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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버니 샌더스와 나의 꿈
    2016. 2. 10.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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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 부패도와 연구개발 지출 및 혁신 지수 등의 상관 관계를 조사한 네이처의 칼럼이 암시하고 있는 것과 같이, 한국은 OECD 최고의 부패율에 걸맞는 낮은 연구개발비용 지출과 낮은 혁신지수 그리고 높은 두뇌 유출율을 자랑하고 있다. 그뿐인가. 이에 대한 책임은 높은 부패율에서 오는 비효율적 자원 분배나 개인적 관심사 혹은 공적 권력의 남용에 따른 자원 쏠림이 아닌, 애국심도 없는 과학자 개인의 무능만을 질책하고 강조할 뿐이다. 


    기초과학에 대한 이 같은 천시와 과학자에 대한 낮은 처우, 기술 개발을 위한 도구 정도로 여기는 일반의 시각, 기능을 위한 부속품으로 인식되는 연구실 노동자와 학생들의 실상, 인간 취급 조차 받지 못하는, 노예 조차 되지 못한 값싼 부속품, 대학내의 비민주성, 그리고 침묵과 외면이라는 현실에 대한 고뇌와 분노, 좌절.


    언젠가 이런 생각들을 했었다. 왜 누구도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주지 않는지. 이 같은 부조리를 말하는 과학자는 왜 해외 과학기사에서만 주로 접할 수 있는지. 왜 교수들은 침묵하고 있는지. 그리고 한때 나는 이런 꿈을 꾸었었다. 이러한 현실을, 이 같은 상황을 바꿔보고 싶다고.


    지난해 연말 즈음이었다. 강남의 거대한 삼성전자 사옥 앞 지하철역 입구에서 약속 시간 보다 30분 늦게 온 친구를 기다리느라 그곳에서 한참을 서 있었을 때였다. 지하철 입구엔 나와 비슷하게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고, 대부분 몇 분 뒤에 약속한 사람을 만나곤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던 와중에 이상하게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나처럼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가만히 서 있던 그 남자는 지나가던 사람들이 길을 물어볼 때 마다 친절하게 길을 알려주고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그가 고개를 돌리자 나는 그의 귀에 이어폰이 꽂혀 있는 발견하게 되었다. 삼성전자 백혈병 유가족들의 노숙농성을 감시하던 용역 직원임을 인식한 뒤에서야 사방에 서 있는 그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거대한 사옥 앞에서 노숙 농성중이 노동자와 이를 불법 감시하는 용역 업체 직원의 모습. 그리고 아이들을 데리고 삼성 딜라이트로 향하는 듯이 보였던 한 아주머니가 아이들에게 공부 열심히 안하면 너희들도 저렇게 된다는 덕담을 잊지 않았던 그 광경이 너무나도 생생히 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토마스 프랭크가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들을 위해 투표하는가’와 ‘정치를 비지니스로 만든 우파의 탄생’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이땅의 보수 우파들은 민주주의라는 탈을 쓴 과두체제를 성공적으로 구축해냈다.


    최고 경영자가 노동자에 비해 수백배의 임금을 받고, 노동자들의 노동으로 얻은 성과를 소수의 재벌가의 주머니로 들어간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분노하지 않는다. 재벌 대기업에 대한 감세에 따른 세수 인상분을 중산층과 서민이 부담한다는 사실에 대해선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 상위 0.1%의 부자들이 50%의 부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선 그 누구도 말하지 않으며, 실질 임금이 하락하고 노동시간이 끊임 없이 늘어나는데 대한 의문을 품지 않는다. 대신, 노조에 의해 보호받는 노동자들을 그렇지 않는 노동자들이 공격하고, 일자리를 빼앗아가는 외국인들을 혐오 하며, 교육 지원을 받는 저소득층에 분노한다.


    사회문제의 인과관계를 합리적으로 분석할 능력도 없고, 부자와 권력층을 대변하느라 일반 국민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어도 정치적으로 성공이 보장되는 길이 바로, 사람들의 공포심과 무지를 이용해 한 집단과 다른 집단을 이간질 하고 희생양을 찾는 방법이다. 어떻게 하면 노동자와 중산층으로 하여금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는 투표를 하게 만들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이들로 하여금 투표를 하지 않게 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대다수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들 부터 그들의 관심을 분산시킬 수 있는지가 그들의 집권 전략이다. [버니 샌더스의 정치혁명, p205] 그리고 그들은 그 일을 매우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덕분에 다가오는 총선이 끝나고 나면 압도적인 다수 의석을 확보한 보수당은 건강보험을 민영화 하고, 공공 교육을 무너뜨릴 것이며, 동성애를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고, 소득에 관계없이 동일한 세율을 적용하는 비례세가 통과되고, 국민들의 투표를 보다 까다롭게 만들것이며, 노조를 탄압하는 법안이 입법되고, 최저임금제는 폐지되고, 아동 노동을 합법과 하여, 아동과 성인이 시급 1000원 짜리 일자리를 두고 경쟁을 버릴지도 모른다. [버니 샌더스의 정치혁명, p65-66]


    내가 한때 꾸었던 꿈이 과거의 꿈으로 전락한 이유가 이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지포스의 바위를 끊임없이 굴려 올리는 생활의 반복이 전환과 전복, 투쟁 보단 그들이 원해 마지않는 적자생존 논리로 돌아가 그저 책상에 머리를 처박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부자들만 점점 더 부유해지고, 나머지 사람들은 점점 더 가난해지고 있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생활수준이 하락하고 있다.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고 소수가 지배하는 과두정치 체제가 부상하고 있다. 우리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들은지는 기업이 소유한 매체들이 결정한다. 우리나라 건강보험 체제는 엉망진창이다. 교육 체제는 위기를 맞고있다’ [버니 샌더스의 정치혁명, p331]


    멀리 태평양 건너에서 들려오던 버니 샌더스란 인물에 대한 소식 역시 찻잔속 태풍으로만 여겨졌다. 한국보다 열악한 정치환경과 언론환경에서 무소속 사회주의자가 대선에서 어떤 의미있는 성과를 내겠냐는 냉소에 다름 아니었다. 그리고 얼마전 코커스에서 보인 그의 실력에 난 뒷통수를 강하게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그 뒤 한 동안 버니 샌더스라는 이름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책 두권을 손에 집어 들었다. 그의 정치 자서전과 상원에서 8시간 반 동안 진행된 필리버스터의 전문을 모두 읽는 순간 가슴 속 깊은 곳 어느 한 곳에 묵직한 돌덩이 하나가 자리잡고 말았다.


    그는 진짜다. 정치공학에 따라 좌클릭과 우클릭을 오가는 정치인이 아니었다. 당리당략에 따라 움직이는 정치인도, 당장의 유권자들의 표를 얻기위해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는 정치인도 아니었으며, 입만 열면 새정치를 읊조리는 류의 정치인 따위는 더더욱 아니었다.


    한국의 샌더스는 어디에 있는가? 질문이 틀렸다. 한국의 샌더스가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할지, 비록 거창한 정치활동이나 선거 출마가 아닌, 풀뿌리 차원에서, 시민의 차원에서, 한낱 개미의 차원에서 무엇을 할지를 다시 고민하고 실천해 나갈 때 한국의 샌더스를 만날 수 있을 것이리라. 비록 책 두권으로 그를 만나본것이 전부이지만 나는 그에게 감사하다. 덕분에 잊어버렸던 꿈을 다시 꾸게 만들어 주었으니.


    고마워요 버니.



    버니 샌더스의 정치 혁명 - 10점
    버니 샌더스 지음, 홍지수 옮김/원더박스



    버니 샌더스의 모든 것 - 10점
    버니 샌더스 지음, 이영 옮김/북로그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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