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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왜 수포자가 되었을까?
    2021. 10. 10.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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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오래 전 멀고 먼 은하의 저편에, 우주 비행사를 꿈꾸던 쌍둥이 형제 A와 B가 있었다. 어느날 TV에서 지구로부터 12광년 떨어진 행성을 탐사할 우주 대원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모험심이 강했던 B는 가장 먼저 이 프로그램에 지원했다. 하지만 B와 달리 소심한 성격을 가졌던 A는 지구에 남아 B의 여행을 망원경으로 지켜보며 그가 들려 줄 모험담을 기다리기로 하였다. 지구에서 발사된 우주선은 빛의 속력의 80%의 속력으로 미지의 행성까지 날아갔고, 이 모습을 바라보며 A는 생각했다.

     

    “왕복 24광년의 거리를 0.8c의 속력으로 날아가니 아마 30년 뒤에나 B를 볼 수 있겠구나”

     

    그런데 30년의 시간이 흐르고 백발이 다 되어버린 A의 앞에, 여행을 다녀온 B가 아직 12년이나 젊은 모습을 하고 나타난 것이 아닌가. 어떻게 된 일일까?

     

    이 야야기는 그 유명한 특수 상대성이론의 쌍둥이 역설이다. 이 역설을 풀기 위해서 우리는 특수 상대성이론의 “로렌츠 변환”을 통해, 관측자의 운동 상태에 따라 관측 대상의 상대적 정보를 계산해 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모두가 궁금해 하지만, 아무도 대답해 주지 않았던 질문이 한 가지 있다.

     

    “도대체 로렌츠 변환이 뭔데? 이 XX야!!”

    로렌츠 변환은 수학자 로렌츠가 발견해낸 재미난 좌표변환 방법에서부터 시작한다. 다음과 같은 상황을 머릿속에 그려보자. 사방에 원 모양으로 공을 발사하는 장치를 바닥에 고정해주고 공을 발사하면 공이 원을 그리며 날아 갈 것이다. 이제 옆으로 달리면서 이 장치의 스위치를 켜면 이 모습은 어떻게 보일까? 달리는 방향으로는 약간 찌그러지고 반대 방향으로 길게 펼쳐진 타원 모양을 우리는 보게 될 것이다. 정차된 기차에 앉아 있는데, 옆 선로의 기차가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마치 내가 타 있는 기차가 뒤로 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과 같은 원리다.

    이제 여기서 재미난 가정을 하나 해보자. 가만히 서서 이 장치를 보거나, 달리면서 보거나 상관없이, 공은 항상 원으로 균일하게 퍼져나간다면 어떻게 될까? 이것을 적절히 기술 할 수 있는 좌표는 무엇일까? 이런 좌표계가 존재한다면 우리의 직교 좌표와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어느날 하늘에서 식이 툭 하고 떨어진 것만 같았던 로렌츠 변환은 이런 장난스러운 가정 하나에서 연유된 것이었다. 이 가정만 안다면 매번 헷갈리는 공식을 구태여 암기할 필요도 없어진다. 이 수학적 기교는 이후, 에테르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간섭계 실험의 결과 해석과, 전자기학에서 유도기전력과 로렌츠힘의 해석 과정에서 그 실마리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며, 우리가 아는 그 특수 상대성이론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역사와 배경, 맥락을 전혀 알지 못한 채, 그저 하늘에서 떨어진 식으로 예제 문제를 익히고 연습 문제를 풀고 시험을 치며, 쌍둥이 역설을 외우기만 했다.

     

    수학은 공리의 집합과 논리의 결합으로 새로운 개념을 조직해내는 흥미로운 논리 게임 임에도, 우리는 수학을 매력의 대상이 아닌 혐오의 대상으로 취급하고 있다. 점수 서열화를 위한 공식 암기, 문제 암기, 유형 암기 위주의 교육은 우리를 자연스럽게 수포자로 내모는 구조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는 대표적인 사례로 수학을 예로 들었지만, 수학과 과학 뿐만 아니라 모든 학문의 학습 과정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러한 교육 방식은 기형적인 형태의 인재를 양산해 냄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잘 알고있다. 수식을 잘 암기하고 문제에 잘 적용하여 높은 성적을 가지고는 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을 인재로 길러 내거나, 직관적으로는 문제의 해결 방법을 이해하고 있지만 대수적으로 정규화시키는데는 애를 먹는 사람을 열등아로 만들어 내는 일 등이다.

     

    21세기를 통합의 시대라고 말하며, 융합과 창의를 부르짖지만, 우리의 교실과 강단에서는 여전히 21세기 미래를 위해 19, 20세기의 지식을 얼마나 잘 암기하고 빠른시간 안에 문제를 잘 풀 수 있는지를 평가한다.

     

    이 책 ‘생각의 탄생’에서 저자는 전근대적 형태의 교육방식을 지적하며, 미래의 전인whole-man을 길러내기 위한 통합 교육을 제언한다. 이 교육의 목표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학생들에게 보편적인 창조의 과정을 가르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둘째, 창조과정에 필요한 직관적인 상상의 기술을 가르쳐야 한다. 셋째, 예술과목과 과학과목을 동등한 위치에 놓는 다학문적 교육을 수행해야 한다. 넷째, 혁신을 위한 공통의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교과목을 통합해야 한다. 다섯째, 한 과목에서 배운 것을 여러 분야에 응용할 수 있어야 한다. 여섯재, 과목 간의 경계를 성공적으로 허문 사람들의 경험을 활용해야 한다. 일곱째, 모든 과목에서 해당 개념들을 다양한 형태로 발표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여덟째, 상상력이 풍부한 만능인을 양성해야 한다. [1]

     

    저자는 다빈치에서 파인만까지 창조를 빛낸 이들의 사례를 정리하여 위와 같은 수퍼맨을 기르기 위한 교육을 제언하지만, 이는 또다른 전체주의 교육에 다름 아니다. 모든 개개인이 수퍼맨이 되어야 할 필요도 없으며, 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창조와 융합의 시대에 중요한 가치는, 전인이 아니라 소통과 협업 능력이다.

     

    여기 아주 흥미로운 사례가 한가지 소개된다. 미시건 주립 대학에서 진행된 ‘음악적’ 소변 분석 기법이다. 기존의 소변분석절차는 소변을 통과한 빛의 파장의 변화를 측정하여, 소변 속에 얼마나 많은 화학성분들이 들어있는지를 알아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수 많은 소변 샘플들을 조사했지만 거기서 나오는 도표들은 대체로 비슷비슷 했고 육안으로도 그 차이를 구분하기 쉽지 않았다. 연구팀은 여기서 ‘귀’를 이용한 분석법을 고안해 냈고, 데이터를 시간과 강도 등의 변수로 재조합된 신호로 악보를 그려본 것이다. 놀랍게도 이 결과는 그동안 눈으로는 확인하지 못했던 소변분석 데이터의 미묘한 변화를 구별해 낼 수 있었음을 보여주었다. [2]

     

    이 사례는 한 연구팀의 다학제간 융합의 사례로 등장 하지만, 이러한 방식의 융합연구는 대부분 활발한 소통의 과정 속에서 탄생하고, 그 장소는 휴게실, 엘레베이터, 복도, 식당, 심지어 화장실 앞에서 종종 벌어진다. 여기서 입시경쟁 중심의 한국 교육은 다시 소통과 협업의 관점에서 재소환된다. 입시 위주의 경쟁과 줄세우기 평가의 그 결과, 우리는 토론과 협상법을 알지 못한 채, 각자의 주장만을 강요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협업 보다는 누군가를 초청하여 경청하여 배우고 따르려고 한다.

     

    전인이 되어라는 저자의 제언은 과격하고 철지난 이야기이긴 하다. 하지만 적어도 현재의 한국의 교육 철학에 비춰본다면, 충분히 귀감을 삼을 만한 내용임은 분명해 보인다.

     

     

    [1]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미셸 루트번스타인, 생각의 탄생, 에코의 서제, 416 (2007)

    [2] Ibid, 372-373

     

    생각의 탄생 - 6점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외 지음, 박종성 옮김/에코의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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