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lavinka

‘정의는 재화를 할당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와 억압에서 시작해야 하고, 누가 얼마를 가지느냐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불의에 고통받는 사람들의 외침을 듣고 주의를 기울이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Iris Marion Young, Justice and the Politics of Difference, 1990]


차갑다. 서늘하다. 날카로운 비수가 날아와 등 뒤에 꽂힌다. 매일 흘러나오는 뉴스, 보도행태, 구조소식, 늘어만 가는 실종자 수에서 그동안 행복의 준수, 개개인의 인권과 생존권 그리고 자유와 평등을 이야기하며 이상사회를 고민하던 모습들이 얼마나 시대 착오적인 것들이었나를 생각케한다. 


정의란 무엇인가. 이제는 작고한 미국의 페미니스트 운동가였던 영이 말한것과 같이 정의란 ‘존엄의 평등’인가? 롤스식의 ‘각자에게 제 몫을’이라는 분배의 패러다임인가? 아니면 자본주의가 우리에게 자르쳐준 공리주의 원칙이 바로, 다수의 정치인들과 관료들의 정치적 목적과 이익에 따라 소수의 아이들의 희생은 감수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정의란 말인가?


휘청거리면서도 여전히 지구의 숨통을 쥐고있는 신자유주의의 손길에 사회주의를 운운하는 것은 이제 바람직한 사회의 모습, 방향, 정의에 대한 논의가 아니라, ‘시대가 어느 때인데’ 라는 훈계를 듣고야 마는 이 시대에,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친 전태일 열사의 울부짖음이 다시 들려올 줄은 몰랐다. 국가의 존재 이유와 그 목적에 대한 이토록 시대 착오적인 논의를, 수 천년 전 현인의 말을 떠올리며 생각해야하는 시대가 올줄은 결코 몰랐다.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정의에 대한 논의를 큰 글자를 먼저 읽고, 차츰 작은 글자로 옳겨가는 것으로 비유하였다. 그리고 그 큰 글자를 국가에 비유하며 이렇게 말한다. ‘어떤 국가가 정의로운 국가인지를 파악해보면 정의로운 개인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겠나? 이렇게 해서 큰 글자에서 작은 글자로 나아가보세’ [플라톤, 국가론, 돋을새김, 2006, 66]


그렇다면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는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 생겼다. 독립된 개인으로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만 애무 어렵기 때문에 결국 사람들은 힘을 합치게 됐고, 이 집단이 모여 국가가 되었다. 그렇다면 이 집단을 이루고 살아갈 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첫 째는 먹는 문제의 해결이고, 가 다음은 집을 마련하는 것, 그리고 옷이나 필수품들을 마련하는 것일 것이다.


국가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농부와 목수를 필요했을 것이고, 직공, 제화공, 그리고 이를 중개할 상인도 필요할 것이다. 이같은 노동은 효율성을 위해 분업화 되었을 것이며, 생산물이 증가될 수록 더 많은 일꾼과 기술자, 전문가들이 필요해졌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공급과 교환, 수입과 수출을 위해 더 큰 시장과 더 많은 인구를 요구하며, 늘어나는 국민과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국가는 더 커질 것이다.


인구가 충분히 늘어나면 충분했던 자원과 국도는 비좁아지게 되고 결국 남의 땅을 뺏기 위한 전쟁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 때문에 국가는 국가를 수호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게 될 것이며 이 역할을 수행할 수호자들을 필요케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 국가를 수호하는 수호자들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그리고 국가의 지도자는 어떤 사람이어야하는가?


플라톤은 이를 이렇게 표현한다. ‘국가를 위한 일엔 열성을 다하면서도 그렇지 않은 일엔 초연한 사람’ 그리고 이를 위한 장치를 이렇게 설명한다. 


‘그들은 꼭 필요한 물건들만 갖도록 해야하네. 집이든 창고든 사유재상을 갖도록 해선 안되지. 


식량이나 보수도 필요한 만큼만 지급하되 연간 소비량 이상을 주어서는 안되네. 식사를 비롯한 모든 생활을 공동으로 해야하고 금이나 은과 같은 귀중품도 가까기 하게 해선 안되네. 그러한 귀중품은 이미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그들 자신의 몸 안에 있다는 것을 일깨워 줌으로써 만족토록 해야하네. 그들의 혼을 정결하게 유지하기 위해 일반 국민들과 어떤 거래도 하게 해선 안되네. 금이나 은을 걸쳐도 안되고 금이나 은으로 만든 식기로 식사를 하게 해서도 안되네. 그래야만 그들 자신과 국가를 수호할 수 있다고 믿게 해야 하네. 


만일 그들이 사리사욕을 채우고 재물을 모르는 데 맛을 들인다면 그들은 수호자가 아니라 국민의 적이 되고 도둑이 될 걸세. 그리하여 서로가 서로에게 해를 끼치는 자가 되어 공포와 증오 속에서 결국은 나라를 망치게 될 것이네. 이런 이치로 국가의 기강을 확립하고 질서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하네. 그러니 이런 취지로 법을 제정하도록 하세’ [국가론, 110]


플라톤이 말하는 국가 역할의 핵심은 체계이다. 그리고 그 국가의 체계를 확하고 유지하는 지도자는 사리사욕에 의한 이기적 인간 상이 아닌 이타적 인간상을 가진 철학자 이어야 함을 역설한다. 지도자는 세속적인 명성을 멸시하고 고귀한 것을 존중하며, 정의를 가장 위대한 가치로 생각하며, 정의를 기반으로 국가질서를 확립하고 통치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지도자의 의무이자 조건이다.


그러나 우리의 모습은 지금 어떠한다. 영이 말한 ‘지배와 억압’이란 국가의 시스템을 기반으로 ‘존엄의 평등’을 실천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 시스템을 사유화하고 계층화하고 있는가? 국가라는 형태는 존재하지만 그것의 주체는 사라지고, 시스템을 확립하고 통치업무를 수행하야한 지도자는 그 의무와 조건을 타자화하고 객체화시키며 주판알만 튕구고 있는 동안, 아이들의 희망은 사라져가고 있다.


국가가 무엇인지, 국가의 역할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말할때 플라톤을 꺼내들 수 밖에 없는 이 촌스러움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대체 국가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대체 몇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만 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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