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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구리 선생님의 초끈이론입문
    2017. 2. 10.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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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이제 시간과 공간은 서로 독립되어 있지 않으며, 상대 속력과 중력의 세기에 따라 시간이 흐르는 속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내용을 상식처럼 알고있다. 우리의 감각 경험은 분명하게 공간과 시간이 서로 독립되어 있는 것으로, 공간 내에 존재하는 물질 역시 공간에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인 것으로 여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공간과 시간에 대한 관념을 우리의 감각경험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추상화하고 다시 한번 관념화 시켜버렸다.


    우리가 일생을 거쳐 쌓아온 감각경험과 상치되는 물리학의 이같은 주장을 ‘이론’이 아닌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지난 100년 간에 걸친 끊임없는 실험과 관측에 성공적으로 살아 남았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해 한 이론이 가설이 아닌 하나의 과학 이론으로써 받아들여 질수 있다는 것은 검증의 시험대를 버티어 냈다는 의미와 같은 것이다.


    물리학자를 꿈꾸는 물리학도들, 그 중에서 이론 물리학에 관심을 가진 학생들의 경우라면 ‘끈 이론’이라는 이름을 한 번 쯤은 들어 보았을 것이다. 마치 물질의 형상은 감각경험에 의존하지 않는 불변의 형상인 기하학에 기인한다는 플라톤의 말이 다시 되살아 난 것처럼, 이 이론은 과감하게 물질의 근원은 끈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 끈의 진동에 의해 우리가 알고 있는 입자들과 힘들이 만들어 진다는 것이다.


    듣기만 해도 멋지고 아름다운 이 이론은 중력과 전자기력, 약력, 강력을 조화롭게 통일시키는 만물이론의 강력한 후보 이기는 하지만, 현재 우리가 알고 있고, 검증된 것으로 여기고 있는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 조차 완전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나마도 각종 난해한 현대 수학을 총 동원하여 관측된 사실에 끼워 맞추는 작업의 결과로 현재 우리의 우주가 10차원 이나 11차원, 32차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하고 있기까지 한다. 당연하게도 이같은 주장들의 검증은 요원한 상태다.


    “그렇다면 끈이론이 ‘과학 이론’이기 이전에 과연 ‘과학’이기는 한 것인가?”


    조금은 특이하게도 바로 이 질문이 내가 끈 이론은 공부 하겠다는 마음을 굳히게 된 계기이자 동기였다. 끈이론이 과학이론이 아님을 역설하거나, 또 끈 이론의 논리 체계가 아닌 다른 근원적인 이론을 찾아 나서거나, 끈 이론을 검증 가능 영역으로 확장 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품고서 이 분야에 발을 내 딛기 시작했지만,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가장 먼저, 이론 물리학을 공부하는 학생들 이라면 끈 이론을 다루기 이전에 양자 장론을 반드시 습득 해야만 한다. 이것으로부터 강력과 약력을 서술하고, 쿼크를 서술하며, 힉스 입자를 등장 시키는 등의 현대 입자물리학의 풍경을 조망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양자 장론이 서술하는 수학적 언어와 헤석 방법 등이 기존의 양자 역학 과는 상당히 다르다는 점에서 발을 내디딤과 동시에 곧바로 거대한 장벽에 부딛히게 되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한 세기 동안 역사에 이름을 남긴 수백명의 천재 과학자들이 이룩해 놓은 이론 체계를 단 몇 권의 책으로 한 두 학기 만에 모두 다 이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이러한 시도 자체가 무모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시간은 제한되어 있고, 제한된 시간 내에 학자로써의 자격을 부여 받으려면 이 무모한 시도를 반드시 성공 시켜야 한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거대한 장벽을 보다 효율적으로 올라갈 수 있을까?


    많은 경우에 각종 책과 자료, 강의들을 접하며, 가랑비에 옷이 젖어드는 듯한 익숙함으로 이 과정을 거치거나, 우선 암기하고 나중에 이해하거나 하는 방법을 사용한다고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방법들을 그리 선호하지 않아서 한참을 방황하고 곤란해 했던 기억이 역력하다.


    언젠가 6시간 정도로 특수상대성이론을 강의할 기회가 주어져서 강의를 준비한 적이 있었다. 이때 나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공간 개념이 어떻게 정착되고 부정 되며 반증되어 가다가, 뉴턴의 관점에 이르게 되었는지, 그리고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시공간의 개념이 어떻게 암시되어 아인슈타인에 의해 정식화 되었는지 등의 2천여년에 걸친 공간개념의 변천사만 두 시간을 할애하며 강의를 시작했다.


    하늘에서 떨어진 듯한 개념과 논리로 수식을 던져주고 계산을 해가며, 문제를 풀어 나가는 과정이 아닌 개념의 변천 과정을 이해하며 따라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고집 아닌 고집 때문에 이 같은 강의 구성이 등장 한 것이었다. 방황과 곤란의 이유가 바로 이 쓸데없는 고집 때문이었다.


    이 사이의 연결고리를 다루며 동시에 물리학을 서술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고에너지 입자물리학 분야의 저술들의 경우 비전공자를 대상으로한 교양서가 대부분인데, 전공자가 읽으면 수박 겉핥기도 안되는 내용에 과학자들 사이에 있었던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다루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기에 교과서 수준의 전공책으로 들어가면 전문가를 위한 백과사전 식의 책이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그 중간 수준의 교과서는 찾기 쉽지 않다. 개념의 변천사를 다루면서 전공자를 위한 입문서적 물리학 책은 이 분야에는 없는 것일까?




    그런 의문을 품으며 방황하다가 우연히 한 권의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일전에 블로그에서 ‘계산된 위험을 감수하는 것’ 과 ‘쓸모없는 연구의 효능’ 이라는 제목으로 번역하여 소개했던 오구리 히로시 교수의 ‘초끈이론입문’ 이라는 제목의 책이 그것이다.


    책은 일반 대중을 위해 쓰여졌지만, 책의 제목이 ‘엘러건트 유니버스’나 ‘숨겨진 우주’, ‘신의 입자’,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 등과 같이 흥미를 유발할 것 같은 제목이 아닌 ‘초끈이론입문’이라고 당당하게 적어둔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반과 기대반으로 책을 구매하여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책은 정확하게 초끈이론 입문의 입문 책으로써 손색이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표준모형에서 다루는 일부 난해한 개념들과 끈이론과 초끈이론의 차이 등을,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누구나 알기 쉽게 하지만 얼버무리지 않은 설명으로 수학과 물리학을 차근차근 설명해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고에너지입자물리학 분야의 공부를 시작하려고 하는 학생들이나 이 분야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일반인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얇은 두께에 쉬운 문체로 얼버무림 없이 현대 입자 물리학의 구조를 하나하나 설명해 나가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현재 일본어로만 출간되어 있어 국내엔 소개되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이 책이 꼭 번역되어 소개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이런 마음을 담아 개인적인 취미로서 그리고 책 내용을 다시 한번 머릿속에 정리 한다는 의미에서 주석을 달아가며 조금씩 번역을 해볼 예정이다. 물론, 이 작업의 결과가 출판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을테니 향후에 훌륭한 번역자나 뛰어난 물리학자의 정확한 번역본이 나오길 기대하면서.


    그런데 여기서 무엇인가 이상한 점을 하나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앞서서는 끈 이론이 과학인지 의심스럽다 라고 이야기 했다가, 이제와서는 끈 이론 관련 책을 추천하고 또 번역까지 하겠다고 말하니 말이다. 끈 이론이 틀렸고 과학적인 이론이 아니라면 다른 방법을 찾아 나서야 하는것 아닌가? 끈 이론에 계속해서 매달리는 이유가 무엇인가?


    끈 이론은 지금 길을 잃고 표류하고 있는 상태이다. 만물의 이론으로 등장해, 몇 번의 폐기될 위기를 맞았고, 그 때마다 새로운 수학과 개념을 도입 하면서 위기를 극복해 나갔지만 그것도 이제는 한계에 도달한 것이다.


    끈 이론이 다루고 있는 수학의 대표적인 예가 아래의 공식이다.


    1+2+3+… = -1/12


    양의 정수를 1부터 차근차근 무한대까지 더해 나가면 음의 무리수가 나온다는 오일러 공식이 그것이다. 초공간이라는 수학적 개념을 도입하고 여기에 고차원 대칭 문제와 위상기하 문제 등을 도입해 나가면서 이론을 전개해 나가는 것이다. 최근엔 홀로그래피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


    이런 난해하고 복잡한 수학을 총동원하고도 새로운 물리학적 해석이나 새로운 예측 보다는 현재 실험으로 입증된 표준모형이나 일반상대성이론을 설명하기 위한 일 조차도 벅차다. 원격작용 문제를 입자물리학이 매개입자를 통해 설명하고, 뉴턴은 미처 설명하지 못했던 만유인력 법칙의 원인을 일반상대성이론에서 시공간의 곡률로 서술했듯이, 보다 큰 그림을 그리는 새로운 이론이 등장 하면 기존에 주어졌던 물리적 현상의 원인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할 텐데, 끈 이론은 여기에 한참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마나의 새로운 예상 입자나 시간, 암흑물질, 암흑에너지 등에 대한 어렴풋한 해석등의 검증은 불가능에 가까운 수학적 추측에 머물고 있는 수준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일부 과학자들은 수학적 정합성을 만족한다면 검증이 필요 없다는 과감한 주장까지하며 검증의 잣대를 비켜나가려고 까지 하고 있는 상황이다.


    누군가는 지금의 끈 이론이 장님의 코끼리처럼 실체의 일부만을 만지고 있을 뿐 옳은 방향을 향해 나아간다고 말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애드워드 위튼이라는 교주 아래 모여든 종교집단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방향을 바꾸기엔 관성이 너무나 커졌기 때문이라 말하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현재 끈 이론이 처해있는 상황을 잘 설명하고 있다는 데는 이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있는가? 





    이 질문이 바로 끈 이론에 재기되는 문제의 핵심이다. 20세기를 호령한 표준모형 이론이 마침내 힉스입자까지 발견하면서 완전히 입증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살을 들여다 보면 그리 엄밀하고 논리적인 이론 체계라고 보기엔 부족한 점이 많다. 양자역학이 등장한지 100여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 의미를 이해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 역시 현실이며, 블랙홀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것이 없다. 어쩌면 우리는 처음부터 잘못된 길에 들어선 것인지도, 어쩌면 아직 갈길이 먼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명확한 사실은, 과도한 걱정일수도 있겠지만, 현재의 이 상황을 타개하지 못한다면, 20세기를 호령 했던 물리학이라는 학문은 생명공학과 정보통신기술 등에 밀려 뒷방의 늙은이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적어도 끈 이론에 한해서는 그러하다.


    그래도 끈 이론을 계속하고 있는 이유는 지피지기를 위해서 이거나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없기 때문 이거나, 예산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고에너지 이론물리학 분야 이기 때문 이거나 등등이다. 지피지기를 통해 새로운 변혁의 세대가 되고 싶지만, 절대 그 주체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이 책을 소개하는 시점에서 부터 이미 자명하다. 그렇기에 혁명적 구세주의 재림을 기원하지만, 역사가 알려주는 것처럼 그런 구세주는 스스로 등장 하지 않는 것 역시 자명하다. 언제나 민중 과학자들이 만드는 거대한 거인이 만들어 졌을 때 비로소 그 어깨 위에 서게 되는 것이다.


    거인을 잉태하는 그 긴여정을 시작하는데에, 어쩌면 잘못된 길에 들어서는 데에, 가벼운 발판을 제공해준 책을 만난것에 대한 반가움으로 이 책을 소개했다. 혹시나 끈 이론이 어떤 내용을 품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가벼운 마음으로 이 책을 읽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혹시나 어떤 매력을 느껴 같은 길을 걷고자 하는 분이 계시다면 인생의 잘못된 선택을 하지 말것을 강력하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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