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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동경제학, 비합리적 인간이 만들어나갈 미래
    2021. 11. 20.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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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형 맥북 프로 라인업이 공개된 직후 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수많은 선택지들과 예상보다 비싼 가격을 보고, 어떤 제품이 나에게 가장 적합한지를 결정하는 문제였다. 

     

    매번 맥북을 휴대하고 다니는 경우가 많이 때문에, 크기는 14인치가 적당할 것이다. 사진을 취미로 하긴 하지만, M1 Max의 성능까지 요구할 정도의 사진 편집 작업은 하지 않는다. 코딩을 많이 하지만 주로 서버에서 작업을 하다 보니, M1 Pro에 16기가 메모리 정도로도 충분할 것이다. 클라우드를 주로 이용하고 넉넉한 외장하드도 가지고 있으니 512기가 SSD도 쓸만 할 것이다. 

     

    이러한 판단에 기초해서, 경제적이고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내린다면, 14인치 맥북프로 기본 모델을 구매하는 것이 이콘으로서 바람직한 결정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최고 옵션의 16인치 맥북프로를 구매할 것이라는 것을. 왜냐하면 우리가 구매결정을 최종적으로 내리는 요인은, 합리성과 경제성 보다는 Hype에 더 큰 가치를 두기 때문이다.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할인 행사가 진행되는 명품 브랜드 매장 앞에 수 많은 사람들이 줄 서있는 모습이나, 새로운 나이키 신발을 구매하기 위해 혈안이 된 사람들을 보게 되는 것도 이와 유사하다.

     

    휴리스틱 편향 모델 역시 인간의 비합리적 소비 습관과 선택에 관한 주요 단서를 제공한다.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과 지적 능력은 다분히 제한적이기 때문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학습된 정보를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내린다 [p56]. 이는 매일 먹는 점심 식사의 메뉴를 정하는 일이나 마트에서 우유를 구매할 때는 어느때 보다도 가성비를 충족하는 합리적 소비를 하지만, 주택 구매나 자동차 구매와 같이 충분한 경험적 제반을 확보하지 못한 소비, 혹은 복잡하고 장기적인 문제의 해결책에 관해서는 합리적 선택을 내리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의 인지 범위를 벗어난 수많은 문제에 관한 결정을 내리는데, 이 결정들은 어떻게 이루어 지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주변 환경이 인간의 의사 결정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한 유명한 심리 실험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실험은, 실험 참가자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 참자가들은 실험 진행자와 짜고 거짓된 주장을 할 때, 몇 명의 공범이 피실험자의 의견이 바꾸도록 만드는 지를 보는 실험이었다. 가령, 길이가 명백하게 다른 두 직선을 보여주고, 어느쪽이 더 긴 직선인가 라는 질문에, 피실험자를 제외한 나머지 공범들이 짧은 길이의 직선을 보고 더 길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결과는 놀랍게도 3-4명만 거짓 주장을 해도 이 거짓 의견에 동조하여 자신의 의견을 바꾼다는 사실이었다. 더욱 흥미로운 지점은, 그 보다 작거나 많은 숫자에 대해선 자신의 소신을 지켰다는 점이다. 이는 우리가 흔히 “내 주변 사람들은 전부 ~”라고 이야기할 때, ‘전부’의 수가 몇 명인지를 가늠하게 해준다. 인간의 인지 범위에서 3-4명은 ‘모든 사람’과 같다.

     

    우리의 의사 결정이 당장의 Hype과 주변인 몇몇에 의해 쉽게 좌우된다면, 먼 미래에 관한 우리의 선택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질까? 당연하게도, 인간은 내일 보다는 지금 당장의 선택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1년 후에 벌어질 일과, 내일 저녁에 벌어질 일에 관한 선택에는 거의 차이를 두지 않는다 [p158]. 미래에 대한 우리의 능력은 제한되고 왜곡되어 있으며, 현재의 즐거움에 보다 천착하는 경향이 뚜렷한 까닭이다.

     

    행동경제학은 이렇게 인간의 본성과 심리를 기반으로, 인간을 이콘으로 가정한 고전적 경제학 모델을 깨부순다. 오늘날 우리가 이 이론에 기반을 둔 수 많은 마케팅 모델을 생활 속에서 직접 경험하고 있는 것도 행동경제학의 성과라 할 수 있다. 쉬운 예로, 가깝게는 정가에 판매하고 있는 제품임에도 가격표에 표기된 할인율을 보고 ‘이 기회가 아니면 이런 혜택을 누릴 수 없다’는 생각에 지갑을 여는 우리의 모습이고, 좀 더 멀리는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기업들의 마케팅 전략이다.

     

    최근 나는 다 쓴 화장품 용기를 버리지 않고 모으고 있다. 가방에는 항상 텀블러를 넣고 다니고, 패트병에 붙은 플라스틱 포장지는 잘 벗겨지는지, 포장지에 플라스틱이 얼마나 사용되었는지를 무심결에 확인하고 또 실천하려고 애쓰고 있다. 이는 환경 보호에 대한 대단한 신념이나 의지가 있어서는 아니다. 인간은 미래의 가치보다 현재의 즐거움과 편안함을 더욱 중요한 가치로 여기기 때문에, 기후 위기의 심각성에 공감을 하더라도 환경 보호를 위한 작은 일 하나하나를 실천하며 생활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과도 맞지 않는 일이다. 그럼에도 이런 행동을 기꺼이 하는 것은, 이것이 당장의 혜택으로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새로운 화장품을 사려고 매장에 방문할 때, 다 쓴 화장품 용기를 가져가면 그 만큼의 포인트를 지급받고, 텀블러를 카페에 들고가면 종이컵을 사용할 때 보다 조금 저렴 해진다. 최근 나이키가 재생 섬유로 만든 밋밋한 신발을 만들어 가장 눈에 띄는 곳에 전시하고, 전기차가 대세가 되고, 거대 IT 기업들이 친환경을 주된 가치로 내 걸면서, 친환경이 새로운 Hype이 되어가고 있는 것도 이러한 흐름을 만드는 주요한 동력이다.

     

    인간을 단순하게 이콘이 아닌 비합리적인 존재하고 규정한다면, 기후 위기를 마주한 인류의 미래는 매우 암울하게만 비춰진다. 하지만 오히려 이콘이 아니기 때문에 기후 위기는 대응 가능한 위기로 관리될수 있을지 모른다는 가능성도 엿보인다.

     

    정말 인간은 흥미로운 존재이다.

     

    행동경제학 - 8점
    리처드 H. 탈러 지음, 박세연 옮김/웅진지식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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