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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를 꿈꾸는 이들에게...과학 2018. 9. 25. 19:59반응형
과학자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흰가운을 입고 연구실에서 현미경을 보고 있을 것 같은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어두운 연구실 한 구석에서 홀로 복잡한 계산에 몰두하고 있는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아니면 프랑케인슈타인을 만들거나 우주의 차원 포탈을 만들어 외계인의 침공을 돕는 매드 사이언티스트를 떠올리시나요? 언젠가 자기소개를 하는 자리에서 제 꿈은 과학자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더니 모두들 피식거리며 웃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핵물리학자나 분자생물학자 같은 멋진 이름이 아니라, 과학자라고 그냥 통칭하는 바람에 그런 웃음을 유발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과학자라는 이름은 멋있어 보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유치해 보이고 무엇을 하는지는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그런 애매모호한 직업입니다.
과학은 갈수록 거대화되고 블랙박스화 되어 과학자 스스로도 그 전모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소외되었습니다. 힉스입자의 발견이나 중력파의 관측과 같은 과학 뉴스를 접하더라도 그것이 어디에 쓰이며 무엇을 하는 것인지도 모를 만큼 일반 시민들이 과학과 멀어졌음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연구와 과학 정책에 시장 원리와 성과주의가 투영되어 연구자 개개인의 지적 호기심을 압도하고 있습니다. 연구의 다양성은 사라지고 선택과 집중 전략에 의해 서로 구분되어지고 순위 매겨집니다. 이 속에서 과학자는 그저 직업인으로서의 역할을 벗어나지 못할 정도로 분절화되고 파편화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과학자에게 가끔씩 과학자의 책임이니 윤리이니 역할이니 심지어 애국심이니 하는 소리를 하기도 합니다. 과학자란 대체 어떤 존재 일까요? 무엇을 해야할까요? 대학 교육 4년에 석사 과정 2년을 수료하고 다시 박사과정 수년을 거쳐 박사후연구 과정까지 마친 이 공부 노동자의 정체는 무엇 일까요?
저는 어릴적부터 과학에 흥미를 가졌고 그 중에서 물리학에 특별한 흥미를 가져버린 탓에 물리학자가 되는 길을 걷고 말았습니다. 처음엔 자연 현상을 논리적으로 기술하는 엄밀함에 이끌려 물리학과로의 진학을 선택하게 되었지만, 이제는 관념적인 이유로 이후의 공부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실용적인 이유로 물리학을 공부하게 되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자책을 가끔씩 하곤 합니다. 왜냐하면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과학연구 또한 경제적 효율이라는 매스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국가가 과학연구를 정책으로 지원하고 장려한다면, 그것은 미래 산업의 기술을 선점할 가능성이 있는 것에 투자를 하기 위해서 이거나, 노벨상 수상과 같은 국위 선양의 목적에 의한 것입니다.
학위논문의 효용
객관적이고 논리적일 것이라는 과학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과학자가 되는 과정은 주먹구구식의 중세 도제제도와 같습니다. 경제학자인 폴라 스테판은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과학을 분석하면서 과학계 내부에 암암리에 존재하는 모종의 혈통주의를 발견하였습니다. 수준이 높은 대학으로 분류되는 학교의 졸업생들과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되는 학교의 졸업생들이, 구직시장에서의 직업 선택 폭이 서로 달랐던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학력에 따라 적절히 분류되어 거기에 맞는 일을 담당하고, 경력이 쌓일수록 학벌 프리미엄의 영향이 더욱 커졌습니다. 이것은 개인의 연구 역량보다, 학교의 평판과 지도 교수가 가진 인맥의 영향을 중시하는 중세적인 학계 구직시장의 특징 때문입니다.
한국은 그 효과를 아주 드라마틱하게 관찰할 수 있는 곳 입니다. 한국의 아무 대학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이공학계열의 교수들의 경력을 살펴보십시오. 50세 이상의 교수들은 서울대 학부 출신에 미국 유학파 출신들이 모두 점령하고 있고, 그 이하의 연령대에서야 명문 사립대나 과기원 출신들이 눈에 뜨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 마저도 최종 경력은 높은 확률로 미국일 것입니다.
미국 유학파 출신이 점령한 한국 대학은 그 결과로 아주 기형적인 연구 풍토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의 과학은 유니크한 아이디어 하나에 의존하여 독자적으로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이 더이상 아니게 되었습니다. 학계 구직 시장에서 선택되고 교수가 되어 정교수가 되려면 저명한 학술지에 되도록 많은 논문을 게재해야야 합니다. 그로인해 과학은 대규모화 되고, 대형의 첨단 설비에 보다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연구 환경은 자본과 설비면에서 이 모든 것이 대체로 잘 갖추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공부하여 학위를 받고 돌아온 한국의 교수들은, 미국에서의 경험을 금과옥조로 여겨 미국의 연구를 쫒아가기만 합니다. 이렇게 한국 대학은 독자적인 연구 풍토가 자리잡지 못한 채 미국의 지식 보따리상으로서의 역할에 만 충실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두 가지 문제를 발생시킵니다. 하나는 연구가 미국이 하는 것을 따라가는 것 말고는 아무런 목적도 없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외국어 능력에 병적으로 잡착한다는 점입니다.
이론물리학 분야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사례가 하나 있습니다. 어느날 학술지에 강상호작용 문제를 풀 새로운 아이디어가 게제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논문에서 제시된 방정식에 다른 조건들과 상황을 접목하여 어떤 결과를 도출해 내는지를 보기 위한 연구를 시작하였습니다. 그 방정식을 정확하게 푸는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약 두달 여의 시간이 소요되고 나서야 그 해답을 찾나 냈습니다. 이 결과를 출판하기 위한 논문을 작성하고 있던 와중에, 동일한 계산을 수행한 다른 연구 그룹에서 먼저 논문을 게제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경우는 비일비재 합니다. 화려하고 멋진 연구를 선도적으로 하는 연구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런 곳은 대학에 한 두 군데의 연구실이 있을 뿐이고, 그 마저도 기업과 연계된 산업가능성이 큰 연구에 치중되어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미국의 지식 보따리상인 한국의 대학에서는 이러한 편중은 더 심합니다. 대형 과학 프로젝트들을 보면 이러한 모습들이 조금 더 쉽게 드러납니다.
한국의 대형 과학 프로젝트들은 대게 미국이나 일본을 뛰어넘은 세계 최초나 최대의 타이틀을 목표로 사업이 구성되어 진행됩니다. 그중 몇몇 연구소는 세계 최고의 타이틀을 거머쥐게 되자, 그 후에 이어질 후속 연구의 방향을 잃고 방황하는 모습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 위치에 서게 되었을 때 더이상 보따리를 가져올 대상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순수하게 과학적인 목적에서 시작된 사업이 아니었기에 후속 투자와 지원도 넉넉치 않으며, 여기에 수반되는 각종 비리와 횡령은 덤입니다. 단적인 예로 나로호 사업이나 토카막 핵융합로 사업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를 한번 살펴보십시오.
학술 공용어는 영어이기 때문에 영어는 선택이 아니라 기본 소양 중 하나 입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것이 학자들 사이의 소통과 논문 작성을 위한 글쓰기의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벗어나, 평가를 위한 도구의 지위를 획득합니다. 그럴수 밖에 없는 것이, 미국의 연구를 쫒아가려면 미국의 대학들과 공동연구를 필수적으로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과학은 공부하면 되지만 영어는 기본이어야만 합니다. 그 결과 한국인 교수와 한국인 학생들만 모여있는 강의실에서 영어로 강의를 하고 들어야 하는 상황이 연출되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일본이나 중국의 대학들과 협업하는 경우가 많아져 중국어와 일본어가 유창 할수록 연구 진행에 유리합니다. 한국의 연구 환경은 이렇게 철저하게 도매상의 지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런 환경 아래에서 연구하는 학생들은 어떨까요? 스위스 취히리 공대가 부설 천문 연구소를 폐지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연구소 내의 한 교수가 10여년 이상 학생들을 인간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다루었고, 비정상적인 요구들을 했다는 이유에서 였습니다. 교수한 요구했다는 사항들은 이러했습니다. 주말에 연락이 가능할 것, 휴가를 자제할 것, 자정까지 이어질 수 있는 저녁 미팅에 참석할 것, 화장하는 시간을 줄이고 연구에 시간을 쓸 것 등이었습니다. 한국에서 대학원을 다니는 대학원생들이라면 충격을 받을 만한 이야기입니다. 한국의 대학원생은 전통적으로 인권과 노동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주 120시간의 노동을 해도 노동법에 저촉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대학원생은 노동자가 아니라 학생이기 때문이고, 노동이 아니라 연구이기 때문입니다. 적절한 경제적 보상 역시 기대할 수 없습니다. 노동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학생의 지위를 가지는 것도 아닙니다. 노동자도 아니고 학생도 아닌, 애매모호한 지위가 바로 대학원생입니다. 그리고 그 대상이 여성이라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 집니다.
어느날 학교에서 입자물리학 분야의 저명한 교수님 한 분을 초청하여 강연을 연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강연 중에 여학생들이 물리학과에 잘 없다는 이야기를 하며, 많이 뽑으려고는 하지만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마치 여학생들이 남학생들에 비해 물리를 잘 하지 못하고 능력이 부족해서 뽑고 싶어도 그러지 못한다는 투였습니다. 저는 이런 이야기를 수백명의 학생들이 듣고 있는 앞에서 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저명한 교수라는 사람이 인식하고 있는 현실이란 그런 것이었습니다.
다시 한번 한국의 아무 대학의 홈페이지에 가서 교수들의 성비를 살펴보십시오. 여교수는 학과당 한명 내지 두명의 전부일 것입니다. 그마저도 최소 한명은 여성 교수를 채용해야 한다는 규정 때문에 명목상 한 명을 채용한 수준이지 그 이상을 채용하지는 않습니다. 여성이 이공계에 진출을 꺼리는 이유는 이공계에 만연해있는 이런 유리천정과 차별 때문이지, 지적 능력의 문제가 아닙니다. 연구실에 가면 본인은 여자 후배를 키우지 않는다는 소리를 자주 하며 여학생들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기 일수이며, 온갖 희롱과 추행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됩니다.
이러한 온갖 고초를 모두 이겨내고 구직시장에 뛰어들면 어떨까요? 과학을 사랑하여 그것을 지속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여기까지 오게되었을 때 마주하는 현실은 그리 달갑지 않습니다. 우선 이 학계의 구직시장에 뛰어드는 구직자의 수가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박사는 많아지고, 그들을 채용할 곳은 한정되어 있거나 점점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혈통과 학벌 프리미엄도 점점 옅어지고 있어 명문 대학의 학위가 곧바로 좋은 자리로 연결되지 않습니다.
임금은 어떨까요? 과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학부과정과 석사, 박사, 박사후 연구과정까지 10~15년 정도의 기간이 소요됩니다. 미국국립과학재단에서 조사한 경력별 소득조사를 기준으로 보면,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과 학사 학위만 가진 사람의 초봉 임금 격차는 2배를 넘지 못하며, 경력이 쌓일수록 그 격자는 점점 줄어듭니다. 대학 졸업후 MBA 2년 과정을 이수한 사람과 이공계 분야에서 7~8년을 투자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한 사람 사이의 임금 격차는 더욱 드라마틱합니다. 2년간 MBA 학위를 받고 금융계에 취업할 경우 예상되는 평생 예상 소득은 약 320만 달러이고, 7년간 박사학위를 마친뒤 취업한 박사의 예상 소득은 201만 달러로 큰 격차를 보입니다. MBA 출신이 받는 스톡옵션과 보너스까지 고려하면 이 격차는 200만 달러까지 벌어집니다. 같은 시간을 투자하여 구직시장에 등장하는 의학계나 법조계의 예상 소득과 비교하면, 이공계의 학위가 가지는 기회비용은 비참한 수준입니다.
구직시장에서 학계에 머물 수 있는 자리는 점차 사라지고 있고, 그나마도 파트타임이 대부분입니다. 연구지원금의 전체 파이는 점차 줄어들고 있고, 그마저도 선택과 집중에 의해 몇몇 연구실이 독점해 가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과학은 ‘출판 하느냐 아니면 죽느냐’의 선택이 아니라, ‘연구비를 지원 받을 것이냐 굶주릴 것이냐’의 문제로 바뀌었습니다. 게다가 연공서열이 건재하고 있을 만큼 과학계는 경직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과학을 지속하는 이유는 오직 과학에 대한 열정 뿐이거나, 방향을 틀기엔 너무 멀리까지 와있거나 둘 중 하나 뿐입니다.
혹시 저처럼, 수능점수로 입학한 대학이 상위 4% 안에 들지 않고, 가정형편이 풍족하지 않으며, 영어를 한마디 하지 못하고, 아인슈타인과 같은 두뇌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부디 이 강을 건너지 마시길 권고드립니다. 앞서 나열한 이 조건들이 모두 충족되고 과학 만큼은 포기할 수 없는 인생의 즐거움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제발 유학을 가시기 바랍니다. 학문은 더럽고, 세상엔 이보다 더욱 가치있고 즐거운 일이 많이 있습니다. 과학이라는 사랑에 눈이 멀어 인생에 있어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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