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다개국어 사용자들의 비밀
    2021. 10. 6. 16:48
    반응형

    일본 생활을 시작하고 처음 미용실에 들렀을 때의 일이다. 직원과 대화를 이어나가는 도중에 문득 “어느 지역 출신이냐”는 재미있는 질문을 받았다. 그래서 나는 “어느 지역 출신 같은지”를 역으로 물었다. 그랬더니, “오사카 출신인거 같다”는 재미있는 대답을 들었던 것이다. 그 이후로도 수업을 듣거나 일본의 친구들과 대화를 나눌때면 ‘일본에서 살았던 적이 있었는지’, ‘혹시 부모가 일본인인지’, ‘그동안 어떻게 일본어를 공부 했는지’, ‘언제부터 일본어를 할 수 있게 되었는지’ 같은 질문들을 줄곧 들어왔고, 지금도 듣고 있다.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나의 한결 같은 대답은, “어쩌다보니 일본어를 할 줄 알게 되었다”는 것 뿐이었다. 어쩌다 보니? 이 황당이 질문에 많은 사람들은 당황했지만 사실이었다. 이것이 내가 일본어를 익히게 된 비밀 아닌 비밀이였으니까.

     

    나는 어릴적에 일본의 문화 컨텐츠들을 자주 즐겨기고 접해왔다. 일본 게임, 드라마, 영화, 애니메이션, 아아돌 그룹 등에 매료되어 일본어를 자주 접하는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 왔던 것이었다. 파이널판타지 시리즈를 좋아했던 나는 사전을 찾아가며 알아 볼 수도 없는 일본어판을 플레이하기도 했고, 덕질하던 아이돌의 인터뷰 기사가 실린 잡지를 사서 밤새 사전을 뒤적이며 번역을 하기도 하면서, 나는 일본어와 조금씩 친해져 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잊을 수 없는 하루는 맞이했다. 평소처럼 아이돌이 출연하는 라디오 방송의 녹음 파일을 들으며 걸었던 등교길에서 어느날 갑자기 거짓말 처럼 모든 일본어가 하나하나 들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소위 귀가 뚫린 날이었다. 신기한 마음에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옆자리 않은 친구들에게 이어폰을 건네며 혹시 무슨 말인지 들리는지를 묻고 또 물었지만, 그저 웃음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말만 되돌아 왔다.

     

    그렇게 나는 일본어를 체득하게 된 것이었다.

     

    일본어 듣기가 가능하다면, 모르는 한자들의 읽는 법만 익히는 것으로 읽기가 자연스럽게 가능해 졌다. 자주 들어왔던 표현들에 단어를 조금 변형하는 것으로 말하기가 가능했고, 그것에 소소한 문법과 문어체 표현을 적용하는 것으로 쓰기 역시 자연스럽게 가능해 졌다. 이 허들을 한 번 넘어서게 되면, NHK 뉴스 방송을 시청하거나 일본어 교재를 구해서 읽는 식으로 일본어 구사 능력은 점진적으로 성숙해 나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한국어와 일본어를 동시에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은 아무런 능력도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모든 언어를 영어로 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어라고는 Apple 밖에 몰랐던 나는 토익 시험 점수를 위해 근처 학원에 등록해 시험점수를 위한 영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기본 영문법에 대한 설명과, 단어 암기 숙제, 매일 이어지는 쪽지시험, 주간 모의고사 등을 거쳤지만 영어 실력이 향상하고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두 달 만에 토익 ***점 향상 후기의 주인공이 내가 될 수도 있다는 희망을 품으며 그렇게 또 몇 달이 흐르고, 다음달 시험을 위한 준비가 몇 년의 시간이 되어 되돌아온 것이었다.

     

    이때 난 오래전에 들었던 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어머니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2년간 말린 잎으로 다린 약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은 자식은, 2년 동안 2년간 말린 잎을 찾아 해매이다 결국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말았다는 이야기였다.

     

    내가 일본어를 체득 했던 방법처럼 영어도 같은 방법으로 하면 될 터였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영어를 언어자체로 즐기기 위해 나는 가장 먼저 드라마 쉐도잉 방법을 택했다. 드라마는 평소 좋아하던 시트콤이였던 프렌즈를 보며 대사 하나하나 연기를 하듯 따라했다. 평일은 하루 4시간, 주말은 8시간씩 하루도 빠짐없이 10개월간 반복했다. 10개월이 흐른 뒤 나의 영어 실력은 놀랍게도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난 그 다음 방법으로 소설 읽기를 시작했다. 독서를 좋아하긴 했지만, 관심사가 떨어지는 주제의 책이나 취향과 동떨어진 소설을 읽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었기 때문에, 나는 영어로 번역된 라이트노벨 시리즈를 나의 영어 소설 읽기의 동반자로 선택했다. 

    초속5센티미터,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 모노가타리 시리즈, 늑대와 향신료, Re: zero 시리즈를 읽으며 조금씩 영어와 친해져 갔다. 장르의 재미로 중간에 지쳐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소설 읽기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처음엔 사전 검색에 모든 시간을 쓰며 하루에 2-3장을 겨우 읽어나가는 것이 고작이었는데, 종국엔 일주일에 2-3권을 읽는 정도의 속도로 성장하게 되었다. 모노가타리 시리즈는 오디오북 또한 제공하고 있어, 이동중이거나 잠들기전에 듣기 좋았다.

     

    소설 읽기로 생긴 자신감으로 다른 고전 소설들, 비문학, 시사잡지, 외신기사 등을 읽고, 팟케스트와 유튜브도 다양하게 보고 들으며 조금씩 영어와 친해져갔다. 하지만, 일본어를 익힐때 만큼의 성장 속도를 느끼기는 어려웠다.

     

    Fluent Forever의 부록에는 재미있는 표가 하나 등장한다. 미국의 외교관을 위한 정부 교육센터 중 하나인 The Foreign Service Institute (FSI)에서 발간한 ‘외국어 학습 난이도’ 표이다.

    Level 1: Languages Closely Related to English
    23–24 WEEKS (575–600 CLASS HOURS)

    Afrikaans, (Catalan), Danish, Dutch, French, Italian, Norwegian, Portuguese, Romanian, Spanish, Swedish
    Level 1.5: Languages with Slight Linguistic and/or Cultural Differences from English
    30–36 WEEKS (750–900 CLASS HOURS)

    German (30 weeks / 750 hours), (Ilocano) (36 weeks / 900 hours), Indonesian (36 weeks / 900 hours), (Javanese) (36 weeks / 900 hours), Malay (36 weeks / 900 hours), Swahili (36 weeks / 900 hours)
    Level 2: Languages with Significant Linguistic and/or Cultural Differences from English
    44 WEEKS (1,100 CLASS HOURS)

    Albanian, Amharic, Armenian, Azerbaijani, Bengali, Bosnian, Bulgarian, Burmese, Croatian, Czech, Estonian, Finnish, Georgian, Greek, (Gujarat), Hebrew, Hindi, Hungarian, Icelandic, (Kannada), (Kazakh), Khmer, (Kurdish), (Kyrgyz), Lao, Latvian Lithuanian, Macedonian, (Marathi-Urdu), Mongolian, Nepali, Pashto, Persian (Dari, Farsi, Tajik), Polish, (Punjabi), Russian, Serbian, Sinhalese, Slovak, Slovenian, Tagalog, Thai, Turkish, (Turkmen), Ukrainian, Urdu, Uzbek, Vietnamese, Xhosa, Zulu
    Level 3: Languages Which Are Exceptionally Difficult for Native English Speakers
    88 WEEKS (SECOND YEAR OF STUDY IN-COUNTRY, 2200 CLASS HOURS)

    Arabic, Cantonese, Japanese, Korean, Mandarin, (Min Nan)

     

    영어 사용자가 가장 배우기 어려운 언어는 아랍어,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로 학습에 88주, 약 2년의 시간이 필요함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어 사용자가 일본어를 익히는 난이도가, 영어 사용자가 프랑스어를 익히는 정도의 난이도라면, 약 6개월 정도의 학습으로 일본어를 익힐 수 있다. 나의 경험도 이와 같았다.

     

    영어를 익히기 어려운 것은 2년간 꾸준한 학습과 연습이 요구 됨에도 1년도 채되지 않는 기간에 지쳐 포기하고 말기 때문이다. Fluent Forever의 저자 역시 같은 지적을 한다. 다개국어 이용자들은 언어에 대한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인식하기 쉬운데, 사실 그들은 모두 하나의 언어를 익히고 거기에 다른 언어를 또 익히는 방식으로 다개국어 사용자가 되었을 뿐 특별함은 없다고 말한다. 

     

    특별함이 한 가지 있다면, 언어를 익히는 과정을 꾸준히 즐길 수 있는 자신만의 방법을 적용했다는 점 뿐이었다. 외국어 학습에는 왕도가 없고 그 과정 하나 하나는 매우 어렵고 고된 일임을 지적하는것도 잊지 않는다. 이 지적은, 혹시나 외국어 학습의 왕도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이 책을 집어든 나를 부끄럽게 만들기도 했다.

     

    외국어 학습에 마법과 같은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꾸준한 연습과 노력 끝에 뒤따라오는 선물인 샘이다. 그 당연함을 이 책에서 재확인하고, 나는 다시 외국어 학습을 위한 길고도 고된 길로 돌아선다.

     

    반응형

    댓글

Designed by Tistory x Aptun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