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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서져 흩어진 마음의 껍데기
    2018. 9. 4.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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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로를 얻고자 했던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이 차가운 얼음 아래서 꿈틀거리는 물고기들의 외침처럼 들린다. 그가 겪었을 우울함과 절망감, 무력감을 알아채고 마주하여 서서히 서로의 슬픔을 위로하기 보다는, 응어리진 마음이 빚은 그 얇은 껍데기 만이 이 곡에 남겨져 있는것만 같다. 

     

    변함없이 달려온 우리의 삶은 신자유주의라는 경제적 틀과 정치적 외양 사이에서 ‘자로 잴 수 없는 것을 위한 잴수 없는 자’를 통해 가치와 개성을 거세 당하며 비본질적인 것에 의탁 하기를 강요받아왔다. 무수한 의견과 기치의 대립은 여론이라는 이름의 허깨비에 의해 일방적으로 뭉개어지고, 다시한번 모든 것을 경제의 논리와 틀 속으로 가두어 경제 최우선을 외쳐댄다. 자발적 성찰과 경험 마저도 완제품으로 제공되는 대량생산품의 부속들 속에서 가성비라는 허상에 최고의 명예를 비추는 세계에서 어찌해볼 도리 없이 부서지고 또 부서진다. 라흐마니노프의 첫번째 피아노 협주곡이 ‘하느님이 이집트에 내린 일곱가지 재앙 중 하나’라고 평가받았던 그 지휘자로 인해 과도한 혹평을 받았던 것처럼, 우리의 삶은 우리의 것 이면서도 동시에 우리의 것이 아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그 유명한 관용의 논거 마저도, 인간을 나이와 지역, 언어, 피부색, 학력, 경제력 등으로 종족화시키는 그림자 아래서, 차별과 학살은 더욱 빛을 내뿜게 된다. 본질이란 존재 하지 않는 것이 세상의 본질임에도 불구하고, 안과 밖을 끊임 없이 구분 짓고, 지배와 피지배를 경계 지으며, 허위성과 편견을 흔들어가며 유지하려 하는 그 소인배들의 병적인 투사로 인해, 사유는 공허한 것이 되고 상흔은 치유되지 않으며 무책임성과 증오만을 끌어들이는 정신적 위계구조를 쌓아올려 나간다. 그 아래에서 논리적 명증성과 객관성은 자력을 읽고 붕괴되어 나난다. 거짓은 진리처럼, 진리는 거짓처럼 들려오고, 모든 진술과 모든 뉴스와 모든 사유는 인지부조화와 무의식의 공포와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곳에서 쉽게 기만되어 버리고 만다.

     

    그 결과 어느 폭우가 쏟아지는 날의 노란색이 비일상적인 색으로 물들었고, 어느 봄날의 바다를 비일상적인 언어도 물들였으며, 어느 무더운 날에는 한 미소를 가슴 속에 묻고야 말았다. 부서지고 비통하고 닳아빠지고 공허한 마음속에 내던져진, 사과하고 반성하며 미안해하는 그 마음들이 갈곳을 잃고 정처없이 떠돌며 만들어진 하나의 초라한 껍데기가, 조용히 몰락과 파멸을 기도한다. 그렇기에 라흐마니노프가 그려낸 감정의 선율은 절망에서 피어나온 희망의 선율 보다는, 초라한 껍데기 위를 수놓은 절규만이 귀에 와 닿는 것만 같다.

     

    이 ‘부서져 흩어진 마음’을 ‘부서져 열리는 마음’으로의 전환을 나는 알지 못한다. 도망치지 않는 ‘마음을 조건’ 역시 나는 알지 못한다. 파커 파머의 기대와는 달리 어쩌면, 이 모든 껍질을 벗겨내고 현존하는 세계로 쥐어짜내어, 공감과 교감의 장을 펼쳐나가는 이 지극히 간단한 일이, 어떤 타의나 폭력 없이 순탄할 것이라는 순수한 전망이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는 냉소로 휩싸여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젠가 메시아가 나타나 밝은 빛을 비춰줄 존재가 없는 이상, 그 바람은 파커의 소망처럼 우리의 이 ‘부서진 마음’들을 ‘부서져 열리는 마음’으로 바꾸어 민주주의를 이끌어 나가야할 사명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음으로 빚어진 마음의 민주주의를 꿈꾸며.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 10점
    파커 J. 파머 지음, 김찬호 옮김/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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