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문학의 세계로 빠져들면서...
    잡설 2017. 11. 14. 18:08
    반응형



    「내 비밀은 이건데 아주 간단한 거야. 마음으로 볼 때만 분명히 볼 수 있는 거란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지.」  [어린왕자, 21장]


    여우의 말에 어린왕자는 잊지 않으려고 따라했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라고. 그리고 여우는 어린왕자가 두고온 장미에 대해 잊지 않아야 한다고, 잘 돌봐 주어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그리고 다시 어린왕자는 잊지 않기 위에 여우의 말을 따라한다. “장미를 돌봐 주어야 한다.” 라고.


    여우의 말을 들은 어린왕자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그는 왜 여우의 말을 잊지 않으려고 다시 한번 되풀이 했을까? 홀로 남은 장미는 어린왕자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어린왕자의 마음에 기대어, 여우의 가슴을 빌려, 장미의 쓸쓸함을 떠올리며 그 내면의 무엇인지 잘 알다가도 막상 떠올리는 못하는 감정이라는 복잡 미묘한 감성을 공유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이 매개는 대체 무엇일까?


    기쁨과 슬픔, 경악과 공포, 분노와 혐오, 질투와 죄의식, 긍지와 수치심, 절망과 무기력함 사이의 충돌과 소란이 어울어져 하나의 인격 토대를 형성하고, 그것이 다시 타인의 감성에 공감할 수 있는 이타적 감성을 공유할 수 있게 됨으로써, 인간은 하나의 인격체로 성장해 나간다. 여기에서 문학은 여우의 말처럼 이 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감성을 소통하고 숨쉬게 만드는 훌륭한 터를 제공한다.


    그런데 이런 문학의 감성을 느끼고 공감해본 마지막 기억이 언제였을까? 공각기동대 이노센스의 첫 인용구에 호기심을 가지고 읽어본 ‘미래의 이브’ 와 영어 공부를 위해 읽었던 ‘마션’을 제외하면 순식간에 중고등학교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 버리고 만다. 그마저도 수행평가 독후감 제출용으로 읽었던 책이나, 문제 풀이를 위해서 읽었던 입시용 지문을 제외하면 라이트노벨 몇 권이 전부일 뿐이었다. 사실상 문학작품을 문학으로 접해 본 적이 지금까지 거의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문학으로부터 문학이 전해주는 문학 자체의 감성을 공유하고, 예술적 경험을 향유하며, 스스로의 즐거움에 도취 되기 보다는, 시험을 위해, 대학 입시를 위해, 감성보다는 이성으로 작품을 분석하고 독해하여 가치판단을 내리는 과정에서 문학의 진정한 재미를 잃어 버렸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난해한 전공 서적들과 비문학 도서들에 파묻혀 있던 와중에 우연히도, 그리고 어쩌면 오랜만이라는 수석어 보다는 처음으로라는 말이 더 어울릴 법한 한 문학 작품과 만나게 되었다.


    「삶 이라는 것은 말야… 분명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는 것. 그런 것을 가르켜서 삶이라고 부르는 거야. 


    누군가를 인정하고,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고, 누군가를 싫어하게 되고,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즐겁고,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짜증나고, 누군가와 손을 잡고, 누군가와 포옹을 하고, 누군가와 스쳐 지나가고. 그것이 삶. 


    나 혼자만 있으면, 내가 있다는 것을 몰라. 누군가를 좋아하지만 누군가를 싫어하는 나, 누군가와 함께 있어서 즐겁지만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짜증나는 나, 그런 사람과 나의 관계가,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살아 가는 것이라고 생각해. 내 마음이 있는 것은, 모두가 있기 때문에, 나의 몸이 있기 때문에, 모두와 닿아 있기 때문에. 그렇게 형성된 내가, 지금, 살아가고 있어. 그리고, 여기에 살아있어. 그래서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에 의미가 있는 거야. 스스로가 선택해서, 너도 나도, 지금 여기에서 살이 있는 것처럼...」  [p220-223]


    사쿠라가 병실에 앉아, 장난스럽게 그리고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그 장면에서, 삶의 의미에 대한 그 어떤 철학과 해설보다 깊게 다가오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성을 전해 받았다. 슬픔과 안도, 무기력함의 씨앗이 조금씩 퍼져가는 감성의 물결을 이제서야 문학이라는 매개를 통해 접하게 된 것이다.


    나 뿐만이 아닌 많은 사람들이 이 감성을 공유할 수 있었기 때문인지, 소설 ‘너의 췌장을 먹고싶어’는 180만부 이상의 판매를 돌파하며, 현재 영화로도 제작돼 개봉중이다. 원작 소설을 다 읽고 개봉된 영화를 볼 땐 전후좌우의 비매너 관객들 덕분에 2시간의 시간 동안 분노와 혐오의 감성을 공유받을 수 있는 공간이 되어 아쉬움이 크지만, 원작 소설 만큼은 시험과 입시를 위한 무감성적 문학이 아닌, 진정한 문학의 재미와 매력을 만날 수 있게된 계기가 되어 준 것만은 분명하다.


    이제 이 책을 다시 한 번 더 읽고, 그녀의 차기작인 ‘또다시, 같은 꿈을 꾸었어’ 도 읽어 볼 예정이다. 그 뒤 조금씩 더 넓고, 다양한 문학 작품들과 부담없이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어쩌면 다시 문학에서 멀어질지도 모를 나를 위해, 어린왕자에게 했던 그 여우의 말을 따라해 본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라고.

    반응형

    댓글

Designed by Tistory x Aptun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