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lavinka

베토멘 교향곡 3번 2악장, 장송 행진곡이 구슬프게 들린다. 나폴레옹이 황제로 즉위 했다는 소식을 들은 베토벤의 실의와 좌절이 담긴 이 곡이 어느때 보다도 더 구슬프게 가슴에 닿아 흔들린다.


민주공화국이라는 이름만 붙은 북쪽의 어떤 나라와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동시에 이룩했다며 연일 자랑을 하던 남쪽의 어느 나라가 서로 달라보이지 않는다. 원리와 원칙, 개념과 철학이 없는 메아리들만이 울려퍼지고, 헌법이 보장하고 민주정체가 보장하는 시민의 권리는 묵살되며, 권력자의 보위를 각 개인 스스로가 책임지며 변호하는 모습이 심상치 않다.


'다른 누구보다도 노예에 가까우면서도 자신들이 주인이라 믿고, 자신들이 주인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누구보다도 노예라고 생각하는' 이들 앞에서 헌법에 적힌 각 조항들과 민주주의라는 이름이 그저 공허해 보이기만 하다.


그래도 역사는 진보하고 발전한다고 그랬던가? 세계 경제가 위기에 빠진 지금, 막다른 골목에 서 있을 것만 같았던 경제학은 이제 다시 다윈 경제학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고, 몇몇 국가들에선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으며, 중동 국가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 역시 뜨겁다.


이 모든 것들의 방향은 자본과 권력에 배분되어 있던 힘을 다시 각 개인에게 환원하며, 인간의 자유와 기본권을 보장하는 방향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과거 자본의 이익을 우선시했던 철학적 기조는 대처주의와 레이거노믹스로 발현되었고, 노동의 가치에 중점을 두었던 철학적 기조는 맑시즘으로, 인종주의 만으로는 표현될 수 없는 철학적 사상의 기조는 나치즘으로 발현되었지만, 인류 사회의 발전이 보여주었건 처럼, 독점자본과 권력이 중심이 아닌 각 개인의 권리와 자유가 우선이라는 건강한 철학과 개념을 가지고 있다면 분명 사회는 발전해 나아아갈 것이다. 인간은 본디 자유로운 존재이며 또 그 자유를 누리고자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자유는 인간의 본성이다. 자유를 포기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누릴 권리와 의무를 모두 버리는 것이다. 자유를 빼앗기면 행위의 도덕성도 제거된다. 루소에 따르면 '공동사회 구성원들이 인간의 자격을 유지하려면 자유를 지켜야 하며, 자유로운 개인 없이는 국가주권도 성립하지 못'한다.


때문에 공동사회 즉, 국가는 법을 통해 인간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절도와 상해를 범죄 행위로 규정함으로써 인간의 자유를 공동사회 내에서 보호한다. 이것이 인간의 무질서한 자유를 제약하고 금지함으로써 얻게되는 사회적 정치적 자유인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이 법의 제정과 집행, 범죄 행위의 규정과 분쟁의 조정 등의 사회적 역할은 누가 맡게 되는가? 사회는 이들을 합의를 통해 선출하거나, 개인의 능력에 따라 채용하는 등의 방식으로 각 개인에게 그 역할을 부여하게되며, 그 역할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 역시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부여하고 있다.


다시 말해, 정부는 국가와 주권자를 연결하는 중개단체일 뿐이며, 군주는 개인이 아니라 중개단체인 정부를 총칭한다. 정부 또는 군주는 주권자인 국민에게 고용되어 맡겨진 권력을 주권자의 이름으로 행사하는 대리자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대리자에 불과한 정부가 주권자인 국민의 자유를 부당하게 침해한다면 국민은 언제나 정부를 해체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이같은 주권자의 권리는 법치주의 원칙의 칼날이 어디로 향해햐 하는지를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법치주의란 본래 대리자인 국가가 주권자인 국민에게 행하는 것이 아닌, 대리인에 불과한 정부에 가해지는 엄격한 법률의 잣대를 가리키는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이제 상식이 된 이러한 원칙들. 국가와 정부는 서로 같지 않다는 것, 인간의 자유 유지 그리고 국가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루소의 이러한 철학적 가치와 개념은 오늘날의 헌법에서도 그대로 녹아있다.


헌법 제1조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가진다.


헌법 제21조 1항.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헌법 제34조 1항.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는 가진다.


헌법 제37조 2항.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헌법 제37조 2항은 ‘주권자의 권력은 아무리 절대적이고 아무리 신성하고 아무리 불가침이라 할지라도 정체적인 계약의 한계를 넘지 못하며 넘을 수도 없다’는 루소의 주권 한계의 규범이 묻어있다. 또한 상기의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자유권에 불가피하게 법률이 개입하게 되었을 때 그 적용 범위와 적용 방법이 어떠해야 할지를 지정하고 있다. 이 조항에 명시되어 있는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는 법률의 적용이 과잉금지의 원칙 즉, 비례의 원칙에 의거함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인간 개인의 자유을 가능한 최소 제한하여 가능한한 최대한 또는 최적의 보장을 원칙으로 한다.


‘공동사회 구성원들이 인간의 자격을 유지하려면 자유를 지켜야 하며, 자유로운 개인 없이는 국가주권도 성립하지 못한다’는 루소가 남긴 민주주의의 초석은 오늘날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다시 말해, 스스로 법률 위에 서서 법치주의를 무시하고, 자의적인 명령으로 통치하는 군주는 전제군주일 수 밖에 없으며, 이들의 정치적 정당성은 모두 부정됨을 의미한다. 이런 경우, 국민의 저항권과 불복종 투쟁은 정당함을 역설하고 있다.


법치주의를 위반하고 법 위에 군림한 쿠데타 정권에 대한 정당한 거부권 행사였던, 4.19 혁명과 5.18 광주민중항쟁 그리고 6월 민중항쟁으로부터 쟁취한 것으로 믿었던 민주화의 모습을 보며, 베토벤의 실의가 이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는 요즘이다.


최근 정부가 촛불집회 참여자들을 강제 연행하고, 사법조치 방침을 밝힌 것은 위헌의 소지가 다분하다. 정치권과 일부 단체, 언론들에서 흘러나온 정치적 오용이라는 단어의 등장은 국민의 사회적, 정치적 자유권을 명백히 부정하고 있음을 알리는 징표이다. 이처럼 주권자의 대리자에 불과한 정부가 국민의 자유를 부당하게 침해한다면, 국가를 수립한 사회계약은 파기되고 모든 시민은 자연적 자유로 돌아간다. 복종을 강요당해도 복종할 의무가 없다.


우리가 바라는 사회 공동체의 행복한 모습은 헌법의 기본 원칙이 지켜지는 사회일 뿐이다. 더이상 북쪽의 어떤 나라와 닮아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뿐이다. 



사회계약론 - 8점
장 자크 루소 지음, 이재형 옮김/문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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