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프레네 산맥의 과학
    과학 2013. 11. 7. 01:27
    반응형

    인간이 바벨탑을 쌓아 신에 도달하려다 신의 노여움을 사고, 그 벌로 사물의 참모습을 은폐하는 바벨의 언어를 사용하게 되기 이전의 그 에덴 동산의 언어는 어떠했을까. 만일 인간이 바벨탑을 쌓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무엇인가를 설명하기 위해 이토록 애를 쓰진 않았을 것이다. 만일 에덴 동산에서 사용했던 언어를 우리가 사용하고 있다면, 사과를 설명하기 위해 색깔은 어떠하고 크기는 어떠하며 생김새는 어떠한지에 대해 줄줄이 나열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사랑을 설명하는 것은 또 어떠한가. 그 안에 포함되어 있는 수많은 관념과 개념을 하나하나 늘어 놓는 것으로는 사랑이라는 단어의 참된 의미를 전해주진 못할 것이다. 인간의 언어는 이토록 은폐되어 있고 또 불완전하다.


    자연에 대한 최초의 학문과 철학은 아마 이러한 이유 때문에 등장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불완전한 인간의 언어로 자연의 참모습을 설명하기 위해 인간은 다시 우리의 언어를 추상화 하고 개념화 시켜나갔는지도 모른다. 그 결과 우리는 다시 한 번 사과를 사과로서 온전히 바라보지 못하게 되었다. 우리는 사과라는 언어를 읽음으로써 사과를 다음과 같은 형태로 떠올리게 될 것이다. 둥글고 빨간색의 까만색 꼭지가 달린 약간은 새콤하면서 달콤한 맛이나는 과실. 사과라는 관념화된 이 개념어는 우리를 사과가 가지고 있는 외형적 모습이 아닌 외연적 의미를 바라보지 못하게 만든다. 사과 속에는 그 어떠한 농부의 땀과 노력 그리고 그 형용할 수 없는 가치와 형용할 수 있는 가치 마져 내포하진 못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자연을 설명하고 정의하기 위해 사과나 둥글고, 빨갛고, 까맣고, 새콤하면서 달콤한 이런 일상언어를 사용할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이런 일상 언어들 조차 일상언어의 파편으로 이루어진 순환구조를 가지고 있다는데 있다.

     


    사과는 ‘사과나무의 열매’라고 정의된다. 사과나무는 다시 ‘장미과의 낙엽 과목’으로 정의되고, 과목은 ‘과실나무’라는 말로 정의된다. 다시 과실은 ‘열매’라고 정의된다. 만일 우리가 이 순환 과정에서 열매라는 단어의 뜻을 모르고 있다면 사과의 온전한 정의를 내리지 못하게 된다. 이 온전한 정의를 위해서는 어떤 선험적 이해를 필요로하는 것이다.


    이집트에서의 토지 측량에서 얻은 경험적 법칙을 바탕으로 하고, 그것들을 입증하는 수많은 기하학적 명제를 연역적으로 이끌어 낸 유클리드 원론 또한 마찬가지다. 유클리드의 원론에 서술되는 다섯 가지의 공리는 자연의 진리성을 단지 다섯 개의 공리로 압축하고, 전제가 참이면 결론도 참일 수 밖에 없는 연역체계를 구성하는 완전한 수학 체계를 완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원론에서 제시된 연역 체계는 이후 수학의 전형이 되었고, 과학의 기반이 되었다.


    여기서의 문제는 전체 즉, 공리의 진리성이었다. 원론에 나오는 다섯 공리 중 하나가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는데, “어떤 직선 밖의 한 점을 지나며 그 직선과 평행인 직선은 단 하나다.”라는 평행선의 공리가 그것이다. 직관적으로 명백해 보이는 다른 공리들과는 달리 이 평행성 공리 만큼은 자명하지 않았다.


    향후 괴델은 이 문제를 불완전성의 정리라는 이름으로 정리한다. 이 정리는 “모든 정합적인 형식 체계 속에서는 그 내부에서 진위가 결정될 수 없는 명제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괴델의 증명은 대략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만약 여기에 단 하나의 공리로 이루어진 형식 체계가 있다고 하자. 이 공리에선 2개의 정리가 도출되고, 또 거기에서 다시 각각 2개의 명제가 연역된다. 그럼 1개의 공리, 2개의 정리, 4개의 명제로 이루어진 간단한 형식 체계가 탄생한다. 이 체계는 4개의 명제 모두가 공리에서 논리적으로 도출됨으로 논리 정합적이며 동시에 완전하다. 왜냐하면 자기를 거느린 명제들을 증명하는데 다른 체계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괴델이 증명한 것은 이러한 체계는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에 따르면 이 체계 속의 4개의 명제 중 적어도 하나는 참 또는 거짓을 결정할 수 없다. 어떠한 형식 체계도, 만약 그것이 정합적이라면 결코 완전할 수 없다. 다시 말해 그 안엔 진위가 결정될 수 없는 명제가 섞여있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즉, 한 명제에 대한 선험적 가정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자연수를 정의하는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가보자. 자연수는 우리가 모두 알고 있듯이 0부터 1씩 점차 커져나가는 하나의 수열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자연수를 친숙하게 느끼고 있으나 진정 이것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실제로 수나 0, 1에 대한 정의를 이해하는 사람은 극히 적으며, 모든 자연수가 0에 1을 거듭 더하여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으나, 여기서 1을 더한다와 거듭한다에 대해 정의하지 않으면 안되는 개념이고, 또 이를 정의하는 일이 결코 쉬운것도 아니다.


    수학의 문제는 자연수를 정의하는데 있어 최소한의 개념과 최소한의 명제로 정의를 환원하는데 있다. 이 문제는 페아노가 완결하였는데, 그는 세 개의 기본 개념과 다섯 개의 기본 명제로부터 순수한 논리적인 방법에 의해 자연수가 정의될 수 있음을 보였다.


    페아노가 선택한 세 개의 기본 개념은 0, 수, 후자 이다.

    그리고 다섯 개의 명제는 다음과 같다. (1) 0은 하나의 수이다. (2) 어떤 임의의 수의 후자도 또한 하나의 수이다. (3) 두 개의 수가 같은 후자를 갖지 않는다. (4) 0은 어떠한 수의 후자도 아니다. (5) 어떤 성질을 0이 가지며 또 그 성질을 가지는 임의의 수의 후자도 가지면, 그 성질이 모든 수가 갖는다.


    여기서 마지막 명제는 수학적 귀납법의 원리이며, 세 개의 기본 개념은 증명할 수 없는 명제이다.

     


    자연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과 정의를 위해 인간은 에덴 동산의 언어를 필요로 했고, 에덴 동산의 언어에 가장 가까운 형식 언어를 인간은 만들어 냈다. 수학이라는 이름의 이 언어는 하나의 단어에 대한 개념이 파편화되지 않고 대상을 그대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오늘날 과학이라 불리어지는 자연의 서술 방식에 대한 일반적 지식체계를 유클리드 원론 속의 연역체계와 함께 수학의 언어로 건설하는 것이 가능했다.


    뉴턴의 유명한 운동법칙인 F=ma 에서 F는 힘을, m은 질량을, a는 가속도를 나타내며,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공식인 E=mc^2 역시 E는 에너지를, m은 질량을, c는 진공 속에서의 광속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들 정의에서 사용된 각각의 기본 개념은 증명할 수 없는 명제이며, 동시에 이들 명제의 설명에 다시 일상언어를 필요로한다.


    과학을 형성하고 있는 토대는 증명될 수 없는 선험적 명제를 바탕으로 수학적 연역체계 위에 건설되어 있다.  물리학이 고전역학과 전자기학, 열역학, 양자역학에 이르기까지의 연역체계는 견고한듯 보이지만 몇 개의 선험적 명제 위에 그 토대를 두고 있다. 절대적 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물리학의 견고해보이는 성채조차 실은 허공에 떠있는 거대한 바위와 같은 형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과학은 그 증명할 수 없는 명제를 실험이라는 방법을 통해 명제의 참과 거짓의 여부를 검증 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


    최근에 발견된 힉스입자는 물리학 이론을 보다 견고하게 가다듬는 사건으로 읽혀질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문제가 산재해 있다. 대표적으로 검증 가능의 여부조차 불투명한 끈이론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 선험적 명제의 정의가 일상언어를 필요로 한다는 순환 구조 때문에 발생한 사이비 과학과 유사 과학의 문제 역시 이 거대한 바위 아래의 빈틈에 자리잡고 있다.




    버트런트 러셀, 수리철학의 기초, 경문사, 2002, 5-12

    진중권, 미학 오디세이, 새길, 1994

    윤태웅, 모순과 불완전함을 향한 유쾌한 여행 ‘괴델의 증명’, 고대투데이 2012년 봄호


    프레네 산맥의 성채, 마그리드 (http://cafefiles.naver.net/data4/2004/1/7/99/The_Castle_in_the_Pyrenees.jpg)

    그리는 손, 에셔 (http://cfs9.blog.daum.net/image/27/blog/2008/02/19/10/50/47ba35e1d4027)


    반응형

    댓글

Designed by Tistory x Aptun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