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lavinka


민주주의 사회에서 모든 시민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정책 결정이 민주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은 보통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과학기술정책은 이러한 원칙에서 중대한 예외로 보인다. 과학기술정책은 분명 모든 시민들에게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세상은 수많은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계속해서 재형성되고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기술정책은 관례적으로 기업, 군대, 대학이라는 단 세 개 집단의 대표에 의해서 그 틀이 정해지고 있다. (Sclovd, 1998; Dickson, 1984/1988)


일반적인 통념에 따르면, 이와 같은 상황이 빚어진 이유는 비전문가들이 복잡한 기술적 사안들에 관해 논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데 있다. VCR의 예약녹화도 못하는 시민들이 복잡한 과학적, 산업적 쟁점들에 대해 건설적인 기여를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할 수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대니얼 리 클라인맨, 과학 기술 민주주의, 갈무리, 2012, 62-63]


믹스 케잌에 대한 재미난 이야기가 이야기가 하나 있다. 케잌 믹스 사업은 4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믹스 케잌 가루를 상자에 포장했고, 주부들은 간단하게 그 가루를 쏟고, 물을 붓고, 섞어주고 오븐에 넣어주면 케잌이 완성되는 상품이었다. 그러나 그 믹스 케잌은 굉장히 인기가 없었다. 맛은 훌륭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그러한 믹스 케익 상품을 원하지 않자, 제조사는 휼륭한 맛을 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팔리지 않는 이유를 골똘히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이 내 놓은 해답은 이것이었다. 케잌을 만드는데 충분한 노력이 필요 없었다는 결론이었다. 이 믹스 케잌을 사서 손님에게 대접하면 만들기가 너무 쉬워서 자신이 만들었다고 자신있게 내놓을 수 없기 떄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제조사는 믹스 케잌 가루에서 달걀과 우유를 빼버렸다. 이제 사람들은 이 믹스 케잌으로 케잌을 만들때 적당량의 우유 계량해서 넣어줘야 했고, 달걀도 직접 깨서 넣어줘야 했다. 이제서야 이 믹스 케잌은 대박상품이 되어 제조사의 모든 고민이 해결되었다.


이케아 효과라고 알려진 이 효과는 사람들이 더 열심히 일 할수록 자신들이 한 일을 더욱 좋아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너무 손쉽게 만든 케잌은 제과점에서 케잌을 사오는 정도의 노력과 비슷했기 때문에 이 믹스 케잌은 성공하지 못한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믹스 커피가 초기에 크게 성공하지 못한 것에서, 컴퓨터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이용자의 컴퓨터 사용 수준이 단순 조작 수준에 머무르게 되는 것까지. 우리는 많은 경우 어떤 일이나 결정 과정, 심지어 일상생활 속에서 개인의 관심과 흥미를 이 이케아 효과를 이용해 설명하는 것도 가능하다.


현대생활에서 과학기술과 그 산물은 마치 공기와 같이 우리의 일상 속에 깊숙히 스며들어 일상생활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 하지만 과학기술이 일상 속 깊숙한 곳까지 들어오는 것과 동시에 과학기술은 매우 빠른 속도로 전문 영역화되어, 다년간의 전문 교육을 받지 않고서는 이해될 수도 없는 종류의 지식으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때문에 최근의 정보혁명은 과학기술의 새로운 발전을 빠른 속도로 이끌어 나가고 있지만, 반대로 그것을 이용하는 최종 수요자 측의 이해를 전혀 필요하지 않는 기술을 적용해 나가고, 그결과 우리의 일상은 그 배후에 무엇이 진행되고 있는지를 이해하거나 변경할 필요가 없는 과학기술의 작동으로 가득하게 되었다. 이 같은 상황은 단지 일반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과학이 여러 전문 분야로 세분화 되면서 과학자들 마저도 자신의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는 과학 발전의 내용을 점점 더 이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1]  이렇게 과학기술의 발전 과정은 소비자들에게 있어 믹스 케잌 가루에 우유와 계란을 넣었던 것에서, 가루에 물을 붓는 것으로, 그리고 마트에서 완성된 케잌을 구매하는 방식으로 발전해온것이다.


여기서 두 가지 쟁점이 발생한다. 한 가지는 과학기술의 산물이 대중에게 단지 편리한 도구로서의 기능으로 사용되어지는데 그치지 않는다는데 있다. 다시 말해, 핵발전소의 건설과 독성폐기물 처분장 건설, 갯벌 매립, 쓰레기 소각장 부지 선정, 고속철도 건설에 이르기까지 과학기술의 문제는 생활 그 자체의 문제까지를 포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다시 과학기술 문제의 결정에 관한 부분으로 이어진다. 


현대 사회는 과학기술의 사회이고 따라서 대중들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도처에 펼처진 과학기술과 연관된 문제에 맞닥뜨리고, 끊임없이 이 문제들에 대해 나름대로의 판단과 의사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되었다. 그리고 날로 빈번하게 요구되는 이러한 의사결정들은 개인이나 집단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2] 그러나 과학기술 산물의 직접적 수혜자이자 당사자인 대중은 과학기술 그 자체와 과학기술의 방향 그리고 생활을 결정하는 정책 결정 과정에서 상당부분 배제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과학기술의 수많은 성공 사례들에도 불구하고 전후 시기에 나타난 과학산물들이 한결 같이 이롭기만 한 것은 아님을 깨달았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원자폭탄과 쓰리마일 섬의 재난, 독성폐기물 처리와 관련한 수 차례의 환경 문제를 겪으며 한층 심화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논란에 따른 논의와 정책결정 과정에 있어 많은 경우 과학자와 일반 시민 그리고 정부의 정책결정자 사이를 가르는 높은 벽이 존재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가령, 대중은 과학적 소양이 없기 때문에 과학 영역의 결정 과정에 개입할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거나 또는 대중 스스로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경우들이다.


과학기술에 대한 주된 논의점은 바로 이 부분이다. 과학기술의 직접적 수혜자이자 이용자인 일반 대중이 개인이나 집단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과학기술의 의사결정과정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는가라는 부분이다. 다시 말해, 과학기술의 의사 결정과정에서의 민주주의를 어떻게 실현 시킬 것인가의 문제이다.


일각에서는 과학적 결정은 국민 투표에 부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이는 어리석은 생각이라고 말한다. 대부분 과학기술에 대한 기본적 소양이 부족하기 때문에 만일 학교에서 어떤 생물학 과목을 공부할 것인가에 대한 투표를 할 경우 진화생물학 대신 창조과학이 교육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는 ‘평상시에 과학적 쟁점들에 대한 최신의 이해를 갖추고 있지 못하던 사람들도 필요할 경우에는 그것의 중요한 측면들에 대해 재빨리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대니얼 리 클라인맨, 과학 기술 민주주의, 갈무리, 2012, 23-27]


이케아 효과에 대한 비유를 들자면, 믹스 케잌을 사서 적당량의 우유를 계량하고 직접 계란은 깨어서 오븐에 넣어 케잌을 만들면 케잌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관심을 가지게 될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항상 마트에서 케잌을 구매하는 대중들 역시 필요한 경우엔 믹스 가루에 물을 섞어 케잌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대중의 과학화로 대변되는 케잌 만드는 법에 대한 일관된 교육과는 거리가 멀다. 이것은 믹스 케잌을 살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것과 유사하다.


대니얼은 과학기술 사안에서 민주적 참여의 구체적인 사례와 시민참여 증진이 정책과 제도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 지에 대한 논의를 다양한 연구성과들을 종합하여 엮어놓았다. 정치적 민주화에 이어 경제 민주화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는 도중에 과학기술의 민주화에 대한 논의는 매우 빠른 것인지도 모른다. 때문인지 이같은 논의가 10여년 전부터 지속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쟁점화 되지 못한 점은 안타까운 부분이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한 논의가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시작되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가져본다.


과학, 기술, 민주주의 - 8점
대니얼 리 클라인맨 엮음, 김명진.김병윤.오은정 옮김/갈무리


[1] 강성윤, 자본주의와 과학기술, 경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제7권 제2호, 23 (2010)

[2] 김동광, 과학대중화의 새로운 시각, 전기사회학대회, 284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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