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lavinka


학문의 태동은 단순했다. 수렵, 체집에 따른 이주 생활에서 농경과 가축에 의한 정착 생활로 변화되어 가며, 인간은 보다 효율적이고 예측 가능한 농경 방식을 이용하기를 원했다. 때문에 언제 비가 올 것이며, 년중 날씨 변화는 어떠하고, 어떠한 기후 조건에서 농작물이 더 효율적으로 자라는지에 대한 물음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자연철학의 탄생은 이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천둥이 치고 번개가 번쩍이며, 비가 내리는 것에 대한 자연적 물음의 대답은 신화였다. 비가 내리는 이유는 토어 신이 망치를 휘두르기 때문이라는 결론은 자연철학적 고찰의 결과였으며, 이러한 사유의 결과는 제물을 바치는 종교행위와 의식으로 이어졌다. 오딘 신, 프로이 신, 프로야 여신, 호드 신과 발더 신 등에 대한 수 많은 신화는 이러한 자연철학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로부터 발생하였다.

농경에 대한 이해는 잉여작물을 생산하게 만들었으며, 각 지역 별로 발생한 문명국들 사이의 상거래가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상거래는 기본적으로 등가교환과 이윤을 목적으로 한다. 때문에 거래의 대상인 인간에 대한 물음이 태동하게 되고, 상업의 발달로부터 자연철학에서 인문철학으로 인간의 본성에 대한 탐구가 시작되었다.

자연은 어떻게 작용하며, 선과 악 사이에는 왜 항상 싸움이 벌어지는지, 인간의 마음은 어떠한 형태를 가지고 있으며, 어떻게 사유하는지에 대한 물음은 현대의 학문에서도 역시 유효하다.

자연을 이루고 있는 기본 단위는 신들로 가득차 있다는 탈레스의 고찰에서부터, 물과 불, 흙, 공기 이라는 엠페도클레스의 4원소설, 기원전 460년 경 물질의 기본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데모크리토스를 지나 오늘날 초끈이론에 이르기까지. 자연의 기본 구성은 하나의 불변하는 최소 단위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것으로부터 만물이 구성되며 움직이다는 기본 철학은 바뀌지 않았다.

사유의 과정은 보다 정밀해 졌으며, 또한 엄밀해졌다. 과거의 기록은 방대해 졌으며, 새로운 이론과 경험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마치, 헤켈의 계통반복설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 과정을 따라 밣아 나가야 한다.

학문의 과정은 이렇게 길고도 지루하며 또한 방대하다. 때문에 현대문명에서 필요로하는 교양수준의 기본 지식을 습득하고, 현대문명에서 요구하는 인재를 배출하기 위해 학교를 설립하며, 그 곳에서 학문의 과정을 하나하나 답습해 나간다. 현대문명에서의 교육 시스템에서는 교양지식을 넘어 보다 깊은 수준의 이해와 독자적인 사유와 이해를 행할 수 있을 때, 그에게 학위를 수여하게 된다.

때문에 박사학위를 취득한 학자들은 당연히, 이러한 지루하고도 힘든 과정을 거쳐 학문적 엘리트에 오르게 되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들은 예전과 같은 엘리트가 아니다. OECD국가 중 과학 박사 학위자의 수는 1998년에서 2008년 사이에 매년 40% 씩 증가하여, 그 동안 과학자의 수는 3400만명 증가하였다.


학위 공장 [1]

이른바 선진 단계로 접어든 국가들의 경우, 경제성장의 둔화와 고용없는 성장에 따라 고부가가치 산업 발전의 핵심으로 고학력 노동자들의 수를 중시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 국가들은 높은 교육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목적에 의해 배출된 박사 졸업생들은 그들의 학위와 학력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기회를 찾을 수 없는 실정이며, 특히나 이것의 근본적 원인이라 할 수 있는 박사 소지자 배출의 증가 추세는 둔화 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 결과 미국과 일본을 포함한 일부 국가들에서는 장기간의 비용과 훈련 기간을 소모한 고학력 연구자들이 학문적 작업이 아닌 다른 사업 분야에서 그들을 보게되는 수준에 이르렀다. 결과적으로 박사 학위 소지자는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고 있으며, 실직 상태를 벗어난다고 하여도 그들의 수준과 자격에 맞는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상황이다. 

학문의 블랙홀로 불리는 미국은 현재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수의 학위를 배출하고 있다. 미국은 생명공학과 물리학 분야에서는 19,733개의 학위를 배출하기에 이르렀다. 박사 트렌드를 연구하는 애틀랜타 조지아 주립대학의 폴라 스테판 박사는,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정부와 의회가 해결책을 내 놓기 보다는 오히려 박사학위의 부족을 역설하고 있는데 대해 비판하며, 의회가 넘쳐나는 박사들을 위해 일자리를 만들기 보다는 오히려 자금을 투입하여 공급을 더 늘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과학적 학문의 성과를 그대로 살려 기업에 입사하는 비율은 꾸준히 떨어지고 있다. 최근 몇년 동안 생명 과학 분야의 발전에 따라 이 분야의 박사 배출이 크게 증가 하였으나, 제약 및 생명 공학 기업은 과거에 비해 크게 축소되어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박사의 생산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1973년, 생명 과학의 미국 박사학위 소지자의 약 55%가 자신이 박사학위를 취득한지 6년 이내에 학문적 성과를 얻을 수 있는 직업을 얻었고, 단지 2% 만이 포닥 위치에 머무르고 있었으나, 2006년까지 박사학위를 취득한 졸업행의 경우 6년 이내 직업을 얻은 비율은 단지 15%에 불과했으며, 포닥은 18%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의 박사 학위 소지자들은 학위를 필요로 하지 않는 직업을 가지고 있게 되었다. 대학과 국가는 유학생을 끌어들이며 학위 장사를 하며, 학생은 엄청난 돈을 쓰고, 졸업한 학위 소지자는 정작 그들과 잘 일치하는 일자리를 얻을 수 없다.

일본의 사례는 박사노동자들의 비관적인 미래를 볼 수 있는 사례이다.

과학박사로 졸업하는 모든 국가들 중에서 일본은 최악 중의 하나이다. 1990년대 일본 정부는 10,000명 포닥 양성을 목표로 정책을 설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박사채용을 강화하였다. 이 정책의 기본적인 목적은 서구와 동등한 수준의 과학적 능력을 가지는 것을 목표로 하였고, 그결과 양적 달성에 있어서의 성공적 결과를 보였으나, 이렇게 생산된 많은 수의 포닥들이 어디로 가야할지에 대한 고민은 없었다.

학계에서는 그들을 원하지 않았고, 기업은 젊은 신입사원에 대한 직업 훈련이 더 용이하고 시간적 효율성이 더 높았기 때문에, 신선한 학사 졸업생들을 일본기업들은 더 선호하게 되어, 대학 입학자의 수는 점차 줄어들었다.

2009년 일본의 문부과학성은, 18,000명의 박사학위 실업자들을 위해 400만 엔을 투입하여 그들에게 회사를 제공하려는 계획을 했지만, 성공적이지 못했다.


학문의 자본주의화와 피라미드구조

자본주의의 기본적인 매커니즘은 다단계 약탈구조를 가지고 있다. 다단계 피라미드 구조의 핵심은 끊임없이 새로운 피해자와, 약자를 생산해 내야만 그 구조를 유지할 수 있고, 하층의 약자를 가장 많이 끌어들인 자에게 보너스와 성과급을 지급한다. 성과급과 보너스는 피라미드를 타고 올라갈 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며, 피라미드 구조의 상층으로 갈 수록 그 구성원은 급격히 줄어든다. 이와 같은 구조는 오늘날 월스트리트 금융가의 극소수 CEO가 일반 사원에 비해 수천배에 달하는 월급을 받는 것과 같다. 

피라미드 구조의 핵심은 이러한 구조로부터 피라미드의 중간층과 하층에서도 박봉을 받으면서도 언젠가 그들처럼 될 수 있다는 꿈을 심어주는 착각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이 피라미드 구조에서는 하층이 모이지 않으면, 그 윗선에 수당이나 성과급을 줄 수 없게 되고 그러면 그 상층의 피해가 발생하게 된다. 때문에 위와 같은 착각은 피라미드 약탈 구조를 구성하는데 중요한 요건을 차지하게 된다. [2]

늘어나는 포닥의 수는 고학력 노동시장에서의 자본주의 착취구조가 정착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우선 과거 전통사회와 산업사회에서 대학의 이상적 역할로 여겨졌던 것들이 주변적 위치로 밀려나고 있다. 가령, 인류가 쌓아 놓은 지적 자산의 전수나 비판적 지성의 공동체, 자연과 인간과 사회에 대한 보편적 진리를 추구하는 학문 공동체 등 과거의 대학 고유역할들이 현재는 부차적인 것들로 전락했다. 

그대신 기업 경쟁력의 수단 혹은 실용적인 지식의 판매상, 경쟁력 있는 노동 상품을 만들어 내는 학습 공장, 학위 공장 등으로 빠르게 바뀌어 나가며 계몽주의적, 보편주의적, 예전자적, 비판적 지식인의 형태는 급속도로 퇴조되어 나가고 있다. [3]

대학의 신자유주의화는 대학을 경제적 가치 창출의 전지기지로 간주하고 교수들에게는 이윤 창출을 위한 경제적 행위자로 활동할 것을 요구한다. 대학은 더 이상 고급 지식의 생산과 유통의 장이 아니다.

교수의 지위는 점차 떨어지고 있으며, 이제 과학자는 한 명의 학자가 아닌 한 명의 피고용인으로의 노동자로 전락하였다. 자본주의라는 이름의 효율적인 노동생산과 착취의 구조는 결국 비정규 노동직의 확산에 따른 임금 절감과 대학의 학위 판매상으로의 전락을 불러왔다.

박사노동자들의 미래는 비관적이다.


[1] David Cyranoski, Natasha Gilbert, Heidi Ledford, Anjali Nayar and Mohammed Yahia, The PhD Factory, nature, Vol. 472, 276-279 (2011)
[2] http://blog.hani.co.kr/sdhan/43452
[3] 홍덕률, 신자유주의시대의 대학과 지식인, 대학과 지식인을 위한 성찰, 54-59

1 ··· 45 46 47 48 49 50 51 52 53 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