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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AGRA로 바라본 일본 거대과학연구의 현주소
    과학 2021. 10. 24.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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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KAGRA에서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과 현 상황에 대한 기록이다.

     

    KAGRA의 상황

     

    KAGRA는 동경대 우주선연구소 ICRR의 주도로 현재 건설 중인 2.5세대 중력파 검출기이다. 이 프로젝트는 중성미자 연구로 2015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카지타 교수가 주축이 되어 진행되었기에 초기에 많은 관심을 불러 모았다. 실제로 카지타 교수가 ICRR의 연구소장이 되어 중력파 천문학을 주도한다는 소식이 들리자, 중성미자에서 노벨상을 받고 이번엔 중력파로 한 번 더 노벨상을 수상하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의 중력파 검출기 건설과 중력파 과학 연구는, LIGO나 Virgo에 비해 연구 역사도 짧고 관련 기술의 성숙도도 낮았던 터라 정부로부터 초기 건설 및 운용 예산을 확보하기 쉽지 않았다.  뒤쳐진 기술과 늦은 시작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일본 정부에 내건 약속이 바로 km 규모의 지하 기반 검출기와 극저온 기술의 접목이다. 이 두 기술을 채택하면, 지면 진동에 의한 지구 잡음이나 열적 진동에 의한 양자 잡음을 최소화하여, 보다 넓은 관측 범위와 높은 민감도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제안은 2010년에 거대 극저온 중력파 망원경(LCGT)이라는 이름으로 최초 승인되었고, 2012년 공모를 통해 KAGRA라는 이름으로 최종 확정되었다. 

     

    2014년 터널 공사가 마무리되고 간섭계 구축이 시작되던 당시, KAGRA는 다음과 같은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2015년 1차 시험가동, 2017년 2차 시험가동 후, 2018년 완공 및 관측 가동 시작. 

     

    하지만 1차 시험가동은 1년여 미루어져, 2016년 봄에서야 이루어졌다. iKAGRA로 명명된 이 시험가동은 3km 팔 길이에서 간섭계의 기초적인 작동 여부만을 확인했던 것으로, 당초 계획 한 시험가동의 성격과도 많이 도태되어 있었다. 이 시험가동 이후, 2차 시험가동으로 계획했던 bKAGRA의 일정 역시 연기와 연기를 거듭해, 2018년 중반에 bKAGRA phase-1, 2019년 중반에 bKAGRA phase-2 시험가동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지난해, 2020년 4월에 약 열흘간, 독일의 GEO와 함께 공동 과학 관측 가동 O3GK이 진행되었다.

     

    중력파 검출기의 민감도를 나타내는 척도로 BNS range를 사용한다. 이는 1.4 태양 질량 규모의 중성자별 두 개가 서로 충돌하여 만들어진 중력파가 지구에서 8 이상의 SNR로 신호를 관측할 수 있는 지구에서부터의 거리를 의미한다. 

     

    2019-20년 사이에 LIGO와 Virgo가 수행했던 3차 공동 관측 가동 O3 당시의 BNS range는 110-130 Mpc 정도였음에 비해, KAGRA의 O3GK 관측 가동 당시의 민감도는 700-800 kpc에 머무는 수준이었다. 지하에 건설된 지리학적 이점과 극저온 기술이라는 물리적 이점을 동시에 갖춰 스스로 3세대 관측기라 불리는 KAGRA는 왜, 전세대 검출기들 보다 160 여배 둔감한 감도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비록, 기술적 도전이 정부의 프로젝트 승인과 예산 확보, 홍보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하더라도, 계획의 연기와 연기를 거듭하고 민감도 향상의 가능성이 점점 희박해져 가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없다. 이 같은 기술적 한계와 노하우 부족을 극복하기 위해, KAGRA는 LIGO, Virgo와 MOU를 맺고 전 세계 수많은 연구기관과 대학들과의 협력 관계를 넓혀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KAGRA의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제자리 걸음만을 반복하고 있다.

     

    최근 4차 관측 가동 O4를 위한 준비 위원회 회의에서, O4에 참여하기 위한 조건으로 최소 20 Mpc 이상의 민감도를 가져한다는 조건을 제시하였다. 이어 KAGRA에 이 기준을 O4 전까지 맞출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고, KAGRA 관계자들은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악순환의 고리

     

    흔히 노벨상 수상자의 수로 대변되는 과학 지표만을 놓고 보면, 일본의 과학 수준은 매우 높아 보인다. 실제로 고에너지 이론 물리학이나 응집물리학, 생물학, 의약학 분야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여전히 높은 수준의 연구 성과를 내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서, 이 분야들이 공유하는 한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이들은 대체로 일본이 처음부터 선도하였거나, 독자적으로 왕관을 챙취한 분야들이라는 점이다.

     

    일본의 KAGRA 프로젝트는, 바로 직전 수퍼카미오칸데의 성공을 이끈 카지타 교수와 그 관련 연구자들이 주축이 되어 시작되었다. 때문인지 일본의 연구자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우리는 미국에 비해 절대 뒤처지지 않는다” 거나 “우리는 미국을 이길 수 있다” 같은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듣게 된다. 과학은 경쟁이 아님에도, 과학 연구를 국가 간 경쟁 관계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가 단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국제 공동 연구자들이 일본에 방문하여 협력 연구를 할 때이다.

     

    KAGRA는 기술적 한계와 인력 부족의 문제로 지속적으로 계획이 틀어지고 연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KAGRA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전 세계의 많은 과학자들은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연구자 자신이나 연구실 소속 대학원생들을 직접 파견하여 연구에 도움을 주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막상 해외의 협력 연구자들이 KAGRA의 일손을 거들려 하면, 정보를 공유하지도 않고, 협력을 요청하지도 않으며, 일본인 자신들 만의 미팅을 따로 만들어 외부 협력자를 배제하려 한다. 이 같은 폐쇄성과 배타성은 악순환의 고리를 만든다. 계획은 다시 연기되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체 지지부진한 상태가 지속되어, 일본 연구자들 마저 하나 둘 사기업으로 빠져나가거나 해외로 빠져 나가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자신감과 아집 사이

     

    개인적 경험에 비추어 보면, 일본의 많은 과학자들은 과거 일본의 과학적 업적과 성과들이 보여준 것처럼 일본인 연구자들의 힘 만으로도 충분히 세계적 연구가 가능하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듯이 보인다. 중력파 관측과 관련된 일본 내의 연구가 미국이나 유렵에 비해 충분히 성숙 되고 있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중력파 연구에 강한 자신감을 드러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로 인해, 과학 연구를 국가 간 경쟁으로 인식하고, 타국의 연구자를 배제하려 하는 모습으로 이어져, 연구의 고립과 지체, 인력 유출이라는 현재의 악순환을 만들어 내고 있기도 하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현재 자신들의 위치와 수준,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과거의 영광에 기대어 강한 배타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현재 KAGRA가 직면한 가장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문제라 할 수 있다. 

     

    아래의 사례들은 KAGRA와 해외 연구자들 사이의 공동 연구에 대한 개념적 괴리와 불일치에서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 중 일부이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필자가 직간접적으로 얽혀있는 사건들 이므로, 완전히 객관적일 수 없음을 미리 밝혀둔다.

     

    2021년 여름 - 논문의 주도권 싸움

     

    중력파 검출기는 시공간의 미세한 요동을 감지하기 위해 매우 높은 수준의 감도를 가지고 있다. 대략 1광년의 길이에서 머리카락 두께 정도의 길이 변화를 탐지해 낼 수 있을 정도의 민감도이기 때문에, 지구에서 발생하는 모든 신호와 활동, 양자역학적 요인에 의한 요동까지 모두 잡음으로 기록된다. 대표적으로, LIGO 핸퍼드 관측소에서 200km 떨어진 서부 해안의 절벽에 충돌하는 파도나, 파리에서 떨어진 번개, 심지어 북한의 핵실험 시 발생하는 진동까지도 잡음으로 기록될 정도이다.

     

    중력파 검출기는 이러한 다양한 환경적 요인에 의한 잡음뿐만 아니라, 기기 내부적 요인 혹은 시스템 상의 문제로 발생하는 유령 잡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잡음의 영향을 받는다. 검출기의 민감도를 올리기 위해서는 이들 잡음의 원인을 파악하고 제거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검출기에는 20만 개 가량의 보조 채널을 가지고 내외부의 신호를 기록하고 분석한다.

     

    우리는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정보이론을 활용한 채널 사이의 상관관계 분석 툴을 개발하였다. 나는 개발한 툴의 유효성 검증과 성능 평가를 위해, KAGRA의 O3GK 데이터에 적용 후 그 분석 결과를 KAGRA 데이터분석 주간 미팅에서 공유하고 다양한 의견을 듣는 과정을 거쳤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분석의 유효성과 도구의 신뢰성에 대한 확신을 얻자, 우리는 곧바로 논문 작성 작업과 4차 관측 가동 O4에 사용될 분석 파이프라인 등록을 위한 백서 초안 작업을 진행하였다.

     

    KAGRA는 국제협력 프로젝트인 만큼 KAGRA의 데이터를 사용하여 논문을 출판할 경우, KAGRA 논문 출판 위원회의 심사를 사전에 거쳐야 한다. 기본적인 절차는 다음과 같다. 1. 논문 심의 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하고, 2. 전체 협력 연구자들에게 회람 및 의견 수렴 이후, 3. 연구 성과 발표, 4. 최종 승인을 얻어, 5. 가출판 및 학술지 투고를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절차에 따라 논문 심의 위원회에 논문 초안을 투고했다. 그런데 위의 바로 첫 번째 단계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논문 출판 심의 위원회에 이 논문이 접수되자 가장 먼저 저자 목록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다. 이 논문에서 소개된 분석 결과의 유효성을 확인하는데 자신들의 기여가 충분히 있다고 여겨짐에도 저자 목록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것은 매우 합리적인 문제 제기였기에 우리는 이를 곧바로 수용하여, 수정안을 제출하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른 유형의 저자 목록에 대한 문제 제기가 튀어나왔다.

     

    이 논문은 KAGRA의 O4 백서에 올라가 있고, 데이터 분석 미팅에서 주로 논의되고 다루어졌기 때문에, 이 논문에는 데이터 분석팀 전체의 이름이 저자로 올라가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 주장은 데이터분석팀 체어로부터 제기된 것이었다.

     

    우리는 공저자들과 이 문제를 논의하였고, 저자수가 수십 명 수준으로 늘어나게 되긴 하지만, 넓은 마음으로 이 또한 수용할 수 있다는 합의에 이르렀다. 체어에게 관련한 의견을 전하고 구체적인 사항을 논의해 나가는 와중에 현재 진행 중인 논의 내용과는 별개로, 갑자기 모든 KAGRA 멤버들에게 전체 이메일로 자신의 의견을 발송해 버린 것이다.

     

    요는 다음과 같다. ‘저들이 KAGRA의 데이터 만 가져가서 분석 결과를 얻고 그것으로 논문을 쓰려고 한다. 이것은 우리의 노력을 짓밟고 무시하는 행위로, 체어로서 이 논문의 출판을 승인할 수 없다’는 식의 주장이었다.

     

    데이터 분석팀 멤버 모두를 저자 목록에 넣는 것도 가능하다는 논의 와중에 발송된 이 전체 이메일로 인해, 구체적인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수 많은 일본 내 과학자들로부터 공격적인 답신이 줄을 이었다. 단순한 공감의 의사 표시에서부터 ‘몇몇 연구자들이 자신들의 성과를 “훔쳐”간다’ 거나, ‘데이터 도둑’이라는 노골적인 표현을 써가며 비난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자정이 가까워지고,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KAGRA의 시니어 그룹이 진화에 나서며 상황은 우선 일단락이 되고, 사건의 경위와 진상 파악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이 사태로부터 KAGRA에 속한 일본 연구자들이 국제협력 연구자들을 대하는 태도를 분명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자신들은 일본에서 장비를 만지고 관리하며, 허드렛일을 하며 고군분투하고 있는데 멀리서 서버로 데이터만 가져다가 논문이나 쓰는 파렴치한 자들로 우리는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목격한 것이다. 

     

    이것이 일부의 KAGRA 멤버들만 가지고 있는 생각이 아니라는 것이, 답재한 여러 이메일들로 확인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우리를 당황하게 했던 것은, KAGRA의 데이터 분석팀이 그간 어떠한 독자적인 분석 툴도 개발하지 못해 LIGO와 Virgo의 소프트웨어들을 그대로 가져가 쓰는 수준임에도, 다른 연구 그룹에서 새로운 툴이 개발되고 논문이 나오자 자신들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왔다는 점이었다. KAGRA가 LIGO와 Virgo의 데이터와 소프트웨어를 가져다 쓰는 것은 괜찮지만, KAGRA의 데이터를 쓰고 KAGRA에서 테스트 했다면 KAGRA의 소유이고 저자 목록 또한 모든 저자가 포함되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실제로 이 근거로, O4 백서에 우리가 개발한 툴의 이름이 KAGRA 카테고리 아래에 올라가 있음을 들었다. 백서는 O4에 대한 계획안일 뿐이다.

     

    2021년 늦여름 - 역량의 한계

     

    KAGRA는 3세대 중력파 검출기를 계획하고 10년 가까이 개발을 지속하고 있지만, 미국의 2세대 검출기에 비해 감도가 160배 이상 낮은 것에서 드러나듯, 자체 역량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국제협력팀에 도움의 손길을 뻗거나 적극적인 도움을 원하지 않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도 적극적으로 화답하지 않는다.

     

    이런 역량의 한계가 극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바로 2020년 4월에 열흘간 이루어졌던 O3GK 데이터 분석 및 논문 작성 과정이다.  1년 6개월이 지나는 동안 단 열흘간에 가동된 관측 데이터의 정량적인 분석 결과를 내놓지 못하고, 관련 논문 작성도 연기에 연기를 거듭하고 있다.

     

    최근 데이터 분석 미팅에서는, KAGRA의 데이터 분석팀 소속의 박사 두 명이 1년여간 투입되어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한국의 대학원생 한 명이 약 두 달 만에 그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한 일이 있었다. 

     

    총체적인 역량 부족이 누적되고 있고, 그 속에서 미래를 보지 못하는 연구자들은 민간 기업이나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지만, 국제협력관계는 여전히 경쟁적이다.

     

    2021년 봄 - 미팅 중 협력 연구자를 대하는 태도

     

    현장의 연구자들은 주로 일본인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기기 관련 미팅은 대부분 일본어로 진행된다. 나는 새롭게 개발 중인 툴로 얻은 분석 결과 중에 하드웨어 단위에서의 특이점을 몇 가지 발견하여, 기술적 조언을 얻기 위해 이 미팅에 참여하여 의견을 물었다. 이 미팅에 참여한 뒤로 나는 몇몇 기기적 결함이나, 지진의 영향, 낙뢰시 발생하는 자기장 요인에 의한 잡음 등, 분석 결과에 대한 보고와 다양한 조언 및 의견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O3GK 데이터에서 전혀 새로운 유형의 현상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결과는 지면 진동에 의한 잡음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하에 검출기를 건설하였음에도, 그것이 특정 영역의 환경 요인에서는 잡음을 걸러내지 못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현상의 내용 뿐만 아니라 그 원인에 대한 가설 또한 매우 도전적이었기에, 모든 연구자들은 그날 날카로운 질문을 이어나갔고, 미팅 이후에도 이메일과 슬랙을 통해 수많은 질문을 받았다.

     

    사건은 그 수많은 질문이 쏟아진 날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뒤의 미팅에서 발생하였다.

     

    이번에는 분석 결과에 대한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반론이나, 질문이 아니라, 조롱이 이어졌다. ‘너는 산수나 구구단은 이해하고 그런 주장을 하냐’는 식의 몇몇 질문이 이어졌고, 나는 이 자리에서 심한 모욕감을 느꼈다. 이것이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외국인 연구자에게만 특별히 가해진 일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일본인 연구자들 혹은 학생들에게 이런 언사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매우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2018년 겨울 - 소통의 문제

     

    2019년 1월, 네이처 천문학 저널에 KAGRA에 관한 리뷰 논문이 등재되었다. 이 논문은 당시 KAGRA 이사회 멤버 5-6명이 주축이 되어 작성 중이던 논문으로, 실제 논문을 작성한 이사회 멤버들의 이름만 저자 목록에 실릴 예정이었다. 카지타 교수 역시 이를 승인한 상태였다.

     

    그러나 이 논문이 가출판 되고, 네이처에 실리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자, 이 논문의 저자 목록에 전체 멤버의 이름이 올라야 한다는 주장이 강력하게 제기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요구는 내부에서 강력하게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결국 실제 논문 작성에 참여했던 이사회 멤버들은 전체 저자로 하는 것으로 하고 논문을 네이처에 최종 투고했다.

     

    논문이 출판되자 카지타 교수로부터 짧은 이메일이 하나 도착했다.

     

    “Why full authors?”

     

    이 일로, 이 프로젝트의 PI 조차 알지 못하는 일이 아래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2016년 - 논문 절도

     

    2016년, 한국 중력파 그룹의 데이터 분석팀이 주도하여 개발하고 있던 데이터 분석 도구의 아이디어와 결과를 KAGRA 데이터 분석팀이 훔쳐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개발 프로젝트는 2014-15년 사이에 진행된 것으로, 한국팀이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그것을 KAGRA 데이터에 접목하여 얻은 결과를 KAGRA 팀과 협력하여 분석했던 것이었다.

     

    관련 연구 결과는 F2F 미팅이나 국제워크숍 등에서 공유되며 소개되었고, 한국 그룹 주도의 연구 과제임을 각인시켜왔다. 그러던 어느 날, 함께 분석 결과를 논의하던 KAGRA의 당시 데이터 분석팀 체어는, 이 아이디어를 그대로 가져가 대학원생의 실적을 위한 논문으로 사용하여 몰래 출판해 버렸다.

     

    이에 한국 그룹은 크게 반발했지만, 돌아온 KAGRA 측의 대답은 우리를 매우 당황케 만들기 충분했다.

     

    “원래 그런 거다”

     

    이 논문은 그대로 학술지에 투고되어 등재되었고, 이 사건은 KAGRA 내에 알려지지도 않은 체 조용히 묻혀 지나갔다. 이 논문으로 졸업한 학생은 박사학위를 수여 받고 KAGRA에서 연구를 이어나가고 있다. 그리고 이를 주도한 당시의 체어는 일본 내 한 대학에 교수직을 얻어 자리를 옮겼다.

     

    사건의 해결 과정과 지금의 KAGRA

     

    시간 순서대로 사건의 해결 과정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논문 절도 사건은 한국 그룹의 데이터 분석팀의 KAGRA 협력 중단으로 이어져, 최종적으로 카지타 교수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이후 카지타 교수의 중재로, 한국에서 만나 그 일을 주도한 이는 체어는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는 선에서 마무리 되었다. 논문은 그대로 학술지에 등재되어 있으며, 이 일은 KAGRA내의 극 소수의 연구자들만이 기억하는 상태로 묻혔다.

     

    거대과학그룹의 경우 저자 목록과 관련한 논란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그러나 KAGRA는 연구 기여도를 기준으로 저자 목록 작성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장비에 조금이라도 닿았다면, 그 연구의 성과와 논문은 KAGRA의 소유임으로 전체 저자로 나가야 한다는 주장을 매번 반복 하고 있다. 이러한 KAGRA 성향 때문에, 해외의 연구자들은 KAGRA와 관련된 연구를 하더라도 KAGRA의 데이터를 사용하지 않거나 KAGRA에 대한 직접 언급을 피하는 방식으로 연구를 하고 논문을 구성하고 있는 실정이다. 재미있는 점은, LIGO에 참여하는 일본의 KAGRA 멤버들은 LIGO에 그러나 요구를 하지 않고, 일본 내 연구팀의 KAGRA 논문 출판 시에는 짧은 저자 목록을 승인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겪었던 모욕적인 경험은 KAGRA 다양성 위원회에 회부되어 논의 중에 있으나, 수개월 째 아무런 진전이 없는 상태이다. 이대로 묻혀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도둑’이라는 표현까지 들었던 논문은 현재 KAGRA의 논문 출판 심의위에서 수개월째 개류 중이다. 이유는 이 논문에 O3GK 데이터를 사용한 분석 결과가 실렸는데, 정작 KAGRA의 공신적인 O3GK 논문이 아직 작성 중이라는 것이었다. 1년 6개월 동안 10일간의 데이터 분석을 마치지 못해 논문이 끝도 없이 연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이 분석을 위해 손을 벌리는 일은 없다. 이 때문에 저자 목록에 관한 논쟁도 잠정 중단된 상태로, 이사회는 이 논문과 관련된 모든 이슈를 아이스박스에 넣어두었다. 

     

    다만, 국제협력 연구자들을 향해 망발을 발설했던 몇몇 교수와 연구자들에 대한 진상 조사가 이루어졌고 그 결과를 통보 받았다. "훔친"이라는 노골적인 단어를 사용했던 한 교수는, 맥락 없이 받은 전체 매일의 내용만을 보고 오해 해서 나온 실언임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정도의 진전은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사건의 원인이 되었던, 데이터분석팀의 체어을 포함하여 그 이외의 연구자들은 여전히 같은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대접을 받으면서 까지 KAGRA를 위한 연구를 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여, KAGRA 데이터 분석팀에서 나왔다. 그리고 우리는 개발된 툴을 KAGRA 측의 백서에서 지우고, KAGRA와 관련된 모든 서버에서 이 것과 관련된 코드, 설명, 문서를 모두 삭제하였다.

     

    KAGRA와 협력하던 한국의 많은 연구자들은 이 사건들을 계기로 KAGRA를 떠나 LIGO로 향했다. 심지어 일본 내의 연구자들도 LIGO나 Virgo 연구 그룹으로 떠나거나, 아예 과학계를 떠나고 있다. KAGRA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단면이, 전체 일본 과학계의 모습을 표상한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현재 일본 과학계에 드리운 그림자는 분명히 관찰할 수 있다.

     

    과거의 영광에 취해, 현재의 위치와 역량 파악이 되지 않고, 나-조직-국가를 하나로 묶는 전체주의적 사고를 과학그룹에까지 적용하여, 폐쇄적이고 배타적으로 국제협력연구그룹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KAGRA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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