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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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와 충돌하지 않고 착륙하는 방법책 2022. 1. 1. 13:17
마지막 기내식을 준비 중이던 비행기 내부에, 기장으로부터 긴급한 안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도착 예정지의 활주로가 사라져 가고 있으며, 새로운 착륙 지점을 찾기 위해 현재, 하늘을 선회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승객들은 우왕좌왕하며, 지금이라도 바다 위에 연착륙을 시도 해야 한다거나, 다시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야 한다거나, 기장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소리쳐보기도 했지만, 지금 이 비행기 안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것을 이내 직감하게 되었다. 추락하는 비행기에서 굴욕적으로 생을 마감하는 것이 승객들에게 주어진 운명인 샘이었다. 남은 기내의 음식들을 먹으며 즐거워할수록, 창밖의 풍경이 더욱 환하게 반짝일수록, 밤하늘의 별들이 더욱 창백하게 불타오를수록, 사람들의 가슴속에서는 슬픔과 좌절, 분노가 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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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쳐지나간 책들에 대한 짧은 소감책 2021. 12. 28. 11:34
# 밤의 유서 소피의 세계로 유명한 요슈타인 가아더의 신작 소설이다. 소피의 세계는 학부시절 서양철학을 공부하며 읽었던 책 중에서, 소설 형식으로 철학자들의 철학과 개념들을 알기쉽게 접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장 기억에 남아있는 책 중 하나이다. 그런 기대를 가지고 이야기 속에서 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곱씹고 생각하며 읽어 내려갔다. 하지만, 마지막 챕터로 포함되어 있는 강신주 박사의 해설을 읽고 책을 집어던지고 말았다. 책을 읽은 독자들이 스스로 이야기를 곱씹고 해석하고 즐기는 재미를, 해설 챕터 하나로 말살 시켜버렸기 때문이다. 사실상 이 부분은 밤의 유서를 해석하는 방법에 유일한 정답을 제시하고 강요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이 책에 어떤 심오한 철학적인 메시지가 있다고 홍보 해야만 한다는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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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죽음과 자본주의의 미래책 2021. 12. 25. 12:11
판데믹은 진보 종말 시대의 모습을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다. 많은 이들이 일자리를 잃고 수많은 자영업자들이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재난 속에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을 보호해줄 사회적 안전망은 부족했고, 사회적 취약 계층과 플랫폼 노동자들을 보호해 줄 시스템이 전무했다는 것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만일, 우리의 사유 재산이 풍족하지 않고 부모 조차 우리의 발판을 마련해주지 못한다면, 우리는 곧장 바닥 아래로 추락하고 만다는 것이 그 어느 때 보다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부의 불평등에서 감염병 재난까지, 개인이 어찌 할 도리 조차 없는 외부 요인들로 제한되는 기회에, 우리의 주체는 갉아 먹히고 결국 무너져 내리고 만다. 무너진 주체는 삶의 의미와 존엄성, 자부심, 자존심을 흔들며 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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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등감과 냉소로 빚어진 사회책 2021. 12. 18. 10:27
장면 하나.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항상 구설수에 오르내리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대학원 시절을 함께 보낸 동기들 중에도 당연히 그런 친구가 한 명 포함되어 있었다. 이 친구는 늘 활동적이고, 활발하고, 무엇이든 적극적인 매력적인 친구였다. 게다가 수석 입학으로 매학기 등록금에 해당하는 장학금을 졸업까지 현금으로 지급되는 혜택도 받고 있었으니, 물리학과의 인싸 중의 인싸라 할 수 있었다. 그런 그가 구설수에 늘 오르고 내린 것은 바로 이 수석 입학자 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특혜 아닌 특혜 때문이었다. 이곳은 연구중심 대학으로 석차에 상관없이 학생이기만 하면 전액 장학금과 생활비 보조, 연구 지원금 심지어 식비 보조금까지 받으며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그런데 입학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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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태도가 과학적이길...책 2021. 11. 27. 15:54
엘리베이터에 타면 여전히 음이온 작동 표시등이 밝게 빛나는 모습을 본다. 많은 사람들은 감기에 걸리면 약국에서 아세틸 살리릴산을 사 먹지만, MSG가 들어간 음식은 독극물이나 화학약품이 들어간 것 처럼 여겨 최대한 피하려 한다. 연일 몸에 좋은 음식과 건강을 이야기하며, 염화나트륨 보다는 소금을 먹는 것이 건강에 좋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건강을 위해 아스팔트에서 추출한 비타민으로 만든 영양제는 꼬박꼬박 챙겨 먹기도 한다. 선풍기 괴담이나 전자파 공포도 여전히 지천을 떠돌고 있고, 심지어 과학자의 입에서 거짓 지구온난화와 코로나 백신 음모론까지 나오기도 한다. 과학자의 정체성을 가지고 위와 같은 이야기를 듣거나 유사한 모습들을 볼 때면 욱하는 기분이 많이 든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하고 고쳐야 할지 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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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인문학 편지책 2021. 11. 9. 08:57
과학에 관심을 가진 많은 이들에게, 여러분은 혹시 칼 세이건의 창백한 푸른 점’을 읽어 보셨는지요. 책을 읽어보진 못했더라도, 보이저 1호가 태양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전송한 사진 한 장에 대해서는 어렴풋이 알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광활한 우주 속의 작은 티끌과도 같은 우리 고향의 모습 말이지요. 그는 이 사진을 소개하면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여기 있다. 여기가 우리의 고향이다. 이곳이 우리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 당신이 들어봤을 모든 사람들, 예전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이 이곳에서 삶을 누렸다……. 인간 역사 속의 모든 성인과 죄인들이 여기 태양빛 속에 부유하는 먼지의 티끌 위에서 살았던 것이다.”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말을 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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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책 2021. 10. 16. 20:44
개인은 누구나 자신만의 고귀한 자아를 형성하고, 그것을 세상으로부터 널리 인정받기 위한 욕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우아하게 실현할 수 있는 개인은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권력을 지닌 극소수에 지나지 않기에, 우리들 대부분은 집단을 형성하여, 우리가 속해 있는 공동체의 이익을 통한 자아 실현을 꿈꾼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공통체의 성공과 안정을 위해 열과 성을 바치며, 사회 전체의 해악이 될 지 모르는 일 조차 공동체를 위해서라면 사회적 도덕성 마져 쉽게 내던져 버리곤 한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고 그 시세 차익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이들에 대해, 다음 세대에 대한 걱정과 연민을 이유로 그들을 도덕적으로 비난하며, 법적 제도 개선을 요구 하는 모습에서 개인은 이타적이며 도덕적이다. 그와 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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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길에서 헤매일 때책 2021. 10. 11. 10:06
학부시절 수학은 그저 학점을 쉽게 따기 위한 손쉬운 과목 정도로 여겨졌다. 물리학에서는 운동방정식을 세우고 복잡한 미분방정식을 풀거나, 확률 문제를 계산하고, 벡터 공간에서 장을 계산하는 것 등이 일상이었기 때문에, 수학관련 강좌들에서 좋은 학점을 따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정확히는 않았다고 생각했었다. 왜냐하면, 학부 4학년 수학 과목을 듣기 시작하면서 이 생각이 순진한 착각이었음을 인지하기 시작해서였다. 강의 시작과 함께 칠판을 가득 체워 나가는 수 많은 공리와 정의, 정리, 따름 정리를 노트에 받아 써내려가며, 그동안 내가 알던 수학은 수학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아갔다. 기본적인 수학의 구조들 사이의 관계와 공리를 조합하여 새로운 정의를 이끌어 내고 증명하는 과정은 정신을 아득하게 만들기 충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