일이 지나고 총회가 열렸다. 그리고 마지막날 마지막 의제로 일전에 수행했던 다양성 조사의 결과가 발표되었다. 결과는 예상 밖이면서 동시에 예상 그대로였다.
현재 이 프로젝트에 참가하고 있는 교수, 연구자, 학생들 모두의 성비는 9:1로 남성이 압도적이었고, 국적비는 80%가 일본이었다. 나머지 20%도 한국, 중국, 대만 순으로 차지했고, 유럽과 영미권은 1% 남짓이었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 내부에서 어려움이나 불편함을 겪고 있다는 의견이 전체의 30%를 상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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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과학의 성취는 정말 화려한 것처럼 보인다. 적어도 외양적인 부분에서는 많은 성과들이 보여지고, 매해 발표되는 노벨상 수상자 명단에서 빠지지 않으며, 정부의 과학에 대한 든든한 지원이 뒷받침 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그와는 조금 다르다. 왜 20%의 비일본인이 참가하는 국제 연구 프로젝트에서 무려 30%가 불편하다고 응답했을까? 이것은 이 설문조사의 문항에 ‘culture’가 들어갔던 이유와 상응하는 부분이다. 왜냐하면 이런 조사를 한국에서 주관 했다면, 분명 ‘culture’ 대신 ‘age’가 들어 갔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화라는 것은 굉장히 포괄적이면서도 애매모호한 개념이다. 무언가를 특정 짓기는 힘들지만, 그 속에서 어떤 공통된 미묘한 분위기를 감지하게 되는 것이 바로 문화 인 것이다. 일본이 주관하는 국제 과학 프로젝트들이 가지고 있는 하나의 공통된 문화는, 그들이 가진 성공의 기억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중성미자 검출기인 수퍼카미오칸데의 성공이다. 이 프로젝트는 거의 일본 독자적으로 수행되었고, 노벨상 수상으로까지 이어진 프로젝트였다.
이러한 기억은 지금과 같은 일본과학의 문화를 형성하는데 몇 가지 기여를 하게 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대결 구도이다.
일본의 ‘젊은’ 연구자들은 과학이라는 하나의 공통된 지식을 공유하고 함께 발전 시켜 나가겠다는 생각보다는, ‘서구에 결코 뒤쳐지지 않으며, 다른 나라의 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충분히 해 낼수 있다’ 라는 생각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 이러한 생각은 ‘젊은’ 연구자들이나 신임교수들과의 미팅에서 종종 확인하게 되는데, 한번씩 ‘우리는 결코 지지 않고 있다’라는 말을 하는 모습을 쉽게 보게 되는 것이 그것이다.
다른 하나의 파생 효과는 독자 규격화이다. 일본은 무기체계나 고속철도 시스템, 통신망에서부터 프로그래밍 언어까지, 항상 독자 규격화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경향은 지난 과학 분야에서의 성공의 기억까지 더해지면서 과학 연구 부분에 까지 이러한 독자 규격화를 추친하려는 경향이 생긴 것이다. 이것은 그 자체로는 큰 문제가 안되지만, 국제 협력을 시작하게 되면 본격적인 문제를 발생시킨다. 가령, 시스템의 프로그래밍 언어를 일본 내부에서만 주로 사용하는 언어를 사용하여 타국의 연구원들이 전혀 만질 수 없게 되는 환경이 자연스럽게 구축되어 버린 것이다.
여기에 언어의 장벽까지 더해지면서 점차 이너서클화 되어 버린다. 그래서 각 서브그룹별 전체 미팅을 영어로 열어도 나중에 일본어로 미팅할 수 있는 다른 미팅을 새롭게 만들어서 그들만의 대화가 새롭게 시작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 결과, 자연스럽게 소통의 부족으로 이어지게 되고, 어느 정보가 한쪽에서만 공유되고 전파되지 않거나, 교수급에서 논의된 사항이 학생들 단계로까지 전달되지 않거나 하는 등의 정보 불균형과 소통의 부제가 자주 벌어진다.
이같은 미묘한 일본 과학의 문화적 특성은, 신기하게도 ‘젊은’ 연구자들 일수록 그 정도가 심해진다. ‘젊지 않은’ 연구자들의 경우, 그들이 선행 연구를 해 나가면서 국제적인 협력과 조언을 적극 활용해 왔기 때문에 오히려 더 글로벌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젊은’ 연구자들은 상대적으로 로컬한 사고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젊지 않은’ 연구자들의 노력으로 쌓은 성과와 성공의 역사에 과도한 의미부여가 되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언어의 장벽 때문인지는 알수 없지만 말이다.
그래서 이 ‘젊은’ 이라는 단어는 자연스럽게 연공서열의 개념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박사학위를 취득한지 오래되지 않았으며, 해당분야의 연구 경력이 짧고, 상대적으로 나이가 어린 연구자를 칭한다. 왜 이 모든 사항이 or 가 아니라 and 여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마지막으로 아주 고질적인 문제가 두가지 있는데 바로 여성의 유리천정 문제와 하드웨어 중심적 사고이다. 충분한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결코 체어 자리는 내어주지 않는 모습과, 하드웨어에만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소프트웨어 분야의 지원은 등한시 하는 모습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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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중력파검출기 KAGRA는 일본 정부로부터 1452억원의 예산을 지원 받아 현재 건설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당초 건설 일정보다 점점 더 연기되기 시작하면서, 성과에 목말라 있던 일본 정부로 부터의 압박이 시작되었다. 앞으로 다가올 3차 중력파 관측에 함께 참가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건설을 보다 앞당겨야만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전문 인력이 충당되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중력파 검출기와 관련된 전문 인력은 일본내에서 한계가 있었고, 타국의 전문 인력을 빌리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KAGRA는 국제협력단의 규모를 점차 늘려나가고 있다. 참여하는 대학과 기관들도 점차 국제적으로 다양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그리고 이제, 자의반 타의반으로 그동안 일본의 거대과학 프로젝트들이 내부적으로 안고있던 문제들이 조금씩 밖으로 드러나고 있다. 30%라는 숫자는 바로 내부에 눌려져 있던 어떤 이상한 느낌의 작은 단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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