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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이라는 이름의 숨겨진 인권, 블랙박스
    2018. 8. 10.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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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 하나, 얼마전 유튜브를 서핑하다가 지상파 개그 프로그램의 한 코너를 본적이 있다. ‘간만에 제대로된 개그 코너가 나왔다’는 제목과 높은 조회수에 이끌려 재생한 그 영상에서 나는 적지 않은 불편함과 불쾌한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내용은 이른바 ‘김치녀’인 여자친구로부터 남자가 겪는 일화들을 소재로 여성을 희화화하는 것이었다. 김치녀가 세간의 화제가 되었던 당시에, 나는 분명 별다른 감정을 가지지 않았을 터였다. 그러나 지금 나는 왜 이 영상을 보고 불쾌감과 불편함을 느끼게 된 것일까?


    장면 둘, 지난 7월에 유튜브에서 ‘브레인 스쿱’이라는 과학채널을 운영중인 에밀리 그래즐리가 극심한 악플에 시달리고 있다는 짤만한 기사 [1] 를 접했다. 악플의 내용은 “너무 못 생겨서 토할 뻔 했다”거나 “부엌에 가서 샌드위치 좀 만들어줘” 식으로 강의 주제와 상관 없이 강사의 외모 등을 언급하는 경우가 대다수 였으며, 이 때문에 여성 과학 강사들의 활동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고 해당 기사는 소개하였다. 과학 강의에 비과학적 반응이라는 매우 비논리적이지만 논리적인 대치를, 나는 그저 담담히 읽어 나가고 있었다.


    장면 셋, 1991년 김학순 할머니가 자신이 위안부였다는 사실을 공개한 이래로 27년간, 일본군 성노예 문제는 한국인들에게 있어 독도 문제 보다 더한 공분의 대상이되고 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하는 수요집회는,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그 어느때보다 더웠던 한 여름의 폭염 아래에서도 매주 이어져 가고 있다. 우리는 왜 이처럼 위안부 문제에 공분하고 있는 것일까?


    ‘일본에서는 왜 미투 운동이 벌어지지 않는 것일까?’라는 질문에 대해 대답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앞선 첫번째 장면에서 본 개그 프로그램의 소재가 그러했던 것처럼, 사회는 하나의 공통된 여성상과 이미지를 공유하고 소비하며 그것을 강화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고, 두번째 장면에서 처럼 여성을 그저 하나의 소비 상품으로 취급하는 고질적인 태도까지 더해지며 장기간 고착화 된 사회이기 때문이라고 쉽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이토 시오리의 ‘블랙박스’가 출판되고 그 책을 읽어 보기 전까지, 나는 당연하게도 저널리스트로서의 그녀가 일본 사회 내부에 팽배해 있는 이러한 모습들을 철저히 해부해 나가는 비평서일 것임을 기대했다. 그러나 그러한 나의 예상은 불과 몇 페이지 만에, 전신의 피부가 찢겨져 나가는 듯한 고통으로 바뀌었다.


    그녀는 TBS 워싱턴지국장이자 아베 총리의 최측근인 야마구치 노라유키에게 취업 알선이라는 명분으로 초대된 저녁 식사자리에서 최음 후 강간당했다. 이 책은 그날 후로 겪은 일본 사회와 시스템의 민낯 그리고 그 속에서 겪은 투쟁의 기록이다.


    메이지 유신 시절에 제정되어 단 한번도 개정되지 않았던 봉건시대의 유물인 성폭력 관련 법규는, 피해자를 보호하기 보다는 오히려 가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률로 보였다. 여기에 ‘준간강’이라는 존재하지 않는 애매한 법률 용어까지 창시해 냄으로써, 가해자는 철저한 보고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갔다.


    피해자는 범죄 혐의를 스스로 입증해 내야 했고, 담당자와 관할 경찰서가 바뀔 때마다 당시의 기억을 상세히 반복하여 묘사해야만 했다. 현장에서의 사건 재현은 필수였다. 수사 과정에서 경찰은 ‘남자의 취향’ 이라던지 ‘선호하는 자세’와 같은 본질과 전혀 관련이 없는 질문들로, 절차라는 이름의 2차 가해가 공공연히 벌어졌다.


    그녀를 강강한 야마구치 노라유키가 가지는 사회적 지위와 인맥의 영향 때문인지는 불분명하나, 중요한 순간에 맞춰 영장은 기각되었고 수사는 ‘윗선으로부터의 지시’로 번번히 가로막히기 일수였다. 그리고 그는 혐의 사실을 철저히 날조하고 부인한다.


    그녀는 이 피해사실을 기자회견을 통해 세상에 알리겠다고 결심했을 때, 그녀의 도와준 성폭력전문 변호사는 그녀에게 다음과 같은 충고를 전해주었다. 단추를 끝까지 채우고, 정장을 입고, 단정한 머리에, 화장을 하지 않고, 숙연한 표정으로 있으라고. 피해자가 마땅히 가져야할 불쌍하고 갸여운 모습을 꾸미라는 이 제안을 거부하고 당당히 맞서 나고자 했던 그녀는, 기자회견 후 예견된 가해에 다시한번 노출되었다.


    두번째 장면에서 보았던 모습처럼, 그녀에게 ‘여자가 취직에 신경썼기 때문에 그를 꼬득인 것이다.’, ‘흔한 남녀 문제다’, ‘재일 조선인이기 때문이다.’는 등의 반응이 줄을 이었고, 언론의 반응 역시 냉담했다.


    객관적이고 반증불가능한 완전한 검증이 어려운 성범죄의 특성으로 인해 가해자는 숨겨진다. [2] 피해자를 보호하고 재발방지에 힘써야할 공권력은 수사라는 미명 아래 피해자에 2차 가해를 가하며, 미비한 법령을 개정 해야할 의무를 가진 입법부는 미온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사회는 다시 한번 피해자를 고문하고 낙인 찍는다.


    이 기록은 온몸의 세포가 하나하나 찢어져 나가는 듯한 고통의 기록이다. 그러나 틀렸다. 남자인 내가 여기에 찢어지는 고통을 함께 공감한다고 말하는 것은 위선에 다름아니다. 나는 그녀의 고통을 알 수도, 헤아릴 수도 없다. 그저 조금 머리로 읽고 받아들이고 있음에 다름 아니다.


    여기서 세 번째 장면을 다시 떠올린다. 만약 위안부 피해자들이 ‘할머니’가 아니라 4-50대의 ‘여성’이었다면 과연 우리는 위안부 문제에 관해 이처럼 공분의 감정을 공유할 수 있었을까? 이토 시오리가 남긴 이 기록은 바다 건너 일본에서 벌어진 유리된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당면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자 해결해야 할 과제인 것이다.



    블랙박스 - 10점
    이토 시오리 지음, 김수현 옮김/미메시스




    [1] http://m.hankookilbo.com/News/Read/201807151552056830

    [2]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44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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