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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학자도 인간이다; 과학 좌파
    2014. 5. 18.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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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어디서나 쇠사슬에 묶여 있다. 인간이 가지고 있던 선취와 소유의 자유는 이제 가족과 집단, 단체, 국가라는 틀 속에서 제약되고, 금지되어 지며, 어떤 경우에는 인간 개인의 역할까지 부여하도록 만들어졌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이 자유는 인간 본성의 결과이다. 그러나 사회가 발전하며 인간 본성의 자유를 제약하고 또 금지하게 된데는 인간이 가장 우선해야하는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법을 통해 인간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절도를 범죄 행위로 규정하며, 분쟁을 조정하는 역할은 모두 인간의 자유를 보장하는 사회적 합의인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이 법의 제정과 집행, 범죄 행위의 규정과 분쟁의 조정 등의 사회적 역할은 누가 맡게 되는가? 사회는 이들을 합의를 통해 선출하거나, 개인의 능력에 따라 채용하는 등의 방식으로 각 개인에게 그 역할을 부여하게되며 그 역할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 역시 누구에게 동등하게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이 과정의 결과, 어떤 이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노예가 되어 있으면서도 자기가 그들의 주인이라고 믿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그들이 주인임이도 불구하고 노예라고 생각하고 있기도 하다. [1]


    ‘힘있는 자에게 복종하라’라는 언명은 자연적 물리력이 만든 힘이 아닌, 권리가 만들어준 권력에 복종하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권력에의 복종은 선택의 문제에 가깝다. 복종을 통해 나의 자유 혹은 권리를 권력자에게 이양함으로써 생존권을 보다 확실하게 보장받거나 이익을 볼 수 있다면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권력은 사회적 전권을 휘두를 수 있는 권리를 함께 이양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여기서 말하는 힘이란 오직, 합법적인 권력에만 복종할 의무가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 힘이 합법적이지 않다면 힘있는 자에게 복종할 의무가 있는 것과 동일하게, 그 힘을 인정하지 않거나 거부할 권리가 있다. 그럴 경우에만 민주적이며 전제적이지 않을 것이다.


    이같은 관점에서 우리 사회의 모습은 어떠할까? 과학기술과 관련된 정책이나 사회 갈등을 보면 대개, 정부의 비밀주의나 비민주적인 의사결정 등에 의해 유발되는 것들이 많다. 그리고 시민의 입장에서 이들 정책에 자신들의 의사를 형성할 수 있게 하는 균형잡힌 정보를 얻는 것도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행정편의를 내세워 서둘러 정책을 결정해버리고 시민들에게는 형식적인 공청회를 거쳐 일반에 통보 해버리는게 고작이다. [2]


    우리는 이같은 행태와 과정을 목격했을 때, 사회로부터 부여받은 권리와 자유로부터 항의하고 분노한다. 그러나 과학기술과 관련된 정책이나 사회 갈등의 직접적 관계자인 과학자들은 어떠할까?


    ‘과학자도 인간이다’라는 말은 다소 생소하거나 의외의 사실을 인지한 것과 같은 느낌을 가지게 만든다. 과학자에 대해 일반적으로 가지는 인식은, 사회에 독자적인 기획과 조정을 담당하거나 사회발전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사람 보다, 자신의 좁은 분야에서 주어진 문제를 푸는데 열중인 소외된 사람[3]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정당성을 갖고 신뢰할 만한 사람이지만, 사회에 무관심하고 사회에 동떨어져 실험실에서 오직 연구에만 몰두하는 감성이 결여된 사람. 과학자에 대한 인식은 정확히 이것과 같다.


    그러나 이런 문제들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대립하며 실험실 밖으로 뛰어나갔던 과학자들이 있다. 게리 워스키의 <과학・・・・・・좌파’>는 이들 이야기를 담고있다. 이들은 가난한 노동계급에서 자유주의적 지식 귀족층까지 다양했고, 핵물리학, 유전학, 생물학, 화학, 엑스선 결정학 등 전문 분야도 다양했다.


    이들은 대부분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를 자신의 정치적 신념으로 받아들이며, 정부와 민간 부문의 연구 시설에 과학자와 기술자 노조를 조직하고, 공공지원을 받는 연구개발을 확대할 것을 주장했으며, 파시즘 희생자들을 지원하고, 나치와 우생학협회의 사이비 과학적 인종주의에 맞섰다. 2차대전 이후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맨하탄 프로젝트 이후의 반핵투쟁 역시 노벨상 수상 과학자들에 의해 선도되었다.


    과학자들의 이같은 습진적 사회운동은 대처주의 이후 자본-과학-기술 헤게모니 속에 급격하게 쇠퇴하였지만, 그들 역시 과학자 이전에 사회를 구성하는 한 사람이자 시민이었음을 새삼스럽게 알려주고 있었다. 한국도 이같은 사회적 움직임이 있었다. 당연 이야기지만 한국에서의 과학자들 역시 단지 경제발전과 기술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정부의 관료주의와 비민주적인 의사결정에 복종하며 실험실에서 연구에만 몰두하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한국 사회에서 사회운동차원에서 과학기술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84년 기독교청년회 YMCA 산하의 두리암이라는 서클에 의해 시작하였다. 창립 당시 이들 두리암 회원의 주축을 이루던 이는 이공계 대학원생들과 국공립 연구소 연구소 들이었다. 이들은 ‘지배적인 과학기술 이데올로기를 분쇄하고, 민중을 위한 과학기술을 지원하며 제반 사회운동과 연대하는’것이었다. 과학기술자라는 계층적 지위를 벗어나 민중을 위한 과학 기술 정립에 과학기술자들이 나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87년 6월의 노동대 대투쟁의 영향은 두리암에도 큰 영향을 미치며 ‘과학기술자 노동운동’으로 전개되기 시작한다. 이런 과학기술자 노동운동은 87년 한국전자통신연구소의 노조 설립을 시작으로, 과학기술원, 화학연구소, 인삼연초연구소, 에너지 연구소, 동력자원연구소에 이어 노조가 설립되었다.


    이들 노조들에선 임금 격차 해소, 비밀스러운 인사 정책, 연구소 자율성 확보 등 연구원 처우 개선을 기본 과제로 삼은 것 이외에 과학기술의 자립적 발전 노력을 노조 사업의 목표로 두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하지만 사회 민주화 논의의 진전과 더불어 과학기술 분야의 민주화 논의도 활성화되었고, 94년 과기노조가 정식 설립인가를 받으며 과학기술자들의 정치적인 요구의 수용 통로가 만들어졌다.


    97년 과기노조는 과학기술 관련 단체들과 인사들이 참여하는 ‘참과학 실현 정책 연구소’ 설립을 추진하며, 정부의 전시 위주의 근시안적 정책과 동벌이에 급급한 재벌의 입김에 표류하고 있는 과학기술 정책을 바로잡고 출연 기관의 혁신 및 경쟁력 강화, 일부 관료와 소수 엘리트 재벌 중심으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국민 경제 발전과 국민의 삶을 보장하는 과학기술로의 변환, 정부 당국에 과학기술의 제반 사회적 문제에 대한 일반 대중의 차여 보장 촉구 등을 목표로 세웠다. [4]


    물론 이 연구소 추진은 설립되지 못하고, 한국 역시 강력한 대처주의의 후폭풍에 밀려 이같은 논의는 많은 부분 쇠퇴한체 일부 시민단체들의 활동만 눈에 띄고 있을 뿐이다. 저자인 게리 위스키는 이러한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이런 ‘근대주의적’ 믿음을 그토록 강하게 품고 있던 좌파가 1980년대에 몰락한 뒤 지금도 이전의 영향력과 비슷한 수준을 회복하지 못한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렇게 대중 투쟁을 통한 사회의 변화가 일시적으로 포기되면서 함께 나타난 두 가지 현상이 잇다.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겠지만, 환경을 살리는 데 초점을 맞춘 운동과 정당이 부상했고, 동시에 ‘지도력’에 관한 전지구적 숭배가 나타났다. 여기서 정부, 기업, 공동체에 대대적인 변화를 일으킬 희망은 특출한 개인들의 넓은 어깨위에 온전하게 기대게 됐다.


    또한 영미-유럽-공산주의 좌파와 이것을 지탱하던 진보적 사회변화의 희망이 소진된 것은 기술 과학 활동이 자본주의 속으로 더 많이 통합된 현상과 시기적으로 이치하며 밀접히 연관돼 있다. 이런 변화는 단지 물질적 힘에서 그치지 않고 지배 문화의 중요한 구성 요소로 나타났다. 변화는 과학뿐 아니라 사회주의에 관해서도 중대한 ‘극적 전환점’이었다. 이전까지 사회주의를 포함해 다른 세속적 운동들은 과학을 동맹군이자 동료인 ‘전세계적 해방의 동인’으로 간주했다.


    이런 동일시는 버널주의의 근간이었고 전쟁 이전 과학 좌파의 희망을 구성했다. 그러나 전후의 미국과 영국 자본주의가 학술 연구와 산업 연구 개발에 관련된 공공과 민간 영역의 상당한 투자의 뒷받침을 받아 자기 나름의 반공부의적 과학주의 이데올로기를 세운 뒤, 과학은 좌파의 오랜 역사에서 처음으로 정치적 표어가 아닌 미심쩍은 문화적 자원이 됐다. [게리 워스키, 과학 좌파, 이매진, 2014, 170-171]


    그렇다고 과학자들 모두가 자본의 힘에 복종하게 된 것은 아니다. 세계화와 자본주의 과학을 향한 불만은 과학자들 내부에서도 충분히 들끓고 있다. 무엇이 지금의 상황을 극복하게 만들어 줄 것인가? 피케티의 전세계적 열풍에서도 읽을 수 있는 이같이 인식과 과제는 지배적 사회 질서에 맞선 좀더 지속적이고 근본적인 새로운 도전을 다시금 요구하고 있지만 과거의 급진적 과학사회 운동과 같은 활동이 재현될 수 있을까?


    과학……좌파 - 8점
    게리 워스키 지음, 김명진 옮김/이매진



    [1] 장 자크 루소, 사회계약론, 문예출판사. 12

    [2] 박진희, 과학기술 관련 시민사회운동의 역사와 그 역할, 과학기술할연구 4(1), 2004, 137

    [3] Ibid, 114

    [4] 자세한 내용은 이 논문 ‘과학기술 관련 시민사회운동의 역사와 그 역할’에 잘 정리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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