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ilavinka

난 어쩌다 물리학을 공부하게 된 것일까? 과학에 최초로 흥미를 가지게 된 것은 어릴적 서점에서 스치듯이 만난 칼세이건의 코스모스가 아닐까 생각되지만, 물리학에 본격적인 흥미를 갖게된 계기를 준것은 아니었다. 돌이켜 보면 물리학에 본격적인 흥미를 가지고 앞으로 물리학자가 되겠다는 잘못된 꿈을 꾸게 된 계기 역시 한 권의 책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브라이언 그린의 엘러건트 유니버스. 물리학에 관심을 가지고 물리학자를 꿈꾸는 학생들이라는 누구나 한 번쯤은 읽어 봤을 이 책에는 현대 물리학의 최전선에 있는 초끈이론에 대한 희망찬 이야기들로 가득차있다. 그 희망이 이제는 한숨으로 변해 있다는 사실을 알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지만, 당시 그의 책을 접했을 때엔 분명, 현대 물리학에 대한 흥미와 기대, 신비로움으로 가득했다.


그러면 난 어쩌다 과학철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까? 철학에 아무런 관심도 가지지 않았던, 오히려 경시의 대상 이었던 철학이라는 분야를 어떻게 만나게 된 것일까?


브라이언 그린의 책을 시작으로 리사 랜들, 미치오 카쿠, 레너드 서스킨, 스티븐 호킹에 이르기까지 물리학의 풍경에 대한 책을 읽어 나가던 와중에 만난 책이 스티븐 와인버그의 최종이론의 꿈 이었다. 책 내용 중 많은 부분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채 그저 읽기만 하고 지나갔지만, 단 한 장이 눈길을 사로 잡았다.

 

‘7장 철학에 반하여’ 


그리고 다시 책을 앞으로 넘겨 프롤로그부터 다시 꼼꼼히 읽어 나가기 시작하며, 알 수 없는 창피함과 경외감, 존겸심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와인버그로부터 과학철학과 만나게 된 것이다.


서점으로 달려가 과학철학과 관련된 책을 찾아보고 읽기 시작한 것이 이때 즈음이었다. 어떤 책은 전문 용어들로 점철되어 있고, 어떤 책들은 너무도 난해한 문장으로 치장되어 있기도 했다. 그리고 어떤 책들은 특정 사건에만 논점을 집중하고 있기도 했고, 어떤 책은 건조하게 과학의 역사만을 서술하고 있기도 했다. 쓰레기통으로 집어 던지고 싶었던 책도 있었고, 아직까지 한 번씩 들춰보는 책도 있다.


과학철학을 처음 접한 이후 지금까지 탐독을 이어 나가고 있는 이유는 너무나 단순 하게도 과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빈곤한 철학과 사유 없이 과학이라는 도구 만을 가지고 과학을 하고 싶지 않았던 마음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지금 하고 있는 과학이라는 것이 대체 무엇인가? 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리학 이론이 수놓은 풍경을 바라보면 언제는 드는 의문이 있다. 실제란 대체 무엇인가? 수식으로 나타난 기호가 실제인가? 그 실제를 판단할 준거는 어디에 있는가? 반대로 관측 사실은 이론으로 추상화 가능한가? 그렇게 추상화된 존재는 실존하는 실제인가? 과학자들은 많은 경우 실험과 이론의 관계, 이론을 어떻게 검증하고, 실험을 어떻게 이론화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를 끊임없이 되풀이 하게 된다. 그리고 과학자는 이런 질문의 과정을 통해 과학의 본성과 특질을 체화 해 나간다.


체화된 과학 위에서 과학을 바라보는 것과 책 속에서 과학을 바라보는 관점에는 언제나 간극이 존재한다. 지금까지 만났던 많은 과학철학서적들 역시 이 간극을 매워 주지는 못했다. 과학에서 철학을 끄집어 내는 것이 아니라 철학 위에 과학을 입히거나 치장하는 모습에서 체화된 과학과 책 속의 과학 사이의 간극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둘 사이의 간극을 해소하려는 시도를 한 훌륭한 저서들도 많았지만 읽어 나가기 힘든 경우도 많았다.


그러던 와중에 과학철학과의 두번째 만남이 있었다.


온도계의 철학을 읽으면서 나는, 온도라는 거시적인 물리량을 측정하고 정의하기 위한 장대한 여정 속에서 실험실에서 이루어지는 체화된 과학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지고 있음을, 그리고 과학과 과학 사이, 과학과 과학사 사이, 그리고 과학과 과학학 사이의 훌륭한 종합이 지난 간극을 성공적으로 매워주고 있음이 느껴졌다. 온도계로부터 이끌어내는 명확한 해설과 관점, 시야에 오래전 과학철학과 처음만나는 그 순간의 감정이 다시 되살아 났다.


처음 과학철학에 관심을 가지고 지금까지 과학에 대해 고민해 오던 과정을 돌이켜 보면, 그 과정에서 무의식적으로 생긴 편견과 자기확신이 과학에 대한 고민을 더이상 하지 않고 스스로 완결해 버리려 하는 나 자신이 있었다. 어쩌면 사고의 유연함을 잃어 버리고 무언가를 논하는 오만함에 빠져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자기 성찰과 반성과 함께, 나는 과학철학과 두번째 만남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제 다시 한번 과학철학과 만나 ‘과학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새롭게 던져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너무 늦게 만난것 같은 아쉬움과, 이제라도 만나게되었다는 반가움을 뒤로하고 이제 다시 새로운 고민을 이어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온도계의 철학 - 10점
장하석 지음, 오철우 옮김, 이상욱 감수/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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