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lavinka

마법소녀라는 환입


보통 우리는 하나의 문장에서 속성이나 관계를 나타내는 동사와 그 속성의 주어가 되고, 관계의 항이 되는 명사를 구별할 수 있다. 가령, “마미는 살아 있었다”는 문장은 마미에게 하나의 속성을 주며, “마녀는 마미를 죽였다”는 마녀와 마미의 관계를 나타낸다. 지금 주어라는 말을 넓은 뜻으로 쓰면 마녀난 마미나 다 같이 이 명제의 주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문법적으로 마녀가 주어이고 마미가 목적어라고 하는 것이 논리적으로는 중요하지 않다.


같은 사실이 또 “마미는 마녀에 의해 죽음을 당했다”라도 표현되고, 거기서는 마미가 문법적인 주어가 되기 때문이다. 이같이 간단한 문장에서도 하나의 또는 둘 혹은 이보다 더 많은 넓은 뜻의 주어에 대해 그 속성이나 관계가 진술될 수 있다. 가령, “A가 B를 C에게 주었다”는 것은 세 항 사이의 관계를 보여준다.


그러나 더욱 엄밀하게 고찰하면 외견상으로는 주어처럼 보이는 것이 실제로는 주어가 아니고 다시 분석되는 경우도 흔하다. 하지만 그런 경우라 해도 오직 새 주어가 그 자리에 놓여 있을 뿐이다. 또 예를 들면, “죽인다는 것은 마녀와 마미 사이에 성립된 관계이다”라고 하듯이 종사가 문법적인 주어가 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도 있으나,  이는 사실 마미와 마녀를 다 함께 주어로 해서 “죽인다”가 동사로 쓰인 것이다.


이 같이 문장에서 오직 주어로만 쓰일 수 있으나 절대로 다른 용도로는 쓰이지 않은 언어가 있다. 문장 안에서 오직 주어로서만 나타나는  말을 고유명사라 정의하고, 고유명사에 의해 이름 지어진 대상을 개체라 정의한다. 이러한 문법적 논리 관계만을 고려하면 여기엔 한도 끝도 없는 환원이 가능해진다.

 


여기서 이런 문장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물고기는 (바다)에 있다. 사과는 (식물성)이다. (사람)은 다리가 둘이다. 이 문장들에서 주어를 가리고, 괄호 속의 낱말들과 등가를 이루는 다른 낱말로 자유로이 교체하면 재미있는 일이 벌어진다. 명사는 명사로, 형용사는 형용사로.


물고기는 (하늘)에 있다. 사과는 (동물성)이다. (개)는 다리가 둘이다. 이 문장들은 문법적으로 옳지만 이들이 서술하는 내용은 조금 이상하다. 물고기가 방에 있고, 사과는 동물이고, 개의 다리는 두개가 되었다. 이를 환입이라 하며 마그리드가 주로 사용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이러한 환입에 의한 은유와 환유는 상징주의, 희화 에서 초현실주의에 이르기까지 예술의 중요한 표현 수단 중 하나이다. 달리의 유명한 작품인 ‘기억의 집요함’은 세계의 딱딱함이라는 속성을 유연함으로 대치시킴으로써 상대성 원리에 따른 시간의 유연성을 표현하기도 했다.


환입에 의한 은유와 환유는 단지 현실에 존재하는 사물에 의해서는 이루어지진 않는다. 때로는 실제에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존재와 등가 시킴으로써 예술 장르 속에 표현되기도 한다. 




시공관리국에서


나노하 : 유노군. 환입을 예술 장르로 표현한 것들은 어떤것들이 있어?


유노 : 회화나 시, 소설에서 은유적인 방법으로 쓰기도 했는데, 요즘엔 영화라는 예술 장르로 빈민층을 외계인으로 등가교환 시키거나, 돈을 시간으로 등가교환 시키는 식으로 표현하면서 어떤 메시지를 심어주기도 해.


나노하 : 그러면 중력이라는 힘 대신에 천사들이 잡아당기고 있다거나,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 속에 마법이 아닌 다른 무엇가로 바꿔봐도 되겠네?


유노 : 못할 것도 없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원리와는 다르지만 예술 장르 속에서는 얼마든지 표현할 수 있으니깐. 우리가 이렇게 평온하게 생활할 수 있고, 우주가 순리에 맞게 돌아가는 이유나 불의의 사고 같은 것도 그 원인을 다른 대상으로 등가교환하는 것도 가능하지. 사실은 모두 사람의 소행이라던지.


나노하 : 아아, 이제 드라마 할 시간이야. 새로 시작하는 드라마인데 정말 재밌어. 유노군, 같이 보지 않을래?


유노 : 나노하가 추천하니 꼭 봐야겠는데? 제목이 뭐야?


나노하 :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



인간 본성에 대한 질문,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


프로이트에 의하면 인간의 의식은 이드, 자아, 그리고 초자아의 세 가지 층위로 구분되며, 이 세 가지의 형성 결과에 따라 인간의 성격을 규정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드는 인간의 성적욕구와 파괴본능을 담은 쾌락을 담고 있으며, 자아는 현실의 원리를 담고 있고, 원초아는 도덕적 원리를 담고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한 인간의 성격은 무의식 상에 형성된 이 세 가지 층위에서 자아가 이드를 규제하며, 초자아가 자아를 도덕적 관점에서 규제함으로써 균형을 이루어 나가며, 그 우세도에 따라 성격이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관점에서 프로이트는 인간의 공격성, 파괴본능, 성적충동, 정신이상의 원인을 설명한다. 인간의 무의식 내에서 본능을 억제하거나 해소하지 못하고 무의식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면 그것으로 정신 이상이 일어나고만다. 때문에 이 세 층이 조화를 이룰 때 원만한 인격을 갖게되고, 그렇지 못하면 신경증에 시달리게 된다.


우리의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불안과 공포, 우울, 분노, 좌절, 시기심, 질투가 만들어내는 스트레스의 방출을 현실에서 언제나 충족시켜주는 것은 아니다. 현실 원리 때문에 우리는 때론 대상이나 목표를 잠시 혹은 영원히 포기해야만 한다. 그러나 인간은 이드의 이 같은 욕구 충족을 언제까지 억누르거나 포기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 이드는 현실에서의 발현 대신 공상 속에서 이를 충족시켜나간다. 현실 원리에 속박되지 않고 자유로이.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 속에 그려진 마녀는 억제되어있던 이드의 최종적 발현의 형태로 그려진다. 마녀의 본체가 있는 중심지로 향하는 결계 안의 미로와 같은 배경엔, 마녀의 생전 무의식 속에 내제되어있던 이루지 못한 꿈과 욕망을 그대로 그려내고 있다. 초자아와 자아의 경계로 이어지는 현실과 결계 사이의 보이지 않는 경계. 그리고 자아에서 이드의 중심으로 향하는 미로와 관문. 그리고 그 종착지에 존재하는 공격성, 파괴본능.


마녀의 존재는 단지 마법소녀에 대응되는 악의 축으로써의 대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마법소녀로 계약하며 이루어진 하나의 소원. 그 소원의 성취가 가져오는 불안과 공포, 우울, 분노, 좌절, 시기심, 질투이라는 이드의 총체가 소울 젬의 형태로 축적되어 나아간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스스로를 파괴하며 마녀가 되고 만다. 마법소녀와 마녀는 외면과 내면을 그대로 묘사한다.


여기서 호무라의 존재는 매우 특별하다. 호무라는 소원을 이루기 위해 부여받은 시간 조절을 이용해 끊임없이 과거로 이동해 나간다. 이루어질 수 없는, 이루어지지 않는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이 과정에서 호무라 자신은 점차 감정을 잃어나간다. 그 결과가 불러오는 더 큰 소실감과 우울, 불안은 되풀이하는 시간 만큼 더 크게 증폭되어 발푸르기스의 밤의 형태로 현실 공간에 발현된다. 호무라가 만든 역설적인 상황은, 발푸르기스의 밤의 원인이 자신이라는 것,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선 스스로 마녀가 되어야 한다는 상황을 그려낸다. 이드의 욕망은 결코 없앨 수 없으며 어떠한 형태로도 발현되어진다.



계단을 오르며

 


이리야 : 가위, 바위, 보! 내가 이겼어. 한 칸 올라가야지.


미유 : 이리야. 우리 아직 회수하지 못한 카드가 있어. 이러고 있을 때가…


이리야 : 혹시 찾으면 린 언니가 나중에 데리러 올꺼야. 자! 가위, 바위, 보!


미유 : 그런데 이리야. 우리 언제까지 올라가야 되는거야? 아까랑 같은 자리인것 같은데…


이리야 : 어…어라? 어떻게 된거지?


미유 : 누군가 이 계단을 조작한게 틀림없어. 어쩌면 이 근처에 카드가 있는지도 몰라.



이상한 고리


자연과학은 우리의 머리 밖에 세계가 실제로 있고, 또 우리가 그 세계를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고 전제한다. 우리 역시 평소 그렇게 생각하는데 훗설은 이 소박한 생각을 자연주의적 태도라 부른다. 훗설의 현상학은 이 소박한 태도를 비판하는데서 출발하는데, 이러한 태도는 전혀 근거 없는 가정에 불가하다. 자연과학이 그려내는 세계가 정말로 세계의 참모습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인간이 세계를 그려내고 서술하는 데는 어떠한 선험적 이해를 필요로한다. ‘우사기가 풀을 뜯어 먹는다’고 말 할 때, 우사기의 뜻을 모른다면 우리는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다. 토끼를 가리키며 이것이 우사기라고 말할 경우 역시, 토끼가 우사기인지, 풀을 뜯어 먹고 있는 모습이 우사기인지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결국 세계를 배우고 인지하는 것은 객관적일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데, 이 바탕에는 선험적 이해를 필요로한다. 그렇다면 이 선험적 이해는 어디에서 오는가? 경험으로부터? 배움으로부터?


세상을 보는 것은 세계 속에서 배운 방식대로 세상을 보게된다. 해석학에선 이를 지평이라 부른다. 우리가 어떤 사물을 이해하려면 그것을 지평위에 올려놓아야 하며, 지평이 없으면 아예 사물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지평은 시대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중세인들의 지평에서는 태양이 지구를 돌고 있었지만, 현대의 지평에선 지구가 태양을 돌고있다. 그렇다면 어떤 지평이 옳은 것인가? 이것을 판단할 수 있는가?


지평과 이해가 폐쇄 회로를 이룬다면 이 회로 속에서는 이해가 점차 풍부해 질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결국 우리는 이 폐쇄 회로 밖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끊임 없이 맴도는 이 계단은 누가 그린것인가?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에서는 마법소녀-마녀의 패쇄회로의 모습을 큐베라는 하나의 주체를 통해 그려내고있다. 그런데 여기서, 이 패쇄회로 속에서 큐베를 통해 그려내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다름아닌 패쇄회로의 당위성이다. 이것으로부터 큐베는 캔버스와 현실의 경계, 초자아와 우리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마도카 : 그러면 넌 모두를 마녀로 만들기 위해 마법소녀로?


큐베 : 착각하지 말았으면 해. 우리는 인류에 대해 전혀 악의가 없어. 모든 건 이 우주의 수명을 늘리기 위해서야. 마도카. 넌 엔트로피라는 단어를 알아? 간단히 예를 들자면, 모닥불로 얻을 수 있는 열 에너지는 나무를 키우는 수고와 안 맞다는 거야. 에너지는 형태가 바뀌면 손실이 발생돼. 우주 전체의 에너지는 계속 줄고 있어. 그래서 우리는 열역학의 법칙에 얽매이지 않는 에너지를 찾아왔지. 그렇게 찾아낸 게 마법소녀의 마력이야.


우리의 문명은 지적 생명체의 감정을 에너지로 변환하는 기술을 발명했어. 하지만 공교롭게도, 당시 우리가 감정이라는 것을 지니지 않았지. 그래서 이 우주의 다양한 종족을 조사해서 너희 인류를 발견했지. 인류의 개체수와 번식력을 비추어보면 한 인간이 발생시키는 감정에너지는 그 개체가 탄생해서 성장할 때까지 이용한 에너지를 능가하지. 너희 영혼은 엔트로피를 뒤엎을 에너지원이 넘쳐쳐. 특히 가장 효율이 좋은 건 제2차 성징기 소녀의의 희망과 절망의 상전이야. 소울 젬이 된 너희의 영혼은 불타서 그리스피드로 바뀌는 그 순간 방대한 에너지를 발생시키지지. 그걸 회수하는게 우리 인큐베이터의 역할이야.


마도카 : 우리는 소모품이야? 너희를 위해 죽으라는 거야?


큐베 : 이 우주에 얼마 만큼의 문명이 존재하고, 매순간 얼마 만큼의 에너지를 소모하는지 알아? 너희 인류도 머지않아 이 별을 떠나 우리의 동료가 되겠지. 그때가 되서 쓰러져가는 우주를 물려 받으면 곤란하겠지. 길게 보면 이건 너희에게도 득이 되는 계약이 될 거야.


큐베 : 마도카 언젠가 너는 최고의 마법소녀가 되어 그리고 최악의 마녀가 되겠지. 그때 우리는 예전에 없었던 대량 에너지를 손에 넣을 수 있어. 이 우주를 위해 죽어줄 마음이 생기면 언제라도 말을 걸어. 기다릴테니까.


큐베 : 가축에게 주눅이 들기도 해? 그들이 어떤 과정으로 너희 식탁에 놓이는지.


마도카 : 그만해!


큐베 : 그 반응은 부적절해. 이 광경을 잔혹하다고 생각한다면 넌 전혀 본질을 보지 못하는 거야. 그들은 인간의 식량이 되는 것을 전제로 생존경쟁에서 보호되어 도태되지 않고 번식하지 소, 돼지, 닭 모두 다른 야생동물에 비하면 종으로의 번식력은 압도적이야 너희는 모두 이상적인 공생관계에 있잖아.


마도카 : 똑같다고 말하고 싶어?


큐베 : 오히려 우리는 인류가 가축을 다루는 것보다 훨씬 너희에게 양보하는 거야. 불완전하나마 지적 생명체로 인정하고 교섭하고 있으니 말이야.


큐베 : 왜 이제 와서 고작 몇 명의 운명만 특별하게 여기지?



마도카의 선택


큐베의 모습은 인간과 가축의 관계, 신자유주의 사회 속의 사람과 사람의 관계, 자본과 권력, 자본과 인간 사이의 이상한 고리의 지평을 만드는 것은 보이지 않는 주체를 연상케한다. 우리는 이 이상한 고리를 넘을 수 있는가? 나가는 문을 찾을 수 있을까? 마도카는 모든 운명을 스스로 짊어지며 이 순환고리를 벗겨내는데 성공했지만, 그 역시 완전한 해답이 될 수 없었다.


호무호무



버트런드 러셀, 수리철학의 기초, 경문사, 2002

정도언, 프로이트의 의자, 웅진 지식하우스, 2009

진중권, 미학 오디세이, 새길, 1994


마담 레카미에, 마그리드, 1950 (http://pds19.egloos.com/pds/201005/17/49/d0067849_4bf0907189cbe.jpg)

마담 레카미에, 다비드, 1800 (http://blogimg.ohmynews.com/attach/1781/1094936475.jpg)

기억의 집요함, 달리, 1931 (http://cfs11.tistory.com/image/14/tistory/2008/12/11/16/36/4940c2e223eb7)

올라가고 내려오고, 에셔, 1960 (http://postfiles16.naver.net/20100801_95/mizuhashi_1280627425425TvjFT_jpg/%EC%98%AC%EB%9D%BC%EA%B0%80%EA%B3%A0%EB%82%B4%EB%A0%A4%EA%B0%80%EA%B3%A0_mizuhashi.jpg?type=w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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