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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
    2022. 3. 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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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 과학과 참여 민주주의를 주제로 다루었던 언젠가의 독서 토론회에서 이런대화가 오간 적이 있었다.

     

    우리 동네 길가에 있는 전봇대에 사람들이 밤마다 쓰레기를 버리고 간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곳은 쓰레기를 버리는 곳도 아닌데, 길가에 아무렇게나 쓰레기를 버리고 있으니 사람들은 짜증이 났겠죠? 그때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그곳에 팻말을 붙이고, 감시를 하고, 싸우고 내쫓기도 하며, 주민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야기는 갈등의 요인이 몇몇 악인에 의해 의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의 미비점 혹은 한계 때문에 발생했음을 이야기하며, 본래 주제였던 시민참여와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언급할 요량이었기 때문에, 이어서 이렇게 덧붙였다.

     

    그런데, 원인은 알고 보니 최근에 시의회에서 통과된 환경법 개정안으로 쓰레기 수거 구역이 재정비되며 우리 동네에 없이 쓰레기를 버릴수밖에 없게 것이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지역구 시의원에게 민원을 제기하고, 주민들과 연합하여 수거장을 따로 신설하거나 법을 재개 정하도록 요구 하여야 것입니다.”

     

    정치라는 것은 이렇게 우리의 일상과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을 있으며, 그것을 움직이는 민주주의의 작동 과정을 이런 식으로 비유하며 이것이 과학과 기술 분야게서도 요구되고 있다는 그날의 주제로 넘어하려던 참에, 나는 뜻밖의 의견을 듣게 되었다.

     

    정치인들은 맨날 돈이나 받는 것들이라 믿을 없다

     

    민주주의의 이상적인 작동 원리는 시민 모두가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형태일 있지만, 사회의 복잡성과 전문화로 모든 시민의 참여가 사실상 가능하지 않는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우리는 대의 민주주의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대신 의사 결정을 내려줄 대리인을 선출하여, 의회와 행정부에 권한을 위임한다. 이렇게 위임된 권한은 시민에게서 빌려온 것이기에, 권력의 주인은 온전히 시민에게 귀속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의 답변은 자기 얼굴에 침을 뱉는 것과 다름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이러한 생각이 어디에서 기원하는지가 궁금해져, 질문을 계속 이어나갔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까지 뉴스 보면 다그런 거 아니냐? 내 주변 사람들도 이렇게 생각하는데, 여기에 반론을 들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인간은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 하고 결코 타인의 주장이나 의견에 동조하지 않으려 하기에, 수많은 광고와 전화, 홍보물에도 전혀 동요치 않는다. 하지만 동시에 어떤 의견은 사람들 사이에 너무나도 쉽게 널리 확산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이야기 하자면, 제이슨 브레넌의 비판을 이야기하지 않을 없다.인간은 진실과 정의가 아니라 동의를 구하는데 몰두한다. 인간은 획일적인 의견 앞에 움츠리고, 이성이 아니라 어딘가에 속하려는 욕망, 감상적 호소 성적 매력에 휘둘린다[1]. 

     

    그의 생각에 영향을 끼친 주체는 가족과 친구, 그리고 교회 커뮤니티였다. 가족과 친구 역시 교회 커뮤니티와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었고, 친인척 중에 정치권과 연루되어 금전적 손실을 입었던 경험도 없었으니, 어쩌면 그의 무조건적인 정치혐오는 교회에 뿌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브레넌의 의견처럼 이것은 목사님의 말씀과 같이 권위나 신뢰 할만한 사람의 말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동의를 받았기에 가능한 것이라 보아야 적절하다. 

     

    현재 한국 사회가 공유하는 사회적 객관성의 조각들은 한 가지 공통적인 결을 가지고 있다. 바로 개인의 삶과 경험 속에서 학습된 순수성과 의도에 대한 의심이다. 대표적인 예가 세월호 참사 당시 여당 의원들이 유가족들 대하는 태도이다. 김재원 의원이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나누었던 인터뷰에서 그는 유가족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그것은 심리적인 차원이라서 바로 말씀드릴 수는 없는데요. 어쨌든 솔직히 말씀드려서 유가족은 저희를 거의 적대시해 왔던 것이 사실이고, 국가권력이 자신들의 자녀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생각도 있고 그것을 은폐하려고 급급한다라는 생각이 있는 것으로 보였고, 저희들은 거기에 외부세력까지 가담을 해서 결국 유가족의 어떤 궁박한 처지와 슬픔을 활용해서 정부 전복 반정부 투쟁을 벌이는 아닌가순전히 이것은 어떤 유가족의 슬픔을 이용한 반정부 선동에 동원되는 아니냐 이런 오해와…” [2]

     

    안타깝게도 유가족이 어떤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행동하고 있다는 생각은 당시에 널리 확산되었다. 왜냐하면, 우리의 일상에서 불순한 의도로 인한 크고 작은 사건사고들을 보거나, 경험해 보았기 때문이다. 가령, 불우이웃 돕기모금액의 횡령[3]이나 곗돈 사기횡령에서부터 인사평가를 위해 얼굴을 동료의 모습 등이 그렇다.

     

    능력주의의 등장은 반대가 반대 자체의 힘만으로 지위를 획득할 등장하는 자연스러운 상황이다. 누구의 의도도 믿을 없고, 모두를 불신할 수밖에 없는, 개인의 능력만으로 각자 도생해 나가는 것이 유일한 출구가 된다. 능력주의를 통해 과거에 가족, 소득, 또는 출생의 문제로 소외되었던 똑똑한 이들 모두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기회 평등의 확대라는 인식으로 재조정된다. 이렇게 함으로써, 모든 사람들에게 그들이 가진 능력 수준까지 성공하고 승진할 기회를 허용함으로써 누리는 혜택에 대해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렇게 다시 반대의 극단까지 오게 되었다. 이 극단까지의 진자 운동은 탄핵 이후로 예견된 사건이었는지도 모른다. 진자는 다시 극단까지 가서 언젠가 돌아오겠지만, 진자의 축이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지는 없다. 서두에 독서 토론회를 진행하며 꺼내 들었던 이야기의 의도처럼, 모두가 모두를 의심하고 경계하는 사회가 아닌, 연대하고 참여하는 사회로 축이 이동하기를 기원해 볼 따름이다.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 - 8점
    김민하 지음/이데아

     

    [1] Heraclitus, fragment, 111 (2001)

    [2] 김재원 "유가족, 대통령 만날 필요없게 해줄 것”, 노컷뉴스

    [3] 불우이웃돕기 성금 횡령한 경기지회 간부 집유선고,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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