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lavinka


‘쓸데 없는 짓 그만해라’ 라는 말을 듣고 나는 말문이 막혔다. 실험이나 열심히 하라는 교수의 다그침 아닌 다그침에는 어떤 혐오나 몰이해도 함께 묻어있었다. 얼마전 한 교수와의 대화에서 특정 과학철학용어의 사용과 소칼에 대한 의견 차이가 오해와 오해를 거듭해 관계가 완전히 틀어졌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인지 그냥 조용히 듣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문득, 스노우의 두 문화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한쪽 극에는 문학적 지식인이 그리고 다른 한쪽 그에는 과학자가 있다. 그리고 이 양자 사이는 몰이해, 때로는 적의와 혐오로 틈이 갈라지고 있다.’고 말한 스노우의 말을 비아냥 거려왔지만, 이 날 만큼은 어쩌면 그것이 실제하고 있지 않는가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 순간이었다. 어쩌면 두 문화.


어제 새벽이었다. 먹물들은 모르는게 생기면 책을 찾아본다는 이상한 습성 아닌 습성이있다. 그리고 스노우가 말한 그 두 문화라는 것이 등장하게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 케인즈와 하이에크도 읽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걱정아닌 걱정을 하며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런 책들을 읽을 때면, 읽은 책의 페이지 수보다는 남은 페이지 수와 시계를 신경쓰며 읽게 된다. 방금 읽었던 문장은 생각나지 않고, 무슨 말인지 파악하지 못해 다시 한번 읽으면 무슨 말인지 더 모르게된다. 그렇게 한 줄 한 줄을 읽어나가다 날이 밝아 올때 즈음에 왼손이 집고 있는 책장의 수는 수 페이지. 그렇게 어설프게 몇 시간 독서를 하다가 침대로 몸을 던진다.


책 앞에 앉는 나는 책을 손목 받침대 삼아 유튜브를 뒤적거린다. 그리고 몇 시간이 흘러 다시 책을 손에 쥐고 다시 몇 분이 흘렀을까. 슬슬 눈이 감기기 시작한다. 날씨가 쌀쌀해졌다. 비까지 추적추적 내린다. 감기 기운이 느껴진다. 나의 몸은 이미 이 책을 전적으로 거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쓸데 없는 짓. 육체와 정신을 스스로 고문하고 있는 이런게 바로 쓸데없는 짓 아닌가. 교수의 통찰과 해안에 찬사하지 않을 수 없다. 대체 누가 그런 말을 했단 말인가. 비움으로써 체워나가는것. 배움과 깨달음. 그것으로부터 오는 지적 쾌감. 다 부질없는 소리가 아니겠는가. 이래서야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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