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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즐겨 듣는 클래식 음악들
    잡설 2016. 7. 1.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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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루한 회의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깜빡 잠이든 배두한씨는 바닥에 팬을 떨어뜨리고 만다. 팬을 줍기 위해 테이블 아래로 고개를 숙이자 테이블 위에서 보던 정적이고 지루한 모습과 정반대의 모습이 펼쳐진다. 테이블 위에서는 일상에 젖어, 피로에 젖어, 입맛도 의욕도 잃은 사람들의 무심한 표정만이 가득하다. 그러나 테이블 아래에서는 빠르게 전진하는 바이올린의 소리처럼 화려한 발동작들로 가득하고, 이윽고 먹구름을 몰고 와 비를 퍼붓는 장마철 폭우처럼, 시원한 오케스트라가 펼쳐진다.


    모두가 잘 아는 박카스 광고의 한 장면이다. 이 광고를 만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박용현씨는 이 광고의 아이디어를 치과에서 얻었다고 한다. 치과 진료 중에 우연히 흘러나오던 음악을 듣다가 계속 같은 부분에서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고, 이것으로 무엇인가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탄생한 광고가 바로 저 광고였다고 한다.


    어느 날 우연히 들은 곡에 소름이 돋았던 경험이 나에게도 있었다. 동네 마트에서 물건을 고르고 있었는데, 그날 따라 마트에 가요가 아닌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주변의 시끄러운 소리와 사람들의 목소리, 냉장고의 냉매 소리 등등이 겹쳐있는 와중에 순간 한 멜로디가 귀에 꽃혀 들었다.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9번이었다. 예전엔 바이올린 소리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어릴적 학교의 장기자랑에 바이올린을 배우고 있다며 무대에 오른 친구의 바이올린 연주를 들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바이올린의 고음이 그리 유쾌하게 들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날의 소음 속에서 들은 그 음악은 이상하게 귀에 꽃혀 들었다.


    내게는 클래식 음악이 그리 낮선 음악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 관악합주단에서 트럼펫을 3년간 연주해 보았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당시에 섹소폰를 배워 보고 싶었는데, 목관악기는 언제나 경쟁자가 많았기 때문에 경쟁에서 밀리고 말았다. 그래서 금관악기 중에서도 어렵기로 소문난 트럼펫을 손에 쥐게 되면서 트럼펫을 연주하게 되었다.


    피스 부는법에서 운지법과 악보 보는 법까지 하나하나 배워나가며 들을 수 있는 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했던 기억이 아직도 새록새록하다. 그리고 어느 정도 음계를 맞춰 소리를 낼 수 있게 되자, 두터운 악보를 보며 곡 하나하나를 연습해 나갔다.


    그때 처음으로 목관악기와 금관악기, 타악기 등의 모든 파트들이 합을 맞추어 연주했던 곡이 ‘조용한 제국의 아침’이라는 곡이었다. 악보의 영문명 아래 선생님의 자필로 그렇게 적어 놓았기에, 지금까지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찾아보니 이런 제목의 곡은 찾을 수가 없었다. 당연하게도 연주 실력이 그리 좋지 못해서 트럼펫 솔로 파트는 다른 사람에게 양보해야 했었지만, 그때 서로 다른 악기들의 소리와 파트들이 합쳐졌을 때의 감동은 그 자체로 큰 즐거움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이 기억을 잊고 지냈다. 그리고 어느 날 마트의 소음 속에서 들려온 그 바이올린 소리가 그때의 즐거움을 다시 불러 일어켜 준 것이었다. 그때 느끼었던 소름은 아마 곡 자체의 전율과 더불어 전달된 그 당시의 기억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덕분에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9번은 가장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 중 하나가 되었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곡이 편안한 자장가라면 이 곡은 활력을 불러 일으켜주는 에너지 음료와 같은 역할을 내게 해 준다. 가사의 전달 없이 멜로디 만으로 감성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것이 바로 클래식 음악의 매력일 것이다.


    최근에 생긴 시간적 여유 덕분에 숨만 쉬고 책만 읽는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 시간이 그리 길지 않기 때문에 즐거움이 아니라 강박적으로 책을 읽어 나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인지 무의식 중에 쌓인 스트레스가 수면을 방해하고 몸을 피곤하게 만들고 있다.


    나쁜 두뇌 프로세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 번 책을 살 때는 반드시 세 권을 넘지 않게 나눠서 구매한다. 연속으로 그 이상을 읽으면 과부화가 걸리기 때문이다. 나쁜 머리에 많은 데이터를 억지로 우겨 넣으려고 하면 자연히 과부화가 걸리게 마련이다. 그러면 자연히 완전히 고장 나기 전에 이 과부화를 해소할 필요가 생긴다.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여기서 음악을 듣는 방법을 선택했다. 


    이 목적으로 자주 듣는 음악들이다.


    쇼팽의 녹턴은 영화 피아니스트에 등장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영화에 등장한 곡은 20번으로 쇼팽의 사후에 발견된 곡이다. 야상곡이라는 곡의 이름에서 처럼 이 곡은 조용한 분위기의 서정적인 피아노 연주로 그 아름다움을 전하고 있다. 그런데 그 중에 20번 만큼은 조금은 애절한 느낌이 묻어 나온다. 영화의 영향력 때문일 수도 있겠으나, 조국 폴란드가 러시아에 짓밟히는 모습을 지켜본 그의 감성이 그대로 묻어 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 20번을 좋아한다. 머리를 가득 매운 돌덩이들을 하나하나 걷어 치우며 조용히 그의 선율에 빠져든다.


    베토벤 교향곡 3번의 2악장은 케네디 대통령 추모 미사에서도 연주된 적 있는 장송 행진곡이다. 그가 나폴레옹에게 헌사 하기 위해 이 곡을 작곡하다가 황제로 직위하면서 독제자의 모습을 드러내자 악보를 찢어버리고, 곡의 제목을 나폴레옹의 성인 보나파르트에서 영웅으로 바꿨다. 그리고 이어진 2악장은 그 프랑스 혁명의 사망을 노래한다. 잘 알려진 5번이나 9번이 아니라 3번의 2악장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래서다. 차분하고 냉정하게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카미유 생상스의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를 들어면 왠지 모르게 어두운 밤 가로등 하나만 비치고 있는 유럽식 건축물로 즐비만 골목에서 쫓기는 이미지가 떠오른다. 어디서인가 비슷한 화면에 배경음악으로 이 음악이 쓰인 것을 보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곡은 바이올린 피아노 협주곡과 오케스트라 협주곡 등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오케스트라 협주곡을 좋아한다. 웅장한 사운드에 쉴 틈 없이 이어지는 멜로디는 다른 생각으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다. 그래서 머릿속에서는 어두운 밤 골목에서 급하게 쫓기는 이미지가 떠오르는지도 모르겠다.


    드보르작의 9번 교향곡 신세계로부터도 이와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너무 익숙한 멜로디이기 때문에 친근감이 과도하게 드는 점 만을 제외하면 1악장부터 4악장까지 쉬지 않고 음악에 빠져들게 만든다. 9번 교향곡은 드보르작이 미국으로 건너가 3년간 음악원에 재직하면서 고향 체코를 그리워하면 쓴 곡이다. 신세계 미국에 대한 설램과 기대가 느껴지는 1악장을 지나면, 집으로 돌아가 편한 휴식을 취하는 2악장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2악장의 제목이 귀향이다. 이 2악장에서 평온함과 안식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트럼펫으로 이 부분을 연주할 수 있었으면 정말 좋았겠다는 생각도 들게 만든다.


    드뷔시의 월광 역시 신세계로부터의 2악장 처럼 마음을 매우 차분하게 만든다. 여기에 바흐의 코드베르크 변주곡 까지 더하면 완전한 자장가가 된다.


    조용한 곳에 눈을 감고 고개를 뒤로 젖혀 가만히 앉아 음악을 듣는 것도 하나의 편안한 안식처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스트레스 풀이 방법으로 가장 간편한 이 방법을 쓰고 있다. 비단 지금과 같은 다소 강박적인 상황이 아니더라도 그러하다.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출사를 나가는 것도 좋지만, 비용과 시간, 체력을 소모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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