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lavinka

학문은 더럽다. 이 잔혹하리 만큼 사실적인 묘사는 학문을 업으로 삼고 있는 학자들, 그리고 학자가 되려고 하는 학생들이 곧바로 마주하게 되는 현실이다. 학벌계급주의와 남성우월주의, 폐쇄적 파벌주의, 위계질서, 전근대적이고 비민주적인 도제 구조에 이르기까지, 객관적이고, 보편적이며, 합리적일 것을 기대한 학문의 가치는 학문의 담지자인 대학 안에서 그렇게 손쉽게 해체되어 버리고 만다. 여기에 유교적 위계질서와 천민주의, 지식소매상으로의 역할에 충실한 한국 대학의 학문적 풍토를 덧붙인다면, 한국의 대학, 특히나 한국의 대학원 내부에서 마주하게 되는 현실은 학문의 더러움을 넘어 비참함으로 변모한다.


한국 대학의 문제나 학계의 문제, 교수 사회의 문제를 지적하는 많은 분석들이 존재한다. 그 중에서 김종영 교수 [1]는 미국 유학파 엘리트들이 ‘트랜스내셔널 미들 지식인’으로서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헤게모니를 장악해 나갔는지를 심층적으로 분석하였고, 김정인 교수 [2]는 한국 대학의 권력이 해방이후 현재까지 어떻게 변모해 나갔는지를 심도있게 추적해 나가며 구조적으로 해석해 나가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적 해석을 정면으로 다루기에는 물리학을 ‘순진하게’ 공부해온 나에게 있어서는 너무나 벅찬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벅찬 도전을 감행하기 보다는, 여태까지의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대학원의 모습에 대한 하나의 소묘를 기록하고자 한다.



생활 가운데서


대학에 입학하기 전 나는 대학에 가면 원하는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내신 점수 유지를 위해 관심도 없는 과목들을 공부해야하지 않아도 되고, 수능을 위해 틀에 맞춰진 문제를 풀지 않아도 될 것이라 기대했다. 그런 기대 속에서 시작한 대학 생활은 비교적 자유로웠고,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는 장이 펼쳐진 것처럼 느꼈다. 학문에 대한 꿈을 꾸었고 그렇게 미래의 물리학 발전에 작은 공헌이라도 하고자 대학원 진학을 일찌감치 결심하고 있었다. 여느 대학원생이 그러하듯이 순진했다.


대학원 진학후 연구실에 배정되어 받은 첫 월급은 비참했다. 그나마 등록금 부담이 없었기 때문에 사립대 대학원생들의 생활에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이 금액으로는 하루 세끼의 밥을 사먹으면 적자가 나는 수준의 생활고를 감당 해야만 했다. 그리고 나는 지도교수로부터 믿기 어려운 말 한마디를 랩미팅 시간에 듣게 되었다.


‘배고픈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


끈이론 관련 연구실이었기에 펀딩이 넉넉하지 못한 형편임은 인지하고 있었지만, 이론연구실은 가난하기 때문에 그러한 생활이 당연하다는듯 자랑하며 내뱉는 모습은 적지 않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다음달부터 식비 문제로 학교 식당에 가지 않게 되었다. 기본적인 식사는 봉지라면으로 만든 일명 뽀글이로 대체하여야 했고, 점심과 저녁에 기숙사에 들러 하나씩 먹고 다시 연구실로 돌아가는 생활을 수 개월 반복하였다.


그리고 한 학기가 지나고 인건비가 끊어졌다. 그 즈음에 새롭게 연구실에 합류한 후배는 수석 입학으로 받은 총장 장학금이 있으니 그것으로 월급을 갈음 하겠다며 인건비 0원을 당당히 선고받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라면으로도 생활이 힘들어지기 시작하여, 근처 마트에 20쪽들이 식빵이 천원 내외로 세일할 시점에 맞춰, 일주일의 식량으로 생존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생활한 것이 4개월이었다. 그 뒤 한 학기는 월 25만원 짜리 조교자리를 하나 얻게되어 다시 라면 생활로 생존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자세한 일화들을 소개할 수는 없지만 여기에 각종 잡무와 재능기부, 출장비 미지급, 착취 등은 그저 사소한 일상일 뿐이었다.


이러한 생활과 경험은 다른 연구실의 일화에 비하면 인건비를 제외하고는 그나마 나은 편에 속하는 것이었다. 연구실에서 학생들에게 지급하는 인건비가 학과 평균인 35만원 선보다 높은 경우 그것을 빌미로한 인권침해와 노동력 착취, 폭언은 오히려 당연한 것이었다. 학교측에서도 이러한 문제를 방지하고 예방하고자 옴부즈맨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눈에 띄는 불법이나 폭력 행위가 없다면 제재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학생들은 그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을 뿐이었다.



적응과 탈출 사이


이러한 상황을 대학원생들 스스로가 타개하려 하지 않고 관습처럼 오랫동안 유지되고 있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하나는 적응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탈출하는 것이다. 올해 2월에 대학원생 노조가 출범하기 이전부터, 학교 내부에 의지와 의견이 맞는 사람들을 모아 대학원생 노조를 결성 해보고자 하는 시도를 했었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실천으로까지 옮겨가지 못한 이유는 후자의 이유 때문이었다.


대학원에 처음 입학하면 석사과정 혹은 석박통합과정으로 진학하게된다. 석사과정은 2년에서 1년까지 연장이 가능하고, 석박통합과정의 경우 5년에서 2년까지 연장가능하며 중도에 석사과정으로 전환하여 졸업하는 것이 가능하다. 만일 학문 자체에 뜻이 있어 진학한 경우, 보다 나은 환경과 조건에서 학문을 이어가는 것이 보다 효과적으로 유익하기 때문이 이러한 부조리를 감당하면서까지 남이있을 이유가 없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중도에 자퇴를 하고 유학의 길을 선택하거나, 투자한 시간을 회수하기 위해 2년만에 석사학위만 취득 하고 나가는 선택을 손쉽게 내리게 된다. 단순히 학위만 필요한 경우 역시 마찬가지다. 2년만 참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묵묵히 졸업을 위해 힘쓴다. 노조 설립의 실천까지 가지 못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2년만 참으면 되는데 괜히 싸워서 득 될것이 없다.’ 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는 이후의 선택지를 선택할 수 있는 형편이 되는 경우에 가능한 것이다. 군대 문제로 전문연구요원 취득을 목표로 하는 학생이나 경제적인 문제로 다른 대안을 선택하기 부담스러운 경우, 혹은 그 밖의 많은 이유로 현재의 상황에 적응해 나가거나 그저 숨죽이고 있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지도교수에게 항명 하였다가 1년간 졸업을 유예시키는 사례를 자주 목격하게 되고, 부조리에 못이겨 투신하는 모습도 지켜봐왔기에 목소리를 수면 위로 올리는 것은 결코 쉬운 행동이 아니다.



한국을 떠나며


나는 종종 신입생들이나 인턴들, 그리고 입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을 만나면 한국의 대학원에 관한 이야기와 개인적 경험을 나눈 뒤에, 왜 대학원에 진학하려고 하는지를 묻곤 했다. 그러면 돌아오는 대답은 ‘공부만 할 수 있으면 그래도 좋다’ 이거나 ‘그나마 나은 곳을 찾아’서라는 두가지 답변이 항상 되돌아 왔다. 이들 모두는 학문 그 자체를 즐기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대학원은 이들을 어떻게 소비하고 있는가. 자본의 권력에 넘어간 현재의 대학은 학위장사를 위한 돈벌이 수단으로 대학원을 운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연구중심 대학을 천명한 대학 일수록 더욱 학생을 실험실의 부속품 정도로 여기며 착취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것은 국내 어디에서도 다르지 않다.


생존을 걱정해야하는 경제적 지원과 전근대적인 노동착취, 당당하게 벌어지는 학벌인종차별, 유교적 위계질서를 앞세운 도제관계, 미국의 연구결과만을 쫓는 지식 소매상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교수 사회와 군대식 랩운영, 눈을 돌리고 있는 대학 등. 겹겹이 쌓인 제도적, 문화적, 인적 모순들이 곪고 곪아 여기까지 다다른것이 현재의 한국 대학원이 직면한 현실이다.


그래서 나는 당연하게도, 어쩌면 비겁하게도 통합과정에서 석사과정으로 전환한 뒤에 졸업절차를 빠르게 마치고 유학길에 올랐다. 한국이 아닌곳에서 하나의 온전한 인격체로 대우받으며 학문을 이어나기 위해서.


그리고 나는 결코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1] 김종영, 지배받는 지배자 - 미국 유학과 한국 엘리트의 탄생, 돌배개, 2015

[2] 김정인, 대학과 권력 - 한국 대학 100년의 역사, 휴머니스트,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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