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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의 태도가 과학적이길...
    2021. 11. 27.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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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리베이터에 타면 여전히 음이온 작동 표시등이 밝게 빛나는 모습을 본다. 많은 사람들은 감기에 걸리면 약국에서 아세틸 살리릴산을 사 먹지만, MSG가 들어간 음식은 독극물이나 화학약품이 들어간 것 처럼 여겨 최대한 피하려 한다. 연일 몸에 좋은 음식과 건강을 이야기하며, 염화나트륨 보다는 소금을 먹는 것이 건강에 좋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건강을 위해 아스팔트에서 추출한 비타민으로 만든 영양제는 꼬박꼬박 챙겨 먹기도 한다. 선풍기 괴담이나 전자파 공포도 여전히 지천을 떠돌고 있고, 심지어 과학자의 입에서 거짓 지구온난화와 코로나 백신 음모론까지 나오기도 한다.

     

    과학자의 정체성을 가지고 위와 같은 이야기를 듣거나 유사한 모습들을 볼 때면 욱하는 기분이 많이 든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하고 고쳐야 할지 조차 막막한 상황에 그냥 거기서 대화를 끝내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과학자의 설명 조차 들으려 하지 않는 태도에 좌절을 느끼기도 한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면 쉽게 나오는 주제가 ‘과학의 대중화’와 ‘대중의 과학화’에 대한 논쟁이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우리 인식 속의 과학은 이러한 이분 구도로는 설명할 수 없다. 실례로, 중력파 관련 국제 학회를 한국에서 주최할 때 마다 대중 강연을 여는데, 매번 예상을 넘어서는 많은 사람들이 강연을 듣기 위해 참석하는 모습을 보며, 대중과학에 관한 높은 수요를 경험해 왔기 때문이다.

     

    대중과학에 대한 수요도 이렇게 높고, 과학자들 역시 대중 강연의 저변을 넓히고자 하는데, 우리는 왜 일상에서 계속해서 비과학을 마주해야 하는 것일까?

     

    그 일차적인 원인은 환원주의와 다원주의로 대표되는 사회구조의 변화와 시대의 흐름에서 찾아볼 수 있다. 현재 대학에서 생겨나고 있는 수 많은 학과들의 이름에서 알수 있듯이, 학문은 세분화되고 파편화 되어가고 있다. 가장 느리고 보수적인 학문 마저 이렇게 다변화되고 있다면, 오늘날 우리 사회의 구조는 말할 나위없이 다양화되고 복잡해지고 있다고 말 할 수 있다. 이러한 흐름에서 자연스럽게 피어 나오는 것이 다원주의이다. 서로 다름의 차이를 인정하고 공존 하자는 취지 이지만, 그 가치와 본의가 모두에서 동일하게 전달되지는 않는다. 가치의 전도 혹은 전복은 매우 쉽게 일어나는 까닭이다.

     

    운동을 하면 땀이 난다. 운동을 열심히 해서 더 많은 칼로리를 소모 할수록 우리는 땀을 더 많이 흘린다. 이런 사실에서 ‘땀을 많이 흘리면 칼리리 소모가 많은 것이다’로 전복이 일어나고, 사우나에 가서 땀을 흘리는 것만으로 운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다원주의에 대한 전복이 바로 다원주의를 따르지 않을 권리 또한 존중 받아야 한다는 흐름이다. 이것이 과학으로 그대로 이어지면, 과학을 자연의 실체를 드러내는 실체로써의 정보가 아니라, 주관적이고 추상화된 대체 가능한 관념으로 여기게 되면서, 백신접종 거부운동이나 기후위기 음모, MSG 공포, GMO 공포로 드러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흐름이긴 하지만, 한국에서 나타나는 모습은 조금 다른 원리에 의해 작동되고 있다. 바로 교육 체계와 언론의 역할이다.

     

    일반물리학과 실험을 가르치는 첫 시간에 학생들에게 ‘우리가 수학이나 과학을 배우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물어 본적이 있었다. 물리학에 대한 딱딱한 고정관념을 희석시키고 흥미를 돋구려 했던 질문 이었지만, 당연하게도 학생들이 보인 반응은 밍밍하기 그지없었다. 논리적 사고와 과학적 방법론을 활용한 문제 해결능력 함량 보다는, ‘시험을 보기위해’, ‘점수를 위해’서라는 대답이 대부분이었다. 물리학은 어렵기만 하고 일상생활에서 쓸모없는 지식에 다름 아니라는 인식도 녹아 있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일부 학생들은 이 이야기가 마치 시험에라도 나올 것이라 예상 했는지, 하나하나 받아 적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한국 교육은 이런식으로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논리적으로 이해하며, 과학적 방법론에 근거해 검증하는 능력을 거세당한 받아쓰기 인재들을 양산해 내고 있다. 여기에 문과와 이과 사이의 공고한 장벽이 이공계에 대한 천시와 멸시까지 만들어내며, 과학에 대한 인식의 괴리는 좁혀지지 않고 있다.

     

    이 지점에서 왜 그렇게 대중과학에 대한 일반의 수요가 높았는지가 설명 된다. 과학과 대중 사이의 다리, 혹은 창구 역할을 해야할 언론이 무과학적 태도로 일관하며 언론으로부터는 아무런 과학적 정보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에, 직접적인 대중과학에 대한 잠재 수요가 그만큼 높았던 것이다. 그 와중에 한국의 언론들은, 흑설탕이 몸의 어디가 좋은지를 보도하고, 카스테라에 식용유가 들어갔다는 사실을 보도하며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빼앗고, 과학적 성취 조차 정파적 이해나 국가주의적 관점에서 성과를 평가하고 재단하기 바쁘다.

     

    이종필 교수 역시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책 말미에 한국의 교육 체계과 그 속에서 양상된 지식인과 언론인들의 무과학적 태도를 실랄하게 지적한다. 질문하지 않는 기자, 취재 하지 않는 기자, 전화는 커녕 검색조차 하지 않는 기자, 심지어 과학의 영역에서 조차 정파적 관점에서 뒤틀고 왜곡하는 태도에서, 그는 한국형 전채의 종말을 선언한다.

     

    우리의 태도가 과학적이기를 바라는 마음은, 우리 모두가 과학적이 되어야만 한다는 명령보다는, 지식인과 언론이 갖춰야할 덕목에 관한 부탁에 가깝다. 그들이 조금 더 데이터에 기반한 논리적 사고와 과학적 방법론에 기초한 검증 능력을 갖추길 희망 할 따름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20세기로 부터 온 메시지의 홍수 속에서, 21세기를 헤쳐나가야 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우리의 태도가 과학적일 때 - 10점
    이종필 지음/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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